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프라이머리 선출 예정, 잠재적 후보 몸값 급등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 99%다” 한나라당 내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선 전망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범여권에서 발끈하고 있다. 이처럼 여권 내에서조차 올해 열릴 대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높아지고 있는 이면에는 마땅한 대선후보조차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이에 대선후보를 외부인사 영입을 통해 대역전극을 이룰 구상을 진행 중이다.
우선, 오늘 7~8월경으로 예상되고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한 선출이 유력시되고 있다. 기성 정치인보다 정치권 밖의 명망가들을 영입해, 현재 밑바닥으로 떨어진 지지도를 끌어올려 대선에 도전을 꾀하고 있다.
범여권에서 오픈 프라이머리 영입 대상으로 거론하는 외부 인사들은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과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이다. 이들을 영입하기 위해 열린우리당과 최근 집단탈당 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김한길 의원 그룹, 선도탈당한 천정배 의원 그룹, 민주당 등이 경쟁하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 측은 정운찬 전 총장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의 정치적 후견인은 20년 가까운 친구인 김종인 민주당 의원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김 의원의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은 정 전 총장을 품에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민단체측과 연대를 도모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 그룹에선 문국현 사장 등 기업인 영입에도 공을 들인다.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카드·현대캐피탈 회장을 지낸 이계안 의원이 총대를 멨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김한길 의원 그룹은 의원 수 확대와 민주당 측과의 소통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범여권 외부인사 영입은 기존 정치인들의 기득권 포기와 맞물려 있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기존 대권 예비주자들이 오픈 프라이머리에 함께 참여하면 외부인사들은 ‘남의 잔칫상 들러리’가 될 것으로 우려해 나서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열린우리당 재선 의원들이 ‘정동영·김근태 2선퇴진론’을 제기하며 드는 논거가 그렇다. 여당의 일부 초·재선의원들은 “이달 중순까지 지켜본 뒤 두 분 지도자가 기득권을 버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가 집단으로 기득권 포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제3후보군 가운데 아직까지 분명한 정치참여 의사를 밝힌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들이 정치권과의 거리두기를 계속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정 전 총장은 사실상 ‘준비단계’에 있다는 관측이다. 평소 친분이 있는 민주당 김종인 의원, 민생정치모임 소속 최재천 의원과 자주 만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 전 총장이 오는 5, 6월쯤 정치권에 뛰어들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문 사장도 이달 들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운하 공약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열차페리 구상을 정면 비판해 관심을 모았다. 또 제3후보론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박 변호사는 정치에 참여할 뜻이 없음을 이미 여러 차례 밝혔지만 여전히 여권의 잠재적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근 산문집 ‘서른의 당신에게’를 낸 강 전 장관과 진 전 장관은 대선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정국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러브콜 쇄도에 겉으로는 “생각 없다”
이처럼 여권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지만, 정작 영입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대선 출마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 가운데 일부는 언론을 상대로 제3후보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며 다소 불편한 입장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여권의 영입1순위로 손꼽히고 있는 정운찬 전 총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대선 출마로 마음을 굳혔다는 얘기가 들린다”는 질문에 “정치권에서 하는 얘기지”라면서 출마 가능성을 부인했다.
문국현 사장은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라면서, 박원순 상임이사는 아예 “이런 질문을 너무 많이 받고 너무 많이 답변했다. 더 이상 답변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는 말로 정치에 대해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다른 이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들의 반응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정운찬 전 총장 등 제3후보군이 대선 출마의 가능성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정계개편에 따른 정치권의 불안정성이 제거될 때까지 그냥 관망하고 있을 뿐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여권의 제3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일부 인사들이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가 될 양극화 문제를 연구하거나(정운찬 전 총장),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개발공약을 비판하고 있다(문국현 사장)는 등의 소식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고건 전 총리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자칫 이름만 오르내리다 중도에 하차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대선 출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밥상이 다 차려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충고한다.
탈당파의 한 의원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도 움직이기 쉽지 않은 만큼 제3후보와의 연대나 제휴 등 여권의 바람은 당장 실현되기 어렵다”며 “다만, 결정적인 때가 찾아왔을 때 즉각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미리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정운찬 전 총장 등에 대한 우리 내부의 영입경쟁이 격화될 경우 자칫 여권 전체의 소중한 자원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며 “어차피 서로 대통합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는 만큼 선의의 경쟁으로 모두가 Win-Win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권의 대선 예비주자 진영은 생각이 다르다. 외부인사 영입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권 쟁취에 얼마나 도움 될지에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고건 전 총리의 대권 중도포기 사례에서 드러나듯 ‘외부인사들이 대권 레이스에 필요한 맷집이 있겠느냐’는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이 전당대회 직후 여의도를 떠나 삶의 현장 체험에 나선 것이나, 김근태 전 의장이 잠행에 나선 것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재기해법’마련에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손학규의 여권행 전망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라는 양강의 틈바구니에서 손학규 전 지사의 향후 행보도 관전 포인트. 그의 지지율은 설 연휴 전 여론조사에 따르면 양강에 한참 못 미치는 4.2%. 이변이 없는 한 한나라당 내에선 전망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유권자들도 그를 유혹한다. 최근 KSOI 조사에서 손 전 지사와 관련해 “후보는 좋지만 당이 싫다”는 응답이 48.2%에 달했다. 이명박(39.5%) 박근혜(17.3%)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치다.
