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수장으로 세계 평화 앞당길 것”
반기문 장관 차기 UN 사무총장 만장일치로 공식 선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0월 14일 오전(한국시간) 열린 유엔 총회에서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선출됐다. 192개국이 참석한 총회에서 라셰드 알 할리파 총회 의장은 표결 없이 만장일치 박수 갈채로 사무총장 선출 절차를 마쳤다. 반 장관의 임기는 내년 1월1일부터 시작되며, 조만간 인수인계팀을 구성해 취임 준비에 들어간다. 반 장관은 지난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사무총장 단일 후보로 총회에 추천돼 이미 당선을 확정지은 상태였다.
사상 최초의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함으로써 향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신인도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사상 두 번째 사무총장이다.
반 장관은 수락 연설을 통해 새로운 시대 유엔의 역할에 걸맞은 효율적인 조직 관리와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4일 유엔 사무총장으로 최종 선출되기까지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본인의 능력 등이 두루 작용했지만 ‘운’도 반 장관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엔 사무총장직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던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지난해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낙마함에 따라 자신이 한국 정부가 미는 공식 후보 자리에 무혈입성할 때도 ‘운’이라는 ‘+ ∝’가 작용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 ∝’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반 장관은 지난 6월초 뉴욕에서 열리는 에이즈(AIDS) 유엔 총회 고위급 회의 참석을 계기로 유엔 내 각 지역그룹 인사 등과 회동하고 지지를 호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반 장관은 그에 앞서 워싱턴에서 이뤄진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과의 회동이 예정된 시간보다 길어지면서 당초 예약했던 뉴욕행 항공편을 놓쳤다. 백악관측의 특별 차량 에스코트까지 받으며 총알같이 공항으로 향했지만 그가 공항내 탑승 지점에 도착한 때 마침 예약했던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결국 반 장관은 예정했던 뉴욕에서의 일정 중 하나를 취소한 채 다음 항공편에 탑승했다. 그런데 놓친 항공편은 뉴욕에 도착할 무렵 폭풍 때문에 워싱턴으로 회항했고 본인이 탄 비행기는 때마침 공항 주변 기상이 좋아지면서 무사히 뉴욕에 도착했다. 결국 반 장관은 일정 손실을 최소화한 채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 만약 반 장관이 예정대로 비행기에 탔더라면 하루 일정을 대폭 축소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 뒷이야기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지난 6월 말 감비아 반줄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서 반 장관을 비롯한 유엔 사무총장 후보들이 연설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경우 자국에서 맡는 직책이 높은 사람부터 연설하는 것이 보통인데 어찌된 일인지 당시 부총리인 태국의 수라키앗 후보 대신 반 장관에게 먼저 마이크가 돌아왔다.
그러나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반장관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다음 순서로 나선 수라키앗 후보 차례 때는 아예 정전이 되면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아세안이 미는 단독후보로서 반 장관의 경쟁자였던 수라키앗은 그 후에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태국 군부 쿠데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또 하나로는 반 장관은 AU 회의에 참석한 후 7월 초 브라질, 멕시코,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국가들을 잇달아 방문할 계획이었다. 아프리카 일정을 소화한 후 귀국하지 않고 유럽을 거쳐 곧바로 첫 방문지인 브라질에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브라질이 현지 사정으로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수 없음을 통보해옴에 따라 반 장관은 7월 3일 일시 귀국했다가 7월5일 다시 멕시코,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양자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로 했다.
7월 3일 귀국한 반 장관은 당시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동향이 심상치 않게 전개된데다 7월5일 시작될 예정이던 한국의 독도주변 해류조사로 한일 신경전 가능성이 제기되자 중남미 방문일정을 통째로 연기했다. 결국 7월5일 새벽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만약 한국 외교의 실무책임자인 반 장관이 그날 한가로이 중남미를 방문하고 있었더라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단순한 비판 정도가 아니라 그가 외교장관직을 유지한 채 사무총장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시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정부의 인지와 대응이 일본보다 늦었다는 점에서 여론이 들끓었던 것을 감안하면 반 장관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반 장관은 브라질 덕분에 그 ‘역사적인’ 순간 외교부 청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반 장관은 올 3월께 한 중국 역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내용은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반 장관에 대한 기본 데이터 등을 근거로 도출된 역술인의 ‘예언’에 반 장관은 그저 기분 좋게 웃었지만 실제로 현실이 되었다.
북핵 사태 해결에 기여 기대
한국 외교장관에서 내년 1월부로 유엔 사무총장으로 신분이 바뀌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국의 수장으로서 북핵문제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반 장관은 외교부 미주국장으로 있던 1990년대 초반부터 1, 2차 북핵위기와 지난해 9.19 공동성명, 최근 북한 핵실험 사태에 이르기까지 16년간 여러 외교현장에서 북핵문제에 직.간접 관여해왔다.
