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들어서며 분단 70년을 맞이한다. 하지만 아직도 통일의 길은 요원하다.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남북의 대립갈등, 북한의 수령 중심의 유일체제 구축과 3대 세습,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한 내부의 남남갈등, 그리고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 주변 국가들의 2개의 한국(The Two Koreas)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동안 잠시나마 남북 화해협력이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MB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국면으로 접어들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이행의지를 밝히지 않았고, 남북관계 재설정의 첫 단추를 꿰지 못했다. 북한은 상대를 부정하는 남측 정부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MB정부는 ‘기다리는 전략’으로 위기를 무마했다. 그리고 북한이 식량과 비료지원을 중단하고 압박하면 굴복하고 나오리란 낙관적 기대와는 달리 북한은 북·중 경협을 확대하면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 천안함-연평도 도발로 맞서며 대남 강경 수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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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시대에 한국에서 예외적으로 대북포용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표면적으로나 내부적으로 결코 단순하지 않다. 김대중 정부가 대북포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노무현 정부가 평화와 번영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한 이래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아직도 남한 내에 6.25동란을 겪은 실향민과 전후 세대가 상당수 생존하고 있고, 냉전체제의 해체가 세계사적 조류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생존의 기로에 선 ‘잔존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을 포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데 있다. 전쟁의 패전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제적 강요에 의해 분단된 독일과 달리, 한반도는 수백만의 인명살상을 초래한 유혈적 내전을 통해 형성되었다. 따라서 분단을 강요했던 국제적 제약이 사라졌을 때 쉽게 다시 재결합할 수 있었던 독일과 달리, 한반도의 분단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많은 민족 내부의 상처를 치유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 대대로 이어온 남북 양측의 분단 정권은 전쟁으로 부모와 자식을 잃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분단 희생자들의 ‘분노의 기억’을 치유하기보다는 그들의 아픈 기억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해왔다. 자연히 분단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고, 대북 불신과 증오만이 고착되었다. 더 나아가 분단을 해소하고 화해와 평화를 거론하는 사람들까지 증오의 대상으로 몰아 세웠다. 그럼으로 정치적 이념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사회주의 성향의 공산국가 북한과 화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둘째, 냉전에 의해 고착화된 남북분단의 장기화에 있다. 남한에 거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손쉽게 통일이 되지 않으리란 부정적 견해가 팽배하다. 오랫동안 사상적, 이념적, 정치적 영향을 받으며 학습된 데 기인한다. 분단국가 건설은 남북 간 분열과 대치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 내부에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 분열과 불신 그리고 대결의 구조를 조장했다. 남북 간 분단구조가 국내정치에 투영되어 ‘상생의 정치’보다는 ‘상극의 정치’, ‘타협과 협상의 정치’보다는 ‘배제·반복·대결의 정치’로 전락해 남한 정치세계를 지배해 왔다. 그 결과 한국의 정치인들만 둘로 양분된 것이 아니라 국민까지 좌파와 우파로 나뉠 정도다.
