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서약서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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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서약서 파문
  • 글/엄은영 기자
  • 승인 2006.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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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인권침해 현장, 간호사 상대 서약서 파문
병원 내 폭언 등 스트레스 심해… 의료서비스 질 저하 불러

전남 순천 성가롤로병원이 신입 간호사들로부터 입사 이후 2년간 결혼과 임신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3년째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성가롤로병원 노조에 따르면 병원측은 2004년 9월부터 최근까지 간호사를 채용할 경우 ‘성가롤로병원 간호부 신규 채용에 대한 내규’를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토록 했다. 이 병원은 55병상 규모로 전남 지역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이자 3차 진료기관이다.

이 병원 내규에 근거한 서약서는 1개월의 오리엔테이션과 3개월의 트레이닝 기간·정규직 채용 이후 급여, 휴무일 등 근로조건 외에 ‘입사 2년이 지나야 결혼이 가능하다’ ‘혼전 임신 시 사직함을 원칙으로 한다’ ‘임신 중 산전 출혈 등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의사 소견에 따라 무급휴직 및 분만휴가를 적용한다’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작성된 서약서는 서명 날짜와 함께 해당 신입 직원 및 간호부장이 각각 연서명하도록 했다.
노조측은 “서약서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에도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라며 지난달 19일 광주지방노동청 여수지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김정수 노조 지부장은 “전체 650여명의 직원 중 2년여 동안 새로 채용된 100여명의 간호사들이 서약서에 마지못해 동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진정서를 접수한 여수지청 근로감독관은 “10월 30일 1차 현지조사를 통해 서약서 제출 여부를 확인한데 이어 2차 정밀조사를 실시한 뒤 문서를 통해 부당한 취업규칙을 폐기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릴 것”이라며 “20일 안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병원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2004년 초 근무하던 한 간호사의 혼전 임신이 문제가 되자 간호부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내규를 정하자고 건의해와 서약서를 만들게 됐다”며 “실제 결혼이나 임신을 이유로 퇴사 등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내린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병원측 "원활한 운영 위한 것"
이 병원 인사행정팀 관계자는 “간호부에 여성 직원들이 많다 보니 원활한 운영을 위해 자체 규정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한 사실은 없으며 지난 8월쯤 서약서가 문제가 돼 이미 폐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의 설명은 좀 다르다. 김정수 지부장은 “직제상으로 병원장 바로 아래 직급인 간호부장이 서명까지 하는 서약서 내용을 병원에서 몰랐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서약서가 병원의 공식 문서는 아니더라도 사실상 병원측의 묵인 아래 공식 효력을 발휘해 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성가롤로병원은 매년 50~60명 정도의 간호사를 신규 임용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대략 100~120명 정도의 1~2년차 간호사들이 서약서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던 셈이다.
‘간호사 서약서’ 사건이 알려지자 의료계 안팎에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서울 S병원에 근무하는 한 고참급 간호사는 “특정 병동의 간호사들이 한꺼번에 몇 명씩 임신하게 되면 인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결혼과 임신을 강제로 못하게 하는 서약서를 받는다는 건 요즘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찼다.

서약서에 이어 X파일 논란도
결혼과 혼전 임신 금지 서약서로 물의를 빚은 순천 성가롤로 병원에서 이번에는 노조간부들의 성향을 분석한 이른바 ‘X-파일’이 발견돼 파문이 일고 있다.
“K OO는 악질 중의 악질. 수술실 간호사입니다” “성질도 나쁘고.. ‘너무 악질이에요.’” 문제의 문건에서 발견된 말이다. 성가롤로 병원 노조가 제시한 이 문건은 ‘노조 임원 소개’라는 제목으로, 그림 바탕의 노트에 자필로 작성됐으며 A4 용지 3장 분량이다.
작성자는 전현직 노조 간부 7명의 성향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나열하고 있다.
“김정수 노조 위원장은 이 병원의 재단인 까리타스 수녀회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독립하는 이른바 ‘자치권 반대’에 개입하고 있다.”
“L 모 수녀는 M 모 수녀의 오른팔로.. 자치권을 원하는 수도자와 B 모 수녀를 병원에서 내쫓기 위해 별의 별 감언이설로 유혹해 다른 직원들에게 서명을 받아냈다.”