여권에서도 손학규 전 지사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은 공개적으로 손 전 지사가 여권의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물론 김근태 전 의장이나 탈당파 두 그룹을 이끄는 김한길 의원, 천정배 의원은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범여권 통합 과정에서 ‘손학규 합류’가 가져올 시너지 효과에 주목하고 있는 기색이다.
특히 그는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계승론’을 화두로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박근혜-이명박과 확연히 구분되는 독자행보를 걷고 있다. 이에 대해 여권의 제 세력은 모두 환영했다. 손 전 지사 본인은 한나라당 탈당 관측에 “어림없다”는 반응이지만 뚜렷한 명분과 조건이 주어지면 손학규발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정동영-김근태 기회잡기 분주
이처럼 박근혜-이명박이라는 빅 이슈의 한나라당 주자들이 레이스를 선점한 가운데 범여권의 내부세력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저마다 ‘대통합’ 레이스에 뛰어들었지만 열린우리당이건 탈당파건 반전의 기회가 쉽게 찾아오긴 힘든 처지라는 게 당내 분석이다. 대통합 논의가 지루한 과정을 남겨둔 가운데 일차적으로 관심이 가는 대목은 정동영, 김근태 등 두 전직 의장의 기사회생 여부.
이미 정동영 전 의장은 본격적인 대선행보를 시작했다. 정 전 의장은 2월 15일 “서민들 속에서 통합신당의 정체성을 ‘몸’으로 제시하겠다”는 ‘탈(脫)여의도, 서민 속으로’ 선언과 함께 두 달 일정으로 민심기행을 시작했다. 무계보 선언, 노무현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이어 당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정 전 의장 측은 “앞으로 여의도 정치를 벗어나 이른바 ‘신소외계층’인 도시빈곤층, 자영업자, 농민, 중소기업 근로자들과 함께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범여권 통합 논의 등 여의도 정치에 구애받지 않고 범여권의 대선후보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이와 함께 정세균 의장이 진두지휘하는 우리당의 통합논의가 지지부진하면 1~2개월 내에 탈당을 결행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외부활동에 주력하는 정 전 의장과 달리 김근태 전 의장은 철저하게 내부에서 세력을 넓혀나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김 전 의장 측은 “지금은 어느 누구도 전체 여권의 상황을 방치하고 개인 행보만으로 지지율을 올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른바 여권의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정동영, 천정배 등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의장직을 벗은 뒤 대통합 논의에 매진하겠다는 뜻이다.
김 전 의장은 설 연휴를 서울 도봉구 창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조용히 보낸 뒤 4박5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찾았다. 휴식기간 이후에도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는 나서지 않고 정치권 바깥 인사를 만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햇볕정책 계승 발언’ 논란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햇볕정책 계승?발전’ 요구를 둘러싸고 한나라당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이 여권의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실패'로 규정한 상황에서 주요 대선예비후보가 사실상의 당론 변경을 요구했다는 점 자체가 갖는 파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강경보수 성향과 중도 성향 의원들은 손 전 지사의 발언을 놓고 각각 반대와 원칙적 찬성 입장으로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 측에선 대북정책을 바라보는 손 전 지사의 시각에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가능한 한 당론을 따라 줄 것을 요구했다. 특히 일각에선 손 전 지사의 이 같은 발언을 최근 제기된 ‘범여권행설’과 연관지어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김용갑 의원은 “당은 북한의 핵 개발 이후 햇볕정책을 실패했다고 당론으로 정했는데, 대선 후보가 열린우리당 정책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으니 한나라당 후보로서 적합한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손 전 지사가 완전히 여당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데 혹시 요즘 여당에서 후보로 거론되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도 측에서는 손 전 지사가 핵 폐기와 군사적 전용 불가 등을 전제로 대북 포용과 개입을 주장하는 것인 만큼 원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장 중도개혁파인 수요모임 소속의 김명주 의원은 “당이 북한과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당론을 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손 전 지사는 햇볕정책을 ‘퍼주기’의 형태가 아닌, 개입과 교류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는 쪽으로 발전시키자는 말을 한 것으로 해석 된다”고 말했다. 다만 당 지도부는 대북 정책의 민감성과 손 전 지사가 주요 대선 주자라는 점을 고려해 최대한 말을 아꼈다. 김형오 원내대표 등은 “당내 스펙트럼이 넓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