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상 한국 영화계에는 북한을 적(敵)과 악(惡)으로 다룬 ‘반북(反北)영화’가 흥행의 성공을 거둔다는 것이 생각보다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영화감독들이 나서기를 꺼려하는 금기가 있다. 영화배우 차인표가 출연한 북한의 불법무도함과 탈북민의 처참함을 고발하는 <알바트로스(1996)> , <한반도(2006)>, <크로싱(2008)> 등이 모두 흥행에 실패하였다. 반면에 ‘친북성향의 영화’들은 줄줄이 흥행몰이를 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쉬리(1999)>는 북한 특수부대의 강인함을 부각시켜서 상대적으로 남한군을 무기력하게 인식시킨 대북공포영화로, 대박을 쳤다. 그리고 이병헌이 출연하여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미화하며 반공정신을 무장해제시킨 <공동경비구역 JSA(2000)>과 장동건이 주연한 6·25전쟁에 참전한 형제의 비극을 주제로 무모한 전쟁의 참상을 알린 반전주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영화사를 다시 쓸 만큼의 흥행을 기록했다. 그리고 <웰컴 투 동막골(2005)>은 남북한 병사 간 화해를 주제로 북한군도 동족이라는 연민을 자극하고, 미공군 조종사의 무자비한 폭격장면을 통하여 반미선동성을 부각하면서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처럼 영화는 작품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남겨져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문화의 힘이다. 이 힘은 비록 픽션(fiction)이지만 영상화되면서 사실(fact)로 둔갑되어 그 어떤 증언보다도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평해전>의 영화적 흥행으로 가려져서는 안 될 진실이 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이 전투가 북한해군의 ‘계획적 도발’이라는 것을 군 수뇌부가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투현장의 해군장병들에게 당연히 대비강화 지시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당시 군의 대북감청부대(5679부대)는 사건발생 2주일여 전인 6월 13일과, 교전 2일전인 27일 “발포명령만 내리면 발포하겠다”는 북 경비정과 해군부대 간 교신을 감청분석해 군 상부에 보고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던 군 수뇌부가 북경비정이 노골적으로 남하하는데도 “월드컵 기간 중이니 남북 간 긴장관리를 잘하라”는 식의 애매모호하고 안일한 대응을 지시했으며, 도발징후정보를 묵살한 행위가 결과적으로 고귀한 장병 6명의 희생을 자초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내막에 대해 과거지사(過去之事)로 치부하며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넘어갈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이 있다. 당시 지휘책임자였던 이상희 합참의장은 이후 국방장관으로 영전하였고, 현재 합참의장은 당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2000.1~2003.1)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책임이 없을까?
군사정보는 전장의 승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써, 때로는 국가의 흥망도 좌우하는 것이다. 13년 전 제2연평해전 직전의 정보 묵살행위의 재발이 다시는 안보현장에서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군은 ‘제2연평해전이 자초한 전화(戰禍)는 아니었을까’ 하는 진실의 성찰을 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