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략공천 통해 무안·신안 후보로…당 안팎 비난 거세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인 김홍업(57)씨가 민주당으로 전략공천이 정해지면서 민주당내부가 들끓고 있다. 특히 김홍업 씨의 뒤에 DJ를 위시한 동교동계 인사들 역시 움직일 기미를 보이면서 올해 대선을 앞두고 동교동계가 이번 재보선을 통해 정치적 재기를 시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략공천으로 인한 내분이 가속화 되면서 민주당과 동교동계의 앞날은 혼탁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3월 21일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인 홍업 씨를 전략공천키로 했다. 유종필 공직후보자자격심사 특위 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브리핑을 갖고 "공직후보자자격심사특위는 이날 회의를 열어 많은 토론을 거친 끝에 김홍업 전 아태재단 부이사장을 무안·신안 보선후보로 결정했다"며 "오늘 오후 중앙위원회에서 이 같은 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김홍업 씨가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보궐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무소속 출마 의사를 밝힌 데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권노갑 전 의원이 홍업 씨 출마설이 나돌 무렵 민주당 공천 여부에 대한 의사를 타진해왔다”고 전했다. 동교동계의 ‘맏형’으로 최근 사면된 권 전 의원이 홍업 씨 출마를 위해 적극 뛰고 있다는 얘기다.
무안·신안 지역구 의원이었다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의원직을 잃은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공개적으로 “홍업 씨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한다. 민주당이 외면해선 안 된다”라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최근 사면된 뒤 동교동에 복귀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곧 무안·신안을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그가 현지를 누빌 경우 김 전 대통령의 뜻이 실려 있다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홍업 씨는 지난 3월 15일 출마 기자회견 당시 “아버지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홍업 씨의 안정적 당선을 위해 민주당 쪽과의 교통정리에도 나섰다. 동교동 비서 출신인 배기운 민주당 사무총장은 “민주당이 홍업 씨를 연합 공천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권노갑 전 의원 등 동교동쪽에서 전달해왔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3월 19일 공천특위를 열어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홍업 씨를 연합 공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배기운 사무총장이 전했다.
동교동 핵심 인사들은 김대중 정부 말기와 현 정부 초기에 여러 사건에 연루돼 대부분 구속되거나 정치권에서 멀어져야 했다. 또 김대중 정부를 거치면서 내부 분화와 갈등이 심해져 더 이상 ‘단일한 동교동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홍업 씨 출마와 범여권 통합 기류 속에서, 정치일선 복귀를 꾀하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홍업 씨가 출마의 변으로 ‘통합 역할론’을 내세우는 점도 동교동계의 정치적 복권 명분과 맞아떨어진다. 홍업 씨 출마 과정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아우르는 통합의 가교 구실을 하고 이를 교두보 삼아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게 동교동 쪽의 구상인 것 같다. 열린우리당 기획통으로 꼽히는 한 의원은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의 최근 움직임이 범상치 않다. 18대 총선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홍업씨 민주당 입당
결국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던 김홍업 씨는 3월 21일 입장을 바꿔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는 "여러 모로 부족한 저를 배려해주신 민주당의 결정에 감사드린다"며 "함께 노력해서 민주당이 더욱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입당에는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홍업 씨 측근은 "권 전 고문이 며칠 전 홍업 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일단 당선이 돼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냐. 민주당에 들어가서 선거를 치르는 게 여러 모로 좋지 않겠느냐'며 입당을 적극 권유했다"고 말했다. 다른 동교동계 인사들과 지역 원로들도 "민주당과 싸우는 것은 도의가 아니다"며 김 씨의 입당을 설득했다고 이 측근은 전했다.
김 씨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민주당 일부 세력의 반발로 선거연합이 어려워질 수 있고, 이 경우 자칫 범여권 대통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종필 대변인은 "민주당은 무안-신안 이외 다른 선거구에서의 선거연합도 논의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김 씨의 전략공천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상렬 의원은 "이 결정은 공정한 룰에 의한 후보자 선정이 아니며 민주당이 공당으로서 국민과 당원의 기대와 뜻을 저버린 행위"라고 지도부를 비난했다. 조순형 의원은 "김 씨는 적격자가 아니다"며 "김 씨는 사면 복권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정계에 입문하고 싶다면 일정기간 속죄하는 의미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한 뒤 출마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 측 최경환 비서관은 "김 씨 출마로 국민께 심려와 걱정을 끼쳤다. 국민에게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동교동 분위기를 전했다.
김홍업 씨 뒤에는 동교동계가 있다?
