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이 없었던 지난 9년, 사형 제도를 향한 팽팽한 논쟁
법무부에 따르면 2004년 20여명을 연쇄 살인해 사형이 확정된 유영철(37)을 포함한 사형수들은 현재까지 63명에 이른다. 1997년 12월30일 23명에 대해 무더기 사형집행을 단행한 이후 만 9년이 넘도록 사형집행을 유보해왔던 것이다. 올해만 넘기면 우리나라도 엠네스티가 선정하는 ‘사형제 폐지국가’가 된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에 사형제도의 존속과 폐지라는 커다란 문제를 짊어지고 고민 중에 있다. 이 가운데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 집행이 전 세계에 공개되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론이 더욱 뜨겁게 거론되고 있다.
반기문 신임 유엔 사무총장은 취임 첫날인 2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 집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사형은 각국이 법에 따라 정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반 총장의 발언으로 세계 여론은 들끓었다. 이는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이라 하더라도, 인권에 기초해 사형을 반대해온 유엔의 기본입장은 바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형제도는 국제사회 인권수준의 바로미터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는 사형제도에 대해 제대로 된 논쟁을 벌여본 적이 없다. 논쟁조차 꺼리고 터부시한다. 사형제도에 대한 국민적 논쟁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반 총장의 사례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투표
사형제 존폐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법무부가 연쇄살인범 유영철씨에 대한 사형집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이후 법무부는 “사형이 확정된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해 사형집행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지만 이미 찬반 주장은 팽팽한 대결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사형제도의 범죄예방 실효성 여부, 잘못된 수사와 판결로 인한 억울한 죽음 등이 도마에 오르면서 한동안 사형제 폐지론이 힘을 얻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된 사형대상자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점 때문인지 네티즌들은 각종 여론 조사에서 ‘사형제 존치’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사형제 존치가 우세하게 나타내는 데는 ‘흉악범에게는 그가 저지른 죄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털사이트 ‘다음’이 최근 뉴스 Poll을 통해 오마이뉴스 기사를 싣고 유영철씨 사형 집행 찬반을 묻는 네티즌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2948명 중 83.6%(2465명)가 사형제도에 찬성했다. 반면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4.6%(431명)에 그쳤다.
또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서도·조사 대상 447명 중 45.1%가 ‘사형제도는 존속돼야한다’고 답변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 이들은 33.8%였다.
인터넷 여론조사 업체 폴에버(www.pollever.com)가 최근 네티즌 2543명을 대상으로 사형제 존폐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사형제 존치론 주장이 우세했다.
응답자의 66.3%(1686명)가 “사회여건상 사형제를 폐지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응답한 반면 “법으로 사람의 생명을 끊는 사형제는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33.7%(857명)에 불과했다.
이 같은 결과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까지 사형에 대해서 다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사형 제도에 대한 검토와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다소 이르며 범죄예방과 죄에 대한 처벌로서 사형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흉악범죄 예방 VS 인권 보호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한 언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의견을 말했다. 법무부는 97년 말 사형 집행 이후 현재까지 사형 집행을 보류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국민 여론은 사형제 존속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민의 60% 이상은 사형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살인 등 흉악범 증가, 특히 잔혹하고 인간 품성을 상실한 연쇄 살인범의 등장은 사형제 존속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형제가 존속한다고 해서 인간 생명을 찬탈하는 흉악범 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는 이 시점에서 타인의 생명을 빼앗은 책임의 대가는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국가는 흉악범으로부터 선량한 대다수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형제도는 결코 제도적 살인이 아니다. 반인륜적, 반사회적 흉악범을 제거해 법적 정의를 실현하고 국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또 사형제도는 흉악범을 엄벌에 처함으로써 다른 범죄자들에게 경고하는 최소한의 심리적 효과가 있다. 피해자 측에는 극도의 고통과 원한을 상쇄시켜 개인적 보복이란 악순환을 막는 역할도 한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범죄자의 인권, 생명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법이 타인의 생명을 해친 사람들의 생명까지 무조건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사형제 존치는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사형제는 결코 야만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를 지키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다만 현행법에 산재되어 있는 사형 규정은 축소. 정리돼야 한다. 사형제는 사회 구성원의 생명권 보장이란 헌법적 가치질서를 위해 불가피하고도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유지돼야 한다.
