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후폭풍…헌재 ‘진보당 해산’ 타당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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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후폭풍…헌재 ‘진보당 해산’ 타당성 논란
  • 이지원 기자
  • 승인 2015.02.1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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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기관 엇갈린 판결, ‘이석기 사건’ 혼란 계속

 

 
헌정 사상 첫 ‘정당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 일으켰던 전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 대법원이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고 징역 9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지하혁명조직 ‘RO’도 실체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지난 12월 RO를 ‘주도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근거로 진보당을 해산시킨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증폭될 전망이다.
 
 대법원 전체합의체는(주심 김소영 대법관)은 1월22일 내란음모,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찬양, 고무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원에게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의원 등의 내란음모죄에 관련해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위배되거나 본질이 침해될 수 있어, 음모죄 성립 범위는 확대 해석 위험성을 고려해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며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내란음모가 성립하려면 공격대상 등이 설정되어 있고 공통적으로 인식할 정도의 합의는 있어야 한다”며 “내란음모 합의가 있다고 하기 위해선 단순한 범죄 결심을 외부에 표시,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객관적으로 합의가 인식되고 실질적 위험성도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RO의 실체에 관해서도 진보당 경기도당의 활동이 RO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RO의 존재는 엄격한 증명에 의해서 판단해야 한다며”며 “피고인의 주장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다고 해도 피고인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강령, 목적,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특별한 조직이 존재하고 130여 명이 위 조직의 구성원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RO의 조직체계 등에 대한 제보자의 진술은 상당 부분 추측이나 의견에 해당돼 증명이 높다고 할 수 없고, 다른 증거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옛 진보당 경기도당 일부 구성원들이 2013년 5월10일과 12일 회합 등을 통해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동조하며 내란을 선동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전 의원 등은 실제로 전쟁 발발 시 북한에 동조해 물질적, 기술적 방안으로 구체적 장소까지 거론하면서 통신, 철도, 유류 가스 등을 파괴하거나 그 수단으로서의 무기 제조와 탈취, 협조자 포섭 등을 논의했다”고 판시했다. 또 “이들의 발언은 전쟁 위기가 해소된 것이 아니고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특정 정세를 전쟁으로 인식하고 가까운 장래에 구체적 내란 행위를 유발할 충동이나 격려 행위로 보기에 충분해 그 자체로서 내란 선동 행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지난해 헌재 결정의 타당선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헌재는 RO을 진보당 내 주도세력으로 규정, 이를 근거로 정당해산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특히 이 전 의원 등의 내란음모죄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에 정당해산을 결정한 것은 “순리를 거스른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진보당이 헌재 결정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향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헌재는 사실상 ‘실체도 없는 조직’을 근거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을 해산시킨 모양새가 됐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은 진보당이 헌재 결정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할 빌미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의 기본적 전제는 내란을 할 수 있는 ‘조직’을 갖췄다는 점이었다”며 “헌재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해산을 결정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깎아 내린 셈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헌재는 헌법에 따라 판단한 것인 만큼 대법원이 헌재의 결정에 따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학장은 “법률이 아무리 효력을 가지고 있어도 헌법이 정한 효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며 “대법원은 헌재가 결정한 사안을 가지도 판단해 RO의 실체를 인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내란음모 무죄’에는 온도차를 보였다. 새누리당은 ‘절반의 단죄’라며 아쉬움을 표한 반면, 야당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이후에 이 전 의원에 대한 판결이 있었던 점을 지적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22일 논평에서 “대법원의 최종판결인 만큼 존중한다”는 뜻을 밝히고 “대한민국 헌법체계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사법제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어 안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증거부족을 이유로 절반의 단죄에 그쳤다”라며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국기를 뒤흔드는 세력은 대한민국에서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법의 정의는 앞으로도 굳건히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당 김현숙 원내대변인은 “그동안 구 통합진보당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했던 야당도 지난 헌법재판소의 구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이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종북과 완전히 선을 긋고 정체성을 분명이 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헌법의 가치와 민주주의 질서 아래 지켜질 수 있는 진보의 가치에 종북은 포함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은 박근혜 정부 하에 일어나고 있는 무차별적인 ‘종북’ 공안몰이에 대해 대법원이 제동을 건 것으로 판단된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한 대변인은은 그러나 “내란음모 혐의가 무죄로 확정된 점을 주목한다”며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대법원의 확정 판결 후에 정당해산심판 결정을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은 “대법 최종심에서 결국 내란음모, RO 실체에 대해 불인정 판결을 내린 것”이라며 “국정원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해 법리상의 무리함이 있었음을 사법부가 최종 인정한 꼴”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이유가 됐던 RO의 실체, 내란음모 등이 무죄로 판단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정당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이 든다”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정당해산 판결이기에 대법 최종 판결 후 신중한 판단히 필요했는데, 무리하게 판결을 내린 헌재에 대해 강한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이 상반된 목소리를 냈다.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은 정권 누치보기가 판결까지 이어졌다며 개탄한 반면 보수성향은 반(反)국가적 활동에 대해 1심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며 더욱 엄정한 법의 심판을 요구했다.
진보단체들로 이뤄진 ‘국정원 내란음모 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는 22일 “내란음모는 혐의가 무죄 판결로 선고됐음에도 내란 선동 혐의를 인정한 것은 사법부가 박근헤 정권의 눈치를 본 결과”라며 규탄했다.
대책위는 “RO의 존재를 인정하며 통진당 해산까지 감행한 헌재의 결정이 합리적 증거와 법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이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졌다”며 “정당해산을 감행하며 온 나라를 종북 광풍으로 몰아넣은 박근혜 정권은 사과하라”고 강조했다.
 