“K 모 수녀는 악질 중의 악질. 수술실 수간호사다. 성질도 나쁘고 자치권을 원하는 사람은 병원에서 쫓아내겠다고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과거 노조의 핵심 간부들로, 김정수 노조 위원장은 이 내용들이 모두 악의적으로 작성된 거짓 내용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조와 대립 각을 세우는 전직 노조 간부 2명은 ‘성실하고 성격이 원만하며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등 호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이 문건이 지난 2004년 12월 노조 창립 시절 작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문건은 이 병원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수녀 의사 인 박 모 수녀가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수녀는 “당시 병원 재단 이사장인 관구장 수녀와 주고받았던 서신”이라며, “일부 허위 사실이 있을 수도 있다”며 작성 사실을 인정했다. 노조는 박 수녀가 병원을 떠날 것과 문건을 보고 받은 병원간부의 문책을 요구했다.
김정수 위원장은 "직원의 성향을 허위로 작성해 비밀문서를 만든 것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수녀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한편, 순천 성가롤로병원의 결혼금지 서약서 파문과 관련해 보건의료노동조합이 현장 조사에 나선다. 보건의료노조 이숙희 여성국장 일행은 성가롤로병원을 방문해 이 병원 간호사들의 인권유린 실태에 대해 점검할 예정이다. 이 국장은 이번 실태 점검 등을 토대로 법적조치나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순서 정해서 임신하라 요구도"
이번 사건을 전해들은 대학병원의 한 관계자는 "이는 상식 밖에 일이 일이며, 아직도 그런 병원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여성국장은 "병원 측이 임신에 대한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기존에 관행에서도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었지만 이번 경우처럼 문건으로 처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편, 노동부는 매년 지방청이 주관해 여성다수고용업체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성보호지도점검차원에서 심도 있게 다룰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간호사들의 결혼과 임신 등을 억제하는 일이 의료계에 만연된 관행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임신한 간호사들은 병원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며 “과거보다는 좀 나아졌다지만 요즘도 임신 순서를 정해주는 등 암암리에 규제를 가하는 병원이 적지 않은 실정”이라고 밝혔다.
간호사 경력 4년째인 한 네티즌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입사 후 1년쯤 됐을 때 결혼을 한다고 알리니까 병원에서 난리를 치더라. 하지만 결혼 휴가 대신 휴일을 당겨 쓰고 결혼한 뒤에도 당분간 임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결혼을 할 수 있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 결혼과 임신이라는 개인의 기본권마저 제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부분 병원이 전체 인력 가운데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인 데다 경영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적정한 인력을 확보하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성가롤로병원 지부장은 “임신이나 육아 문제로 결원이 발생하면 대체인력을 채용해 투입하면 되지만 병원에서는 단지 비용 절감이라는 논리로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도 성명서에서 “(이번 서약서 파문은) 병원들의 규모는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여전한 전근대적 인사노무 관리시스템과 잘못된 관행, 간호사 인력 부족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발생한 필연적 귀결”이라고 비판했다.
간호사들이 기본권을 침해받는 것은 비단 결혼과 임신 문제만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 선배 간호사와 후배 간호사 간에 수직관계로 구축된 병원의 비민주적 조직문화에 따른 인권침해도 적지 않다고 한다.
J국립대병원에서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 2명의 수술실 간호사가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지난 9월에는 대구의 중소병원 간호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해 유족과 노조 등은 고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병원 내에서 일부 의사나 상사들로부터 받은 일상적 폭언과 인격 모독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비인격적 대우로 스트레스
실제 지난해 11월 세상을 등진 A간호사(당시 26세)는 자신의 일기장에 ‘힘들어서 못 살겠다. 직원들의 비인격적인 대우가 너무 심해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글을 남겼다. 그 전에는 병원에서 받은 비인격적 대우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 입원 치료까지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복지공단은 A간호사 자살 사건에 대해 지난 7월 업무상 스트레스를 인정하고 산업재해를 승인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명의 J국립대병원 간호사가 공교롭게도 같은 수술실에서 근무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사실 병원 내에서 가장 폐쇄적인 수술실에서는 인격 모독적인 언행이 심심찮게 벌어진다고 한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수술실은 외부와 차단된 공간적 특수성 때문에 일부 의사들이 실수를 빌미로 간호사에게 심한 폭언이나 폭행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2004년 수술간호사회가 전국 대형병원의 수술간호사 7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사들의 언어폭력으로 인한 간호사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난 적도 있다. 당시 조사에선 부분 마취로 의식이 남아 있던 환자가 원색적인 표현으로 간호사를 모욕하는 의사를 나무란 사례도 적혀 있다.
