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1호=김민수 기자) 과거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는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 혹은 ‘아가씨’, 아내의 동생을 ‘처남’ 혹은 ‘처제’라는 호칭으로 지칭하고 있다.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자연스럽게 불리우던 호칭이었기에 전통문화로서 당연스럽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관습처럼 써오던 가족 간 호칭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는 남편의 집안을 중심으로 한 성차별적 비대칭 호칭이라며 호칭 변경 및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등장을 하며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 김씨는 지난 설 연휴를 맞이해 남편을 따라 시댁을 방문했다. 김씨는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린 뒤 남편의 사촌 동생 B씨에게 인사를 전했다. “OO씨,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순간 어르신들의 표정에는 어색한 기운과 미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김씨가 ‘도련님’이라는 호칭에서 ‘~씨’로 호칭을 바꿔 불렀기 때문이다. 띠동갑이 넘게 차이나는 B씨도 당황을 한 기색이다.
집안 어르신들은 김 씨를 타이르지는 않았지만 이윽고 호칭 개선의 대화가 오가며 팽팽한 의견대립이 오갔다. “(도련님이나 아가씨는) 촌수에 관한 호칭처럼 예전부터 쓰던 말인데, 바꾸자는 게 말이 되나” 라는 말과 “원래부터 잘못된 호칭이다, 바꿀 때가 됐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오갔다.
짧은 시간 ‘호칭 개선 실험’을 했던 김씨는 “갑자기 호칭을 바꾸려니 시도가 쉽지 않았다”며 “가족들과 의견을 나 눈 뒤 천천히 바꿔 나간다면 어색함이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
과거에서부터 내려온 가족 호칭이 현대사회에 들어 성차별적 비대칭 호칭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차별적 비대칭 호칭은 과거 대가족 남성중심사회에서 유래된 언어 습관 중 하나이다. 도련님은 ‘도령’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총각을 대접해서 부르는 호칭에 ‘님’까지 붙여 높여 부른 말이고, 아가씨는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을 부르는 ‘아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남편 쪽의 호칭은 높여서 부른 반면, 아내 쪽의 호칭은 처남이나 처제 등 상대적으로 가볍게 불러왔고, 이는 ‘남편 집안 중심의 결혼 제도’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이같은 문제점은 전문가와 일반 시민들의 문제 제기로 이어졌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일각에서는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반론도 나왔다.
평등한 호칭으로 개선해 후세의 전통으로 넘겨줘야
주부 배 모씨는 가족호칭, 여성 차별적인 호칭은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배 씨는 “둘째 아들인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결혼 이후 가장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시가에서 통용되는 호칭 문화였다”고 말한다.
가족들이 모이면 자신은 아주버님, 형님 등 줄줄이 ‘님’자를 붙여서 불러야 하지만 그들 중 자신에게 ‘님’자를 붙여서 부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또한 부계는 친할 친(親) 자를 사용해 친가라고 부르고, 모계는 바깥 외(外) 자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며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됐다.
배씨는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온 전통이지만 전통이란 이름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불편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 시점에서 평등한 호칭 문화를 만든다면 이것 또한 후세에게 아름다운 문화를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결혼 3년차인 고 씨(30·여)는 각종 용어와 호칭에서 ‘시댁’과 ‘친정’의 위계가 여실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고 씨는 “단어가 모든 걸 바꾼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언어가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인식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언어가 바뀌면 좋겠지만 그 속도가 더뎌진다면 언어부터 바꿀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차별이 아닌 우리 전통… 인간관계 중시하는 유교문화
위와 같이 성차별적 비대칭 호칭에 대한 개선 및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유교방송의 최영갑 대표는 차별이 아닌 오랜 전통에 대한 문화라고 설명했다.
모든 사물이나 사람은 각각 명칭, 이름이 있다. 그러한 호칭, 지칭을 통해 어떠한 관계에 있다라는 점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지만 이러한 호칭이 없어지게 되면 관계성을 전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는 설명이다. 또한 최영갑 대표는 논란의 문제점 중 하나로 ‘다양한 가족의 호칭도 정확히 인지를 하지 못하면서 편리함만 추구하고자 하는 인식’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최 대표는 “가족의 범위를 살펴보면 더욱 복잡한 용어들이 많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 한글식 표현으로 모두 바꾸려고 시도하거나,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며, “호칭이나 지칭은 타인과 나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고, 그 관계는 누가 보더라도 쉽게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성차별 논란으로 몰아가는 것은 본질을 망각한 논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승계하고 지키자는 뜻은 아니다. 좋은 호칭이나 명칭이 있다면 얼마든지 같이 노력을 해서 평등한 문화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다만 전통이라는 테두리 안에 속해 있는 것들이 무조건적인 ‘배척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을까라는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가족소통의 저해까지 이어져
현실과 호칭 체계의 괴리는 가족 간 소통을 저해하기도 한다.
