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문장 뒤에 속마음 숨긴 아베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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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한 문장 뒤에 속마음 숨긴 아베 담화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5.08.3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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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역사 인정·사죄 없어…한일관계 ‘급진전’ 힘들듯

   
▲ 지난 8월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전후 70년 담화에서 관심을 모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언급했지만 이를 일본이 저지른 사실로 명시하진 않았고,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에서 명기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역대 정권의 기본적인 입장을 계승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시사매거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지난 8월14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진정한 의미의 ‘사죄’가 담긴 ‘종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를 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이뤄진 아베 담화는 과거형에 간접화법으로 ‘사죄’ 등을 언급하는데 그쳤다. 이에 따라 한일관계가 신속하면서 폭넓게 개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날 담화에서 “전후 7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쓰러진 모든 이들의 생명 앞에 깊이 머리를 숙이고 ‘통석의 염’을 표하는 한편 영겁의 애도를 정성껏 바친다”고 회한과 반성을 보였지만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서는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한다”는 선언적 표현을 넣는데 그쳤고 반성과 사죄에 대해서도 “일본은 지난 세계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 왔다”고 우회적으로 지적하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 “역대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으나 진정성이 엿보이진 않았다.

아베 담화에는 직접화법은 아니지만 무라야마 담화 4대 키워드(식민지 지배, 침략, 사죄, 반성)가 모두 담겨 있다. 다만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번 담화에서 중국은 네 번을 언급했고, 한국은 한 번만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담화를 통해 중국은 상대적으로 수용이 쉽도록 발언한 반면에 한국은 많이 참아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언급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아베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에서 후퇴하고 미흡한 내용인 만큼 한국, 중국의 반발로 한·일, 중·일 간 불편한 관계가 좀처럼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일본의 패전 70주년인 8월15일 개최된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의 뜻을 밝혔다.

이날 일본 부도칸(武道館)에서 추도식이 열린 가운데 아키히토 일왕은 연설에서 “앞선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을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일왕의 이런 언급은 전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과거 총리들이 언급한 반성과 사죄로 자신의 뜻을 대신한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평가됐고, 일본 안팎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아베 담화와 관련 우리 정부는 “지금의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와 침략의 과거를 어떠한 역사관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국제사회에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외교부는 이날 공식 논평을 통해 “그럼에도 아베 총리가 이번 담화에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점에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이러한 입장을 어떻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해 나갈 것인지를 지켜보겠다”며 “이와 관련,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등 한·일간 미결 과거사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을 맞은 1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담화와 관련해 “어제 있었던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고노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일본 내각이 밝혀온 역사 인식은 한·일 관계를 지탱해 온 근간이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역사는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산증인들의 증언으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어제 (아베 총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언급했다.

이번 아베 담화와 관련 정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아베 담화는 그야말로 교묘한 문장 뒤에 속마음을 숨긴 담화였다”며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과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 원내대표는 “전쟁 피해자에 대한 애도라는 표현이 있지만 식민지 피해가 아니었다”며 “일본은 반성과 사죄를 했다고 하나 이는 일반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병헌 최고위원도 “아베 담화는 우려대로 형식적인 사과로 일관됐다”며 “위안부라는 단어도 들어가지 않았다. 훗날 아베 담화에 대해 역사는 혹독한 평가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아베 담화는 한국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이 없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기술도 없다”며 “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평가도 실망이다. 과거 청산 없이 한일관계 개선도 불가함을 아베와 박근혜 정권은 기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미애 최고위원도 “아베 담화에는 신뢰가 빠졌다. 아베 내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아베 담화의 핵심은 전후 세대가 더 이상 전범국가의 과오를 물러 받지 않겠다는 선긋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광복 70년을 맞은 지난 8월15일 집회에 참석한 6,000여 명(경찰추산)은 호소문을 통해 “일본은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진심 어린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담화’는 조선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를 불법적으로 강점하고 침략한 것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다시 전쟁하는 일본’을 전세계 앞에 선언한 것이다. 결코 용서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북한도 8월19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 담화 내용을 비판하며 일본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날 오후 정책국 대변인 담화에서 “담화내용이 일본의 죄과를 한사코 회피하고 무작정 덮어버리며 어떻게 하든 군국주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흉심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비판했다.
국방위는 “담화를 발표한 아베는 패전국의 수장으로서 수그린 몰골이 아니라 마치 대가리를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며 독을 내뿜는 일본산 독사 그대로였다”고 꼬집었다.

국방위는 “죄악에 찬 과거의 연장인 반인류적이고 반평화적인 70년 역사를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여로 미화·분식한 아베의 담화야말로 군국주의 일본의 극악무도한 흉체를 드러낸 독기어린 악담”이라고 성토했다.

반면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아베 총리의 이번 담화는 한일-일한의원연맹의 공동성명 내용 중 침략과 식민지 지배 반성·사죄 등 상당 부분을 반영했다”며 “의미 있는 담화”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일 과거사의 상징적 현안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직접적 언급이 없었던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베 담화를 두고 해외언론들도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지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에 대해 “아베 총리는 부끄러울 정도로 (전쟁 중)일본이 저지른 범죄를 마주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지지 통신이 8월16일 전했다.
 

