(시사매거진252호=오경근 칼럼니스트)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46번 국도인 경춘가도(京春街道)나 서울시 상봉역에서 출발해 강원도 춘천역으로 가닿는 경춘선(京春線) 전철은 동백꽃 피는 이 계절, 꿈과 낭만과 사랑이 머무는 ‘젊음의 노선’으로 대변된다. 과거 성동역에서 춘천 사이 혹은 성북역에서 춘천에 이르는 단선열차가 운행되었으나 2010년 12월 이후 폐지되고,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됨에 따라 서울·경기 수도권에 연결된 1일 생활권으로 보다 가까워졌다.

현재 경춘선 전철은 과거 열차 노선과 같이 상봉에서 출발하여 망우, 갈매, 퇴계원, 가평, 남춘천역 등을 거쳐 춘천역까지 운행된다. 여기에 용산에서 춘천을 오가는 ‘ITX-청춘 열차’가 새로 투입돼 북한강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신(新) 경춘선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굽이 굽이 유려한 물길을 따라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에 이어 김유정역과 남춘천역에 이르는 동안 한 폭의 그림 같은 산과 강, 그리고 거기에 깃든 사람들의 마을과 물새들의 날갯짓을 관망할 수 있다. 더욱 우리나라 최초이며 유일무이하게 사람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은, 소설 <봄봄>과 <동백꽃> 그리고 <산골나그네>, <만무방,> <금 따는 콩밭> 외 12편의 작품을 집필한 소설가 김유정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김유정문학 촌’이 개설돼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금병산에 둘러싸인 떡시루 모양의 실레마을 ‘김유정문학관’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 <원본 김유정 전집 1987> 중에서 -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현 김유정로 1430-14) 실레마을에 가면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바로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에 위치한 문학마을이다. 본래 실레마을이란 지명은 그가 직접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금병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시루’의 강원 사투리 ‘실레’다.
이곳에는 1908년 1월11일에 태어난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가 위치해 있다. 그의 조카 김영수씨와 금병의숙 제자들의 고증으로 복원된 건축물로 안방과 대청마루, 사랑방, 봉당, 부엌, 곳간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ㅁ자 형태의 가옥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소설가 김유정 (1908~1937)의 생애와 작품, 관련 유물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김유정기념전시관’과 김유정의 삶과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물과 영상이 마련된 ‘김유정이야기집’이 있다.
또한 구역사인 신남역과 신역사인 김유정역, 김유정역 내에 있는 레일바이크, 금병산, 책과인쇄박물관, 삼포, 강촌, 삼악산, 팔봉산, 애니메이션박물관 등이 근거리에 인접해 있어 실레마을과 함께 도란도란 열여섯 마당 실레이야기길을 형성하고 있다.

