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전 통해 이명박 의혹 드러나, 이-박 캠프간 공세
대선전 본격화의 신호탄일까. 지지율 1위의 이명박 전 시장이 검증논란에 휩싸였다. 김유찬 전 비서관이 폭로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위증교사’와 ‘살해협박’ 의혹이 설 연휴 이후 정국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캠프간 공방으로 한나라당내 ‘집안싸움’에 머물던 수준을 벗어나,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모임 등 정치권 전방위에서 ‘대이명박 공세’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시장 측은 일단 기존의 ‘무대응 전략’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전 시장의 최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2월2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전형적인 구태정치이며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공작”이라는 말로 김 전 비서관의 폭로 내용을 평가절하했다.
정 의원은 이어 “김씨는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도 책을 내겠다며 원고를 들고 다녔지만, 상대방 후보는 이를 무시했다”며 “그런데도 당내에서 이를 문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당에서도 문제 삼지 않았던 내용을 같은 편인 야당에서 문제 제기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셈이다. 하지만 사태는 점입가경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적군’인 범여권에서도 본격적으로 ‘이명박 검증’의 칼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을 집단 탈당한 의원들이 만든 통합신당모임은 이날 “사법부에서 진위를 가릴 수 있도록 해야 국민적 의혹이 해소될 것”이라며 이 전 시장의 법적 대응을 촉구했다.
통합신당모임 최용규 대표는 이날 오전 전원 회의에서 “대통령은 가장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자리”라며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하는 것은 높은 신임을 받고 있는 예비 후보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최용규 대표는 “이 전 시장 본인이 사법적 고소를 하면 사법부가 진실을 가릴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형사적 시효는 지났을지 몰라도, 국민의 심판 시효는 명백히 살아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전 시장이 떳떳하다면 정인봉 변호사와 김유찬 전 비서관을 정식 고소함으로써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구하면 된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 역시 “정인봉, 김유찬 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전 시장은 대통령이 되기에는 치명적 하자가 있다”면서 “이 전 시장이 폭로 내용의 진위 여부를 직접 밝혀야 한다”며 연일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서영교 부대변인은 설 연휴 기간 낸 논평을 통해 “기존에 법적 처벌을 받았다고 하지만 선거법 위반과 증인 도피, 위증교사 등은 엄연한 범죄 행위”라며 “살해 협박까지 한 게 사실이라면 그런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선 안된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민주노동당도 “한나라당 후보들이 경부운하나 열차페리 같은 허망한 공약을 남발하더니, 이제는 수준 미달의 검증 논란으로 국민들의 눈을 속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한나라당내 ‘진흙탕 싸움’을 겨냥해 “이 전 시장이 탈당하거나 박 전 대표가 분당하는 일 없이 한나라당이 일치단결해서 한 명의 후보로 나와 달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이번 검증 논란이 당 바깥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띠자, 당혹감 속에 각 캠프측에 거듭 자제를 촉구했다.
강재섭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각 후보들은 자기측 식구들을 잘 단속해야한다”며 “수시로 언론에 출연해 자기주장을 얘기하면서 상대방 얼굴을 할퀴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호소했다.
강 대표는 또 “당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상대방에 대해 같은 당 후보라는 인식을 망각하고 지나치게 헐뜯는 일이 생기면 당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하지만 범여권에서는 “당내 경선준비위에서 후보를 검증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입장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통합신당모임은 “개인이나 당 차원의 검증은 결국 아전인수격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치권 바깥의 시민사회세력이 중심이 되는 대선후보 검증 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이 전 시장측 겉으론 덤덤하나…
한나라당의 양대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 간의 감정전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의 팬클럽 ‘박사모’가 이 전 시장측을 공격하기 위한 총동원령을 발동하자 이 전 시장측은 “이런 것이야말로 조직적 네거티브 캠페인 아니냐”며 반격을 가했다.
