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존재적 삶의 방향성 제시하고 싶다”
1996년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기록을 경신했던 <은행나무 침대>의 제작사인 ‘영화발전소’는 젊은 시절 강제규와 김희철 영화감독이 합심해 만든 기획집단이다.

1990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 연출부를 시작으로 3년 후 강제규 감독과 ‘영화발전소’를 설립한 김희철(金熙哲·53) 영화감독은, 옴니버스 스릴러 드라마를 제작해 삼성드림박스에 출시하면서 영화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 이후 <은행나무 침대>와 <지상만가>를 교차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하던 김희철 감독은, 현재 문예지에 등단한 희곡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화려한 영상미가 앞도적인 <지상만가>를 통해 한국영화의 기대치를 높였던 그는 아직도 관객들에게 ‘젊음을 위한 영상미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 그가 국·영문 번역판 소설 <위스키잭(The Whiskey Jacks)>을 출간하며 한국 영화감독의 영역을 넘어 세계적 문학가로 그 역량을 넓히고 있다. “2010년 현대시문학에서 희곡 부문 ‘우산장수와 여우피리’로 최우수작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이 책 <위스키잭>이 캐나다 콜롬비아 주립대학교 한국어과 교재로 채택되어 1년간 사용됨으로 작가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국내 대학에서도 연극영화과 외에 국문학과 특강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20여 곳 넘게 대학 강의를 진행해왔다”고 근황을 들려준다.
이 소설의 소재가 된 ‘위스키잭’은 캐나다의 깊은 숲속에 사는 작고 예쁜 새다. 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캐나다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이 위스키잭이라는 새는 암수 한 쌍이 붙어살다가 그중 한 마리가 죽게 되면 나머지 한 마리도 따라 죽는 특징이 있다. 인간의 진정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매우 흡사해 충분히 드라마틱하고 멜로틱하다는 생각이 김희철 감독의 소설 발상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세계번역문학가상을 수상한 ‘케빈오룩’ 교수의 힘을 빌려 영문으로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외국인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줄곧 한국문학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들을 진행해 왔다. 2001년 미국에서 출간돼 주목받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영국에서 펴낸 최인훈의 <광장> 그리고 하버드대 출판사에서 펴낸 <한국시조선집>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이렇게 무한한 상상력으로 단번에 세계적 작가 반열에 합류한 김희철 영화감독은 탄탄한 스토리와 휴머니즘적 메시지를 가지고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하겠다는 비장한 꿈을 가지고 있다. 멀리 뛰는 개구리가 더 낮게 몸을 움츠리는 것처럼, 한껏 날아오르기 위해 낮은 자세로 움츠리는 시간을 통해 그는 2015년 큰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은 순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평생 그러한 세계를 동경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쉽사리 변하지 않듯이 세상도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유사 이래 절대평화와 절대순수가 오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동경하며 그리워한다. 이러한 것들이 진정성으로 작용하며 영화적 상상력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감성적 특징은 재미와 감동과 아름다움이 결합된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데 매우 고단하고 각박하기 때문에 영화적 상상력과 판타지를 통해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이와 같은 감성을 포착하여 영화라는 영상매체를 통해 삶의 희망을 제시한다.”
김희철 감독의 작가주의적 창작철학은 ‘진실하자’다. 그가 집필하는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이러한 ‘진실’을 담으려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지금껏 그가 추구한 삶의 모토기도 하다. 그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인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영화 <야곱의 사다리>는 ‘현실과 환상’을 넘다들며 인간의 ‘진실과 허구’를 대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지난하지만 일관성 있게 밀어붙인 장예모 감독의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에서는 인간 삶의 ‘진정성’을 추구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 영화처럼, 지구상에는 분명 완전한 진실이 존재한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 과시하려 숱하게 그것을 위장하고 은폐한다. 그러한 허욕을 제하면 인간세계는 순수하고 맑아진다. 이를 위해 영화라는 매체가 인간의 진실과 진정성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들이 자연의 위대한 진실 속에 끼어들지 말고, 영화 관객처럼 묵묵히 지켜보는 가운데 ‘인간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는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시각장애인의 삶을 다룬 영화 <까만 천국>를 준비 중이다. 손수 각본을 쓰고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그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들과 나눈 눈빛에서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복합적으로 전달하는 눈빛의 이야기는 영화적 상상력을 가중시킨다. 인간의 다양한 내면이 모두 눈빛에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론으로 이번 영화에서는 사람의 성격과 캐릭터를 구사하는 ‘눈빛과 시각’을 잃은 사람들의 삶의 ‘진실과 희망’을 밀도 있게 영상으로 담아내려 노력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살아있음’의 문제다. 느끼고 생각하고 파악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김 감독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싶다”고 설명한다. “지금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진다.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시각적으로 바라본 세계의 잔상과 인간의 존재적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고 싶다”고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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