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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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휴회
  • 글/ 김정숙 기자
  • 승인 2007.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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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A 자금 이체 불가로 북한 일방적 귀환
북한의 핵문제의 돌파구로 기대를 모았던 6차 6자회담이 어이없는 이유로 물거품이 됐다. 미국 측이 반환키로 약속한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자금 2500만 달러가 북한쪽 계좌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단순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회담이 협상조차 들어가지 못한 채 휴회되었다는 것은 세계역사상 전례가 없는 하나의 '코미디'라는 평가를 듣는 실정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초강대국이 대거 참여한 6자회담은 회담 당사국들이 2ㆍ13합의에 따른 초기조치 이행을 점검하고, 이후 단계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3월 19일 중국 베이징에 모였으나 22일까지 나흘 간 협상다운 협상 물론,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휴회했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문제”라며 황당함을 토로했다.
북측을 제외한 5자 당사국 대표들은 BDA 2500만 달러의 이체 지연을 이유로 회담 개막 이후 협상을 거부해 온 북측의 자세에 어이없어 하면서 회담 폐막(21일)을 하루 이틀 연장하기로 했지만 22일에 들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날 오전 의장국인 중국이 수석대표회의 개최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대표단을 부른 자리에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불참했다. 역시 “돈을 먼저 내 놓으라”는 요구였다.
북측 태도에 인내심이 고갈됐는지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이날 오후 베이징을 떠났다. 김 부상도 BDA 자금이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대사관을 출발, 오후 2시45분께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각국 대표단은 북측 실무진이 떠나지 않았음을 들어 극적 반전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김 부상은 결국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으로 갔다.
6자 당사국은 이날 오후 수석대표회의에서 “초기조치 이행공약을 재확인하고 다음단계 행동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가장 이른 기회에 회담을 재개할 것”이라는 초라한 의장성명을 내놓고 회담을 무기한 휴회해야 했다.
회담이 공전되는 가운데 바빴던 인사들은 BDA 송금문제를 풀기 위해 긴급 수혈된 한ㆍ중ㆍ미 금융 전문가들뿐이었다. 3월 20일부터 투입된 이들은 이른 시일 내에 문제를 풀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다. 특히 북측이 지정한 중국은행이 대외신인도 하락 등을 이유로 BDA 북한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문제를 푸는 게 과제였다. 해결방안으로 외환거래가 자유로운 홍콩에 있는 한국계 또는 미국계 은행에 북측 계좌를 임시 개설하고 인출토록 하는 우회 송금방식 등이 추진됐다. 중국은행이 북한 자금을 예치시킬 수는 없지만 중계는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시간이 걸려 회담을 지속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들은 앞으로 수일 안에 이런 방안으로 문제를 풀기로 합의하는 데 그쳤다. 또 미 측은 문제 해결을 위해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를 조만간 중국으로 다시 보내기로 했다. 예금주의 이체신청서를 모으는 북측 작업은 22일 오전 중 거의 완료됐다.
이날 미국에서는 북측의 버티기에 대해 대북 협상 지지자들조차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고, BDA 북측 자금 동결해제 자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6자회담이 다시 ‘시계제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6자회담에 정통한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세계 회담사에서 두고두고 기억될 해프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BDA 송금이 막힌 이유는?
회담다운 회담조차 갖지 못한 채 미뤄진 이번 북핵 6자회담의 결과를 초래한 송금 지연 문제의 원인에 대한 각종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미국 측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에 원인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백악관과 국무부가 회담이 결렬된 3월 22일 대변인을 통해 동시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한 사항으로도 볼 수 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로서는 BDA의 북한 동결자금 해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조치들을 마무리했다"고 강조, 이 문제가 미국의 책임이 아님을 강조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도 "이번 송금 지연은 마카오와 중국 당국의 기술적 문제에서 야기된 것"이라며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들 쪽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표를 감안할 때 BDA에 묶여 있던 북한자금 2500만 달러 계좌 이체 문제와 관련, 마카오와 중국 당국을 연결하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워싱턴 정가와 금융가를 중심으로 나도는 관측, 외신 보도 내용 등을 종합하면 그 원인은 세 갈래로 압축될 수 있다.
