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소송 패소
상태바
담배소송 패소
  • 글_엄은영 기자
  • 승인 2007.03.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강에 해로운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원고의 패소로 끝난 7년간의 담배소송,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나라 성인 흡연자 수는 전체의 35%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여성 흡연자와 청소년 흡연자의 수는 매년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정부에서는 흡연을 줄이기 위해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불법화함은 물론 담배에 대한 세금도 매년 높이고 있다. 하지만 흡연자의 수는 여전한 가운데 7년간을 끌어왔던 담배소송 1심판결에서 법원이 KT&G의 손을 들어줬다. 흡연은 개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며 그 책임이 개인에게 있고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첫 담배소송의 원고 패소로 국내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담배소송이 거론되면서 흡연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담배가 몸에 나쁜 걸 알고 피웠으면서 담배회사에 배상을 요구하는 건 무리 아닌가’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 중요한 것은 법리 논쟁이라기보다는 소송이 갖는 의미다. 많은 단체들이 이번 판결에 유감을 표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 이다. 담배소송의 근본 취지는 공공의 건강을 위협하는 담배와 관련된 정부의 규제 정책을 바꾸고 흡연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자는데 있다. 하나의 공익활동인 셈이다. 암에 걸린 이들이 돈을 위해서 벌이는 소송쯤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고 넘어가기에 이번 소송은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담배소송 1심은 원고 패소
서울중앙지법 민사13부(재판장 조경란)는 지난 1월 25일 1999년 폐암 환자와 가족 등 36명이 “흡연의 위험성을 충분히 경고하지 않아 폐암에 걸렸다”며 KT&G(한국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4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원고 측 소송대리인 배금자 변호사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크게 3가지였다.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인과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오랜 기간 담배를 피우면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는가, KT&G 측이 경고문구 삽입 등을 통해 유해성을 제대로 알렸는가 등이다.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역학적 관련성은 인정되지만 환자 개개인들의 발병이 KT&G가 제조?판매한 담배의 흡연으로 인한 것이라는 개별적 인과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폐암은 환경오염, 유전 등 다른 요인 때문에 걸릴 수도 있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앓을 수 있다는 것이다. KT&G 등이 흡연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1960~70년대에는 세계 어느 나라도 담배에 '위험하다'는 문구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가 나온 76년 이후 KT&G는 오히려 외국 담배회사보다 더 높은 비율로 흡연의 위험성을 알려왔다는 것이 재판부 설명이다. 재판부는 또 니코틴의 의존성은 인정하면서도 "상당 부분 심리적인 것이며, 아편, 히로뽕 등에 비해 의존도가 약하기 때문에 흡연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번 판결은 흡연이 해롭지 않다거나 폐암 발병과 무관하다는 것이 아니라 원고 측에서 자신의 주장을 법률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재판부는 이번 소송 진행 중 떠오른 입증 책임 문제를 원고 측에 지웠다. 원고는 "제조물 책임이나 공해소송처럼 KT&G 측에서 '흡연과 폐암이 무관하다' 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일반 손해배송처럼 원고 측에서 입증책임이 있다"고 일축했다.

담배소송 패소 그 후...

판결 내용이 전해지자 흡연 찬.반 단체 사이에는 반응이 엇갈렸다. 이번 소송을 지원해 온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법원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흡연의 해악성과 중독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연맹도 "정부가 나서서 금연운동을 하는 마당에 이번 판결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 전문가는 흡연과 폐암의 역학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인정치 않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 연구의 대부분이 환경적 요인과 특정질환의 상관관계에 대해 역학조사를 하여 인정하는 것과도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담배는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세계질병 분류기호에도 코카인, 아편, 카페인 등과 함께 정신적, 행태적 장애를 일으키는 물질의 하나로 분류되어 있다. 즉 이번 판결은 흡연자가 담배의 해악을 알고 금연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원인을 니코틴의 강력한 중독성 때문이 아닌 개인의 의지문제로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KT&G가 담배의 유해성을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을 근거부족으로 돌린 판단에도 문제가 있며 국민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흡연에 대한 해악이 적나라하게 밝혀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경고 문구를 삽입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는데 7년이 넘게 걸릴 이유가 없고 말했다.
담배는 정부의 공권력에 편승하여 적극적인 보호 하에 독과점으로 성장해 온 사업이며 그로 인한 해악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제조에 대한 정보공개 뿐 아니라 경영의 투명성도 확인되지 않다가 여론에 떠밀려 기업공개를 했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부의 판결이 일방적인 KT&G 편들어 주기라는 의심을 낳는 것도 KT&G의 이러한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KT&G 측은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우리가 주장한 내용들에 대해 재판부가 현명하게 판단을 내려줬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에선 해당 판결에 동의한다는 네티즌도 나오고 있다. 자신들이 원해서 피운 담배로 판매자에게 폐암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며 재판부의 말대로 흡연뿐 아니라 다양한 원인으로 폐암이 발생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무리한 판결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담배소송이 남긴 진기록
결국 흡연과 폐암과의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린 `담배소송' 1심 판결은 갖가지 진기록을 낳았다.
1999년 9월과 12월 각각 두 건의 담배소송이 법원에 접수된 이후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아닌 1심 판결이 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무려 7년4개월. 2심을 거쳐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이번 민사소송이 최종적으로 끝나기까지 10년을 넘길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민사 소송의 경우 5개월 이내 판결하도록 돼 있고 길어도 1~2년이면 재판이 모두 끝나는 통상적인 경우와 크게 대비된다.
극심한 논란을 거친 끝에 결론 난 ‘새만금 사업’ 관련 재판도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4년7개월이 걸렸고, 항소심이 진행 중인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도 아직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소송이 길게 진행된 것은 원?피고 측의 공방만큼이나 `인과관계'를 입증할 각종 자료들이 법원에 제출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KT&G 부설연구소가 연구한 담배 유해성에 관한 자료를 공개해 달라는 정보공개 청구소송이 받아들여지기까지 3년이 걸렸고, 서울대 의대 감정단의 감정서가 도착하는 데만 1년이 소요됐다.
오랜 기간이 걸린 만큼 재판도 30여 차례나 진행됐고 원?피고 양측과 감정기관이 법원에 서류를 제출한 횟수만 200차례를 넘는다.
당연히 제출된 서류의 분량은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흡연피해자들의 고교시절 건강 상태 관련 자료에서부터 서울대 병원의 신체감정 결과, 국립암센터의 암 관련 자료에 이르기까지 총 망라돼 있다.
재판부도 수차례 바뀌었다. 2년마다 정기적으로 단행되는 법원의 인사 등으로 재판부가 4차례나 변경됐고, 이 가운데 원고 측의 재판부 기피 신청이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져 한차례 재판부가 바뀐 것도 들어있다.