한국진보연대도 “내란음모는 없었지만 내란선동은 있었다는 이율배반적 판단을 내렸다”면서 “진실과 상식에 기초하지 않는 정권의 눈치보기 판결 형태를 멈추고 즉각 석방시켜라”라고 성토했다.
국제냄네스티 로젠 라이프(Roseann Rife)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은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에 이어 국가보안법이 자의적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한층 커질 것이 자명하다”며 “한국 정부는 정치적으로 남용되는 국가보안법 적용을 즉각 중단하고 정치적 견해에 상관없이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보수단체는 ‘법치주의 확립의 계기’라며 대법원의 선고를 지지하면서도 종북 세력에 대한 더욱 엄중한 법의 심판을 요구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이옥남 정치실장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신분으로 내란을 선동하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고,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 행위”라며 “1심보다 형량이 낮아진 대법원의 판결이 아쉽지만 법치주의 국가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성명서를 내고 “명백히 국가 전복을 획책했던 이석기에 대해 내란선동 혐의는 인정했으나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 ‘추측에 불과하다’며 무죄를 선도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의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하다”며 “이번 판결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종북 세력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상고심 선고가 열린 서초동 대법원 주변에서는 진보, 보수 단체들의 치열한 장외집회가 열렸다.
공판 시작을 앞둔 오후 1시부터 진보단체 회원 300여 명이 몰려들었고 약 200m 떨어진 서초역 부근에서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와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 수백 명이 맞불 집회를 열었다.
 
 앞서 이 전 의원 등은 2013년 5월10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친 비밀회합에서 경기도당을 중심으로 한 130여 명의 당원들과 무장혁명 및 국가기간시설 타격 등 폭동을 모의하고 이적표현물 등을 소지하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 동조한 혐의로 구속됐다.
1심은 검찰의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 이 전 의원에게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를 계기로 헌재는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과 국회의원직 박탈 판경를 내렸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러 나왔다”던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언급이 부메랑이 되어 헌정 사상 초유의 당 강제해산으로 귀결됐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박 대통령의 당선 2주년이었다. 이로써 지난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연대 등 진보진영의 꿈을 안고 출발한 통합진보당은 이 전 의원이 ‘RO’ 사건을 계기로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면서 창당 3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헌재는 이와 함께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5명 전원의 의원직 상실을 선고했다. 현행 법률에는 정당해산과 관련한 의원직 상실 여부가 규정돼 있지 않은 데다, 비례대표는 물론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의원직을 박탈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는 비판과 ‘대한민국 부정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라는 각기 다른 반응이 터져 나왔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은 가운데 대법원이 이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논란은 더욱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옛 통진당 정당해산심판 재심 청구 방침

헌재 “전래없다”…신중모드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결정에 대해 구 통합진보당이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헌정사상 유례없는 정당해산의 적법성 문제 여부가 제2라운드로 접어들지 주목된다. 특히 대법원의 판결과 헌재의 진보당 해산 결정 취지가 상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헌재의 재심 개시 여부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25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헌재의 결정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옛 진보당 의원들은 정당해산심판 재심 청구의 시기와 방안에 관한 구체적 논의를 진행 중이다.
오병윤 전 진보당 원내대표는 이날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내란 관련 회합을 주도세력으로 보고 내란의 구체적 위험성을 인정한 헌재의 결정은 오인에 의한 의도적,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점이 명백해졌다”며 “대법원 판결로 RO의 실체도 없다고 확인된 만큼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또 “헌재의 국회의원직상실 결정 역시 문제를 삼을 것”이라며 “헌재는 헌법조항에 대한 해석을 하는 기관이지,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 규정이 없는 것을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는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헌재가 국회의원직 상실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법 제55조(정당해산의 청구)~제60조(결정의 집행)에는 의원직 상실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제59조(결정의 효력)에만 ‘정당의 해산을 명하는 결정이 선고된 때에는 그 정당은 해산 된다’고 규정돼 있다.
아울러 오 전 원내대표는 “정당해산심판에 대한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4년 한국공법학회가 헌재로부터 용역을 받아 작성한 ‘정당해산심판제도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정당해산심판에 대한 재심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있다. 보고서는 ‘정당해산과 관련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재심의 허용 문제’라며 ‘현행법은 이 문제에 관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이 문제는 전적으로 해석에 맡겨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헌재의 입장은 재심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법적 안정성의 이익보다 재심을 허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구체적 타당성의 이익이 훨씬 커서 재심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현저히 정의에 반하는 경우에는 재심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심청구는 정당해산결정에 중대한 위법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허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헌재 관계자는 “보고서 서문에도 나와 있듯, 보고서는 공동연구자 4명의 의견이지 헌재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며 “만약 재심 청구가 들어올 경우 정식 심사 여부를 검토하겠지만, 선례도 없고 아직 신청이 들어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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