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증가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1년 사이 저소득층의 금융부채가 14%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권 개인 신용대출이 한 달 새 1조 5,000억 원 가량 증가, 올해 연간 증가액은 3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가계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대출이자 부담이 크게 줄어든 데다 경기가 부진한 탓에 빚을 내는 가계가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100조 원(지난 6월말 기준)을 넘어선 8월25일 오후 서울 중구 농협중앙본부점에서 개인대출 상담을 받는 시민들이 창구에 앉아 있다.
[시사매거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은 지난 9월17일 국내의 경제 상황에 대해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 가계부채 규모는 증가했고, 경제성장률은 크게 떨어졌다”고 한목소리로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 9월11일 발표한 ‘8월중 금융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과 가계대출(모기지론 양도 포함)을 합한 잔액은 1,324조 1,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은행 가계대출은 609조 6,000억 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7조 8,000억 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 4월(8조 5,000억 원), 6월(8조 1,000억 원) 증가폭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많은 규모다.
가계대출 증가액은 지난 4월 8조 5,000억 원, 5월 7조 3,000억 원, 6월 8조 1,000억 원, 7월 7조 4,000억 원으로 나타나는 등 고공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8월까지의 증가액은 48조 7,000억 원으로 지난해 연중 증가액인 37조 3,000억 원보다 벌써 10조 원 가량 차이가 벌어졌다.
9월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농협·하나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8월 신용대출 잔액은 77조 2,155억 원으로 전월(75조 6,546억 원)에 비해 1조 5,609억 원 늘었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이 16조 9,382억 원으로 7월(16조 4,247억 원)에 비해 5,135억 원이 늘어나면서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이어 신한은행이 4,198억 원 늘어난 18조 7,350억 원, 우리은행이 2,959억 원 증가한 16조 5,588억 원 등으로 집계됐다. 농협은행과 하나은행도 2,469억, 848억 원씩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전달보다 6조 1,000억 원 증가한 452조 2,000억 원을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도 지난 4월 8조, 5월 6조 3,000억, 6월 6조 8,000억, 7월 6조 5,000억 원으로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은행권 신용대출을 비롯해 마이너스 통장 대출 등까지 포함하는 기타대출 잔액은 5월 1조 원, 6월 1조 3,000억 원, 7월 9,000억 원씩 증가했다. 1월부터 7월까지 총 1조 8,000억 원이 증가, 156조 7,000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미 지난해 연간 증가액인 1조 9,000억 원에 육박한 상황이다. 기타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나머지 대출로, 가계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이 90%를 차지한다.
경기 침체와 전세난이 겹치면서 저축은행, 상호금융사 등의 제2 금융권의 가계 고금리 신용대출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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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르스 사태와 경기 부진으로 폐업이 속출하면서 영세자영업자 수가 2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지난 9월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대역 근처의 폐업된 가게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 통계청은 고용원이 없는 영세자영업자가 올해 상반기 기준 397만 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만 7,000명 줄었다고 밝혔다. | ||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중 비은행예금기관이 취급한 가계 신용대출이 전분기보다 5조 원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자금수요가 크지 않은 2분기에 비은행예금기관의 가계 신용대출이 5조 원이나 늘어난 것은 사상 처음이다. 2분기 중 비은행예금기관의 신용대출이 5조 원이 증가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분기말 말 잔액은 138조 원으로 치솟았다.
올해 들어 특히 저축은행 신용대출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연말연시 성과급으로 여유자금이 생기는 1분기에도 1조 원이 늘어난데 이어 2분기에도 8,000억 원이 증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액 신용대출 위주로 비은행기관의 가계대출이 늘어나고 있다”며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의 완화로 주택담보대출 수요는 일반 은행으로 많이 옮겨갔지만, 신용대출은 제2금융권 비율이 줄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신용대출이 늘면서 연체율도 함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7월말 국내은행의 연체율 현황’에 따르면 7월말 신용대출 등의 연체율은 0.67%로 전월말(0.61%) 대비 0.06%p 상승했다. 같은 달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인 0.35%보다 2배가량 높은 셈이다.
