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대형이슈 들썩, 행동보다 말이 앞선 정책 논란
노대통령이 지휘한 참여정부가 올해 12월 17일 열릴 19대 대선을 앞두고 점차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참여정부의 4년간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격한 파열음을 내며 혼란을 거듭한 시기로 설명할 수 있다. FTA.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국가 장래를 결정짓는 주요 아젠다를 비롯해 각종 이슈를 놓고 보혁간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그밖에 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아랑곳 않고 미사일 실험발사에 이어 핵실험을 강행, 동북아 안보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면서 국민의 정부 이후 지속된 대북 포용정책의 효용성을 둘러싸고 격론이 일었다.
안팎에서 몰아치는 시련 속에서도 청와대와 여당은 여소야대의 한계를 정치력으로 풀어내지 못한 채 갈등을 겉으로 표출하면서 ‘레임덕 현상’ 집권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타나는 기이한 형국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너져 가는 열린우리당
노 대통령을 등에 업고 17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열린우리당은 5.31 지방선거에서 16개 시.도 중 전북 단 한 곳만 차지하는 유사 이래 최악의 참패를 당했고, 그럼에도 리더십 부재와 내부 분열의 근원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신당 창당을 논의하고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100년 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새롭게 출발한 열린우리당은 겨우 3년3개월 만에 단꿈을 접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의석은 17대 총선 당시 147석에서 110석으로 급감했고 127석의 한나라당은 얼떨결에 원내 1당이 되었다. 열린우리당발 정계개편은 시동이 걸렸고, 18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승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열린우리당에 어둠을 드리우고 있는 실정이다.
여당의 분열은 각종 정책이나 당정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 인사권에 대한 여당내 견제 움직임은 지난해 3월 이해찬 총리의 골프 파동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실체 없는 여론몰이에 여당이 거들고 나서면서 이 총리가 사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고, 노 대통령의 의중에 있던 ‘김병준 총리 카드’도 사실상 여당의 반대로 물 건너갔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을 총리로 기용해 조기 레임덕을 차단하고 국정장악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노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구상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여당의 인사권 간섭은 노골화됐다.
논문 중복게재 논란에 휩싸인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지난해 8월초 여당내 사퇴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퇴했고,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기용도 여당의 비토로 일찌감치 봉쇄됐다.
당청갈등이 일상화되고, 더불어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과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개혁입법안이 한나라당의 반대로 좌절되고 표류를 거듭하자 노 대통령은 탈당과 임기 단축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정국에 회오리를 일으켰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는 와중에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오락게임 파문과 다단계업체 제이유 로비 파문 등 각종 의혹사건도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잖은 타격을 입혔다.
여기에 청와대 직원이 극비외교문서를 정치권으로 유출하고 386 행정관이 아내를 치정 살인하는가 하면 비서관 가족과 경호실 간부가 비리의혹에 연루되는 등 권부내 도덕적 해이 조짐도 나타났다.
거듭되는 악재와 맞물려 지난해 한때 40%를 넘어섰던 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속절없는 하락을 계속했다. 5.31 지방선거 패배로 20%대로 반토막나더니 북한 핵실험 사태와 아파트값 폭등 등 대형 악재를 만나면서 10%대로 추락, 정책 추동력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끝내 잡지 못한 집값 논란
무엇보다 참여정부 들어서 악화된 부동산 사태는 여당의 핵심 지지층인 서민들의 이반을 가져오고 여권의 분열을 재촉한 치명타로 작용했다. 참여정부 4년의 부동산 성적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 전국 주택가격 상승률만 보면 연평균 4% 정도로 OECD 평균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지역별로 살펴보면 사정이 다르다.
4년간 서울 강남구의 집값은 81.6% 급등했고,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과천은 무려 106.4%의 상승률을 보였다. 분당(79.4%) 용인(64.3%) 등도 많이 오른 대표적인 지역이다.
