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 앞두고 3김 정치활동 분주한 움직임, 비판 여론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에서 물러났던 김대중(DJ)·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 등 이른바 ‘3김(金)’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 40년 가까이 정치사의 주역으로 활동해온 ‘3김’은 지난 2004년 김종필 전 총재의 은퇴를 끝으로 ‘3김 정치’의 종식을 고하며 공식적으로 정치권 전면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DJ가 여권의 정계 개편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호남 방문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는 등, 정치 행보를 재개하자 YS와 JP도 17일 서울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찬회동을 갖기로 했다가 취소하는 등 ‘의미심장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 4일 노 대통령과 DJ의 전격 회동은 열린우리당 내 신당 논의가 한창인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정치권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여권의 정계개편에 DJ가 일정 역할을 하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 같은 DJ의 행보는 필생의 라이벌인 YS와 JP를 다시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YS와 JP는 17일 회동을 전례 없이 언론에 공개했다가 뒤늦게 취소한 것은 ‘3김’의 정치적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비록 두 김씨측은 북핵문제 등 최근 국가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기로 했다가 지역감정을 부추긴다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 회동을 취소하긴 했지만 이는 노 대통령과 DJ의 회동에 대한 정치적 반격의 의미를 띤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DJ가 호남 방문에서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라는 글을 남긴 게 YS와 JP를 자극했다는 후문이다.
이같은 ‘3김’의 행보에 대해 이들이 내년 대선에서 영남·호남·충청권에 대한 지역민심을 ‘볼모’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계복귀설의 내막
11월 1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회동을 갖기로 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만남이 전날인 16일 오후 돌연 취소됐다. 정치권에서 ‘YS-JP 회동’을 지난 4일에 있었던 ‘盧-DJ 회동’의 반격으로 보는 분위기가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기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 날 언론을 통해 “정치를 오래 하신 두 분이 자연스럽게 만나 자연스럽고 허심탄회하게 만날 예정이었으나 만나기도 전에 본 뜻이 왜곡돼 만남을 연기하기로 했다”며 “만나기도 전에 패싸움 비슷하게 언론에서 보도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중요한 건 회동이 취소되었다는 게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두 사람이 회동을 계획했다는 사실이다.
당초 서청원 전 한나라당 총재가 주선했던 것으로 알려진 ‘YS-JP 회동’에선 정계개편에 대한 문제는 거론하지 않은 채, 현 정부의 정책을 겨냥해 비난의 날을 세울 것이라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호남의 맹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의 회동 및 일련의 행보를 통해 ‘DJ발 정계개편’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영남의 맹주’인 YS와 ‘충청도의 맹주’인 JP도 17일 회동을 통해 범보수 진영의 연합 등 정계개편에 대한 구상을 하지 않겠느냐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었다. ‘盧-DJ 회동’에 대한 맞불작전으로 ‘YS-JP 회동’을 계획했다는 분석이었다.
비록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YS-JP 회동’은 무기한 연기됐지만, 17대 대선정국을 앞두고 현실정치에서 물러났던 ‘3金 정캄가 다시 재연될 가능성을 보였다는 게 이번 해프닝에서 주목할 점이다. 정계개편의 저변에서 3金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3金 중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지난 10월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김 전 대통령은 편치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잇따른 강연과 언론인터뷰를 통해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꾸준히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달 28일에는 퇴임 8년만에 고향인 목포를 방문하기도 했다.
정계개편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열린우리당의 비극은 분당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으며, 고향인 목포를 방문했을 때는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 11월 4일에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동도 가졌다. 당시의 ‘盧-DJ 회동’은 당초 북핵 사태 이후 대북강경 입장이었던 노 대통령이 햇볕정책 지지로 입장을 바꾸면서, 정계개편에 있어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다시금 재확인하는 만남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회동 이후 두 사람은 한 배를 탄 행보를 보였다. 11월 7일에 노 대통령이 DJ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를 찾았으며, 다음날인 8일에는 김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찾았다.
