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는 연극배우 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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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는 연극배우 박정자
  • 안수지 기자
  • 승인 2015.02.2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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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연기인생의 새로운 에너지다

“나는 소극장 공연을 좋아한다.대극장은 섬세한 연기보다는 큰 동작을 요구해 다소 과장되기도 해서 실제 관객과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소극장은 일거수일투족 자세하게 보여주고 배우의 심적 풍경도 여실히 전달한다. 마음과 혼신을 다하는 열정이 그대로 포착된다. 작품에 대해 감사하고 고마운 것은 연극무대에서 내가 올라야 할 산, 건너야 할 강이라는 목표를 주기에 늘 긴장하게 만든다.”

 
지난 2007년 보관문화훈장을 수상 후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연극배우로 등극한 박정자(73). 그는 이미 <피의 결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신의 아그네스> <햄릿> <넌센스> <패드라> <에쿠우스> <19 그리고 80> <헤롤드 & 모드>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의 연극적 자질을 끊임없이 증명해 왔다. 이미 중견배우로 54년째 연극인생을 기록하고 있는 그를 만나 연극에 얽힌 인생담을 들어보았다.     
 
연극배우 박정자는 5남매 중 막내다. 집안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성장한 그녀는 손위 오빠의 연극무대를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배우로서의 꿈을 키웠다. 어린 시절 우연찮게 동양극장을 출입하며 보게 된 연극 <원술랑>은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유년의 많은 감흥과 영감을 준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후 이화여대 신문학과에 진학한 그는 ‘문리대 연극부’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연극인의 길에 들어선다. 대학 2학년 때, 라신느의 희곡 <페드로>의 오디션을 통해 정식 데뷔하게 된 그녀는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며 무대를 익히게 된다. 이어 가르시아 로드카의 작품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 참여해 호평을 받는다.

그리고 1963년 재학 중이던 그녀는 동아방송 성우 모집에 응모해 50:1의 경쟁을 치르고 당당히 합격한다. 하지만 학업과 직업을 함께 병행할 수 없었던 당시 대학 측의 관행으로 그녀는 학업을 포기하고 방송국을 선택한다.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배우의 자세를 익히며 현재까지 올곧게 연극인의 길을 걸어온 그녀는 방송 측에서 ‘자랑스러운 언론인’과 ‘자랑스러운 영상인’으로 선정된다. 그리고 이화여대에서도 개국 이래 처음으로 ‘명예졸업장’을 수여해 연극인생을 독려한다.

1980년 초 TV 방송 CF에 도전해 화장품 ‘헤레나 루빈스타인’의 목소리를 더빙했다. 당시만 해도 화장품 광고는 예쁜 목소리 성우만 섭외 대상 1순위였다. 하지만 개성이 인정되는 시대를 맞아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는 경쟁력과 차별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 여세를 몰아 TV 방송물과 미스터리 제작에도 목소리 더빙이 시도되었다.  

“연극배우로서 큰 무기는 내 목소리다. 자신의 감정과 힘을 나타낼 수 있다. 마이크를 통한 목소리가 아니라 육성으로 나가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이 목소리는 어머니가 주신 유산이며 나만의 독특한 재산이다. 이름 석 자와 얼굴을 기억하는 것보다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더 빠르게 타인에게 각인된다. 음성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인생에 일대 큰 획을 그은 목소리 연기는 역시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대표적 악당(?) 바다마녀 ‘우슬라’다. 가수 윤형주이 소개로 오디션에 참여한 후 합격 연락을 받고 더빙에 들어갔다. 실제 더빙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 바다마녀 우슬라가 미친 듯 웃어대는 장면은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호탕하면서도 음험하게 웃어야 하는 목소리 연기는 국내 처음이었다. 그 시절까지 우는 연기는 있었으나 음험한 웃음은 처음이었다. 미국 월트디즈니사도 극찬했다. 이를 계기로 2000년대 들어 연극 <우당탕탕 할머니> 등의 연극 장르를 새롭게 열 수 있었다. 

연극무대에서 배우로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자신이 맡은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유쾌한 할머니, 어머니, 광대, 무당, 하녀, 왕비, 위기의 여자 등 수많은 역할은 배우의 몫이다. 그러한 연기생활에는 가족의 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배우의 다양한 시도가 뒤따라야 한다. 배우 박정자는 한때 일본 무대에서 <그 여자, 억척어멈>을 공연한 적이 있다. 당시 여러 명의 연극평론가가 그녀에 대해 ‘서랍이 많은 배우’라고 호평해 주었다. 최고의 극찬이었다. 무대에 서는 배우라면 누구든 많은 서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재능만으로 충분한 연극을 보여줄 수 없다.

 
이후 그녀는 35년 기념공연인 <따라지의 향연>에서 단역을 맡아 카메오 출연을 했다. 커다란 고무신발과 특별한 장비를 구입하고 치과에서 뻐드렁니를 맞춰서 꼈다. 누구한테 알리지 않고, 그 역할을 감쪽같이 소화해냈다. 당시 관객은 아무도 그녀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매우 기억에 남는다. 그러한 작은 변화도 마다하지 않고 프로 근성을 가지고 임하는 연극배우 박정자는 관객과 만나는 무대를 천직이라고 여긴다.      

“연극배우도 발전하고 변화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최면을 건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극배우다고 각인하는 것. 무대에서 주어지는 역할은 어느 배역이든 소화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이거, 박정자 아니면 아무도 못해’라는 평가를 끌어내야 한다. 카리스마와 열정을 스스로 뿜어내며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프로고, 최고 배우가 될 수 있다.”   

간혹 연극무대에서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과거 <신의 아그네스>를 처음 무대에 올릴 때 그녀는 심한 부상을 당했다. 응급실에 가서 꿰매고, 흙을 닦아내고, 치료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영화나 TV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무대에 다시 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관객과 약속한 것이기에 지켜야만 했다. 통증 때문에 대사를 모두 잊어버릴 지경이었지만 의지를 다지며 무대에 서서 대본을 들고 연기를 마쳤다. 솔직히 상황을 시인하고 전달하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본 관객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줬다. 관객과 배우가 마음으로 교감하는 순간이었다.

“연극은 내게 호흡하는 자체다. 잠잘 때, 꿈꿀 때 호흡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처럼 연극을 빼놓고 내 삶을 얘기할 수 없다. 내가 목숨 걸고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지금껏 충분한 작품을 연기했다. 하지만 나의 연극무대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관객에게 ‘여전히 좋은 배우구나’고 느끼게 하면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퇴직금 없는 직장이 연극무대지만, 늙어서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무대에 서고 싶다.”     

현재 그녀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연극 <헤롤드 & 모드>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오는 2월 28일까지 계속된다. ‘모드’라는 역할을 통해 밝고 자유분방하며 긍정적이고 사랑스런 80세 할머니를 열연한다. 그런 그녀만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깊이를 더하는 연극무대는 물론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통해 삶의 의미와 인생의 지표를 확인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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