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의 무모한 도전? 탈당으로 집중포화
여야, 대통령까지 나서 맹비난, 여권 일부는 손익계산중
전문: 지난해부터 꾸준히 거론되어 왔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이 현실이 되었다. 여권 일부의 꾸준한 러브콜과 한나라당내 이명박·박근혜 양강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손 전 지사는 고심 끝에 탈당을 강행했다. 그런데 그 후폭풍이 상상외로 거세다. 한나라당의 비난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까지 가세해 손 전 지사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여론 역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역시 손 전 지사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지난 3월 20일 “탈당이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지금 매를 맞고 죽더라도 감수하고 새로운 정치를 해 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그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이를 위해서 불쏘시개가 되라면 불쏘시개가 될 것이고, 치어리더가 되라면 치어리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지사는 탈당과 관련해 “내가 정치를 하는 목적은 세상을 바꿔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인데 과거회귀, 세몰이, 줄 세우기 같은 구태정치를 막지 못하며 절망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특히 소장파 줄 세우기에 대해선 “있는 사실을 말로 가릴 수는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 전지사는 이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지 질문을 받고 “우리 사회엔 미래지향적인 전문가 집단,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세력, 그리고 통합의 정치를 추구하는 정치세력 등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세력들이 상당히 많다”며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의 틀을 구성해 나가면서 소위 범여권 후보로 거론 되는 분들 뿐 아니라 한나라당 안에 있는 분들도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과 자세를 갖는다면 폭 넓게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운찬, 진대제, 문국현, 박원순, 최열 등 최근 탈당과 함께 거론되는 인사들에 대해선 “이제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직접 참여는 안 하더라도 그런 흐름에 동조하고 뒷받침을 해주는 분들도 광의의 새로운 정치세력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손 전지사는 나아가 “무능한 좌파에 국민들이 신물이 나고, 낡은 수구에 국민들이 실망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평화, 통합의 새로운 정치공간을 만드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그 역할 속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이 규합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탈당 후 행보, 밝지만은 않다!
그러나 손 전 지사의 앞으로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대선을 향한 로드맵과 인맥, 조직 등 모든 게 백지 상태이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는 탈당 후 서대문 캠프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정치적 플랜을 마련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자신이 참여할 신당의 대선후보 선출 방식에 대해 “오픈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제)이어야 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 손 전 지사에게 가장 급한 것은 사람을 모으는 일이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서대문 캠프에선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을 제외하곤 김성식 전 경기도 정무부지사와 박종희 전 의원 등 핵심 인사들이 모두 손 전 지사와 함께 하기로 했다.
손 전 지사의 신당 창당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은 ‘비(非)열린우리당, 반(反)한나라당’을 내걸고 각 분야 386 운동권 출신들이 창립한 ‘전진코리아’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진보적 색채의 ‘창조한국 미래구상’과 386 전문가 그룹인 ‘통합과 번영을 위한 국민행동’도 손잡을 수 있는 세력으로 꼽힌다. 소설가 황석영씨, 시인 김지하씨 등 손 전 지사와 가까운 민주화 인사들도 신당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다음 단계는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과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 명망 있는 외부 인사들을 끌어들이는 일인데 이들의 동참 여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정 전 총장은 이날 충남대 특강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손 전 지사와는 친분이 있어 인간적으로 만나자고 하면 만날 용의는 있다”면서도 “(함께) 정치적 모임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해 일단 거리를 두었다.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모임, 민주당 등 범여권 진영과의 대통합에 나설 수도 있지만 일정표의 맨 마지막 자리일 개연성이 높다.
손 전 지사의 한 측근은 “신당의 구체적 모습이 그려지려면 최소한 5,6월은 돼야 할 것”이라며 “8월로 예정된 한나라당의 경선 일정을 감안한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등에 칼 꽂았다”
한편, 친정이던 한나라당은 배신감을 표출하며 손 전 지사 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손 전 지사 캠프 내에서는 탈당 당일인 3월 19일 분위기와 달리 다음날부터 탈당에 동참하지 않는 이탈 세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손 전 지사의 탈당 선언 직후 유감을 표명하며 다시 돌아와 줄 것을 요구하는 등 직설적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이같은 기류는 다음날 180도 바뀌었다.