박사모는 “2007년 2월 16일 오후 9시40분을 기해 박사모 초긴급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총동원령을 발동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회원들에게 발송했다. 이메일에는 “(김유찬 씨 관련) 기사가 (인터넷에) 속속 올라오고 있으니 모든 기사를 각종 사이트에 퍼 날라 국민이 진실을 알 때까지 온라인으로 투쟁한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될 때 국가적 재앙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후안무치하고 패륜적인 후보가 사퇴할 때까지 총동원령을 발동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의 팬클럽 모임인 ‘엠비(MB)연대’의 백두원 사무국장은 “최근의 잇단 폭로전을 보면서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이것은 팬클럽 수준에서 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유찬, 정인봉 씨의 잇단 기자회견과 관련해 양측은 “배후가 있다” “억지 주장이다”라고 각각 주장했다. 방미 일정을 마치고 2월19일 귀국한 박 전 대표는 검증 논란에 대한 배후설 등을 제기한 이 전 시장측을 향해 “거기(이 전 시장 측)서는 그렇게 하는 모양이라서 그렇게 보시는 것 같다”며 “어거지로 지어내 하는 것도 네거티브”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도덕성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던 박 전 대표의 법률특보 출신인 정인봉 변호사는 이날 “당분간 추가로 문제를 제기하는 일 없이 조용히 지내겠다”면서 “당초 이 전 시장을 고소하려던 계획도 모양이 안 좋을 것 같아 취소했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측은 김유찬 전 비서관의 공세에는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김씨 문제에 정면 대응하다가 여론전에 휘말릴 경우 자칫 의혹만 커지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전 시장도 “당이 단합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잔뜩 화가 나 있다. 지지율 격차를 만회하기 위한 박 전 대표측의 정치공작이란 주장이다. 진수희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법률특보 직함을 달고 정인봉 변호사가 김씨를 만났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이번 사건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배후설을 제기했다. 한편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는 두 대선주자를 지지하는 네티즌 간에 비방전이 펼쳐졌다.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은 “조폭보다 더 하다” “전과자를 거부 한다” 등의 비난 글을 게재했고, 이 전 시장 지지 네티즌들도 “유신찌꺼기 박근혜는 대오 각성하라” “또 무단가출 했다가 되돌아 올 것인가” 등의 글을 올렸다.
이명박 검증논란은 어떤 내용?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국회의원이었을 때 비서를 지낸 김유찬 씨가 이 전 시장의 1996년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새로운 내용을 주장하면서 한나라당 내 ‘이명박 검증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게 됐다.
당초 정인봉 전 의원이 2월 15일 당에 제출한 자료가 이 전 시장의 96년 선거법 위반 사건을 다룬 기사스크랩, 판결문 수준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만 해도 이번 검증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 사건의 핵심 관련자인 김씨가 바로 다음 날 정 전 의원을 만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공개한 것이다. 정 전 의원은 이날 국회에 찾아와 김씨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으며 자신이 김씨와 만났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결국 정 전 의원이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문제를 거론한 것은 김씨의 기자회견을 이끌어내기 위한 예정된 수순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이전시장의 비서관이었던 김유찬 씨가 이전시장과 함께 선거법 위반 재판을 받으며 ‘위증’의 대가로 1억2,000여만원을 받았다고 2월16일 주장하고, 이 전 시장은 전면 부인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법률특보였던 정인봉 변호사가 이전시장 선거법 위반 판결문 등 ‘이미 공개된 사실’을 바탕으로 ‘도덕성’ 문제를 제기했을 때와 달리 ‘새로운 주장’이 나와 국면 자체도 달라진 셈이다.
여기다 그동안 언급을 삼가던 박근혜 전 대표마저 논란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이 전 시장을 겨냥하고 나섰다. 박 전 대표는 2월 15일 저녁(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정인봉 전 의원이 당에 제출한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 자료에 대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 대한 도덕적 기준으로 그게 하찮은 것인지, 중요한 것인지는 (당이 아니라) 국민이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특히 “국민에겐 그 자료가 대통령 후보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동철 공보특보도 “요즘 음주운전 전력만 있어도 공직 진출이 힘든데 이 전 시장처럼 피의자를 돈을 주고 해외에 빼돌린 행위를 한 사람이 과연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태가 이쯤 되면서 이 전 시장 측과 박 전 대표 측의 충돌은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김씨의 폭로가 완전히 허위이며 날조”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캠프에선 이번 기자회견의 배후에 박 전 대표 측이 개입했는지를 의심하고 있다. 한 캠프 관계자는 “이번 김씨의 폭로는 여러 정황상 특정 정치세력이 이 전 시장 음해를 위해 정교한 정치공작을 벌인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강재섭 대표 “네거티브 용납 못해”
이렇듯 박-이 캠프간 폭로전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데 대해 한나라당 지도부는 연일 양 측의 자제를 요청하며 ‘경고의 메시지’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대선후보 검증은 필요하나 당의 공식기구에서 공정하게 논의해야 한다”면서 “당의 이런 방침에 시비를 걸거나 상대방도 같은 당 후보란 인식을 망각하고 지나치게 헐뜯는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 박 전 대표 측이 대선후보 경선준비기구인 ‘2007 국민승리위원회’(위원장 김수한)와 당 윤리위원회(인명진 위원장) 등에 대해 제기한 공정성 시비와 관련, “서로 의논해서 잘 구성한 당내 기구들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를 의심하거나 편파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쪽이)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선전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국민승리위와 윤리위의 공정한 활동을 강조하면서 각 후보 측 인사들에 대해서도 “수시로 방송에 나와 자기주장을 얘기하다 보면 ‘오버’할 수 있다.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할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권영세 최고위원도 박 전 대표 측을 향해 ‘쓴 소리’를 쏟아냈다.
