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신경전이 여전히 팽팽한 가운데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 활동 시한 내 처리를 두고 정부와 여당, 공무원노조, 야당의 3각 축이 시각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최장 125일이라는 특위의 활동시한에 따르면 늦어도 5월 2일까지는 공무원연금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움직일 수 없는 일정”이라는 반면 노조 측은 “충분한 논의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노조 측의 태도를 ‘개혁을 하지 않겠다’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이런 양강 구도 속에 야당은 ‘절충안 마련’이라는 미봉책만 만지작거리고 있어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피로도는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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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세금바로쓰기 납세자운동본부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공무원연금개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국민대타협기구는 당시 “2009년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공무원, 연금 수급자, 정부 간 고통 분담을 통한 재정 안정화 노력을 하는 한편, 불합리한 사항들을 일부 합리적으로 개선함으로써 공무원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과 투명성을 고려했으나 공직 세대 간 및 공적연금 간 형평성을 고려하고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 제고 및 공무원의 적정한 노후소득 보장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개혁이 필요하다”는데 중지를 모았다고 밝혔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후 특위)와 ‘투 트랙’으로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진행해온 국민대타협기구는 이날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연금 수급자 급증과 수급구조 불균형 등으로 인한 재정 안정화 요구가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
“특히 지난 세 차례 공무원연금 개혁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 보전금이 크게 늘어나 정부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중·장기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국민대타협기구는 “지난 55년간 운영되어온 제도는 성숙 단계에 접어들고 있으나, 여전히 사회 환경과 공무원 인사제도 변화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실제 1990년대부터 공무원연금으로 인한 재정 불안이 가시화되자 정부는 1995년, 2000년, 2009년 세 차례에 걸쳐 비용 부담은 높이고 급여 수혜는 줄이는 공무원연금 개선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현 공무원의 기여금과 정부 부담금만으로는 공무원연금을 충당할 수 없고, 이로 인한 정부 보전금은 늘어만 가는 실정이다. 이 추세로 간다면 2014년 정부 보전금 규모는 2조5000억 원, 2015년 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곧 공무원연금으로 인한 국민의 세 부담이 내년에는 하루 100억 원, 5년 후에는 하루 200억 원, 10년 후에는 하루 300억 원에 이르게 된다. 이외에도 민간과의 연금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것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주요 과제라는 것도 개혁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저부담·고급여’ 병폐, 근본원인 지목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12일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공개혁의 하나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언급하며 “공무원연금도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올해 3조 원, 10년 후에는 10조 원으로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대로 방치하면 484조 원, 국민 1인당 945만 원이나 되는 엄청난 빚을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어 3월 17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가재정의 부실을 막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당초 여야가 약속한 시간 내에 (공무원연금) 개혁 방안을 마련해서 입법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주문하였다.
앞서 새누리당 지도부인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또한 국회 특위의 활동 시한인 4월 7일, 늦어도 5월 2일까지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타결을 못 박은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공세적으로 밀어붙이는 데에는 당면한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공무원연금의 재정악화가 더는 간과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근본에는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저부담·고급여’의 잘못된 수지(收支)구조가 있다.
1960년 1월 1일 공포·시행된 공무원연금 제도는 공무원의 퇴직 또는 사망, 공무로 인한 부상, 질병, 폐질에 대하여 적절한 급여를 줌으로써 공무원과 그 유족의 생활안정과 복리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비용부담은 기여제 방식을 채택하여 수혜자인 공무원과 사용자인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공무원은 매달 8.5%를 기여금으로 납부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보수예산액의 8.5%를 부담금으로 납부한다. 그런데 문제는 제도 도입이 성숙단계에 접어들면서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고령화와 저금리로 인한 수급자 증가도 급격한 재정악화의 원인이다. 공무원연금이 처음 도입된 1960년 한국인 평균 수명은 52세였으나 2012년에는 82세로 크게 늘었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로 일시금으로 받는 대신 연금을 선택하는 비율이 1982년 3만7000명에서 2013년 36만3000명으로 30년간 무려 98배나 증가했다. 이로 인한 부양률, 즉 재직 공무원당 부양해야할 퇴직 공무원 비율은 이 기간 동안 56배(0.6%→33.8%)나 증가하였다. 그런데 2001년부터 이런 급여부족분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보전하는 형태로 전환되어 이런 재정악화의 짐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넘어오고 있다.
구조개혁 vs 모수개혁, 충격 완화 관건
공적연금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체적으로는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영국, 프랑스 등은 이미 18세기 중엽 시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국민연금보다 많게는 1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이 시대부터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 또는 국가 운영을 위한 엘리트집단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많은 선진국들이 공무원을 위한 별도의 연금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적용방법에 따라 독립형, 다층형, 통합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시행되고 있다.
먼저 독립형은 직업공무원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제를 함께 운영한다. 한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다층형은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1차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한 후 직업별로 각각의 직역연금(근로자연금, 공무원연금 등)에 2차로 가입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3차 개인연금까지 가입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이나 보조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로써 퇴직 이후에는 각각의 연금을 모두 수령하게 된다. 미국, 일본, 영국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외 남미나 동유럽 다수 국가들은 주로 통합형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별도의 공무원연금 없이 모든 국민이 하나의 공적연금에 가입토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형은 사회통합에는 일조하는 면이 있으나 직업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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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제1차회의가 열린 1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245호실에서 공동위원장인 새누리당 조원진,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과 국민대타협기구 위원들이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송인보 공무원연금연구소 위원은 “구조개혁이란 기존의 틀을 바꾸어 새로운 제도로 설계하는 방식으로, 흔히 ‘계란을 한 광주리에 담지 않는 식’이다”며 “공무원에게 공무원연금제도 하나만 적용하던 방식을 바꾸어 국민연금을 포함하여 여러 개의 연금제도 적용을 받게 하는 다층형 제도가 대표적인 예로, 미국, 일본, 영국 등 다수의 OECD 국가가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모수개혁은 주로 비용부담률 인상, 연금지급률 인하 또는 연금수령연령 연장 등으로 진행된다. 이중 연금지급 연령을 60세에서 65세, 67세로 연장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라고 덧붙이는 송 연구원은 “구조개혁이든 모수개혁이든 개혁 전후에 급여나 비용부담의 급격한 변경보다는 다양한 경과조치를 마련하여 장기간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해 개혁의 피로도를 최대한 줄여나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계속해서 해외 공무원연금 사례에 대한 소개가 늘어나면서 잘못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는 송 연구원은 그중 대표적인 오류가 ‘공적연금제도의 통합이 세계적 추세’라는 내용이라고 한다.
“이와는 달리 대부분 국가(OECD 34개국 중 25개국)에서 공무원연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타 공적연금과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는 송 연구원은 “가까운 예로 일본이 최근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을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일본은 이미 30년 전에 다층형 체제로 전환해 전 국민이 1차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했고, 근로자들은 이에 추가하여 4개의 다른 직역연금에 가입토록 했다. 따라서 이번 개혁은 국민연금은 그대로 두고 4개의 근로자연금을 하나로 일원화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며 “해외 사례에 대한 소개에 있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처럼 특정한 사실을 들추어 우리도 이러한 개혁을 하자는 주장은 옳지 않다. 그보다는 왜 이런 개혁을 추진했는지 배경을 살펴보고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고 부연한다.
때문에 우리의 공무원연금 개혁이 구조개혁으로 갈 것인지 모수개혁으로 갈 것인지는 순전히 우리의 사정에 맞는 적확한 선택이어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