세계는 지금 금연 중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앞으로는 여행 가려는 도시가 어느 정도 흡연에 대해 규제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고 가야 낭패를 막을 수 있을 전망이다. 자칫 방심하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가장 강력한 금연 조치를 실시한 곳은 아시아 최대 무역항 홍콩이다.
홍콩은 새해 1일부터 금연 구역을 모든 실내 사업장뿐만 아니라 공원 놀이터 버스정류장 등지로 대폭 확대하면서 세계 유일의 ‘완전 금연도시’로 성큼 다가섰다.
홍콩 정부는 지난해 10월 논란 속에 통과된 금연조례를 이날부터 정식 시행키로 하고 식당 술집 등 모든 실내 사업장과 해변 운동장 공원 체육관 등 50만 곳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했다.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불붙은 담배를 들고 들어갈 경우 최고 5000홍콩달러(약 6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며 위반 업주도 최고 징역 2년형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번 조치로 홍콩 내 84만 명의 흡연자들은 자신의 집 외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사실상 봉쇄된다.
홍콩 정부는 지난해 10월 금연 구역 확대 시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홍콩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담배회사들과 요식업소들의 주장을 물리치고 새 금연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에서는 다음달부터 공공장소 흡연이 규제된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2월부터 공공장소 금연 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관공서 학교는 물론 관광객이 이용하는 철도역 공항 상점 등이 금연 대상 시설이다.
2008년 1월부터는 레스토랑 카페 등도 금연 지역에 추가된다. 금연 지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75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프랑스 정부는 또 금연 장려책으로 금연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는 비용의 3분의 1을 지원할 예정이며 영업 손실이 예상되는 외식 업계 등에도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영국의 명물 퍼브(선술집)에서도 올해 7월부터 담배를 피울 수 없다. 영국 하원은 잉글랜드 지역의 레스토랑 퍼브 등 공공시설에서 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지난해 통과시켰다. 올 10월부터는 담배를 구입할 수 있는 연령을 현행 16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를 위반하는 상점에 대해서는 최대 2500파운드(약 45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프랑스가 추진하는 금연 조치와 유사한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최근 합의된 법률에 따라 앞으로 공공건물 식당 병원 학교 대중교통 시설 등에서 흡연이 금지된다. 하지만 그동안 금연 지역 포함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술집은 흡연을 허용하기로 했다.
흡연과의 전쟁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의회는 모든 식당과 술집, 나이트클럽에서의 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등 상당수 대도시들은 이미 금연법을 시행하고 있고 워싱턴DC도 이번에 법안을 처리하면서 미국 내 다른 지역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2005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세계 암센터 원장 회의에서는 담배 규제를 위한 ‘리옹선언’이 채택되기도 했다. 이 선언은 당시 국립암센터 원장이던 박재갑 서울대 의대교수가 제안했고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인도 등 23개국 암센터 원장들이 지지했다. 각국 암센터 원장들은 “담배는 암 발생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며 “담배를 규제하지 않으면 금세기에 10억 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리옹선언은 각국의 담배규제국제협약(FCTC) 체결을 촉구하고 각국의 담배 소비를 억제하며, 담배 경작·제조·수출·수입·판매를 억제할 것을 각국 정부에 건의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