이에 임지봉 서강대 헌법학 교수는 사형제는 여러 이유로 시급히 폐지돼야 한다 며 반박했다. 첫째 사형제는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에 대한 침해다. 사형제는 생명권에 대한 '합헌적 제한'이 아니라 '위헌적 침해'다. 우리 헌법은 제37조에서 국민 기본권도 필요 부득이한 경우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지만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사형은 사형수의 생명을 단절시키는 형벌이므로 생명권이라는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내용'의 침해다. 생명이야말로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또 사형제는 정적 제거를 위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슬프게도 이것은 60년도 채 안 되는 헌정사를 통해 여러 번 반복된 바 있다. 이승만 정권하의 진보당 조봉암 사형 사건, 유신 정권하의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사형 사건 등이 그 예다. 또 사형제는 오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치명적 결함도 가진다. 최근 친구의 죄를 뒤집어쓴 사형수가 8년이 흐른 뒤에야 진범인 친구의 고백으로 무죄 방면된 바 있다. 만약 집행이 연기됐던 8년 안에 사형됐다면 무고한 한목숨이 사형이란 원시적 사법 시스템에 의해 희생됐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형의 두려움에 의한 범죄 억제력이 곧잘 이야기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살인 피해자 등 ‘피해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사형제 존속의 필요성이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 인권이란 가해자 생명을 단절시켰을 때 한풀이식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범죄 피해자 구조청구권처럼 각종 범죄로 피해를 본 이들의 정신적 충격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사회가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출 때 피해자 인권은 비로소 보장될 수 있다. 유영철씨에게 가족을 셋이나 잃은 한 피해자가 유씨를 양자로 삼고 유씨의 자식을 돌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재작년 국회에 사형제 폐지 의견을 내면서 감형.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하거나 평시 폐지, 전시 적용의 절충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잠정적으로 이런 절충안을 시행하되 장기적으론 사형제 '단순 폐지'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이 적기다. 사형제 폐지의 결단은 훗날 대한민국이 인권 미개국에서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했다는 바로미터로 평가될 것이다.
세계가 바라보는 사형제도
1977년 16개에 불과하던 사형제 폐지국가는 2005년 86개로 5배 이상 늘어났다.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나라까지 합치면 128개국에 이른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사형 제도를 폐지했다. 유럽연합은 동유럽 국가들이 가입을 원할 때 사형제도 폐지를 기본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반면 호랑이 밀렵꾼에게까지 사형을 집행하는 중국, 동성애자를 사형시키는 이란, 미성년자까지 사형을 집행한 미국 등 아직까지 사형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도 적지 않다. 또 선진국 중에서 사형제도가 존속하는 나라는 일본과 호주 그리고 미국 등이 있다.
사형 제도를 유지해 오던 사형 국가 미국에서 최근 사형제도가 급격한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올해 미국 내 사형집행이 지난 1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사형선고도 최근 30년 동안 가장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미국의 사형제 반대운동 단체인 ‘사형선고정보센터’(DPIC)가 16일(현지시각) 밝혔다. 올해 미국의 사형집행 건수는 53건으로, 1996년 45건을 기록한 이래 가장 적었다고 이 단체는 밝혔다. 이는 가장 많은 사형집행이 이뤄진 99년(98건)보다 46% 줄어든 수치다. 또 올해 사형선고는 모두 114건으로 90년대 300여건에 비해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사형제 반대 여론 확산과 청소년 및 정신지체자에 대한 사형집행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 살인죄 감소 등을 사형제도 퇴조의 요인으로 꼽았다. 올해 갤럽여론조사에서도 2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인들이 사형보다 ‘사면 없는 종신형’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젭 부시 플로리다주지사가 15일 독극물을 주입했을 때의 구체적인 의료 분석 작업이 끝날 때까지 독극물 주입 사형집행을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플로리다주는 13일 집행된 사형에서 안델 디아스(55)가 독극물이 주입된 뒤 34분간 고통 속에 사망하고, 유족과 인권 단체들이 강력히 항의함에 따라 이런 결정을 내렸다. 또 뉴저지주는 올해 전체 미국 주에서 처음으로 사형집행 유예를 법제화했다. 뉴욕주는 사형제도 부활을 재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형 대국’ 중국은 지금 변화 중
세계에서 사형을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이 ‘사형 대국’으로 불리는 이유는 사형 선고로 죽어가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지난해만 해도 하루 3명꼴로 사형을 당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가 지난 8월 발표한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사형당한 사람은 1060명에 달했다. 이는 그나마 과거보다 훨씬 줄어든 수치로, 2004년에는 2784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90년대에는 연간 3000명 이상이 사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전 세계 사형 건수는 1526건. 중국에서 집행된 건수가 전 세계의 69.4%를 차지한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엠네스티의 끊임없는 요구 때문에서인지 세계정세에 발맞추기 위한 움직임인지 최근 이런 중국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중국 사형 제도에 일어날 가장 큰 변화는 ‘즉시 사형’ 선고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시 사형’ 선고는 1심인 중급인민법원에서 죄질이 무거운 범법자에게 사형이 선고되면 당일 형이 집행된다. 그러나 지난 9월부터 모든 사형을 2심을 원칙으로 한 데 이어 내년 초부터는 사형 선고와 집행의 심사?승인권을 최고인민법원에 넘겼다. 이에 따라 사형은 최종적으로 최고인민법원에서 결정 된다.