소설가 김유정의 생애와 춘천의 봄봄 그리고 동백꽃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왼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 김유정의 <동백꽃> 중에서-
남쪽 해안에서 피고 지는 상록교목의 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강원도 춘천의 전형적인 야산지대에서 피고 지는 생강나무 꽃인 산동백. 소설가 김유정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붉은 동백꽃과 구별이라도 하려는 듯 ‘노란 동백꽃’이라고 표현하며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라고 표현했다.
1908년 2월12일 그렇게 햇살처럼 노란 빛깔의 산동백이 피는 이른 봄,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소설가 김유정은 청풍김씨 김춘식과 청송심씨의 2남6녀 중 일곱째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서울시 종로로 이사한 후 일곱 살 무렵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홉 살 무렵에 아버지를 연이어 여의면서 커다란 상실감에 빠져 한때 말을 더듬기도 했다.
이후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1929년에 졸업하였다. 그리고 1930년 4월6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잦은 병환으로 인해 결석이 많은 고로 제적 처분을 받아 학업을 끝내 마치지 못했다. 이러한 때 그는 서너 살 연상의 당대 명창으로 소문난 기생 박녹주에게 반해 열렬히 구애하였으나 실연당하고, 1931년 23세의 나이로 실의에 빠진 채 고향 실레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학교가 없는 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 등 농촌계몽활동을 벌이게 된다. 그러면서 궁핍한 농촌 현실을 몸소 체험한다. 그의 처녀작인 ‘산골 나그네’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1933년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고향 이야기와 실존했던 인물들이 생생하게 담긴 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이어 그해 처음으로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
또한 1935년에는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됨은 물론 소설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 당대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된다. 활발한 작품 활동과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 그는 1936년 폐 결핵과 치질이 악화되어 병고를 치르면서도 12편에 이르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간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생의 마지막 해인 1937년에는 다섯째 누이 김유흥(매형 유세준)의 과수원이 있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신상곡리로 옮겨와 요양생활을 한다. 그리고 오랜 벗인 휘문고보 동창 안희남에게 편지 쓰기를 끝으로 1937년 3월29일 쓸쓸하고 짧았던 삶을 마감한다. 이후 세계 문호들에 의해 김유정의 소설이 높이 평가되며 다국어로 변역돼 출판되었다. 특히 2000년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김유정 단편소설집 <소낙비(Une averse)>는 프랑스 신문 ‘라비에(Lavie)’ 에 게재되어 ‘모파상보다 김유정의 문체가 더 단순하고 정제됐지만 이 야기는 더 예리하고 신랄하다’란 극찬을 이끌어냈다. 또한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도 역시 김유정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소설가 모옌 역시 2008년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하여 "작가 김유정은 스물아홉 살에 떠났지만 위대한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정신과 사상은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감회를 밝혔다.
일제강점기 ‘신남역’에서 현재 ‘김유정역’으로 개칭
일제강점기 때 ‘새로운 남쪽의 춘천’을 의미하던 신남역에서 현재의 ‘김유정역’으로 개칭된 데는 누군가의 커다란 공헌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최초이며 유일무이하다’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사람의 이름 ‘김유정역’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은 신남역이었다. 하지만 신남이라는 지명은 본래 없었다. 그 연유를 알아보니 일제강점기 때 철도가 놓이고 역사가 개통되면서 황급히 붙여진 역사명이었다. 그때는 이곳이 행정구역상 신남면이었기에 일본인들 편의에 의해 붙여졌다. 이후 신남면이 다른 읍면동으로 바뀌었는데 계속해서 그 신남역은 남아 있었다.”
“그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여겨 당시 춘천시장에게 건의해 연이은 개칭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철도청과도 소통이 되어 2004년 12월1일 ‘김유정역’으로 변경이 되었다. 이것은 문화예술계에 엄청난 상징성을 부여한다. 한 작가의 이름을 철도역사 명칭에 붙인다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또 그것은 그만큼 소설가 김유정의 문학 가치를 인정함은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과거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한 데 이어 춘천시 김유정 문학촌에 거주하며 김유정문학촌 초대 촌장으로 16년 넘게 활동한 소설가 전상국 전 촌장의 말이다. 그는 1회~11회까지 김유정문학상 심사위원과 김유정기념사업회의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김유정기념 사업회의 명예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렇게 그가 처음 소설가 김유정에 매료된 계기는 1985년 강원대에 부임하면서부터다. 소설가 김유정의 흔적을 따라 실레마을을 방문하는 동안 그의 탁월한 감각과 지방색 그리고 점점 잊히는 토속적 한국인의 이미지를 재발견하며 작품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전상국 전 촌장은 “어떻게 한 작가가 12편이나 되는 소설을, 한 마을을 배경으로 여러 주제를 통해 구현했을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실존 인물이었고, 그들이 각각 독특한 캐릭터로 재현돼 우회적으로 사회 부조리를 들추는 메신저가 되었다. 그것이 너무 매력적이었다”고 들려준다.

당대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는 소설가 김유정은 탁월한 언어감각의 소유자다. 전통적인 한학을 했으면서도 30편에 달하는 소설 속에는 단 한 글자의 한자도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밑바닥 인생을 사는 만무방과 따라지들의 삶을 그리면서도 저속하거나 세속적이지 않게 그 서민적 언어로 그들의 생활풍습을 그려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그러한 가치를 알고 있는 전상국 소설가에 의해 현재의 ‘김유정역’이 살아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