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8일 개최된 ‘2007 서울 국제마라톤 및 78회 동아마라톤’에서 노장의 마라토너 이봉주가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이후 6년 만에 우승을 거둬 화제를 낳았다. 이봉주는 1995년 동아마라톤 우승 이후 12년 만에 다시 동 대회를 제패함으로써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한국 마라톤은 한 동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봉주가 이 경기에서 국내 대회 역대 최고기록과 올 시즌 세계 최고기록을 냄으로써 다시금 꺼지지 않는 한국의 저력을 과시했다. 이봉주는 2시간 8분 4초의 기록으로 케냐의 폴 키프로프 키루이를 가볍게 제치고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2008년 북경올림픽을 위해 더욱 체력관리를 다지겠다는 각오를 밝힌 이봉주는 재기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굳건한 신념으로 훈련을 거듭하면서 오늘의 쾌거를 이뤄냈다. 마라토너로서는 37살 노장이라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그러한 염려를 일축시키듯 우승을 차지해 그 의미가 더욱 깊었다.
한국 피겨스케이트의 샛별 김연아-피겨 여자 싱글 세계2위 차지
200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부문에서 한국 피겨계의 샛별 김연아(17·수리고)가 세계랭킹 2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시니어 역대 최고 순위(5위)를 경신했다. 지난 25일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세계랭킹에서 4천 점을 기록했다고 ISU가 밝혔다. 특히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면서 은메달을 딴 아사다 마오(17·일본)가 1위로 오른 가운데 나가노 유카리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안도 미키가 3,4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2월 11일 발표한 랭킹에서 7위였던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로 포인트를 쌓아 2위로 급상승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세계랭킹 3위였던 아사다가 4천205점으로 시니어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그리고 나가도 3위, 안도 4위, 수구리 후미에 6위 등 총 5명의 일본 선수들이 순위 권 내에 들면서 ‘일본의 위력’을 과시했다.
수영신동 ‘박태환’ 세계를 놀라게 하다
수영신동 박태환은 지난 25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우리나라 수영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박태환은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 44초 30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에 손을 뻗었다. 예선에서 2위로 통과하여 5번 레인에서 출발한 박태환은 300m 지점까지 3,4위권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100m를 남기고 스퍼트를 내기 시작하여 골인지점을 불과 20m 앞두고 역전을 하는 짜릿한 쾌거를 이룩했다. 박태환 선수는 대회 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7개를 따 내며 대회 MVP로 뽑힌 뒤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자신을 10년 간 지도해온 노민상 현 수영 대표팀 감독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심리적 고민을 했다고 전해진다. 한 달 동안 물을 멀리해 온 박태환은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엔 연습기간이 너무 짧아 출전 포기를 생각하기도 했으나, 지난 1월말부터 괌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시작하여 오늘의 우승을 차지했다. 이것은 연습재개 두 달 만에 거둔 우승이라 주위를 더욱 놀라게 한 일이었다. 박태환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로 출전했지만,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해 한동안 실의에 빠졌지만 굳건하게 이겨냈다. 2005동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 금메달, 2006팬 퍼시픽대회 400m, 1500m 금메달, 2006도하아시안게임 3관왕 등 ‘수영신동’의 가파른 성장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박태환 선수가 낸 기록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시아 기록을 1초 42나 앞당겼으며, 이안 소프가 보유한 세계 기록에도 4초 22차로 근소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번 경기에서는 박태환에 0.82초가 뒤진 튀니지의 오사수나가 2위, 아테네올림픽 2관왕인 호주의 그랜드 해켓이 3위를 차지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영 신동 박태환의 쾌속 질주는 한국 수영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하고 있다.
베어벡호 우루과이전 2대0 완패
지난 24일 우리나라는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해외파 태극전사들이 대거 투입되어 선전을 펼쳤지만 결국 2대0으로 완패의 고배를 마셨다. 우루과이는 전반 19분과 37분에 걸쳐 부에노 선수가 두 골을 기록했다. 첫 골은 오른쪽 수비수 오범석이 상대에게 측면을 내주면서 허용했고, 두 번째 골은 우루과이의 가르시아가 센터서클에서 한 번에 로빙으로 찔러준 패스를 부에노가 득점으로 연결했다. 한국의 미드필더들은 베어벡 감독의 주문과 달리 1선에서 상대를 압박하지 못했고, 이런 상황을 예상한 상태였으나 제대로 경기를 풀어내지 못해 이 대비 프로그램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 경기와 관련하여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경기 80분을 주도했지만 10분 간 2골을 허용한데 것에 대해 “다 같이 반성해야 할 점”이라며 “앞으로는 위기 때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함께 훈련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집중력을 가지고 훈련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해외파 선수 중 하나인 이영표(토트넘)은 수비수로서 두 골을 실점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여러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변명을 하기보다는 비판을 받겠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레딩 소속 설기현 선수는 이번 경기의 패배를 조직력 미비로 보고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베어벡 감독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수비에서 조직적인 실수가 있었다. 우루과이가 우리보다 성숙하고 지능적인플레이를 했다”고 밝혔다. 일선에선 지난달 그리스전처럼 특정선수(이선수)의 컨디션에 따라 경기내용이 들쑥날쑥 하는 팀의 상황은 감독 장악력의 부족이 아니냐는 평가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팀은 오는 6월 2일 서울에서 우루과이(FIFA랭킹 26)보다 한 수 위인 네덜란드(7위)와 평가전이 내정되어 있다.
비운의 스타 ‘박동희’ 교통사고로 사망
1980년대 후반 시속 150km를 넘는 빠른 볼을 던지며 야구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박동휘 선수가 불의에 의한 교통사고로 숨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39세에 운명을 달리한 故 박동휘 선수는 박철순-최동원-선동렬로 이어지던 한국 프로야구계의 투수계보를 이어갈 유망주로 손꼽혔었다. 1990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박동희는 데뷔전에서 삼성을 상대로 156km의 강속구를 던지며 5연속 탈삼진을 기록해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듬해 14승을 기록하며 에이스로 올라섰고,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 이글스를 2승 1세브를 기록하며 제압해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며 주가를 드높였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으로 팀에서 은퇴한 박동희는 끝내 그 부상 후유증을 견뎌 내지 못하고 완전히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팀에서 방출된 박동희는 이후 지도자의 길을 가기를 원했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박동희 선수는 2004년부터 사망 전까지 부산 해운대에서 노바다야끼를 경영해 온 것을 알려졌다. 은퇴한 후에도 야구를 잊지 못했던 박동희는 아마추어를 위한 정식 구장이 하나도 없는 점을 걱정하여 이를 위한 부지를 찾는데 매진하여 ‘박동희의 야구교실’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 더욱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지난 24일 박동희 선수를 실은 영구차가 생전 자신의 꿈과 희망을 불살랐던 부산 사직구장 마운드를 돌았고, 박동희 선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롯데 선수들이 쓸쓸함과 안타까움으로 지켜봤다. 92년 박동희와 함께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염종석 선수는 “화통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호남형 선배였는데 이렇게 가다니 너무 허망하다”면서 말 끝을 흐렸다. 이 날은 비까지 와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더욱 아프게 했다고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