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블록체인 허브 도시를 꿈꾸지만, 국가가 발목 잡나

(시사매거진248호=최지연 기자) 블록체인을 향한 열기는 국내에서도 뜨겁지만 아직까지 국내 환경은 미흡하다. 특히 정부의 ICO 전면 금지 조치는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가장 큰 요소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은 스위스 주크나 싱가포르 등에서 법인을 설립하고, 이후 국내에 들어와 서비스를 홍보하는 모양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6월 발표한 ‘블록체인 기술 발전전략’에 따르면 국내 블록체인 시장규모는 2017년 500억원에서 2022년 약 1조 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나, 아직 관련 규제가 미비해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월 대표적인 크립토밸리(암호화폐도시)로 꼽히는 스위스 주크에서 박원순 서울 시장은 서울시가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의 중심이 되기 위한 ‘블록체인 도시 서울 추진계획(2018~2022년)’을 발표했다. 서울시에서 발표한 5개년 마스터플랜은 서울 개포와 마포에 200여 개의 블록체인·핀테크 기업이 들어설 수 있는 블록체인 집적단지를 조성하고 향후 5년간 1,233억 원을 집중 투입해 블록체인 활성화에 나선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자 성장동력인 블록체인을 받아들이고 서울시를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 산업 거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인데, 서울시가 따라가야 할 경쟁 상대들이 만만치 않다.
이미 스위스 주크, 에스토니아, 싱가포르 등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한 해외 도시나 국가는 전세계 블록체인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스위스의 주크라는 작은 도시는 2013년부터 크립토밸리로 명성을 얻으며 확고히 자리 잡은 상황이다. 스위스의 성공을 바라본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한국에 크립토밸리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국내는 서울시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지자치)들의 블록체인을 향한 구애가 열렬하다. 블록체인 산업이 떠오르는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으며, 정체되고 있는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침체되어있는 지자체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육성을 위하여 블록체인 활성화에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삐 움직이는 지자체들
블록체인 선도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한국형 규제샌드박스 도입으로 블록체인 특구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규제혁신 5법 중 국회에서 처리된 정보통신융합법·산업융합촉진법·지역특구법 개정법률 공포안이 10월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에 따라 신기술·신산업 분야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주는 '한국형 규제샌드박스'가 내년 상반기에 도입된다. 규제샌드박스는 신기술·신산업 분야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에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주는 제도이다. 이에 규제샌드박스가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지자체들이 잇따라 블록체인 사업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는 '블록체인 도시 서울'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보이고 있다. 스위스 주크처럼 서울을 블록체인 선도 도시로 만들기 위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동안 1,233억원을 투입해 블록체인 관련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열린 블록체인 행사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계획안도 밝혔다. 박 시장은 "블록체인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200여개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블록체인 집단을 만들겠다. 유니콘 기업의 성장을 돕는 1,000억원 규모의 펀드도 민간과 함께 조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 보다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이는 제주도 역시 ‘제주 블록체인 특구 조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별자치도 지위를 누리는 제주도는 블록체인 특구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암호화화폐 거래소, 규제관련 기관, 전문 서비스 인력을 유치하는 것이 제주도의 야심찬 계획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8월부터 정부에 제주도를 '블록체인·가상화폐(암호화폐) 특구'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해온 상황이다. 원 지사는 "제주는 국제 자유도시로서 우수한 해외 자본과 인력을 유치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를 규제 샌드박스형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해 국제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블록체인 허브도시로 육성해 줄 것을 건의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제주와 서울의 블록체인 도시 형성에 치열한 가운데, 부산 또한 블록체인 도시 경쟁에 합류했다. 