특히 2004년초부터 외교장관으로 재임중인 그는 지난해 2월 북의 핵보유 선언과 9월의 9.19 공동성명, 올해 10.9 핵실험 등 격변하는 상황 속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북핵 위기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
반 장관은 지난 10월 9일 “북핵문제에 1990년부터 16년간 관여해왔다”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외교장관의 위치보다 유엔 사무총장의 위치가 권한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갈등 조정자인 유엔 사무총장의 책상 위에는 동북아의 ‘다이너마이트’인 북핵문제가 주요 현안의 하나로 올려질 것이기에 반 장관이 모종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은 확실하지만 한국 외교장관 신분인 지금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두가지 측면이 공존한다.
올 2월 사무총장직 도전을 선언할 때부터 국민들은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6자회담 관련국들의 이해관계를 꿰고 있는 반 장관이 사무총장이 되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해가 낮은 외국 인사가 사무총장이 되는 것보다 북핵문제에 관한 한 한결 나을 것으로 기대했다.
남북관계의 미묘함을 이해하는 한국인 사무총장으로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설득 기류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기대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비록 6자회담이라는 해결의 틀이 이미 존재하지만 반 장관은 각종 유엔 산하기구에 미치는 영향력을 활용해 북핵 문제 해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반 장관이 10월 13일(현지시간)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직후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내년초 정식으로 부임하면 한반도 전담 특사를 임명, 상시 유지하면서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대응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는 이와 함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방북 용의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사태진전과 여러 상황을 봐가며 생각해볼 문제”라면서 “다만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하면 북한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사무총장 보다는 오히려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한국 외교장관으로서 북핵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클 것으로 분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선은 국제사회의 갈등 조정자인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반 장관이 산적한 국제 분쟁 속에서 북핵문제에만 정신을 쏟을 수 없다는 게 첫번째 한계로 지적될 만 하다.
또 사무총장직 자체가 소속 국가의 국익을 넘어 세계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만큼 상황에 따라 북핵문제와 관련, 우리 정부의 입장과 다소 배치되는 발언을 해야할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유엔 내에서 북핵문제 같은 국제안보 이슈는 안전보장이사회, 그 중에서도 미.중.영.러.프 5개 상임이사국이 사실상 모든 결정을 하기 때문에 사무총장이 관여할 수 있는 바가 크지 않은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실제로 이번 북한 핵실험 정국에서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의 목소리가 특별히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반 장관은 사무총장 취임후 북핵문제에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면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사려깊게 임하겠지만 상황 전개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계속 반영하고 지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금의환향에 노 대통령 정상급 환대
한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10월 19일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이날 새벽 미국에서 귀국한 반 장관은 오전에 부인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고 참여정부 혁신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큰 밑바탕이 됐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반 장관은 “유엔이 60년 동안 조직이 얽히고 설켜 변화가 필요한데 한국 참여정부의 3년간 혁신에 대한 국제 사회의 평가가 많았다”며 “한국 사람이 (유엔을) 바꿀 수 있다는 평가 덕을 좀 봤다”고 말했다.
또 “개인적으로 영광이나 대통령과 국민에게 그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며 “대통령의 철학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무총장에 당선되고 나서 국가적인 역량과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며 “대통령과 영부인께서 직접 정상들을 만날 때 늘 적극 지지해주신 말씀을 해주셔서 그런 것이 큰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평가를 그렇게 겸손하게 해주시니 듣는 사람이 좋고 장관이 사무총장이 돼 더욱 빛난다”고 말했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 입장 때문에 활동과 역할에 제약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사무총장으로서 국제사회의 보편적 입장에서 창조적이고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해 업적을 남겨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는 한국인 최초로 유엔 수장에 오른 반 장관 예방에 국가원수에 준하는 극진한 예우를 갖췄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청와대 도착 10분 전 본관 현관에 영접 나와 부인 유순택 여사와 동행한 반 장관을 맞이했고 청와대의 다른 ‘장관급’ 참모인 변양균 정책실장과 김세옥 경호실장도 접견실 앞에서 대기했다.
노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반 장관 내외를 맞았다. 노 대통령은 반 장관이 “그동안 걱정해주시고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하자 “본인도 물론이지만 국가적으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축하했다.
노 대통령은 또 “오늘만 이렇게 대접을 좀 해드리자고 의견을 모았다”면서 “당선자에 대한 아무런 예우 규범이 없어서 오늘은 어정쩡하게 당선자 겸 외교장관으로 예우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반 장관은 노 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장관직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반 장관이 향후 외교장관으로서 마무리해야 할 스케줄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11월 15일 유엔 사무총장직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뉴욕으로 들어간다는 계획에 대한 말씀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유엔 사무총장 내정자로서 거취문제를 포괄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반 장관이 11월 7∼9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아프리카 포럼 행사까지 장관직을 수행케한 뒤 사표를 수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해 반 장관 사표를 수리하기 전인 다음달 초 후임 장관을 지명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인선작업에 착수했다. 당초 통일외교안보라인의 전면 교체가 예상됐으나 일단 외교장관만 교체하고, 북핵문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상황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개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번에는 외교안보팀 중 외교장관 지명자만 발표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 외교장관으로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지명될 경우, 불가피한 연쇄 후속인사로 외교안보팀 추가개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 외교장관 후임에는 송 실장과 함께 유명환 외교부 제1차관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으며, 주요국 대사들도 후보군에 올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차기 사무총장의 과제
내년부터 임기에 들어갈 반 장관은 당선의 기쁨을 뒤로한 채 어깨엔 무거운 짐이 많이 놓여있다. 당장 북한의 핵실험 파문을 비롯해 아프리카 다르푸르 사태, 이란 핵문제, 중동평화 정착문제 등 발등에 떨어진 불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또한 새로운 국제환경에 맞는 유엔의 위상 재정립이라는 과제도 풀어야 한다.