더 타임스는 이날 2차대전 종식 70주년 관련 사설에서 “일본은 원자폭탄 투하 피해자 추모 및 종전기념일 행사에서 여전히 일본은 가해자라기보다 피해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뒤 “그러나 일본이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일본과 주변 국가들 간 외교 관계는 비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CNN은 8월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수백만 명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표명했지만 일본 미래 세대는 계속해서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아베 총리가 전후 50년의 무라야마(村山) 담화(1995년)와 전후 60년의 고이즈미(小泉) 담화(2005년) 등 전임자들의 담화를 인정하면서도 이번에 새로운 사죄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도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는 전후(戰後) 70년 담화와 관련해 아베 총리가 일본의 과거 어두운 순간들을 인정하고 전임자들의 반복적인 사과를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신화통신도 논평을 통해 “명백한 사죄를 하는 대신, 아베의 담화는 ‘사죄에 관한 우리의 자세를 유지한다’와 같은 수사학적 비비꼬기로 넘쳐나고 있다. 그의 뿌리 깊은 역사 수정주의를 적나라하게 노정시키고 있다. 이 수정주의는 일본의 이웃 나라 관계에서 귀신처럼 계속 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8월1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와 관련해 일본은 과거 침략에 대해 진지한 사과를 하라고 촉구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은 침략 전쟁에 대한 성격과 책임을 분명히 설명하고 아시아 국가들에 진지한 사과를 해야 한다”며 “군국주의 역사를 숨기려 하지 말고 이와 단절하라”고 말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도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는 완곡어법으로 가득하며 일본이 해야 할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아베 총리가 핵심 문제에서 일부러 모호함을 보이고 있어 그에게 새로운 담화를 낼 필요성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전후 50년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국가에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발표했었다.

이번 아베 담화를 두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 담화에서 나타난 이른바 ‘한국 건너뛰기’ 관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면우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아베 담화 평가와 향후 한일관계’라는 글을 통해 “우리가 아베 담화에서 주목하고 주의할 부분은 반둥회의와 미 의회의 연설에서 나타난 ‘한국 건너뛰기’의 관점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 관점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나 중국만을 상대하면 한국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란 일본의 그릇된 인식과 자만을 바르게 돌려세워 동북아와 세계의 안정에 이바지하는 파트너십을 한국과 형성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우리정부에 조언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 담화수위가 기존의 강경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다각도로 압박한 외교와 일본 내에서 지지율 하락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외교부의 수장인 윤 장관은 공식·비공식적으로 담화 발표 전에 아베 총리를 압박했다. 지난 8월6일 기시다 일본 외무상과 회동에선 “앞으로 한일관계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전후 70주년 일본 총리 담화 내용이 중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이어 12일엔 “아베총리 담화는 양국관계 개선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안팎에서도 올바른 역사 인식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보수 원조’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와 최대 보수 신문인 요미우리신문이 8월7일 아베 담화에 ‘사죄’를 넣을 것을 요구한 데 이어 도쿄신문은 10일 ‘독일 전범 추급(追及)에는 끝이 없다’는 사설을 싣고 지난달 94세의 나치 친위부대원에게 금고 4년형을 선고한 독일 법원의 사례를 소개했다.

도쿄신문은 “독일에서는 전후 전쟁 범죄가 단죄됐지만 일본과 달리 그 후로도 단죄를 계속해 왔다”며 “나치 범죄에 대한 엄격한 추급은 비인도적 행위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독일의 ‘과거 극복’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도 9일 보도된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는 전쟁에 대한 강한 피해 의식은 있지만 가해자의 의식은 없다”며 “국민 스스로 전쟁 범죄자를 재판한 독일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보수 주간지도 일본의 역사 왜곡을 강하게 비판했다. ‘위클리 스탠더드’ 이선 엡스타인 부편집장은 7일 인터넷판에서 위안부 문제와 강제 노역, 독도 문제 등과 관련된 일본의 잘못된 주장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한 발 물러난 이면에는 일본 내에서 지지율 하락도 한몫했다.
일본 NHK가 지난 7~9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약에 사과를 담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에 42%가 ‘담아야 한다’고 답했다.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는 응답자는 15%에 그쳤다.
 

아베 내각 지지율 조사에서도 ‘지지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지난 7월보다 4% 포인트 하락한 37%를 기록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3% 포인트 상승한 46%에 달했다. 자민당 차기 총재 선거에 출마할 뜻을 내비친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여론조사가 거슬렸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외무성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한 지난 8월14일 외무성 홈페이지에서 정부의 역사 인식과 아시아 국가에 대한 ‘식민지배에의 반성과 사과’에 관련된 기사들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아사히신문이 8월18일 보도했다.

삭제된 것은 ‘역사 문제 Q&A’라는 페이지로 2005년 8월 전후 60년의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었다. 이 페이지는 2차대전에 대해 ‘역사 인식’ 외에 ‘위안부 문제’ ‘난징대 학살’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 등 8개 항목에 대한 정부의 견해와 대응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2차대전의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항상 마음에 새긴다”고 기술하고 있다.
외무성은 이 기사들을 삭제하는 대신 아베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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