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수원릿지산악회’라는 명패를 붙이고 다가오는 버스를 잡아 얼른 올라탔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반갑게 인사해준다. 맨 앞자리에서 취재진을 반기는 김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좌석에 배낭을 내렸다. 관광버스 두 대로 움직이는 규모에 내심 놀라 회원 숫자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김 회장은 멋쩍게 웃으며 대략 120여 명 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랑할 만한 것은 우리 산악회는 음주가무가 없다는 거야”라는 김 회장은 “통상 친목도모를 위한 산악회와는 달리 산행 그 자체를 즐기는 회원이 많아 오늘 같은 특별한 경우를 빼면 일체의 음주가무는 허락되지 않아”라고 강조한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어서 산행 내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거나 차분히 음악을 듣거나 상대의 안부를 물으며 산행 그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가 편안해 보였다.
“산은 우뚝 높이 솟아 있다. 높이 솟아 있다고 좋아하는가. 산은 초목이 그곳에서 자라고, 새와 짐승들이 그곳에 모여들고 그곳에서 번식하고 온갖 재물이 그곳에서 번식하는데, 산은 그것들을 낳아 자라게 하면서도 그것들을 자기 소유로 여기지 않는다. 사방에서 산에 있는 것들을 베어 가는데도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고 기꺼이 내어 준다. 산은 구름과 바람을 만들어 내어 하늘과 땅 사이를 소통시켜 양(陽)과 음(陰)의 기운이 화합하게 하고 비와 이슬을 내려 만물이 살아가게 하는데, 백성들은 그것을 먹고 살아간다. 이러한 이유로 인자는 산을 좋아하는 것이다.”
공자의 일화를 기록한 고서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구절이다. 처음 만나는 산행 초보를 위해 내 것을 선뜻 내어주는 손길들이, 또한 가파른 산길을 묵묵히 동행해주는 그 발길들이 참으로 산을 닮아있는 수원릿지산악회 회원들이다.
깊은 계곡과 절경이 어우러진 숨겨진 ‘진산(眞山)’
“정상 북동쪽에 위치한 앙성면 소재지 용포리에서 남쪽 노은을 잇는 59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하남고개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고 거기서부터 오늘 산행을 시작할 것이다. 코스는 정상의 북서릉인 681m봉과 석굴, 스핑크스바위를 경유해 정상까지 가는 코스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코스”라고 설명한 오 대장은 산행이 어려운 회원들을 위해 기가 막히는 온천 하나를 예약해 놨으니 그곳에서 온천욕을 즐기라며 농을 건넨다. 실제 충주에 위치한 보련산 근처에는 국내에서 최고로 질 좋은 탄산수가 솟아나는 탄산온천이 유명하다. 때문에 겨울철 산행을 즐기는 산악인들이 산행 후 뜨듯한 온천에서 피로를 풀 수 있는 인근 산행을 즐긴다고 오 대장은 귀띔한다. 참고로 보련산 산행은 어느 코스로 오르건 능암온천장으로 하산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뿐 아니라 곳곳에 숨겨져 있는 절경을 만나는 것도 보련산 산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보련산은 예로부터 ‘진산’으로 불리는 산으로, 산세와 기운이 좋아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찾는 이가 많았다”는 권석준 대장은 “계곡이 깊고 산이 높아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와볼만한 산이다”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저질체력(?)의 소유자인 기자는 정말이지 ‘노땡큐’를 외치고 싶다.
해발 340m 하남고개에서 시작된 이날 산행은 초반부터 가파른 급경사를 자랑했다. 주차장 한 켠에서 단체사진을 박은(?) 수원릿지산악회 회원들은 지체 없이 코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헉헉대는 숨소리와 땀방울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앉아 쉬는 회원들이 눈에 띄었다. 취재용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했던 기자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급기야 두툼하게 껴입었던 겉옷을 벗어야 했다. 하지만 눈 덮인 겨울산은 쉽사리 정상에 오르는 길을 내어놓지 않았다. 굽이굽이 가파른 능선을 기다시피 가거나 미끄러질 듯 아슬아슬한 눈 덮인 산길을 끊임없이 하염없이 걸었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병풍처럼 둘러싸는 산기슭은 없어지고 좁디좁은 빙판길 양옆으로 가파른 비탈만이 도열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굽이굽이 펼쳐지는 능선의 유려한 곡선들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중 문득 나타난 평지에서 만나는 절경은 탄성이 절로 나오게 했는데, 그곳이 전망바위란다. 맞은편 지척에서 자태를 뽐내는 보련산의 풍광이 절로 가슴이 시원해졌다. 이밖에도 바위가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낸 석굴이나 스핑크스바위도 볼거리 중 하나다.
“탄산온천수, 마시지 마세요. 몸에 양보하세요”
충청도에서 유명한 온천이름을 대라하면 대부분 ‘수안보온천’을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명 ‘왕의 온천’이라 불릴 만큼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태조부터 숙종, 양녕대군에 이르기까지 왕은 물론 내로라하는 세도가들도 수안보온천을 다녀갔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충주의 숨은 명소에는 현지 사람들만 안다는 온천이 있다. 바로 국내 최고 수질을 자랑하는 앙성탄산온천이다. 수안보온천의 아성에 가려 아직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하 수백 미터 아래 심도에서 매일 2천여 톤씩 용출하는 탄산수의 효능이 입소문을 타면서 국망산과 보련산을 거치는 겨울산행의 필수코스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보련산 아래로 남한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한 충주를 지나는 중부내륙고속국도가 지나고 있어 전국 어디서나 당일행 온천산행을 즐길 수 있어 더욱 호황을 누리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탄산수가 피부에 흡수되면 모세혈관을 확장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중풍,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질환 등 각종 혈관계 질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또한 신경통이나 류마티스, 관절염, 어린이태열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보련산을 비롯한 주변 봉우리들에는 저마다 숨은 전설이 전해오는데 하남고개를 사이에 두고 보련산을 마주보는 국망산(國望山)은 원래 이름이 금방산(金傍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종 19년(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할 당시, 금방산 산기슭에 있는 가신리에 몸을 피한 명성왕후가 매일같이 산에 올라 한양 쪽을 바라보며 조정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해서 국망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국망산과 보련산의 남쪽에 위치한 노은면은 제1회 만해문학상(1973)을 비롯해 한국문학작가상(1981), 이산문학상(1991), 단재문학상(1993), 제4회 스웨덴 시카다상(2007), 호암상 예술상(2009)에 빛나는 신경림 시인이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1955년 문화예술에 ‘낮달’이라는 시로 등단한 신경림 시인은 고향인 노은면을 배경으로 하는 시를 다수 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