첫 번째로 대동신용은행의 매카스킬 제동설이 있다. 북한의 유일한 외국계 은행인 대동신용은행의 콜린 매카스킬 대외협상 대표가 BDA자금 2천500만 달러의 송금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 금융전문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매카스킬의 말을 인용, 700만 달러에 달하는 북한 대동신용은행 자금 때문에 송금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마카오 금융관리국(AMCM)의 안셀모 딩 롄 싱국장 앞으로 BDA내 대동은행 자금은 민간기업 돈인 만큼 북한계좌로의 일괄 송금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세 차례 보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BDA의 대동신용은행 자금이 최근 재무부 성명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마카오 금융당국에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임을 강조했다.
매카스킬은 그간 BDA에 동결된 대동신용은행 자금 700만 달러는 전액 외국인 소유로 돈세탁이나 위폐 등의 불법행위와는 무관한 합법적인 돈이라는 주장 하에 미 의회 등을 상대로 집중적인 로비를 벌여 왔다.
두 번째로 중국은행의 미국 서면각서 요구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핵 6자회담 러시아 측 수석대표인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이 미국정부의 '서면 각서'를 언급한 게 발단이 됐다. 그는 "이번 6자회담 휴회가 미국이 당초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서 비롯됐다"고 비난하면서 "중국도 돕기를 희망했지만 해결 과정에서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혀, 미국과 중국 측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중국은행이 자금을 접수하지 않겠다면 러시아 등 다른 나라 은행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 정부의 각서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 중국은행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 정부의 각서를 요구하고 있다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은행은 또 "우리는 그런 종류의 (북한자금) 거래에 개입한 적이 없다"면서 "불법거래나 돈세탁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자칫 BDA 자금의 송금 중개인 역할을 했다가 북미관계가 급랭할 경우 그 책임을 뒤집어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당초 중국은행은 BDA의 북한자금 입금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까지 BDA측으로부터 북한자금의 이체를 요청받은 바 없다"고 해명하고 나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국무부와 재무부가 BDA 자금 전액 해제 방침을 발표했지만 그간 대북 금융제재를 주도해온 부시 행정부 내 '매파'들의 영향력을 감안, 송금을 지연시키며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관측이 나오는 배경을 가장 잘 뒷받침 하는 이유는 현재 미국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 6자회담이 성과없이 휴회에 들어가자 미 보수층으로부터 "BDA 자금을 전부 해제함으로써 대북 협상 지렛대를 상실한 게 아니냐"는 거센 비판에 휩싸여 있다. 보수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클링너 연구원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BDA 정책 번복은 미국이 6자회담 진전을 위해 앞으로도 추가 양보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북측에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결국 북한의 핵 포기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 측
부시 행정부가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를 중국으로 급파, 미국의 법과 금융규정에 대해 다시한번 설명키로 방침을 정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 국무부 매코맥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BDA 동결자금의 북한으로의 이체 문제는 미국의 문제가 아니지만 미국의 법체계 등을 설명하고자 글레이저 부차관보를 며칠 내에 베이징에 보내 그 문제를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코맥 대변인은 글레이저 부차관보의 베이징 방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대북동결자금의 북한 이체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재 마카오 금융당국과 중국은행은 미국의 대북 간접 제재를 두려워하며 BDA 동결자금의 송금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레이저 부 차관보가 중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BDA 동결자금 2,500만 달러의 송금과 관련된 중국은행과 마카와 당국의 불만을 무마하고 뒷 처리를 깨끗하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행이 북한 자금의 송금에 관여하더라도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는 설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 마카오 금융당국이 BDA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풀어주지 않으면 동결자금을 북한에 송금할 수 없다고 버티어 있어 글레이저 부차관보가 급히 중국으로 가는지도 모른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오늘 "미국이 BDA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 때문이라"면서 "미국은 BDA의 북한 동결자금 해제에 필요한 조치들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의 떼쓰기에 또 한 번 양보를 하려는 자세를 보임에 따라 휴회에 들어간 북핵 6자회담은 가까운 시일 내에 재개될 공산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매코맥 대변인은 이날 "6자회담이 앞으로 1~2주 안에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며 "회담이 다시 열리면 한반도 비핵화 이행의 구체적 조치와 6자 외무장관 회담 일정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장 각국 반응
