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직장 찾아 시작된 공시 열풍, 자격증 취득 등 돌파구 찾아야
취업난이 지속되고 직장 내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구직자나 직장인들 사이에서 고용 안정성이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안정된 직장을 찾아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몰리고 있고, 이러한 공시과열현상은 ‘공시백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환경은 취업준비생뿐만이 아닌 직장인들에게도 자격증 취득에 대한 필요성을 각인시키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고소득과 안정성, 100% 취업률을 내세운 각종 자격증들이 난무하며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쏟아지는 자격증의 홍수 속에 ‘옥석’을 가려내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지난해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취업희망자들이 구직이나 이직을 결정하는 선택기준에 있어서 1위인 연봉(25.1%)에 이어 안정성(23.4%)이 2위를 기록했다. ‘사오정·오륙도’(45세 정년, 56세까지 남아있으면 도둑) 시대를 맞아 안정추구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평생직업’이 과거 ‘평생직장’의 개념을 대체하면서 승진보다는 경력관리가 더 중요해지고, 해고 등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선호 또한 더욱 높아져 소수의 평생직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소위 ‘잘리지 않는 직장’의 대명사로 불리는 공기업과 공사에 대한 구직자들의 열망은 이들 기업에 취업한 사람을 일컬어 ‘신의 아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공시 과열양상, 신조어 속출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몰리면서, 오랜 시간 공무원 시험 준비에만 매달려온 시험 불합격자들은 생활비와 학원수강료 등 1~2천만원가량의 빚과 다른 사기업 취업자에 비해 많은 나이,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언제든 공부하겠다고 그만둘 사람’이란 선입견을 주게 돼, 취업조차 쉽지 않은 ‘공시백수’로 전락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가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 내 낭만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고, 대학은 ‘취업준비학원’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3대 입시 클러스터’란 자조 섞인 목소리을 낳기도 했다. 즉, 고교 때는 대치동 입시학원가, 대학시절에는 신림동 고시촌 졸업 뒤엔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가 ‘3대 입시 클러스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도 일찌감치 자신의 경력관리를 위해 자격증 취득으로 눈을 돌린 구직·이직 희망자들은 좀 더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을 벌이거나 특별 채용이 되는 혜택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수많은 자격시험과 자격증, 학원과 교재 등 중에서 그들이 내세운 취업률과 수입, 충분한 수요에 대한 진위를 가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이름이 많이 알려진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안정적이고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래전부터 꾸준한 수요를 보이며 고소득 직종으로 각광을 받아온 컴퓨터 속기는, 그 중 눈에 띠는 자격증으로 자막방송의 확대와 함께 다시 각광받고 있다.
컴퓨터 속기란 말 그대로 컴퓨터를 활용해 속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별도의 컴퓨터 속기 전문 키보드를 이용해 속기하는 방식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 모든 나라의 컴퓨터 속기가 동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4년 한국형 컴퓨터 키보드(CAS)가 개발되면서 처음 선인 보인 분야이기도 하다. 지식 정보화 시대에 걸 맞는 공신력 있는 기록물 작성 및 관리에 대한 요구와 복지 수준 향상에 따른 수요처 확대 등으로 요즘과 같은 취업대란 속에서도 높은 취업률과 고소득으로 보장하며, 취업준비생들과 이직희망자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컴퓨터 속기사들의 주 수요처가 국회, 지방의회, 법원, 국방부 등 정부부처나 대기업체 등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으며, 현재 청와대에도 CAS컴퓨터 속기사가 일하고 있다. 최근 공무원 시험의 경우 경쟁률이 기백대 1이 기본이어서 왠만한 자격증으론 가산점에 큰 보탬이 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컴퓨터 속기사의 경우 여타 공직에 비해 경쟁률도 상당히 낮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속기사를 구하지 못해 거듭 채용공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국회 속기직의 경우 다른 공직에 비해 비교적 승진기회가 많고 업무여건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지원자들에게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한편, 기록물보존에 관한 법률의 시행과 법원의 집중 심리제 도입, 국회 소워원회의 속기록 작성 등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어 속기를 통한 기록물 작성 범위 또한 증가하고 있다.
폭넓은 취업분야, 높은 소득
(사)한국자막방송기술협회/한국CAS컴퓨터속기협회 안정근 이사장은 “현재 컴퓨터 속기사는 국회(9급 공무원)에 100여명, 서울시의회 및 각 지방의회를 포함한 250여 의회에 800여명, 전국 약 400여 재판정에 500여명, 청와대를 비롯한 각 행정부처에 200여명이 근무 중에 있다”라며 “법원의 경우 전국적으로 1,800여 재판정을 필요로 하고 있고 공기업, 공사 등의 공무원으로도 취업이 가능합니다. 위에 열거한 곳들만 전국적으로 필요한 컴퓨터 속기사의 수는 4,000여명에 이르는데 현재 1,600여명만이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한 수요가 예상됩니다”라며 컴퓨터 속기사의 전망을 밝혔다.
이 외에도 컴퓨터 속기사는 현재 자막방송과 상장기업체에 각각 100여명이 근무 중이며, 각종 세미나, 심포지엄, 공청회, 워크숍 등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민·형사상의 Tape 녹취의 경우 시간당 36만원의 고소득을 올리는 분야이기도 하다. 또한 속기사의 직인, 도장, 자격증(2급)이 첨부된 경우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 등 공신력을 발휘하기도 해 전문 직업으로써의 긍지를 얻을 수도 있다.
컴퓨터 속기 자격시험의 국가기술자격시험과 민간자격시험으로 나뉘며, 국가기술자격시험의 경우 노동부 주관으로 상공회의소에서 봄·가을 연 2회 시행되고, 민간자격시혐의 경우 연 2~3회 한국자막방송기술협회 주관으로 시행된다. 1급 자격 취득까지 걸리는 기간은 학원 수강 등을 통할 경우 평균적으로 1년(±∝) 정도 소요된다. 취업 가능 연령은 국회는 만 30세(군필자의 경우 32세)까지, 의회, 법원 및 그 외의 공무원은 45세까지 가능하다. 자막방송의 경우 연령제한이 없다.
(사)한국자막방송기술협회 안정근 이사장 인터뷰
“장애인이 장애인을 돕는 시대 만들 터”
현재 공중파의 경우 별도의 수신기 없이 자막방송을 함께 할 경우 화질에 영향을 주거나 화면의 중요부분이 가려진다는 등의 이유로 개인이 수신기를 구입, 설치해야만 시청이 가능하다. 자막방송은 국내 체류 외국인이나 한국을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돼 일반인 고객도 많지만, 대다수가 장애인 고객들이다. 하지만 수신기를 따로 달아야하는 부담 때문에 자막방송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 행사 등을 통해 모금한 후원금으로 무료로 수신기를 보급하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자막방송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복지기능의 측면 외에도 장애인 고용 촉진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자막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직원이 컴퓨터 속기사라는 점 때문이다. 컴퓨터 속기사라는 직업이 고도의 집중력과 한자리에 앉아서 근무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소득도 높아 하반신 이하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에겐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다. 장애인이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컴퓨터속기를 가르치는 학원 중에는 장애인 보행 시설을 갖춘 곳이 없다. 비싼 임대료와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강의 특성상 최신 건물에 입주하는 경우가 없고, 건물주들이 장애인 출입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나마 대학에 컴퓨터속기 학과가 생기는 등 나름대로 발전은 하고 있지만, 일개 협회 차원에서 이 모든 것을 개선하기엔 한계가 있다. 정부차원의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