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국가발전·국민대통합’ 위한 광복절 특사 추진
상태바
朴 대통령, ‘국가발전·국민대통합’ 위한 광복절 특사 추진
  • 박정훈
  • 승인 2015.08.04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제 활성화 위한 기업인 살리기(?). 재계 ‘통큰 사면’ 기대

[시사매거진] 박 대통령은 지난 7월 13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역경 속에서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어 온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여러 어려움에 처한 대한민국의 재도약 원년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며 “지금 국민들의 삶에 어려움이 많은데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살리고 국가 발전과 국민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사면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간 사면에 대한 본인의 발언들을 의식한 탓인지 범위와 대상에 대한 결론은 내지 않은 채 “관련 수석께서는 광복 70주년 사면에 대해 필요한 범위와 대상을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朴 대통령 달라진 사면 발언, 재계 건의 화답?
박근혜 정부 들어 특별사면은 지난해 1월 서민생계형 및 불우수형자 59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 유일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특사를 앞두고 “부정부패와 사회지도층 범죄를 제외하고 순수 서민생계형범죄에 대한 특별사면을 하라. 대상과 규모는 가급적 생계와 관련해서 실질적인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대상과 범위를 분명히 제시해 정치인·기업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지난 4월 성완종 리스트 파문 때도 사면의 전제조건에 대해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특별하고 국가가 구제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만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상을 적시하지 않은 채 특사의 취지로 ‘국가 발전’과 ‘국민대통합’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해 일각에서는 정치인과 경제인을 포함한 대규모 사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포괄적인 원칙을 제시한 만큼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존보다는 광범위하게 사면 대상자 검토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날 박 대통령의 광복 70주년 사면 지시는 경영상 비리로 구속 또는 수사가 진행 중인 기업 총수 등 경제인에게 기업 경영의 기회를 다시 한 번 줘보자는 재계의 건의에 이어 나온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재계는 앞선 7월 9일, 30대 그룹 사장단 회동을 통해 ‘경제난 극복을 위한 기업인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그리스의 디폴트(국가부도) 및 그렉시트(Grexit:유로존 탈퇴) 등 국내외 악조건으로 국내경제의 2%대 성장을 우려하며 기업이 경제위기 타개에 앞장 설 것임을 천명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7월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간담회에 참석, 격려사를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재계는 “장기간 수사나 경영자 부재 등으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제한 뒤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가적 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다시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건의했다. 사실상 재계가 국민과 정부에 법적 조치를 받고 있는 기업인들의 사면을 요청한 것이다.
때문에 청와대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번 특사 지시를 경제인들의 요청에 화답한 것으로 풀이했다.

 

임기 후반기 경제활성화 위한 ‘승부수’ 관측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국가발전’을 강조하며 ‘광복절 특사’를 공식화한 것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그리스 재정위기 등 대내외적 리스크로 사면초가에 몰린 경제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로 관측했다. 임기 후반기 ‘경제활성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인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재계의 요구인 ‘기업인 특사’를 전격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 같은 관측은 지난 7월 9일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기업인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정부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도 뒷받침된다.
현행 헌법과 사면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고유권한으로 특정인들에 대한 형 집행을 면제해주거나 유죄 선고효력을 정지시키는 등의 특별사면을 실시할 수 있다. 특별사면은 법무장관이 사면심사위원회 심사·의결을 통해 정해진 대상자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재가를 받게 된다. 이후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공포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가석방 심사는 형기의 30% 이상 복역을 요건으로 하고 있고, 실제 70% 이상 복역한 경우에 실시됐지만 특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형이 확정된 경우 복역 기간과 상관없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별사면 절차에 맞춰 지난 7월 22일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법무부가 ‘광복 70주년’ 8·15 특별사면을 위해 대한상의 등 경제 단체에 기업인 또는 기업에 대한 사면 건의를 일괄 접수해줄 것을 요청했다. 형평성을 고려해 일부 주요 기업인을 특정 하는 대신 광범위한 수준에서 기업인 사면이 검토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형이 확정돼 수감 중인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형제에 대한 사면을, LIG그룹은 수감 중인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형제와 집행유예 중인 부친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을 건의할 전망이다. 한화그룹도 집행유예 중인 김승연 회장에 대한 사면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 사장,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등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아 사면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경우 담합(카르텔) 적발로 관급공사 입찰참가 자격이 제한된 현대건설에 대해 ‘행정처분’ 사면을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비슷한 이유로 입찰 참가 제한 등 행정처분을 받은 건설사들의 사면 요청이 대거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형제, 구본상, 김승연 특사 유력 거론
재계에서는 횡령 혐의 등으로 수감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이 유력한 특사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2013년 1월 법정 구속된 최 회장은 징역 4년이 확정돼 2년 6개월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고, 최 부회장은 같은 해 9월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돼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둘 모두 형기의 60% 이상 복역한 상태다.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은 가능성이 더 높다. 사기 혐의로 징역 4년이 확정돼 2012년 10월부터 수감 생활을 하고 있어 형기의 70% 이상을 복역했다. 집행유예 기간에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대상으로 거론된다.

   
▲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7월 22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0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회장 역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연 회장에 대한 특별 사면을 요청하고 있어 이들의 사면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7월 22일 제주 서귀포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의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사면을 통해 최 회장과 김 회장에게 기회를 줘서 모범적인 기업을 만드는 대열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간곡하게 소청 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더욱이 지난 7월 24일 박 대통령 초청으로 이뤄진 대기업 총수들과의 오찬자리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사면 대상자나 사면을 요청한 그룹 총수들이 참석하면서 그들의 사면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민, 과반수 경제인 특별사면 반대 입장 밝혀
그러나 국민들은 경제인 특별사면을 반기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7월 21일부터 7월 23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1천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4%가 경제인을 대상으로 한 특별사면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35%, 나머지 11%는 의견을 유보했다.
‘경제인을 특별사면하면 한국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41%가 ‘매우’(7%) 또는 ‘어느 정도’(34%)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 반면, ‘별로’(33%) 또는 ‘전혀’(19%)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52%를 차지해 경제인 특별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참여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들도 경제인 특별사면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면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공약한 바 있다”고 강조하며 “박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사면의 명분으로 앞세우고 있지만, 부패한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 남용은 도리어 힘없고 배경이 없는 국민 사이에 위화감만 조장해 국민 분열만 가속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경실련도 성명을 통해 “수감 중인 재벌 총수들은 오히려 배임·횡령·주가조작 등 공정한 경제질서를 훼손하고, 국내 경제를 어지럽혀 경제정의를 훼손한 주범들”이라며 “박 대통령이 진정 경제살리기와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싶다면 민생·생계 사범 위주로 사면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은 박 대통령의 이번 특별 사면 지시에 대해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그간의 ‘정면 돌파형’ 국정 운영을 ‘포용형’으로 바꾸려는 시도라며, 야당과의 협력을 위해 관계 개선이 필요한 지난 정권의 정치인 등에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도 있었으나 이번 특사 검토 대상에서 정치사범이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법무부가 검토 중인 사면 대상 선정 기준에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제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치인 사면 대상자로 거론됐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이광재 전 강원지사, 홍사덕 전 의원, 정봉주 전 의원 등은 사면 받을 기회가 없어졌다.
반면, 주로 경제인들에게 해당되는 횡령과 배임은 사면 검토 제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특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기업인들의 사면이 더욱 유력해질 전망이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