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협상 이어가는 남북한, 노림수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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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협상 이어가는 남북한, 노림수 무엇인가
  • 김옥경
  • 승인 2015.08.3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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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강경대응에 北 전격적으로 회담 제의

   
▲ 북한의 포격도발로 인한 대치상황과 관련해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린 8월 22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우리 측 대표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 대표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가 비공개로 회담을 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통일부)

[시사매거진] 지난 8월 4일 오전 7시 40분경, 경기 파주 서부전선의 비무장지대(DMZ)에서 목함지뢰가 폭발해 우리 군 2명이 중상을 입었다. TNT 220g이 들었던 이 목함지뢰는 북한이 매설한 것으로 조사되었고, 우리 정부는 즉각 사과를 요구하며 강경대응에 나섰다.

11년 만에 대북 방송을 재개하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남한의 행보에 북한은 예의 무력도발을 경고하며 대북 심리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어 남북한 간 대응 포격이 오가며 우리 군은 최고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고, 북한은 최후통첩을 발표했다. 최후통첩 기한으로 잡은 48시간이 끝나기 3시간 전인 지난 22일 오후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제의했고, 이날 3시 30분부터 시작된 회담은 3일째 되는 24일까지 접점을 찾기 못하는 마라톤회담을 이어가고 있다.

“주체 분명한 사과” vs “대북 심리전 중단”
팽팽한 긴장감이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 한쪽에서는 3일째 밤샘 마라톤협상이 진행 중인데, 한쪽에서는 대규모 전력이동이 한창이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정례 한·미 연합훈련이 한창이었다. 외신들은 일제히 한반도의 상황을 속보로 내보내며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최고조의 긴장국면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 3주가 흘러가고 이제 남북은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는 않다. 3일째 밤샘으로 이어지는 지리한 협상은 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양국 정상의 복심으로 알려진 남측의 김관진 안보실장과 북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자국민에게 내놓을 확고한 ‘전리품(?)’이 필요하니 양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출구를 찾을 묘안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현재 우리 측은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서부전선 포격도발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고 있고, 북측은 대북 확성기 방송부터 먼저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줄다리기 중이다. 북측이 이번 고위급 접촉 전부터 지뢰도발과 포격도발에 대해 “남측이 조작한 것”이라고 발뺌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협상테이블의 ‘출구찾기’는 더욱 요원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출발점에서부터 서로 엇갈리면서 다른 현안 타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우리가 대북방송을 중단하면 당장은 긴장국면이 해소될 수 있지만 언제든지 비슷한 도발이 자행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협상의 원칙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는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확고한 뜻이기도 하다는 후문이다. 이외 이번 고위급회담의 협상테이블에는 이산가족상봉 등 남북 교류사업들도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北 잠수함 50척 기동…여전한 화전양면 전술(?)
남북 고위급회담이 진행되던 8월 23일 북한의 잠수함정 50여 척이 기지를 떠나 종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잠수함들은 동해와 서해에서 기동 중인 것으로 전해졌는데, 규모는 북한이 보유 중인 잠수함과 잠수정 77척 중 70%가량에 해당한다.

군 관계자는 “잠수함과 잠수정의 기지 이탈 비율이 평소의 10배로 급증했다”며 “단일 출항 규모로는 6·25전쟁 이후 최대 수준”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이처럼 잠수함을 대거 기동하고 위치마저 식별되지 않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써, 군 당국은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례로 지난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도 북한의 연어급(130t)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로 폭침당했다. 이에 우리 군은 대잠헬기 ‘링스’를 탑재한 구축함과 호위함, 해상초계기 ‘P-3C’를 추가 배치하고 잠수함을 통한 탐지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북측의 무력시위는 이뿐이 아니다. 북한군 최고사령부는 21일 전방에 배치된 부대에게 ‘전시상태’ 수위포병부대 중 진지나 지하갱도 등에서 나와 사격대기 상태로 들어간 전력도 지난 21일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상태다. 이는 하루 전인 20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완전무장을 주문한 것에 따른 것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불의 작전 진입이 가능한 완전무장한 전시상태로 이전하며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이에 맞선 박근혜 대통령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경기도 용인 제3야전군사령부를 방문해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선조치 후보고하라”는 지시와 함께 강경한 대응을 주문한 바 있다.

이밖에도 북한군은 우리의 대북 심리전 수단들을 격파 사격하기 위한 군사적 행동과 우리의 반작용을 진압하기 위한 지역의 군사작전을 지휘할 지휘관들도 임명해 해당전선으로 급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북측의 추가도발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는 회의적인 반응들이다. 한·미 연합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던 만큼 북한에게 부담이 컸을 것이란 전망이다.

전례없는 2+2 대화채널, 새 전기 되나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항은 전례없는 2+2 회담에 나선 대표들이다. 남측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으로 이뤄진 협상팀은 새로운 대화채널로 주목받으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각각 양국 정상의 직통라인으로 알려지면서 일부에서는 ‘정상회담 대리’라는 추측까지 난무하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 안보실장과 북한의 실세인 군 총정치국장이 회담형식으로 회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보분야 외 정치 분야까지 폭넓은 의제에 대한 결정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최고 실세의 만남이라는 점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때문에 남북 관계에 일대 전환기를 가져올 새로운 국면이 도래하는 건 아니냐는 긍정적 평가도 새어나오고 있다.

장순휘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은 황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후계자 만들기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직후부터 승승장구하며 북한의 2인자 자리를 꿰찬 김정은의 오른팔이라고 평가하며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황 총정치국장은 반드시 대북 심리전 방송 중단이라는 결과물을 가지고 가야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제2의 황장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은 김양건 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는 남한뿐 아니라 중국, 일본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실세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기도 한 그는, 당시 북측에서 유일하게 회담에 배석하기도 했다. 이번 고위급회담 또한 김 비서가 먼저 우리 측에 전통문을 보내오는 것으로 성사되었다.

이처럼 달라진 북측의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리의 강경대응으로 수세에 몰린 북한의 위기감을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명분축적과 추가 도발을 위한 시간벌기용 지연·기만전술이라는 평가도 있다. 즉 자신들은 대화를 제의하며 한반도의 긴장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면서 뒤에서는 전쟁을 위한 도발을 준비하는 전형적인 ‘화전양면 전술’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처지에 따라 다양하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번 회담을 통해 남북한 교류협력의 장을 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간 대북문제에서만큼은 ‘확고한 원칙’을 강조하며 물밑접촉이나 비선활용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박 대통령은 유연한 대응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때문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통일대박론’을 내세우며 관계개선을 모색해왔으나 이렇다할 결실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태가 오히려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때문에 남북한 모두 지리한 마라톤회담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먼저는 북한의 지뢰도발에 대한 분명한 사과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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