김 모씨 (46·남)는 연하인 아내와 14살 차이가 난다. “내 막내 여동생이 아내보다 8살이 많은데 아내를 ‘올케 언니’라고 불러야 하니 어색하고 자존심이 상해서인지 여동생이 아내와 대화를 잘 하지 않으려 한다”고 토로하며, “나중에는 우리끼리 ‘올케’라고 부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경어는 사용해야 해서 대화할 때마다 부자연스러움을 숨기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또한 친가와 외가로 나누는 이분법적 호칭이 친척 사이의 친밀도마저 구분 짓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 살배기 딸을 둔 한 모씨(31)는 “어릴 적 친가가 아버지 쪽이니 외할머니보다 친할머니를 더 가까워해야 한다고 ‘세뇌’ 받았던 것 같다. 외할머니도 은연중에 ‘외손주보다는 친손주’라고 말씀하셔서 어린 마음에 상처받기도 했다”며 “딸에겐 일부러 친가·외가를 나누지 않고 다 ‘할머니’라고 한다. 아직 세 살이지만 그렇게 해도 어느 할머니인지 다 알아듣는다” 고 설명했다.

설문조사 실시결과, 여성 93.6% 호칭 변경에 찬성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립국어원은 지난 8월 16일~9월 26일까지 ‘일상 속 호칭 개선방안’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여성 응답자의 93.6%는 ‘도련님·서방님·아가씨’라는 호칭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도련님·서방님·아가씨’라는 호칭을 어떻게 고쳤으면 하는지에 대한 조사에서 여성 응답자의 60.7%는 ‘부남·부제’를 꼽았으며, 54.0%는 ‘~씨’라는 이름으로 부르자는 의견, 16.0%는 ‘동생’ 또는 ‘동생분’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 결과가 나왔다.
남성 응답자의 경우 ‘~씨’라는 이름으로 부르자는 응답이 53.3%로 가장 많았고, 이어 ‘부남·부제’는 40.1%, ‘동생·동생분’은 27.2% 순으로 결과가 나왔다.
시집·시가를 높여 부르는 ‘시댁’이라는 호칭처럼 처가를 높이는 말로 ‘처댁’이라는 호칭을 새로 만들어 쓰는 방안에 대한 설문조사로는 여성 91.8%, 남성 67.5%가 각각 찬성했다.
국립국어원 소강춘 원장은 “표준언어예절 정비작업에 이번 국민생각함 조사 결과를 적극 반영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관계 부처와 전문가 단체 등 각계 의견을 추가로 수렴해 호칭 체계를 정비할 것이다”고 전했다.

여가부, 성별 비대칭 가족 호칭 개선
여성가족부는 가족 호칭 양성평등을 담은 2019년 건강가정 기본계획(2016~2020) 시행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시행계획을 살펴보면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그에 맞는 가족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가족평등지수를 개발하여 결혼 이후 호칭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마련을 추진 계획이다.
여성가족부가 진행 중인 ‘가족 호칭에 대한 국민생각 조사’에서 제안된 개선 표현 중에는 이름과 함께 ‘씨’를 붙여 부르자는 의견이 약 53%로 과반을 차지했다. 남편의 동생에 대해 ‘부남·부제’라는 호칭을 새로 만들자는 의견도 약 18%를 차지해 호응을 얻었다.
여성가족부의 관계자는 “설문조사대로 개선이 진행되기 보다는 호칭 개선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알기 위한 조사였다”라며 “설문 결과는 공청회 등에 자료로 쓰일 예정이다”고 전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이 변했다. 더이상 가부장적인 친족 제도는 현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이 말이다. 현재 우리의 가족 호칭을 살펴보면 양쪽의 균형을 잃은 것은 사실이다. 아내의 연령과 상관없이 남편의 집안 서열에 따라 손 위·손 아래가 뒤죽박죽 되기 십상이다. 충분히 호칭 개선의 필요성은 더 나은 미래사회를 위한 초석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통적인 용어를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평등하고 합리적임을 더해 전통의 의미를 오롯이 반영한 용어로 개선될 수 있도록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제대로 통합하여 잃어버린 균형을 다시 수평으로 맞출 수 있는 지름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