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퇴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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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퇴출제
  • 글/김정숙 기자
  • 승인 2007.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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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퇴출제도' 약인가, 독인가
중앙정부도 행자부 앞세워 시행 움직임, 철밥통은 ‘끝’

울산에서 시작된 ‘무능공무원 퇴출제’가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를 거쳐 행자부 등 중앙부처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서울 광화문의 정부 중앙청사는 물론 과천청사도 마찬가지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 이어 행정자치부가 중앙부처에서는 처음으로 무능 공무원에 대한 ‘삼진 아웃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관가의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권오룡 중앙인사위원장이 “행자부의 퇴출제가 타 부처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깔고 있다. 올 초 참여정부 임기 말 공직 감찰을 강화하겠다고 엄포를 놔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퇴출열풍’에는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 청사 내 이발소의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출근시간 역시 ‘칼출근’이 당연시되어가는 상황이다. 특히 청사가 아닌 외부 임대 사무실에 입주한 부처의 경우 출·퇴근 기록 카드가 있다 보니 ‘불리한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출근 시간이 더욱 빨라졌다는 후문이다. 업무 도중 잠깐 자리를 비우고 개인 업무를 보러 외부에 나가는 사례도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건설교통부 한 관계자는 “과거 지각하던 사람들도 요즘에는 일찍 출근하고 있다”며 “퇴출이 무섭긴 무섭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요즘 초과 근무자들이 너무 많아 이를 관리하는 업무에도 시달리고 있다”면서도 “조직 내부에서 기피 인물이 되지 않으려고 다들 신경 쓰는 눈치”라고 밝혔다. 이번 퇴출제 여파가 꼼꼼한 업무 처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경부의 경우 전반적으로 퇴출을 걱정하는 기류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 보직을 박탈당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전과 같지는 않다.
재경부 관계자는 “보직을 받지 못한 고위직 공무원들이 스스로 관직을 떠나고 있다”면서 “고위직 공무원 사이에 업무 중압감을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퇴출제 등장 배경은 공무원이 자초해
울산을 시작으로 서울, 대구, 제주, 파주, 경남, 전북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휘몰아치고 있는 ‘무능·부적격 공무원 퇴출제’가 공직사회를 넘어 사회 전반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공무원의 신분 보장을 명문화한 국가공무원법이 1963년 제정된 이래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결코 깨질 수 없는 ‘철밥통’을 의미하는 단어로 인식돼 왔다. 그 철밥통이 ‘퇴출제’로 불리는 인사개혁에 의해 수십 년 만에 깨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혁의 당사자인 공무원들의 상당수는 이 같은 퇴출제에 대한 강한 불만과 반감을 드러내고 있으나 모 언론사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사대상자(500명)의 68%가 퇴출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 행정서비스의 수혜자인 국민들은 대체로 이 제도에 찬성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은 퇴출제에 대해 “당연한 제도 아니냐”, “왜 이제야 시행하느냐”며 반기고 있는 실정이다.
공무원과 일반 국민의 인식의 괴리가 금년 들어 퇴출제가 불거지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배경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무원 사회만 IMF이후 닥친 퇴출 열풍에도 무풍지대였다. 지난해 말 현재 참여정부의 전체 공무원은 93만3천663명으로 국민의 정부에 비해 4만8천499명(5.67%)이 늘어나는 등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흐름과도 어긋난다는 분석이다. IT(정보기술)의 발달로 업무효율성이 높아지고 1인당 노동생산성이 증가한다면 인원이 점차 감소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공무원 사회만은 그 반대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은 일선 현장에서의 나태함과 안일한 모습으로 이어졌던 게 사실이다.
민간기업에 근무하다 서울의 한 자치구청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된 A씨는 “지금의 구청 공무원 정원의 절반 아니 25%만 있더라도 전체 업무를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현재의 공직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렇듯 퇴출제는 시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자치단체장이 시민들의 여론을 민감하게 살펴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됐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무능공무원 퇴출제를 공무원들을 내쫓기 위한 제도로 바라보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해당 공무원들에게 자성의 기회를 주고 전체 공무원 사회의 능력과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기회’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허청 ‘성과주의 시스템’ 시행중
그런 가운데 특허청은 이미 작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올해 행정자치부가 중앙부처 중 처음으로 퇴출제를 마련 시행키로 했다. 하지만 특허청이 사실상 퇴출제를 처음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1일 중앙부처 중 처음으로 기업형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된 직후 자체 성과주의 인사운영시스템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작년 6월, '균형성과지표'(BSC)에 기반한 성과관리시스템 구축이 그 기반이다. 이는 반기별 성과평가 결과를 누적 관리해 2회 연속 최하위 1%에 해당할 경우 자체 역량강화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특허청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본부장, 팀장 등을 위원으로 하는 역량평가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중앙징계위원회에 직권면직 요청 등 퇴출까지 가능토록 규정했다. 성과평가는 작년 7월과 올 들어 지난 2월 등 총 2회 실시됐다. 현재까지 연속 2회 최하위 1%에 든 공무원은 2~3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현재 역량강화프로그램을 이수 중이다.
