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 252호=박희윤 기자] 불가능할 것 같았던 선거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여야 4당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면서 ‘패스트트랙’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에서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에 대한 문제를 함께 패스트트랙에 넣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 라 잠시 주춤한 모양새다.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는 어떤 기관이고,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어떻게 논의되어 왔으며 정말 필요 한 기관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는
검찰 개혁 방안의 하나로, 전직 대통령·국회의원·판검사·지방자치단 체장·법관 등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 기소할 수 있는 독립기관으로 ‘공수처’라고도 한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이양해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막고 독립성을 제고하는 것이 그 취지다. 1996년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가 발의한 부패방지법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공수처 신설이 국회에서 논의됐으나 무산됐다. 이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수처법을 발의하며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신설을 시도했지만 2005년 당시 한나라당의 반발로 도입되지 못했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방침을 밝혔다. 이후 10월 법무부가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할 독립기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위한 자체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공수처의 정식 명칭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아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정했는데, 이는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범죄의 수사 및 공소를 담당하는 기관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2017년 법무부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 방안
공수처의 수사 대상자는 ‘현직 및 퇴직 후 2년 이내의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이다. 그 대상에는 대통령 외에 국무총리, 국회의원, 대법원장·대 법관·판사, 헌재소장·재판관, 광역자치단체장·교육감을 비롯해 각 정부 부처 정무직 공무원, 대통령비서실·경호처·안보실·국정원 3급 이상과 검 찰 총장·검사, 장성급 장교,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이 포함됐다. 고위 공직자 가족 범위는 일반 고위공직자의 경우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이고, 대통령은 4촌 이내 친족까지다.
공수처 조직은 처장과 차장 각 1명, 검사 25명, 수사관 30명, 일반 직원 20명이다. 공수처장은 국회 추천위원회가 후보 2인을 추천하면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한 뒤 국회에서 1명을 선출해 대통령이 임명 절차를 밟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이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한다. 공수처장과 차장의 임기는 3년 단임으로 했으며 공수처 검사의 경우 임기를 일단 3년 단위로 연임하되 연임 횟수를 3회로 제한해 최장 9년만 근무할 수 있게 했다.
법무부는 자체 방안을 통해 공수처에 수사·기소·공소유지 권한을 모두 부여하기로 했다. 다만 공수처의 권한남용 견제 장치 마련을 위해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불기소심사위원회’를 설치해 불기소 처분 전 사전심사를 받도록 했다.
또 검사의 부패범죄의 경우 제식구 감싸기 논란이 없도록 모두 공수처로 이관하도록 규정했고, 타 수사기관과의 관계에서도 공수처의 우선적 수사권을 인정했다. 반면 공수처 검사의 범죄 혐의가 발견됐을 때에는 공수처가 자료와 함께 검찰로 통보해 수사하게 했다.

패스트트랙의 암초가 된 공수처법
여야 4당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지정 협상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합의에 도달했다.
“이번에 합의 못 하면 전쟁이 나도 선거법은 못 고친다”라는 절박함이 각 당으로부터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큰 양보를 끌어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표현을 빌자면 ‘차선’도 아닌 ‘차악’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선거법 개정 협상안은 만들어졌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내부 반발 속에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김관영 원내대표가 지난달 21일 “우리 당 입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통첩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바른미래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쟁점은 첫째, 공수처 검사에게 기소권을 줄 것인지 말 것 인지이다. 민주당 안은 공수처에 수사권과 함께 기소권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공수처 소속 검사가 수사도 하고, 직접 기소 여부를 판단해 재판에 넘길 수도 있도록 한 것이다. 반면 바른미래당 안은 공수처에 수사권만 주고 기소를 할 때는 검찰에 송치하도록 하고 있다.
둘째, 공수처장의 추천 방법이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발의한 법안은 공통적으로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7명으로 구성하고,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변협 회장, 그리고 국회에서 추천한 4명을 추천위원으로 임명이나 위촉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국회에서 추천한 4명’이다. 법안에는 구체적인 방법이 적시되지 않았는데, 바른미래당은 협상 과정에 ‘여당 추천 1명+다른 교섭단체 추천 3명’안을 제시했다.
기소권과 공수처장 추천권을 놓고 이렇게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당은 공수처를 독립된 기관으로 보고 힘을 실어주려고 하고, 바른미래당은 정권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견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버닝썬·김학의·장자연’ 사건의 공통점
김학의, 장자연, 버닝썬 등 세 사건은 모두 여성을 대상화한 성착취 사건이란 점 외에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공권력이 범죄를 은폐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데 조력한 것이 의심되는 범죄란 사실이다. 국민 여론이 검찰과 경찰 양쪽 모두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도 같다.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은 경찰이 2013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것을 검찰이 ‘동영상 속 인물을 김 전 차관으로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이듬해 피해 여성의 고소로 재수사가 이뤄졌지만 다시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최근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와 관련해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어 감정 의뢰없이 검찰에 송치했다”고 증언하며 검찰의 부실수사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경찰도 믿을만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다.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경찰은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3만 건 이상의 디지털 증거를 누락한 채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장자연 사건은 검경 부실 수사의 총체를 보여준다. 당시 처벌받은 이는 소속사 대표와 전 매니저 둘뿐이고 이마져도 성접대와 무관한 폭행 등 혐의다. 성상납 의혹 관련 연루자는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최근 공개 증언에 나선 목격자 윤지오 씨가 성접대 리스트 속 ‘언론인 3명과 정치인 1명’을 추가로 밝히고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검사가 검찰 내부에서 “사건을 잘 부탁한다”는 청탁이 존재했다고 밝히면서 부실 수사 의혹은 더 커진 상태다.
당시 경찰은 유력 인사 성접대 의혹이 불거진 장 씨 사건과 관련해 사망 1주일 뒤 압수수색을 했지만 고작 57분에 그쳤다. 재계와 언론계 유력인사로 추정되는 명단이 적힌 핵심 물증인 다이어리 등도 압수수색 과정에서 놓쳤다.
장자연 사건은 대부분 공소시효가 완료돼 조사단의 발표 이후 사법 처리는 요원한 상황이다. 김학의 사건은 기존에 무혐의 처분됐던 혐의 외 추가 혐의로 재수사가 들어갈 수 있으나 다시 검찰의 손에 맡겨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공수처의 장·단점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특권층의 불법적 행위와 외압에 의한 부실수사, 권력의 비호·은폐 의혹 사건에 대한 국민 분노가 매우 높다”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시급성이 다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공수처의 최대 특장점은 경찰이나 검찰 고위직이 관련된 때와 검경 수사가 기본적으로 신뢰를 얻기 어려운 불신지대 사건에 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 또한 작지 않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7년 성명서를 통해 “공수처라는 별도의 수사기관에 의해 검찰을 견제하는 기능이 있고 상시적으로 운영되어 수사의 전문성을 축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특검 임명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고, 제2의 검찰로 검찰권을 분리하는 옥상옥에 불과하다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공수처를 도입할 경우 특별검사의 임명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거나 공수처의 수사가 오히려 정치화할 우려가 있다”며 공수처의 설치를 반대했다.
공수처는 검사의 기소독점주의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패스트트랙을 위한 기소권이 없는 반쪽짜리 제도가 되거나, 권력의 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제도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