이런 각국의 움직임에 우리나라 각 인권 단체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지난 3일 종교단체에서는 사형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불교사형폐지위원회, 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회, 천주교사형폐지위원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등 4개 단체는 “법무부는 사형집행의 발상을 멈추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21세기 최고의 가치로 삼아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앞장서 달라”고 촉구했다. 또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사형제도 공론화는 국회의 몫이다. 국회가 나서 국민적 논쟁의 장을 열고, 인권과 사형제도에 대한 합의점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 점에서 국회는 항상 비겁했다. 15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의(99년)에서 사형폐지특별 법안이 제출됐으나 논의되지 못했다. 16대 국회에서도 여야의원 154명이 사형제폐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17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4년 12월 175명의 국회의원이 사형제폐지특별법안을 발의했고, 2005년 2월 법사위에 상정됐지만 제대로 된 심의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7대 국회에선 물 건너갔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는 국회의 직무유기다. 오는 2월 임시회부터 국회는 사형제 폐지법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심의하고, 국민적 합의를 거쳐 6월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2007년은 우리에게 사형제도의 존속과 폐지라는 과제를 안겨준 가운데 노무현 참여정부의 움직임을 두고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0년 동안 미뤄온 사형을 집행할 것인가 사형 제도를 폐지할 것인가를 두고 신중하고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후세인의 사형 집행’ 그 후
지난 해 12월 26일 이라크 최고 항소법원은 임기 중 3번의 전쟁을 일으키고 1982년에 148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죄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1심 법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흥미로운 것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집행자로 나서고 싶다는 자원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였다. 뉴욕타임스는 후세인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선고가 아직 확정된 상태가 아님에도 개인적인 원한을 풀고 싶어 하는 피해자들로부터 사형집행자로 나서게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이미 수백 명이 사형집행자가 되기 위해 총리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30일 이라크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 51분 그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사형은 공개 집행으로 이루어 졌는데 다음날 사형집행 장면과 사체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전 세계 언론에 공개되면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동영상은 수니파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 주민들 수백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항의시위를 벌였고 바그다드 북부 둘루이야 지역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뉴욕타임스는 “복수심에 눈이 먼 시아파 정부의 성급한 행동이 후세인을 범죄자에서 순교자로 만들었다”며 “후세인 처형이 이라크의 불길한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라크 당국은 지난 4일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사형 집행 당시 후세인을 모욕한 교도관 2명과 교수형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이라크 관리 1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터키에서 12세 소년이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교수형 집행 장면을 모방하다 숨졌다고 터키 현지 언론들이 지난 10일 보도했다. 이로써 전 세계적으로 후세인 사형 집행 방송을 본 뒤 이를 흉내 내다 숨진 어린이는 모두 8명으로 늘어났다. 터키 경찰과 가족들에 따르면, 터키 남동부 무슈 지방의 한 마을에 사는 알리산 아크티 군은 지난 8일 저녁 집 안의 빈방에서 천장에 줄을 매달고 목을 걸어 숨진 채 발견됐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후세인 교수형 장면을 TV로 본 뒤 “후세인을 어떻게 처형 했나” “고통스러웠을까” 등의 질문을 했다며 사형 집행 장면이 방송되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파키스탄, 인도, 미국, 알제리 등지에서 10대 초반의 어린이들이 연이어 교수형을 모방하는 장난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