지난 9월14일 통계청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병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분위 1분위에 속한 가구 한 곳이 평균 868만 원의 금융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년 전 금융부채 잔액과 비교해 14.3%가 불어난 규모다. 가계소득의 하위 10%를 차지하고 있는 가계소득 1분위 계층이 금융부채를 14%까지 늘린 반면, 상위 20%를 차지하는 5분위 가구는 9,019만 원에서 9,312만 원으로 3.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소득분위를 놓고 봤을 때 한 가구 당 금융부채는 3,974만 원에서 4,095만 원으로 3.4% 증가했다.
송경희 우리금융경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소득 1분위층과 소득 2분위층의 금융부채 중 점유율이 전체의 15%를 차지했다”며 “취약층을 중심으로 가계 재무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가계부채 상환부담 감축 방안, 소득 증대 방안 등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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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택담보대출의 경우에는 최근에 정책당국에서 고정금리 분할상환으로 구조를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점차 리스크가 낮아질 수 있다. 반면 신용대출은 변동금리인데다 금리 수준이 높아 시중금리 인상 시에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위험성이 더 크고 민감하다. | ||
김진성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주로 저소득, 저자산, 월세에 사는 가구에서 일반 신용대출과 부동산외담보대출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용대출 증가 흐름은 올 1분기에 회복 조짐을 보이던 소비가 2분기 들어 메르스 여파로 다시 꺾이면서 가계의 자금사정이 악화된 결과로 풀이된다. 월세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점도 저소득 가구를 중심으로 신용대출이 늘어난 요인으로 꼽힌다.
경기 침체와 소비부진으로 임시직 일자리가 크게 줄면서 생계비 마련이 어려워진 저소득가구가 저축은행 등을 중심으로 소액 신용대출을 크게 늘린 데다, 개인사업자대출로는 부족해 신용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도 증가했다. 여기에 전세값 급등으로 월세로 밀려나는 가구가 늘어난 점도 신용대출 급등에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2분기 말 기준으로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 중 신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다. 주택담보대출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일반은행과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문제는 제2금융권 신용대출 차주가 일반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차주보다 금리 인상 충격에 더욱 취약하다는 점이다. 제1금융권을 이용하지 못하는 저신용계층인데다 담보도 적당치 않은 저소득층이 대부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기 침체에 원리금 상환 부담까지 커지면 주택담보대출보다 빠른 속도로 부실화될 위험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영무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주택담보대출의 경우에는 최근에 정책당국에서 고정금리 분할상환으로 구조를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점차 리스크가 낮아질 수 있다”며 “반면 신용대출은 변동금리인데다 금리 수준이 높아 시중금리 인상 시에 원리금 상환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위험성이 더 크고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2금융권 가계부채 데이터를 소득 계층과 목적으로 분류해 위기 상황을 미리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팀장은 “정부에서 관리할 수 있다고 보는 주택담보대출은 전체 가계부채 중 50%도 되지 않는다”며 “진짜 뇌관은 담보 없는 신용대출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해방 금통위원은 “가계부채나 금융부채 문제로 위기가 생기면 금통위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지난달부터 가계부채 상시점검반을 운영 중이다. 지난달 21일과 28일 두차례 회의를 열어 가계부채 상황을 점검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의 증가세가 과도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금융사 대출 동향에 대한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라며 “금융사와 주택금융공사, 가계의 대응력을 제고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제2금융권 비주택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정부는 ‘가계부채 종합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변동금리·일시상환식 대출을 고정금리·분할상환 방식으로 바꿔나가는 게 골자다. 정부는 2017년까지 고정금리·분할상환 대출 비중을 4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임 위원장은 “처음부터 나눠 갚아나가는 방식으로 개선해 빚을 갚아나가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며 “금융기관의 상환능력 심사 방식도 개선해 처음부터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대출을 취급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