이렇듯 언론과 정치권의 거센 반발을 등에 업고 무리한 출마를 하는 이유에는 동교동계의 정치 복귀와 관련이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지난 2002년 김 씨가 이권청탁 및 정치자금 명목으로 수십억 원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과 관련, '명예회복 차원의 선거출마'라는데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또 김 씨의 당선을 위해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음으로 양으로 돕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홍업 씨는 지난 3월 15일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이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다"고 밝히는 등 DJ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또 최근 "김 씨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는 한화갑 전 대표와 윤철상(尹鐵相) 전 의원 등은 전화를 통해 김씨 측에 격려의 뜻을 전달했고, 무안·신안 방문 여부를 조심스럽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내 동교동계 인사들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 씨의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기운 사무총장은 공천 전인 3월 16일 '동교동계의 맏형'인 권노갑 전 고문을 찾아 김씨 출마문제를 상의했으며, 20일에는 김 씨를 만나 민주당 공천을 신청토록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 사무총장은 "권 전 고문도 김 씨가 민주당으로 나오는 게 좋다는 의견이었다"며 "김 씨가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할 수 있도록 당의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씨가 출마의 변으로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고 밝힌 것도 동교동계의 행보에 더욱 탄력을 실어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정계개편 역할론으로 주목받는 동교동계의 입장에서는 김 씨가 만약 국회 입성에 성공할 경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포괄하는 범여권 통합의 가교역으로서 동교동계의 입지를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민주당 일부 세력의 반발로 선거연합이 어려워질 수 있고, 이 경우 자칫 범여권 대통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입당에 앞서 민주당에 이번 재보선에서 다른 당과의 선거연합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반영하듯 유종필 대변인은 “민주당은 무안·신안 이외 다른 선거구에서의 선거연합도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통합이 아닌 분열 가속화중
“분열된 민주세력을 통합하는데 가교 역할을 하겠다”며 4·25 재보선 전남 무안·신안 지역 전략공천된 김홍업 씨가 통합은커녕 분열만 가속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여론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출마로 인해 작게는 통합의 한 축인 민주당을 ‘통합파 대 독자생존파’로 찢어지고, 크게는 민주세력을 ‘DJ 대 반(反) DJ’로 분열시키는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정치권에선 김 씨 스스로 내세운 명분은 이미 상실됐기 때문에 출마를 포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 공천을 신청한 김호산 예비후보(44)는 3월 22일 전남 무안군 무안읍 사무실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무원칙한 전략공천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민주당 지도부의 무원칙한 전략공천은 지역민의 의사와 참여를 원천 봉쇄한 것이다"며 "정당정치의 뿌리를 흔드는 무원칙한 전략공천을 철회하고 지역민의 참여와 공정한 심사를 통한 민주적 경선을 실시하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무소속 출마도 불사할 뜻을 밝혔다.
목포경실련 무안군민회와 무안아카데미, 무안군청년연합회 등도 이날 성명을 내고 "도덕적 불감증을 드러낸 민주당은 낡은 정치로 이 지역 유권자를 우롱하고 있다"며 "명분없는 치졸한 정치행위 전략공천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전략공천이 김홍업 씨 자신과 가족, 나아가 지역 전체를 얼마나 욕되게 하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고 근신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전남도당도 이 날 논평을 내고 "김홍업 씨를 전략공천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그에게 부담만 지우는 행위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상렬 의원도 김씨의 전략공천은 즉각 철회되야 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 의원은 “이 결정은 공정한 룰에 의한 후보자 선정이 아니며 민주당이 공당으로서 국민과 당원의 기대와 뜻을 저버린 행위”라고 지도부를 비난했다. 이 의원은 “김 씨는 사면 복권됐다고 하지만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실형선고 받았던 인물”이라면서 “민주당이 이런 인물 공천한다는 발상은 정치도의상으로도, 당 발전과 한국정치 발전에도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호남주민을 모독했다" 맹비난
한나라당 지도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의 재보선 출마를 발표하자 이에 대해 집중 공세를 폈다. 권영세 최고위원은 3월 22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김홍업 씨가 아버지의 후광을 받지 않고 처음에는 무소속으로 나간다고 했는데 홍업씨한테서 아버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뺀다면 권력비리로 구속됐던 것 밖에 없는데 무슨 평가를 받아서 선거에 나가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최고위원은 또 "특정정당의 당적만 달고 나가면 된다는 것은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하듯이 그 이상으로 한 개인과 연관이 있다면 그 지역에서 무조건 당선된다는 풍토는 청산해야 한다"며 "이 경우에서는 호남지역의 주민들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권 최고 위원은 그러면서 "민주당의 이상열 의원이나 조순형 의원 같이 김홍업 씨의 보궐선거 출마에 대해서 반대를 한 행동은 요즘 같은 시대에 있어서 더욱 돋보인다"고 추켜세웠다. 전여옥 최고 위원은 민주당이 김홍업 씨 공천과 관련해 혈연관계를 거론한 것과 관련해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당인가, 김정일 체제와 비슷하단 말이냐"며 "후보를 내지 않은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는 열린우리당이 위장평화 세력이고 지역당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 놓은 자식들이 있는 당이라고 자기 고백을 해야 한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