셋째, 남남갈등이 가장 심화된 요인은 김대중 정부의 몫도 있다. 역대 정권에서 말의 성찬으로 끝났던 남북화해와 협력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최대 업적이다. 이로 말미암아 노벨평화상도 수상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영광의 공유(glory sharing)’에 소홀했다. 남북화해와 평화 달성은 한민족이 함께 공유해야 할 공공재였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화해와 협력을 연 업적을 국민뿐만 아니라 반대 세력과도 공유해야 했다. 그럴 경우 야당과 그를 반대해 온 보수 성향의 국민 지지를 함께 얻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정현백 시민평화포럼 대표는 “대북포용정책을 김대중 정부만의 독특한 정책이라고 강조하기보다는,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1991-1992)와 김영삼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론에 바탕을 둔 평화통일정책을 계승했다고 언급하였다면 보다 좋은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대북포용정책이 사실 이전 보수정부의 정책을 실천에 옮긴 것에 불과하다면서 공을 이전 보수정권에 돌리고, 보수정권이 마련해 놓았던 정책을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면,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냉전보수 세력들의 비판은 누그러졌을 것이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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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북포용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남북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을 어렵게 한다. 남북화해와 협력을 둘러싼 갈등이 이성적 토론의 수준을 넘어서 감정적 대립의 양상으로 발전할 경우 남북 간 분단을 해소하고 공존과 공영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21세기 한민족의 냉전해체 작업이 다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남북화해와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 남남갈등 해소는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한반도 통일 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초당적 협력을 위한 북방정책 콘도미니오’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을 해결하려면 보수적 유권자와 진보적 유권자를 대표하고 있는 여야 정당들 간에 초당적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에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남북화해와 협력이라는 과제가 어떤 특정 정파가 독점할 수 있는 의제가 아니며, 초당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과제임을 인식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남북 간 냉전을 해체하기 이전에 우리 내부의 냉전을 해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의 지지 없이 남북대화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남북문제에 관해 야당과 대화합의 정치를 펼쳐나가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대북정책의 성과를 독식하려 하지 말고,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정치인을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지 말고, 대화와 설득으로 포용해야 하며, 야당은 이러한 정부와 여당의 화해와 화합의 손짓에 화답해야 한다.
정치권은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체가 21세기 한민족의 생존과 번영이 걸린 절대 절명의 과제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당파적 손익계산을 넘어서 탈냉전적인 사고와 비전을 갖고 남북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남북문제는 당파적 이익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민족문제기에 남북문제를 당파적 이해가 걸린 일반정치로부터 따로 떼어내어 초당적 협의와 결정이 이뤄지는 영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반 정치에서 분리된 특수한 ‘부분 체제(partial regime)’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남북문제에 관한 한 정부와 여당이 정책결정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여당과 야당이 공동으로 결정하는 ‘공동 지배영역(condominio)’을 만드는 것은 여야 간 화해와 협력을 이루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국회 내 가칭 ‘북방정책에 관한 여야 공동협의회’ 같은 남북문제에 관한 정책공조기구를 만들어 대북정책을 포함한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와 남북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책을 협의하고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내는 ‘북방정책 콘도미니오’를 구성해야한다”고 제시한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탈 이데올로기적 남남대화의 광장’도 마련돼야 한다. 국회는 여야 간 초당적 대북정책 콘도미니오 구성과 더불어 대북정책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진영 간의 소모적 이념논쟁을 종식하는 대화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 국제적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 수면 아래로 잠수했던 진보와 보수 간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한국사회를 갈라놓고 탈냉전시대의 개막을 막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갈등해소는 민족을 매개로 한 탈 이데올로기적 화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냉전시대의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는 우리 한민족과는 상관없는 수입된 외래 이데올로기다. 냉전시대에 이러한 외래 이데올로기가 민족에 우선함으로써 민족을 매개로 한 남북 간 통합공간이 존재하지 않았고, 체제 간 배타적 경쟁과 대결이 지속되었다. 남북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민족을 이데올로기에 우선시하는 탈 이데올로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양극화된 이데올로기 간의 대결은 냉전시대의 특징적 양상이었다.
정현백 대표는 “탈 냉전시대에는 이데올로기적 정체성(identity)은 약화되거나 소멸되고, 민족과 종족이 다시금 정체성을 확인하는 원천으로 부상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과 문화를 공유했던 민족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남북이 이념에 근거하여 상대방의 체제를 배제하고 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남과 북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체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상호공존을 모색해야 하고, 이러한 상호공존의 필요성을 국회와 정당이 앞장서서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남한 내에 한반도 통일 준비를 위해서는 ‘분단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적으로 대북정책 신뢰 프로세스의 핵심은 분단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는 것이다. 정당은 정파적 이익을 위해 정치인들은 분단 희생자들이 갖고 있는 분노의 기억을 되살려서는 안 된다. 그들의 분노를 치유해 주지 않고서는 화해와 협력의 대북정책에 대한 신뢰가 살아날 수 없다.
