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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수산물특화시장은 수산물 전문 판매시장 최초로 국립수산물 검사원과 MOU를 체결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원산지 표시이행 등 수산시장의 바른 길을 제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
[시사매거진] 인기를 끌면서 여수는 명실 공히 남도여행의 정수로 자리매김했다. (주)여수수산물특화시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미항이자, 남해안 수산물 유통의 전진기지인 여수의 명성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수시 남산동에 위치한 (주)여수수산물특화시장(장웅선 대표/ 이하 수산물특화시장)은 2010년 ‘2012 여수 엑스포’와 맞물려 개장하며 여수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명품 수산시장의 용모를 갖추고, 남해안 수산물 유통의 메카로서 명성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세워진 수산시장은 일체의 정부 지원 없이, 200여 명의 상인이 주체가 되어 직접 부지를 사고 지었다는 데서 더욱 의미가 있다.
수산시장의 수장으로서 설립을 진두지휘한 장웅선 대표는 고난의 시기도 있었지만, 상인들이 직접 참여해 일군 수산물특화시장의 역사성이 자랑스럽다고 회고한다.
수산시장이 안정화되기 까지 30여 건의 고소, 고발(사기, 업무상 횡령, 업무상 배임 등)을 당했지만, 단 한 건의 기소도 없이 무혐의 처리를 받은 장 대표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을 만큼 심적으로 힘들었지만, 시대의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만족한다”며 “선량한 상인들과 주주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해왔다. 부채 없고 배당 있는 전국에서 으뜸가는 수산물특화시장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삼 대째 이어온 수산업에 대한 애정
수산물특화시장이 완공되기 전까지 여수는 항구도시 중 유일하게 수산시장이 없어 노상에 시장이 형성되는 상황이었다. 싱싱하고 질 좋은 수산물이 거래되는데도, 변변한 수산시장이 없다는 것이 늘 안타까웠던 장 대표는 식중독에 노출되어 있는 비위생적인 수산시장의 문제점을 과감히 개선하고자 사업에 착수했다. 장 대표는 특유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로, 협소한 장소와 시설의 노후화, 주차공간의 부족 등 많은 제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다. 수산시장에 설립에 대한 그의 애정과 열정은 가족 대대로 수산업에 종사해온 영향이 컸다.
“어머니께서는 40여 년간 수산물 도매업에 종사하셨고, 나 역시 수산업에 몸담은 지 30여 년이 됐다. 자녀가 뒤를 잇고 있는 3대째 수산업 집안이다.”
힘들기로 이름난 정보 부대에서 17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수산업에 투신한 장 대표는 정의로운 군인정신과 수산시장을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해 왔다. 그와 뜻을 함께한 주주들의 땀과 눈물로 일군 것이 지금의 수산물특화시장이다.
관광객과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수산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시장을 개선하고자 상인들이 3회에 걸쳐 출자했으며 지상 4층 연면적 6375㎡의 현대식 건물을 완공했다. 점포수는 45개에서 208개로 증가했고 매출은 월 4억 원에서 21억여 원으로 증가했다. 월 매출이 525% 증가했을 만큼 시장은 활기를 띄었고 모범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며 수산시장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최초로 UV살균 해수공급시설과 전국 최초 100% 카드 가맹 등 고객 편의를 증대시켜 2012 여수 엑스포 기간 중 전국 유일 쇼핑 업소·음식업소로 지정되었으며, 수산물 전문 판매시장 최초로 국립수산물 검사원과 MOU를 체결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 원산지 표시이행 등 수산시장의 바른 길을 제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진흥원이 주관한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상인대학을 개설해 운영하기도 했다. 시장 상인 90%가 참여한 상인대학은 경영마인드, 친절강화, 고객응대, 판매촉진 등에 대한 집중 교육을 통해 서비스 향상을 이뤄냈으며,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여수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일조했다.
영세 상인들과 뜻을 모아 재래시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 발전을 이루겠다는 다짐의 실천이었다.
장 대표는 “‘수산시장 다운 수산시장’을 기치로 내걸었고, 수산업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상인들의 소득 증대와 노후 보장 등을 목표로 했다. 그 결과 부산 자갈치 시장, 서울 노량진 시장 등 전국 60여 개 시장에서 벤치마킹 올 정도로 성장을 이뤘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수많은 법적 분쟁, 모두 무혐의 처분
수산물특화시장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탄한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9년 수산시장 건축을 위해 가설시장 점포를 모두 비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건축을 반대하는 상인 5~6명이 6년 후에나 건축을 하자며 집기를 치워주지 않았고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나머지 40여 명의 상인들이 좋은 환경에서 고객들을 맞이하자며 집기를 들어낸 것이 법적 분쟁의 불씨가 됐다.”