권 최고위원은 “말로는 당이 검증주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서 실제로는 후보 진영이 검증하는 모습은 적절치 않다”면서 박 전 대표를 향해 “자신의 특보였던 사람이 나서 ‘이전투구’가 시작됐고 지지모임까지 가세해서 확전 되고 있다면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내 입으로는 안 했으니 상관없다'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이러다가 10년 만에 찾아온 정권교체의 기회를 날리면 국가와 국민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며 “일부 후보 진영에서 벌써부터 국민승리위원회를 비판하는 것 또한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여옥 최고위원은 “최근의 검증 논란 속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후보들의 자질이 빛을 바래고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라며 “당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 어떤 후보도 존재할 수 없고, 또한 국민들에게 선택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들은 다음 대통령 후보, 다음 대통령에게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능력과 도덕성, 품격을 요구한다. 이렇게 하다가는 국민들은 기나긴 경선의 레이스 동안 한나라당 후보들의 인간적 품격에 대해 진절머리를 낼 것”이라고도 언급, 이 전 시장에 대한 박 전 대표 측과 정인봉 변호사 등의 “도덕성 검증” 요구에 힘을 실어준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한편, 김유찬 씨는 지난 2월26일 “최근 저와 관련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한나라당 정두언(鄭斗彦), 박형준(朴亨埈) 의원과 이 전 시장의 국회의원 시절 종로지구당 사무국장이었던 권영옥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전 시장의 ‘위증교사’ 논란은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검증 논란에도 변함없는 이명박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내 대선주자들의 검증 논란이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특히 설 연휴를 거치면서 대선 주자 지지율에 변화가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이다. 이 결과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47.9%로 부동의 1위를 차지했으며, 박 전 대표는 지지율 20%로 지지율에는 큰 폭의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직후인 1월 17일 조사와 비교하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각각 2.9%포인트와 2.5%포인트 하락했다.
이와 관련, 조사기관인 갤럽은 “최근 두 주자간 벌어진 ‘도덕성 검증 논란’이 양측 모두에 다소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당 지지율은 한나라당 49%, 열린우리당 12.6%, 민주노동당 6.9%, 민주당 4.6% 등 순이었다. 또 최근 열린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에 대한 지지율은 3.2%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 또는 ‘모르겠다’고 답한 부동층은 한 달 전 17.3%에 비해 5.9%포인트 증가한 23.2%를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호남에서 지지 정당을 밝히지 않은 부동층이 한 달 사이 15.3%에서 31.2%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한편 우리 국민 절반 이상은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후보 검증 논란’에 대해 ‘검증은 후보를 제대로 알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서로 흠집 내기나 싸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답도 4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층별로는 ‘검증이 필요 없다’는 의견이 20대 33.7%, 30대 34.7%, 40대 42.5%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검증이 필요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열린당 지지층에서는 검증에 대한 찬반이 63.5%와 31%로 나타났으며,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48.5%와 45.9%로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층에서는 ‘필요 없다’는 의견이 49.2%로 ‘필요하다’는 의견 46.2%보다 높았다.
이에 비해 박 전 대표의 지지층은 ‘필요하다’가 55.4%로 높았으며, ‘필요 없다’는 의견은 34.7%였다. 또 정인봉 변호사 등이 제기한 ‘검증 논란’이 후보 결정에 영향을 줬냐는 질문에, ‘별로 주지 않았다’는 답이 38.9%, ‘전혀 주지 않았다’가 31%로 10명 중 7명이 검증 논란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