부산 광주 등 지방은 정체된 반면 서울 및 수도권, 특히 ‘강남권’ 집값만 급등했다. 정부가 ‘강남’을 타깃으로 수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결국 완패했다는 지적은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수도권 집값불안은 정부 ‘정책실패’에서 기인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시장여건을 무시한 채 ‘조이기’에만 나선 결과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양도세를 대폭 강화해 시장 매물의 씨를 말렸고 개발 부담금 등 이중삼중 규제로 건설업계의 발목을 잡았다. 집값을 끌어올린 것은 ‘투기꾼’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정부는 지역 균형발전이란 명목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혁신도시·기업도시 등 각종 개발계획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동시 다발적인 개발계획은 땅값 급등으로 이어졌다. 일례로 행정도시가 들어설 충남 연기군의 경우 2003년 이후 땅값이 93.7%(지난해 11월 기준) 폭등했다.
용두사미로 끝난 경제정책
참여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100대 개혁과제에 대한 실행계획뿐만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장기 계획들을 로드맵이란 이름을 붙여 지속적으로 발표해왔다.
로드맵들은 당초 계획대로 입법화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도 있으나 말 그대로 계획에 그쳐 유야무야됐거나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들도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노사관계 로드맵을 꼽을 수 있다. 노사정은 초기엔 노사관계에 대한 의식과 관행을 먼저 바꿔야 한다며 이를 집중 논의했으나 이후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제도개선 중 핵심내용은 파업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복수노조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이었다.
이 중 파업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문제는 처음엔 적용 대상을 전 사업장으로 하기로 했다가 논의과정에서 대상이 공익사업장으로 축소됐고, 지난해 국회에선 ‘2008년부터 공익사업장에 한해 허용하되, 파업인원의 50%만 대체근로 인력을 쓸 수 있게 한다’는 내용으로 다시 쪼그라들어 통과됐다. 복수노조 허용이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도 결국 3년 유예로 결론 났다.
2003년 말 발표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역시 핵심 내용인 ‘출자총액제한제’ 문제를 결론 내지 못한 채 정부 내와 국회 등에서 아직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보건복지부가 2005년 발표했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로드맵’은 2008년까지 건보의 보장성을 71.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기초 데이터의 부실에다 재원대책이 뒷받침되지 못해 ‘공수표’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노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연설에서 “참여정부 4년의 경제 성적은 상위권”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4년 평균 경제성장률 4.2%는 OECD 30개 회원국 중 7위에 해당하며, 특히 2006년 성장률 5%는 OECD 국가 최상위권이라고 근거를 제시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외형으로 드러나는 각종 경제지표들만 보면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지표가 주가와 원화가치다. 코스피지수는 임기 초 600대에서 지금은 1,400을 넘어 130% 이상 뛰어올랐다. 원·달러 환율도 1,200원 언저리에서 930원대까지 하락해 원화가치가 20% 이상 높아졌다.
1인당 국민소득(GNI 기준)은 1만1,500달러에서 1만8,300달러 수준으로 올랐고 물가와 실업률은 각각 2%대와 3%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경제성장의 속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 4년 평균 성장률 4.2%는 외환위기 후유증이 극심했던 국민의 정부 4.39%보다도 낮은 수치다. 참여정부 집권기간 중 중국과 인도가 각각 10.3%와 8.4%, 홍콩과 싱가포르가 각각 6.5%와 6.4%의 고도성장을 일궈냈다는 점을 참고하면 한국의 성장률 둔화는 '지나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개혁과제는 긍정적 평가
정국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서도 참여정부가 안팎의 거센 반발을 딛고 추진해온 개혁과제 일부가 빛을 보는 성과도 있었다. 육군 감군 및 해·공군의 균형 발전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해 자주국방의 기틀이 마련됐고, 노 대통령이 미래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지지층 균열을 무릅쓰고 밀어붙인 한미 FTA 협상은 진통 끝에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3급 이상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도입되면서 고시 출신 위주의 공직사회 순혈주의 타파와 경쟁력 제고의 기반이 마련된 것도 치적 중 하나다.
외교분야에서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추진돼온 전시 작통권 환수 로드맵이 도출돼 한미동맹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됐다. 특히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은 균형외교를 표방하는 참여정부의 외교역량이 빚어낸 결실로 볼 수 있다.
경제분야에서는 고유가, 환율고 속에서 수출 3천억 달러를 달성했고, 저출산 고령화 대책과 중장기 국가비전을 담은 2030이 마련됐으며 노사관계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도출됐다.