특허청은 그러나 이 제도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등 신분 보장을 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연속 하위 1%에 해당돼도 신규 채용이나 전입 후 1년 미만자 등일 경우에는 퇴출대상에서 제외토록 했다. 퇴출기준에 해당되면 3개월간 민간전문 컨설턴트와 상담 및 과제수행 결과를 토대로 현업 복귀나 퇴출 등을 결정토록 했다. 제도의 포괄적 적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직원들은 대체로 시대적 흐름이라는 분위기다. 특허청 소속 B 직원은 “일한 만큼 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당연시되고 있다”면서 “업무 분위기가 많이 바뀌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성과주의에 따른 혜택도 있다. 지난 2월 시행된 팀장 직위공모에서 성과평가 결과 1회 연속 최상위 1%에 해당한 2년차 한 서기관이 다른 고참들을 제치고 팀장으로 특별 승진했다. 또 1인당 최고 700여 만 원의 성과급도 차등 지급된다.



퇴출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
한편, 학계와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도 ‘공무원 퇴출제’의 기본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학계와 시민단체 일각에선 ‘퇴출제’를 공공부문에 획일적으로 적용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분야별, 직종별 성격에 따라 탄력적으로 퇴출제를 적용하거나 명확한 퇴출기준을 만드는 등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공무원노동조합측은 퇴출제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은 “공직사회를 억압과 공포를 통해 강제로 ‘일하는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정년 보장이 안 되면 정도의 차이일 뿐 단체장 눈치를 보고 줄을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퇴출제의 근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기존 근무성적 평정 제도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근무성적 평가 제도를 바탕으로 퇴출제를 시행할 경우 공무원들이 수긍하기 어려운 만큼 기관별로 세밀한 근무성적 평가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 교수는 “이번 퇴출제 도입이 서울시 조직의 효율성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행정의 기본은 직무 분석과 이에 근거한 근무성적 평정”이라며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춰서 퇴출제를 했어도 늦지 않았을 텐데 준비되지 않은 채 시행됐다”고 말했다.
다른 행정학 전공 교수역시 중앙부처 업무의 특성을 들어 이 제도를 중앙정부로까지 확대하는 데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지방정부의 업무는 비교적 집행 성격이 강해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다”며 “그러나 중앙 행정기관은 법제, 기획 등 제도 만드는 업무가 많아 평가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제나 기획은 직업 공무원의 능력보다 청와대나 국회, 시민단체 등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는 복잡한 환경에서 정책성과가 나오고 이 때문에 개인, 부서 단위의 성과 평가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상대적으로 잦은 중앙정부 장·차관의 교체가 결국 정책 변화로 이어지는 현실도 평가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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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행자부장관 “일회상 퇴출아니다”
박명재 행자부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행자부의 인사쇄신 방안을 외청인 경찰청에서도 판단할 것”이라고 말해 최대 공무원 조직인 경찰에도 퇴출제가 도입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박 장관은 “몇%의 공무원을 퇴출시킬지 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를 정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일회성으로 끝나면 안되고 꾸준히 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권오룡 중앙인사위원장은 4월 12일 “중앙인사위는 각 부처에 강제로 무능 공무원 퇴출제를 도입토록 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이날 오찬기자간담회에서 행정자치부의 퇴출제 도입 방침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할당을 정해 강제로 퇴직시킬 수는 없으며 지자체 몇 곳에서 한다고 해서 중앙정부도 해야 한다는 식은 분명히 아니다”고 강조했다.
권 위원장은 그러나 “행자부의 인사쇄신 결과가 구체적으로 나오고 특히 그 결과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부처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행자부가 공무원 퇴출제를 중앙부처에서 처음으로 도입키로 함에 따라 다른 부처도 퇴출제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퇴출제를 도입할 때는 법령과 기준 등을 분명히 따라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아울러 행자부의 퇴출 공무원 선정 기준과 절차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면 인사위로서는 해당 부처와 협의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일부 자치단체와 행자부 등에서 시행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각 부처 자율로 할 사항이며, 법과 절차를 지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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