당 지도부는 이날 국회대책회의에서 한목소리로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비난했다. 특히 손 전지사가 전날 탈당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에 대해 ‘군정 잔당’ ‘개발독재 잔재’ ‘수구’ 라고 비난한 대목에 크게 '분노'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를 ‘등에 칼을 찌르는 발언’이라고 격하게 규탄했다. 원망과 서운함을 넘어 배신감으로 표출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명분도 납득할만한 이유도 없이 분열의 길을 가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며 “14년간 당에 몸담으며 장관에 지사까지 지낸 분이 떠나면서 남은 사람들 등에 칼을 찌르는 발언을 했다”고 성토했다.
그는 “손 전 지사의 걸어온 길을 보면 석연치 않고 설명도 부족하다. 그의 탈당 선언 직후 범여권의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환호하고 환영하는 태도야 말로 구시대 공작정치로 회귀가 아닌지 우려 된다”며 “손 전 지사는 자신이 비판한 군정의 잔당과 개발독재의 잔재가 누구인지를 밝혀야 된다”고 요구했다.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은 “여권과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 손 전 지사는 탈당을 했고 천정배 의원과 같은 논조로 짜 맞추듯 한나라당을 비난했다”면서 “대권의 욕심만을 위해 정치도의를 저버리는 사람에게 하늘은 결코 대권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재희 정책위의장도 “먼 미래를 보고 이 나라 통일시킬 수 있는 여러 난제들을 풀어나갈 방법을 준비하고 실천하는 것이 개혁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며 “주인공이 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데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의 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나라당 사무처 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을 내고 “단물만 빼먹고 누워서 침 뱉는 손학규씨는 당장 정계를 은퇴하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민자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을 3번씩이나 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쳐 경기도지사에 당선돼 ‘자칭’ 한나라당의 ‘주인행세’를 한 손학규씨가 어제 한나라당을 탈당했다”며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해 주고 아껴준 한나라당을 배신하고 탈당을 하면서 당에 남아있는 당원들에게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을 하고 떠났다”고 비난했다.
이어 “탈당 기자회견에서 손학규씨가 눈물을 흘리면서 사죄해야 할 대상은 자신을 취재하느라 고생했던 언론인들이 아니라 그동안 손학규씨에게 박수와 지지를 보냈던 한나라당 당원들”이라며 “한나라당이라는 보금자리에서 단물만 다 빨아먹고 이제 탈당을 하면서 무슨 그런 허무맹랑한 이유를 둘러대는가”라고 성토했다. 성명은 이어 “이제 손학규씨는 자신의 탈당 이유를 솔직히 밝히라. 혹시 한나라당의 후보로서 여론조사 결과가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대신 범여권 후보의 여론조사 수치에 현혹된 것은 아닌가”라고 꼬집으며 “손학규씨는 더 이상 범여권후보라는 사탕발림 포장을 벗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위선을 과감히 던져버려야 한다”고 손 전지사의 ‘다른 뜻’을 의심했다.
노대통령 비난 동참에 손 전(前) 지사 발끈
범여권의 통합신당파 등 손 전 지사에게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은 손 전 지사 껴안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손 전 지사는 자신을 비난한 노무현 대통령을 강력하게 맞받아쳤다. 본격적인 독자행보를 걷겠다는 신호탄으로 보여진다.
고건 전 총리를 낙마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노무현 대통령이 3월 20일 손학규 전 지사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 석상에서 "탈당을 하던 입당을 하던 평소 소신을 갖고 해야지 선거를 앞두고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지사를 공격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자기가 후보가 되기 위해서 당을 쪼개고 만들고 탈당하고 입당하고 이런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을 근본에서 흔드는 것"이라며 "보따리장수같이 정치를 해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손학규'라는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들어도 손 지사임을 알 수 있게끔 이렇게 공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손 전 지사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주당을 탈당한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며 "무능한 진보를 대표하는 노 대통령은 내가 말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위해 극복해야 될 대상"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손 전 지사는 또 "국무회의에서 그런 말을 하셨다는데 정치평론은 그만하고 민생이나 챙기라"고 말했다.
이탈자 늘어나나
손 전 지사 탈당에 가장 충격이 큰 곳은 바로 손 전 지사의 대권 행보를 꾸려온 캠프다. 최측근조차 막판까지 손 전 지사가 탈당을 할 것이라고 예측을 못했을 정도로 손 전 지사의 탈당은 전격적인 것이었다. 손 전 지사의 한 측근은 "기자회견 당일까지 탈당을 몰랐다"며 "그냥 멍할 뿐"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를 반영한 듯 캠프 내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이탈 세력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캠프 내 직능특보를 맡아서 활동해 오던 신현태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탈당에 반대를 해왔고, 또 탈당이 정치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손 전 지사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손 전 지사를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모신 한 측근도 "이제는 각자가 선택을 해야 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여권 일부의원 합류설?