공사 지체로 건설사에 납부해야 할 지체위약금이 결국 상인들의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이에 주주들은 대의적 차원에서 건축 반대자들의 집기를 치울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건축 반대 당사자들과 직접 합의를 보도록 소송 책임자에게 권유했으나 합의를 뒤로한 채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 진행 중에 담당 판사가 직접 합의를 유도했으나 거부했다는 것이다.
“예상합의금으로 2~3000만 원 정도면 충분할 것을 상인들 개개인에게 250만 원씩 착출, 7500만 원 이상을 걷어 탕진, 법으로만 진행하다 보니 4년이라는 시간과 많은 액수의 돈이 지출됐다. 분란을 초래한 소송책임자가 모든 책임을 대표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후 정기주주총회에서 ‘재판이 끝난 후 상인들의 경제적인 손실을 일부 회사에서 보상처리를 하자’고 결의된 바가 있었으나 이에 불복하는 바람에, 바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마음으로 견뎌온 시간
현재 회사는 재정이 여의치 않아 개인들의 벌금과 손해보상을 할 수 없는 실정이며, 형사 처벌금을 보상한다 해도 이는 공금 유용에 해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했다. 당시 건물 신축을 위해 자금을 수금하던 중 신축과정에서 기득권을 상실하게 된 데 불만을 가진 세력 등에 무수히 많은 고발을 당해, 지금까지도 그 여파로 정상적인 업무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임시주주총회에서 자유로운 업종선택으로 제한을 푼 것에 대해 패류 상인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해 항의하는 바람에 청정해수 특화시장의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것이 장 대표의 주장이다. 원산지 표시 불이행에 대한 시정 방송에 대해 회사를 비방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으며, 무혐의 판결을 받았음에도 선량한 상인들을 선동해 70억 원이라는 돈을 횡령했다고 까지 했다는 것이 장 대표는 안타깝다고 한다.
“회사경영에 대한 복안과 심정을 가정통신문을 통해 주주들에게 알리고 있다. 하지만 근거 없는 부정적인 여론 몰이와 입에 담기 힘든 언어폭력은 참기 어려웠다. 회사의 재정은 매월 반복된 적자가 이어졌지만, 지출 우선순위를 정한 후 빚지지 않고 4년간 탈 없이 운영해왔다. 어려운 경영 속에서도 관리비 인상을 요구한 적 없이, 오로지 회사 빚을 감면받을 목적으로 노력해 왔다. 빚을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재판 과정에서 재산을 탕진하면서 화병이 생기고 삶의 의욕도 잃어갔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버텼다.”
장 대표는 수많은 고소, 고발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치이며 받은 충격으로 수많은 날을 잠 못 이루고 지새웠다. 한때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로 심각했기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신념은 역경 속에서 더욱 견고해 지는 법. 진실함과 정의로움은 자신의 명예회복 보다는 상인들에게 더 이상의 피해를 주지 않고, 수산물특화시장을 살려내는데 향해 있다.
“회사를 곤란에 빠트리는 것을 알면서도, 아케이트 배정받은 주주들을 선동해 건축비 반환소송을 하고, 대법원까지 상고했지만 결국 회사가 승소했다. 내가 위법 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법원에서 판결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주장을 계속하는 집단행동이야 법체계를 무시하는 행동이자, 시장의 존폐를 위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회사의 생존을 걸고 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회사를 반목하면서 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부 주주들과 법률 브로커들에 맞서 정의를 보여주고 싶다.”
“수산물특화시장의 재기위해 포기 않을 터”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은, 흘러간 시간의 고통은 묻어두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장 대표는 차선책을 강구, 수산시장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주주들은 주식만 보유하고 회사가 각 점포를 임대업으로 전환해 흑자를 낸 후 주식 배당금을 주는 주식회사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다 함께 망할 것인지, 함께 살 것인지는 이제 주주들의 손에 달려 있다. 주주 여러분의 뜻을 겸허히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수에 터를 잡고 대대로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장 대표. 자부심과 애정으로 지내온 시간이지만 일련의 법적 투쟁을 거치면서 스스로 덕(德)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는 그다.
“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다 되어서 태풍 같은 여정을 만났다. 17년 동안 군인 생활을 하며 몸에 익은 정의로운 군인정신으로 거센 폭풍우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자 한다. 다만 외부세력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모양새로 마무리되어 수산물특화시장을 발전시켰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해와 화합의 기회를 버리고 끊임없이 잘못된 주장을 되풀이하는 극히 일부 세력까지 품고 가는 덕장(德將)의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장 대표. 그의 좌우명은 정직이다. 곧은 마음과 올바른 행동으로 신념을 지켜온 그는 일부 상인들과 생긴 분란을 딛고 반드시 수산물특화시장을 살려낸다는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