11월 16일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동산정책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4일 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주택문제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소박한 의견을 (노 대통령에게) 전했다”며 “주택 문제는 강남 집이 얼마 오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집없는 서민들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이 북핵문제, 정계개편, 부동산 정책 등 정치현안 전반에 걸쳐 대선주자 못지않은 왕성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김영삼 “노 대통령 무언가 하겠다는 생각 버려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같은 행보를 하는 동안,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가만히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비해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YS-JP 회동’이 ‘盧-DJ 회동’에 대한 반격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盧-DJ 회동’ 이후 두 사람에게 쏠려있는 정계개편의 초점을 ‘YS-JP 회동’을 통해 분산시켜,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가져오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던 게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YS와 JP의 두 사람은 최근 잇따른 정치적 발언을 통해 그들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왔다.
먼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11월 2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 대통령 말대로 김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전쟁을 막았다면 노 대통령은 지금 한 일이 무엇이냐. 북한의 무리한 요구에 세금를 퍼주며 대화를 유지한 대가가 핵실험이냐”며 노 대통령에 날선 대립각을 세웠다.
지난 10월에도 김 전 대통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남은 임기에 새롭게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뭔가 하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될 것이다”며 “국민이 노 대통령을 믿지 못하고, 공무원들이 따르지 않고, 국제사회는 곧 그만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일본 도쿄신문과의 인터뷰도 가졌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실패했으며, 한국의 여론도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강행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노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과의 오찬에서도 “노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엄청난 사안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공개 사죄해야 한다”, “두 정권이 8년7개월 동안 4조5,800억원의 돈을 퍼 줘서 마침내 북한이 핵을 만들게 됐다”는 등의 주장을 통해 盧와 DJ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김종필 “충청도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
정치적 발언을 재개한 것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마찬가지다. ‘충청권의 맹주’인 김 전 총재는 지난 13일 국민중심당 심대평 지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충청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며 정계개편에서 충청권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당시 김 전 총재는 “내년 대통령 선거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영남과 호남은 어쩔 수 없다. 좋으나 싫으나 동서로 나뉠 것이다”고 전망한 뒤 “중요한 것은 중부권, 특히 충청도다. 충청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김 전 총재는 “지금 정치는 이대로는 안된다.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다”며 “진짜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사람이다 싶은 분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전국을 누빌 작정”이라고 밝혔다.
앞선 10월 26일에도 김 전 총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면서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사람이 내년에 선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위인이 출마하면 전국을 다니면서 한 표라도 더 얻어드리고, 마지막 조국에 대한 봉사로 삼을 것”이라며 “내년을 봐서 지금은 아무 소리 안하고 조용히 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YS와 JP의 정치적 발언은 DJ에 비해 상대적으로 파장이 적었다. 정치권에서 ‘DJ발 정계개편’은 어느정도 약발이 먹힌 듯했으나, ‘YS발 정계개편’, ‘JP발 정계개편’은 거론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盧-DJ 회동’ 이후 더욱 힘을 받고 있는 범여권발 정계개편의 동력을 차단하기 위해 ‘YS-JP 회동’이 추진됐었다는 분석이다. 비록 언론의 무리한(?) 관심으로 연기되기는 했으나, 정계개편의 저변에서 3金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현실정치에서 은퇴했던 3金이 또 다시 현실정치의 무대 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초선의원은 “오얏나무 밑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면서 “3김은 우리 정치사를 지역감정이라는 얼룩으로 덧칠해 놓은 데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의원은 “3김의 정치활동이 조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정치사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회창 복귀론도 솔솔
삼김과 더불어 최근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불을 지피기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시작된 듯하다. "이 전 총재가 정계에 복귀할 것"이라는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나오더니 11월 17일에는 홍문표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전 총재의 복귀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이 전 총재도 이런 당의 흐름과 맞춘 듯 눈에 띄게 대외 활동을 하는 듯한 분위기다. 다음달 6일 이 전 총재는 2003년 정계은퇴를 한 후 처음으로 당이 주최하는 공식행사에 참가한다.
더욱이 이 같은 이 총재 행보는 최근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 이른바 '3김(金)'이 최근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뤄져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은 "정계은퇴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최근 북핵사태에 대해 현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안보위기가 초래됐다는 점에서 하고 싶은 말을 여러 경로를 통해 하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