부산시도 2026년까지 400억원을 투입해 부산국제금융센터(BIFC)를 블록체인 특구로 육성하기로 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부산은 동북아 금융경제중심지로 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며, 부산을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해 금융신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블록체인 관련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고 부산금융단지에 한국형 블록체인 허브를 만들 수 있도록 해킹방지와 사용자권익보호 해결을 포함한 중앙정부 정책 건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빠른 시일 내 블록체인 기업이 찾아오는 부산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이 밖에 작은 지자체들 역시 ‘블록체인’을 적용하고자 바삐 움직이고 있다. 대구시도 행정과 대민서비스 전반에 블록체인을 적용하기로 하고 지난 8월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8월 초부터 3개월 간 시범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전시는 원도심 역세권에 4차 산업혁명 맞춤형 지식산업센터를 건립해 인공지능(AI)과 가상현실(VR),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을 육성하는 핵심 거점으로 만든다는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따른 성공 또는 완성 사례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경상북도는 스위스 주크시의 현지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블록체인 스타트업 육성기업인 해머팀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경상북도는 중앙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지역금융 형태로 가상화폐를 발행해 주력 산업과 접목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 영등포구는 전국 최초로 블록체인 기반의 '제안서 평가시스템'을 구축해 서비스에 들어갔다. 입찰 과정에서 평가의 공정성과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 블록체인 도입을 결정했다. 영등포구청의 평가시스템은 입찰평가회의 진행 시 위원들의 점수를 아무도 조작할 수 없도록 예방해 투명성을 확보했다. 영등포구청은 이번 블록체인 기반의 제안평가시스템 구축으로 ‘2018 서울시 반부패 우수사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지자체들의 블록체인˙가상화폐 사업에 대한 의지는 미래 기술을 활용해 지자체만의 경제적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있다. 이미 해외의 작은 도시들이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가상화폐) 사업을 장려하면서 전세계 블록체인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크립토밸리(Crypto Valley)가 된 스위스 주크(Zug)
크립토밸리(Crypto Valley)로 명성을 쌓고 있는 스위스의 주크(Zug)시는 우리나라의 종로구 정도의 작은 규모의 동네이다. 스위스의 주크시는 2013년부터 크립토밸리로 명성을 얻으며 전세계 블록체인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취리히나 베른 등 다른 유명한 도시처럼 구시가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인접하고 있고, 도시의 한부분에 산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스위스가 크립토밸리로 성공한 이유는 세계적 수준 인재, 인프라, 중립성, 프라이버시 문화 등 많은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공무원들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가장 큰 성공 요인이며 경쟁력이다. 비탈릭 부테린이 재단 설립을 찾던 중 주크시 공무원들이 문제 해결하려는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태도로 행정지원을 빠르게 해준 덕분에 주크시에 2014년 재단을 설립하고 주크시는 세계적인 크립토밸리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주크시는 지방세도 암호화폐(가상화폐)로 수령하고 있다. 이는 관련 협회가 주도하에 요구해서가 아닌, 한 개인이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할 것을 요청하자 2주 만에 이를 수용해주며 가능한 일이 되었다.
또한 스위스의 공공 정책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친화적이다. 스위스연방철도(SBB)는 매표기에서 비트코인을 살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부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신분인증(디지털 ID)을 적극 도입했다. 스위스 크립토밸리는 대학, 협회, 연구실, 변호사, 회계사, 공공기관들이 네트워킹을 형성해 하나의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 스위스의 블록체인 기업은 주크시가 쌓아올린 명성으로 무려 700개에 달한다. 그리고 이둘 중 상위 50개 블록체인 관련 기업의 기업가치는 무려 50조원에 달하고 있다.
블록체인과 관련된 자금이 주크시로 들어오면서 스위스의 블록체인 기술 자체 또한 향상되었다. ITTP가 올해 발표한 ‘ICT기술수준 조사보고서’를 보면 스위스 및 인접 유럽의 점수는 950점이다. 한국의 블록체인 기초기술과 응용기술, 사업화수준은 750점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보다 많은 자금을 가진 중국의 경우 760점 수준으로 한국을 조금 앞서고 있다. 중국의 블록체인 기술이 한국보다 1.8년 정도 앞서고 있다는 분석을 보면, 블록체인 분야에서 한국의 발 빠른 추격이 필요하다는 것이 보여 진다.