북한 측 수석대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BDA 북한 자금 이체만을 요구하다 갑작스레 평양으로 향한데 대해 미국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BDA 북한 자금 반환 문제가 지연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BDA문제가 앞으로 며칠 내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쳤으나 일본을 비롯한 다른 참가국들은 BDA 문제가 여전히 6자회담의 걸림돌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일본 측 수석대표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은 "이번 협상은 BDA 문제로 시작해 BDA 문제로 끝났다"며 북한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그는 이번 회담의 중단이 북한의 2.13 합의 이행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북한이 BDA 자금 반환만을 요구하며 소극적인 자세를 고수하는 것이 통탄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본국으로 귀국한 러시아 측 수석대표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모든 문제가 미국으로부터 비롯됐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그는 귀국 후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은행이 BDA 내 북한 불법 자금을 입금 받더라도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어떤 제재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중국에게 확신시키는데 실패했다"고 비난했다.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은 BDA 문제는 "중국은행에게 달려 있다"며 "중국 은행과의 접촉을 통해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정부가 직접 나설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BDA 자금을 수령할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행은 아직까지 BDA로부터 북한자금의 이체를 요청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리리후이 중국은행 행장은 이날 홍콩에서 열린 영업실적 발표에서 "현재까지는 (BDA 북한 자금의)송금 문제를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리 행장의 발언은 북한 자금의 송금 문제가 아직 BDA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일부 회담국들은 이번 회담의 중단이 북한의 2.13 합의 불이행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나섰으나 우리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은 BDA 문제가 해결 되는대로 다음 회담이 열리기 전이라도 2.13 합의를 다 이행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이 같은 우려를 부정했다. 힐 차관보 역시 "60일 내 조치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북한의 2.13 합의 이행 의지를 믿는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반면 회담 중단 소식을 접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북한이 이 같은 태도를 통해 얻을 수 잇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6자회담 합의에 따라 핵폐기를 향한 조치를 취할 경우에만 국제사회의 수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미 국무부 숀 매코맥 대변인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BDA 내 북한 자금의 이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를 중국으로 급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한, 핵포기 의심된다"
미국 전문가들 북한 협상의지 결여 지적

북핵 6자회담이 파행으로 끝나자 미국 내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의 상습적인 협상 전술이라며 북한이 과연 핵무기 포기를 전제로 한 2.13 합의를 제대로 이행할 지 불투명하다고 의구심을 제기하고 나섰다.
보수 측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BDA 자금의 전액 반환을 선언한 마당에 북한이 회담을 정체시키고 있다"면서 "이는 과연 북한이 2.13 합의대로 핵무기 포기 약속을 지킬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이 BDA 북한 자금 중 불법행위에 연루된 부분까지 전액 반환키로 한 것은 "돈세탁을 막기 위한 국제 법과 조약을 지키려는 미국의 의지가 약화됐다는 점을 나타내는 위험한 신호일 뿐만 아니라 대북 협상의 지렛대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북 강경론자로 알려져 있는 니컬러스 에버슈타트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도 이번 베이징 회담 파행은 일단 약속을 한 뒤 뒤로 빠지는 북한의 전술의 일환이라며 북한에 대해 불신하는 답변을 보였다.
에버슈타트 연구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대가를 받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다가, 다음번에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협상에 복귀한다"며 "이건 전적으로 상습적인 일이며 전혀 놀랄게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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