간호사들이 근무 현장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는 보건의료노조와 원진재단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지난 10월 J국립대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직무 스트레스’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설문조사 결과 간호직 여성의 총 스트레스 수치는 61.3을 기록해 보건직(57.3)과 행정직(38.0) 여성을 크게 웃돌았다.
뿐만 아니라 폭언, 폭행, 성희롱 등 폭력 경험을 조사한 결과도 심각한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체적인 폭행(또는 맞을 뻔했던 경험)은 조사 대상자의 23.3%가 겪었다고 응답했으며, 욕설을 포함한 폭언 경험은 50.9%, 성희롱 발언 및 신체적 접촉은 15.5%, ‘야!, 너!’ 등의 반말을 들은 경험은 53.6%에 달했다.

간호사 81% "인권침해 경험"
이 같은 결과를 종합하면 조사 대상자의 68.9%가 언어적, 신체적, 성적 폭력 등을 경험했으며, 특히 직종별로는 간호직이 무려 81.2%나 인권침해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것은 의사, 수간호사, 관리자 등 직장 내 동료 못지않게 환자 및 보호자로부터 받는 수모가 크다는 점이다. 가령 폭언의 경우 환자 및 보호자(197명), 의사(66명), 수간호사 등 관리자(19명) 등의 순으로, 폭행의 경우 환자 및 보호자(109명), 의사(18명), 동료(9명) 등의 순으로 경험 빈도가 나타났다.
한 대형병원 간호사는 “환자들 중에는 술을 마시고 껴안는다든지 혈압을 재는데 신체접촉을 한다든지 등의 성희롱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하지만 병원측에 이런 사실을 호소해도 ‘환자가 그런 걸 어떡하냐’는 식으로 팔짱만 끼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간호사들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고 업무 스트레스가 과도한 상태로 방치된다면 의료 서비스의 질적 저하는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한다. 병원 인력의 70% 가량을 구성하는 간호사들의 사기 저하와 비인격적 대우는 결국 환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정부 당국과 병원들은 간호사 인력 충원, 모성 보호, 병원 인사노무 관리시스템 점검 등 병원 내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근본 대책을 하루빨리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접흡연, 호흡기 질환 진전과 연관”
스위스 제네바대학 병원 연구팀이 건강한 비흡연 성인들을 장기간 추적한 결과, 그 가운데 호흡기 질환에 유전적 경향을 지닌 사람들이 간접흡연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오염 및 폐질환에 관한 연구를 1991년 개시한 연구팀은 11년이 지난 2002년에 두 번째 조사를 했으며, 이 과정에서 호흡기 질환을 앓은 적이 없는 성인 1천661명의 건강 상태를 간접흡연과 연관시켜 세밀하게 추적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4분의 3은 전혀 간접흡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 반면, 약 5분의 1은 초반에는 간접흡연에 노출됐으나 후반에는 그렇지 않았고, 10% 미만은 이 기간에 지속적으로 간접흡연에 노출됐다.
제네바대학 병원 폐질환 전문가인 마가레트 게르바제 박사는 "간접흡연이 비흡연자에게 영향 평가에 따르면, 간접흡연에 노출된 정도가 호흡기 질환의 진전과 연관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고 말했다고 스위스 언론이 전했다.
이 연구에서는 그전부터 간접흡연에 노출됐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침, 호흡곤란, 천식, 만성 기관지염 등의 호흡기 질환을 지닌 사람들은 처음부터 조사대상에서 배제됐다.
연구팀은 또 이들을 상대로 '기관지 과민성'(BHR) 테스트도 했다. 강한 유전적 요소를 지닌 BHR은 천식 및 다른 호흡기 질환들과 관련되어 있다.
흡연자를 대상으로 했던 기존의 연구는 BHR이 흡연자의 호흡기 질환 리스크를 높여준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나, 이번 연구는 또한 BHR은 간접흡연자에게도 마찬가지의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게르바제 박사는 "간접흡연에 지속적 노출이 미치는 특히 강력한 효과는 과거에 자각 증상이 없었던 BHR을 지닌 개인들에게서 관찰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간접흡연은 기침의 진전과 강하게 연관돼 있으며, BHR을 지닌 환자들의 경우 간접흡연은 호흡을 단축시키고 숨을 헐떡이게 하며, 만성 기관지염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게르바제 박사는 "우리는 누가 기관지 과민성에 영향을 받는지는 모른다"면서 "따라서 간접흡연의 영향을 줄이려는 조치들은 비흡연자 전체를 겨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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