비정규직보호법안이 성안 2년 만에 국회를 통과하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대책이 마련되는 등 사회안전망 구축작업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또한 새만금방조제 완공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등 균형발전 정책도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하늘이 두 쪽 나도 잡겠다”던 부동산 집값이 정책 담당자들의 대응 미숙으로 천정부지로 치솟은 점은 올 들어 이룩한 성과를 덮어버릴 정도의 악재가 되고 있다.
전문가 분석, “마무리가 중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참여정부의 잇따른 대형 중ㆍ장기 정책 발표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중ㆍ장기 정책을 차기 정권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런 맥락에서 참여정부는 남은 1년 동안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기존 정책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 같은 결과는 참여정부 출범 4주년(1월 25일)을 맞아 한 언론사가 국내 학계와 민간 연구소 등의 경제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참여정부 4년 경제정책 평가와 올해 경제운용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나왔다.
경제 전문가들은 먼저 올해 경제정책이 정치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가장 걱정했다. ‘올해 경제운용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30명 가운데 가장 많은 12명이 ‘대선에 따른 정책왜곡 가능성’을 꼽았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재정여건 등을 감안하지 않은 일부 선심성 정책들이 나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말부터 정부가 잇달아 내놓은 ‘비전2030’ ‘2차 균형발전계획’ 등 굵직굵직한 정책들에 대해 30명 중 14명이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차기정권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답했다.
또 8명이 “재원 등 구체성이 결여된 대선용 정책”이라고 평가했으며,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7명에 불과했다. 73%의 전문가들이 정부의 중ㆍ장기 대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남은 임기 1년 동안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정책분야”로 30명 가운데 11명이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기존 정책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고 답했고,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이를 위한 대국민 설득'(8명)” “부동산시장 안정”(5명) 등을 꼽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이점을 명심하고 남은 1년 마무리를 성공적으로 해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을 전문가와 국민들은 바라고 있는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났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 국민평가 ‘44.8점’
행개련 설문조사 결과, 기대 및 신뢰감 낮아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정책수행, 인재등용 등 평가는 100점 만점에 50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개혁시민연합(행개련)은 ‘노무현정부 4년 국정운영 평가’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현 정부에 대한 기대 및 신뢰감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면서 “남은 임기 동안 부동산 경제 분야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밝혔다.
설문조사는 행개련이 지난 1월 22일부터 26일까지 교수 및 교원, 연구원, 공무원, 기업인, 과학기술인, 문화예술인,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정치인 등 전문가 집단 528명을 대상으로 이메일을 통해 실시됐다. 설문은 총 47개 문항에 대해 100점 만점에 10점 단위로 측정하도록 했다. 행개련은 1998년부터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 공개했다.
행개련에 따르면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지난해 51.6점에서 올해 44.8점으로 떨어졌다. 교육 정책에선 지난해 52.6점에서 올해 42.3점으로, 주택가격 안정에 대한 질문에선 지난해 46.4점에서 올해 27.4점으로 수직 하강했다.
인재등용의 적절성 항목은 지난해 45.0점에 이어 올해 41.3점을 받았다.‘국정운영의 효율성’도 지난해 44.4점에서 42.8점으로 떨어졌다. 다만 국정운영의 민주성 항목에서 유일하게 지난해 59.8점보다 오른 60.2점을 얻었다.
2005년 설문조사에서는 ‘사회적 차별해소(66.0점)’와 ‘주택가격 안정(64.8점)’ 등 7개 정책 분야에서 60점을 웃돌고 13개 항목에서 50점을 넘었다. 그러나 2006년 설문조사에서는 ‘60점을 넘는 항목이 3개,50점을 넘는 항목이 13개로 줄었으며, 올해에는 60점을 넘는 항목은 하나도 없고 50점을 넘는 항목도 겨우 6개에 그쳤다.
응답자들은 또 ‘노무현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역점을 둬야 할 분야는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 부동산 및 경제(50.4%)와 한·미 FTA 및 외교(17.0%), 사회 양극화 해결(16.9%), 정치개혁(8.5%), 남북관계 및 국방분야(4.4%)를 꼽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