작년부터 뜨거운 열기의 암호화폐(가상화폐)의 피해를 우려한 미국, 중국, 한국은 ICO에 대한 규제조치를 강화하거나 소비자 경고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스위스는 중국과 한국처럼 규제를 강화 하지 않았다. 이에 한국과 중국의 엔지니어들은 앞 다투어 스위스로 향했으며, 이러한 경향으로 주크의 블록체인 산업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국가가 발목 잡는 우리나라.. 변화하는 모습 보여줄까
우리나라 정부는 국내 ICO를 금지하는 입장만 내놓고, 이렇다 저렇다 할 가이드라인 없이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탓에 국내 블록체인˙암호화폐(가상화폐) 관련 연구개발 기업들이 스위스나 싱가포르, 홍콩, 두바이 해외로 나가서 활동하며 우리나라를 떠나는 '탈한국'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수 인력과 국내 자금이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정부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2일 국회에서는 금융위원회를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두 위원장은 본격적으로 ‘ICO 합법화’를 주장하고 나서며, 블록체인협회들이 입법 공백상태에서 활용할 ’암호화폐 거래 가이드라인’을 정부 측에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이어 지난 10월 11일 국회는 국내외 국회의원 및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국회 최초 블록체인 컨퍼런스 ‘GBPC 2018'을 직접 개최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난 9월부터 금융당국은 ICO를 실시했거나 준비 중인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어 실태조사 후에 ICO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해보자는 것이지 정부 입장을 확정해서 발표하겠다는 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최근 11월 7일에는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기존의 사전적·열거적 규제 방식으로는 빠른 금융혁신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사후적·포괄적 규제로 바꿀 것"이라며,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국내 상황 속에서 제주도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제주특별법 등을 개정, 단체장의 권한으로 이를 허가해달라고 작년 8월부터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이 경우 해외로 나가는 기업과 인력·자금이 제주도로 유입되면서 블록체인˙암호화폐(가상화폐) 대표도시가 되고자하는 큰크림을 그리고 있다.
이에 지자체들은 블록체인 특구 지정에 대한 기대가 크다. 스위스의 주크나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 등으로 떠나는 기업들을 붙잡을 뿐 아니라 해외의 블록체인 기업들을 유치함으로써 세수 증대와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주크의 인구는 3만명 수준인데, 블록체인 기업이 몰리며 3,000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아직은.. 하지만 놓쳐서는 안되는 크립토밸리(Crypto Valley) 구축
하지만 아직까지 모두 장밋빛 미래를 바라보는 기대일 뿐이다. 아직까지 정부에서는 불법자금 세탁,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등의 부작용들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서 부작용 해소를 위한 적절한 규제책과 제한규정을 만들어서 제시해 줘야 하지만, 정부는 블록체인은 받아들이면서도 암호화폐(가상화폐)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황에서 특정 지자체만 '특구'로 지정하는 것은 무리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역민의 공감대 형성이나 차별화된 전략도 없이 전시 행정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10월 26일 열린 국감현장에서 "중앙 정부에서도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규제가 없는데 제주도가 특구를 통해 어떤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왜 제주도여야 하는지 공감이 안되며, 제주도를 특구로 만들어서 해결될 이슈가 아니다"라고 지적된 바 있다. 이러한 지적은 제주도 뿐만 아니라, 현재 그 어떤 지자체도 블록체인 특구의 당위성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기에 나오고 있다. ‘왜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지자체 스스로 합리적인 근거를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에서는 블록체인 특구 조성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이에 편승한 사기 행각까지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직 우리나라는 사기행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호 해줄 수 있는 중앙정부의 법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섣부른 블록체인 특구 사업추진 보다는 우리나라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과 같은 입장정리가 선행 되어야 한다.
이런 혼돈의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크립토밸리(Crypto Valley) 조성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현재 한국은 블록체인 산업이 매우 뒤쳐진 상황이다. 하루라도 빨리 중앙정부의 명확한 입장정리와 크립토밸리 조성을 위한 블록체인 특구 지정이 필요하다. 암호화화폐와 그 기반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에 대하여 중요성을 느끼는 한편 아직 우리나라에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다수의 사용자들이 널리 이용하는 서버-클라이언트 시스템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며, 분별력 없이 약 1,300개나 되는 암호화폐(가상화폐)가 범람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정확하게 인지한 이후 규제완화와 육성정책 맞는 정책을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미 거대한 자금이 스위스와 싱가폴, 에스토니아 등 해외로 몰려가고 있으며, 한국은 계속해서 뒤쳐지고 있다. 다양한 미개척 분야가 블록체인 사업에 있으므로, 하루라도 빨리 우리나라 정부는 입장을 명확히 하여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와 투자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