한편, 유력 후보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범여권에서는 향후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중도개혁을 표방한 제3지대에서 손 전 지사와 조우할 잠재적 우군이 많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손 전 지사 측은 "열린우리당, 민주당 의원 등 20여 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탈당 이후 그동안 침체됐던 범여권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 범여권은 손 전 지사의 탈당을 한껏 두둔하며 힘을 실어줬다. 손 전 지사의 탈당이 지지부진한 범여권 통합작업 추진에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통합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손 전 지사를 치켜세우는 발언을 쏟아냈다. 정세균 의장은 “금년 대통령선거가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선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탈당하게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오영식 전략기획위원장도 “(손 전 지사의 탈당을) 한나라당은 다시 한 번 깊이 본인들을 뒤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들은 회의 시작 전에도 ‘시베리아를 넘어 가겠다’는 손 전 지사의 발언에 대해 “시베리아야말로 에너지의 보고”(정 의장), “시베리아는 자원도 많고 천연가스도 많다. 오히려 신개척지”(민병두 의원)라고 말했다.
우리당 탈당그룹은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자신들의 통합신당 추진이 탄력을 받게 됐다고 평가하면서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는 기류다. 손 전 지사가 이날 범여권의 통합신당파와의 연합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은 데 주목하는 분위기다.
통합신당모임의 전병헌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손 전 지사의 탈당은) 대한민국 미래세력 대결집의 신호탄”이라며 “‘정동영·정운찬·손학규+α’의 통합드림팀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 선진경제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희망의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효석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제 인물 중심의 창당보다는 모이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며 “손 전 지사는 전진코리아를 중심으로 기반을 넓힌 뒤 빅 텐트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중심당 신국환 공동대표는 이날 경북 영주에서 열린 뉴라이트 창립대회 직후 “우냐, 좌냐가 아니라 이제는 중도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한다”며 “우리당 및 통합신당모임, 민주당, 전진코리아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내달 초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손 전 지사와 교감설이 나돌고 있는 '전진 코리아'에 깊숙이 관여해 온 열린우리당 김부겸ㆍ김영춘 의원은 물론 손 전 지사가 경기지사 시절 관계를 맺은 민생모임 제종길ㆍ정성호 의원 등은 손 전 지사 합류의 진원지로 거론되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손학규 탈당’ 여론의 향방은…
그렇다면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어떨까. 한나라당 탈당 선언 후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 단일후보로 확정될 경우를 가정한다 하더라도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가상대결 여론 조사가 발표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한 방송사가 손 전 지사의 탈당 이틀 후 발표한 가상대결 결과에 따르면, 이 전 시장 대 손 전 지사의 경우 이 전 시장은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8.4%의 지지율을 보였으며, 손 전 지사는 27.7%로 양 주자간 지지율 격차가 30% 포인트 이상 나타났다.
박 전 대표 역시 손 전 지사를 47% 대 36.7%로 10%포인트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은 범여권 후보 선호도 2위를 달리고 있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의 가상대결에서도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 전 의장과의 가상대결에서 이 전 시장은 국민 10명중 7명가량인 69.8%의 지지를 얻었으며, 정 전 의장은 17%였다.
박 전 대표와의 가상대결에서는 박 전 대표가 56.7%, 정 전 장관이 32.3%로 나타났다.
또 우리 국민들은 손 전 지사의 대권도전 전망에 대해서도 대다수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과반인 55%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16.9%는 대권 도전에 ‘성공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전체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는 손 전 지사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타며 리얼미터 주간조사 이래 최초로 10%를 넘어섰다.
박 전 대표도 전주 대비 1.2%포인트 상승한 24.5%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이 전 시장은 전주 대비 3.4%포인트 하락했으나 지지율 40.8%로 여전히 부동의 1위를 지켰다.
또 정 전 의장이 5.3%를 기록하며 전주보다 0.5% 포인트 상승, 4위를 차지했다.
한편 범여권 후보 선호도에서는 손 전 지사가 34.9%로 1위, 2위는 정 전 의장으로 22.8%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