정당들은 초정파적으로 분단 희생자들의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는 정책을 강구하고 국회에서 입법과 예산으로 이를 뒷받침 해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그들 내부에 남아있는 냉전적 대북 적대의식을 탈냉전적 민족 동류의식으로 돌려놓는 데 정당이 앞장서야 한다.
가장 냉전적인 대북포용정책 반대세력은 이북5도민, 이산가족상이군경회, 전몰자미망인회, 재향군인회 등과 같은 분단과 전쟁의 희생자 집단이다. 이들은 대대로 살아왔던 고향을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등져야 했고 부모, 형제, 자식을 잃거나 이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이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분노와 분단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주지 않고서는 이들을 남북화해와 협력의 물결에 동참하도록 하기는 어렵다.
남북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단 희생자 집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평화통일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남북화해와 협력만이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위한 구체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분단 희생자 집단이 대북포용정책의 수혜자 집단이 되었을 때, 이들은 가장 보수적인 대북 불신집단에서 가장 적극적인 대북포용정책 지지집단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지지로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기반이 확대되고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정 대표는 “합의주의적 정치제도 개혁을 통한 대북정책의 신뢰도와 지속 가능성을 극대화 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함을 강조한다. 대북정책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도 개혁이다. 1948년 건국 이래 제2공화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국식 대통령제를 실시해 왔다. 미국식 대통령제의 기본 지배원칙은 ‘승자독식(winner-take-all)의 다수 지배’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연방제적 요소를 도입하여 ‘승자독식의 다수독재(tyranny of majority)’의 폐해를 완화하였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를 도입하여 제왕적 대통령을 낳았다. 이러한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정당정치는 발달하지 못하고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제도주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북정책의 연속성,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데 최악의 제도이다.
단임 제왕적 대통령은 전임자가 북한에게 약속한 정책을 백지화시키고, 자기 상표의 대북정책을 세운다. 이러한 대북정책의 단절은 정권이 교체되었을 때 극심하게 나타난다. 자연히 북한의 독재자는 한국 대통령이 약속한 대북협력정책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평화적인 대화와 협상이 아니라 군사적 압박과 위협으로 대응한다. 그 결과 남북 간의 신뢰는 붕괴되고 후임 단임 대통령은 남북 간 신뢰 제로 상태에서 새로운 대북정책을 구상해야 했다.
따라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진행시키면서 남북 간 신뢰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보듯이 남북 간 신뢰의 지속 가능성을 가장 잘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는 ‘공동 다수(concurrent majority)’를 보장해주는 합의주의 정치제도이다. 합의주의 제도개혁의 근간은 비례대표제와 정당정치의 강화이다. 비례대표제는 정당투표로 의석을 나눔으로써 ‘다수 지배주의 제도(majoritarian system)’의 소선거구제에서 발견된 다수정당의 과잉대표와 ‘다수 독재(tyranny of majority)’를 방지하여 합의주의 정치를 촉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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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례대표제를 강화할 경우 어느 당도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온건다당제를 유도하여 진보와 보수 양당이 권력을 양분하여 이념적 대결정치를 초래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주요 정당들이 연정을 구성하여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책결정에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대북정책을 초당적으로 마련하게 하게 하여 정책의 연속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여준다. 합의주의 제도는 모든 정당을 공동다수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민족전체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 대해 초당적으로 정책을 마련하고 공동다수의 상황에서 그 정책이 지속되게 하는데 연정에 참가한 모든 정당이 책임을 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평화통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지도자의 비전과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정치세력들이 평화통일을 향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게끔 유도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평화통일에의 열망도 중요하지만, 그 열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게 해주는 틀인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자료 : 국회예산정책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