유엔은 최근 들어 평화유지군(PKO)의 성추문 사건과 이라크 석유-식량 교환프로그램을 둘러싼 비리가 불거지면서 개혁에 대한 요구가 크게 높아졌다. 1년 전 유엔창설 60주년 특별정상회의 때 제기된 7대의제인 빈곤퇴치, 인권신장, 반(反)테러, 인종청소방지, 군축과 핵비확산 등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관료주의에 젖어 있는 유엔을 효율적인 기구로 변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세계보건기구에서부터 유네스코, 뉴욕본부, 유엔개발계획 등 다양한 기관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것도 차기 사무총장의 큰 과제다.
반기문 장관 차기 UN 사무총장 만장일치로 공식 선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0월 14일 오전(한국시간) 열린 유엔 총회에서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선출됐다. 192개국이 참석한 총회에서 라셰드 알 할리파 총회 의장은 표결 없이 만장일치 박수 갈채로 사무총장 선출 절차를 마쳤다. 반 장관의 임기는 내년 1월1일부터 시작되며, 조만간 인수인계팀을 구성해 취임 준비에 들어간다. 반 장관은 지난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사무총장 단일 후보로 총회에 추천돼 이미 당선을 확정지은 상태였다.
사상 최초의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함으로써 향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신인도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사상 두 번째 사무총장이다.
반 장관은 수락 연설을 통해 새로운 시대 유엔의 역할에 걸맞은 효율적인 조직 관리와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4일 유엔 사무총장으로 최종 선출되기까지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본인의 능력 등이 두루 작용했지만 ‘운’도 반 장관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엔 사무총장직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던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지난해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낙마함에 따라 자신이 한국 정부가 미는 공식 후보 자리에 무혈입성할 때도 ‘운’이라는 ‘+ ∝’가 작용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 ∝’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반 장관은 지난 6월초 뉴욕에서 열리는 에이즈(AIDS) 유엔 총회 고위급 회의 참석을 계기로 유엔 내 각 지역그룹 인사 등과 회동하고 지지를 호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반 장관은 그에 앞서 워싱턴에서 이뤄진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과의 회동이 예정된 시간보다 길어지면서 당초 예약했던 뉴욕행 항공편을 놓쳤다. 백악관측의 특별 차량 에스코트까지 받으며 총알같이 공항으로 향했지만 그가 공항내 탑승 지점에 도착한 때 마침 예약했던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결국 반 장관은 예정했던 뉴욕에서의 일정 중 하나를 취소한 채 다음 항공편에 탑승했다. 그런데 놓친 항공편은 뉴욕에 도착할 무렵 폭풍 때문에 워싱턴으로 회항했고 본인이 탄 비행기는 때마침 공항 주변 기상이 좋아지면서 무사히 뉴욕에 도착했다. 결국 반 장관은 일정 손실을 최소화한 채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 만약 반 장관이 예정대로 비행기에 탔더라면 하루 일정을 대폭 축소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 뒷이야기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지난 6월 말 감비아 반줄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서 반 장관을 비롯한 유엔 사무총장 후보들이 연설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경우 자국에서 맡는 직책이 높은 사람부터 연설하는 것이 보통인데 어찌된 일인지 당시 부총리인 태국의 수라키앗 후보 대신 반 장관에게 먼저 마이크가 돌아왔다.
그러나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반장관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다음 순서로 나선 수라키앗 후보 차례 때는 아예 정전이 되면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아세안이 미는 단독후보로서 반 장관의 경쟁자였던 수라키앗은 그 후에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태국 군부 쿠데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했다.
또 하나로는 반 장관은 AU 회의에 참석한 후 7월 초 브라질, 멕시코,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국가들을 잇달아 방문할 계획이었다. 아프리카 일정을 소화한 후 귀국하지 않고 유럽을 거쳐 곧바로 첫 방문지인 브라질에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브라질이 현지 사정으로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수 없음을 통보해옴에 따라 반 장관은 7월 3일 일시 귀국했다가 7월5일 다시 멕시코,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양자 외교장관 회담을 갖기로 했다.
7월 3일 귀국한 반 장관은 당시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동향이 심상치 않게 전개된데다 7월5일 시작될 예정이던 한국의 독도주변 해류조사로 한일 신경전 가능성이 제기되자 중남미 방문일정을 통째로 연기했다. 결국 7월5일 새벽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만약 한국 외교의 실무책임자인 반 장관이 그날 한가로이 중남미를 방문하고 있었더라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단순한 비판 정도가 아니라 그가 외교장관직을 유지한 채 사무총장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시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정부의 인지와 대응이 일본보다 늦었다는 점에서 여론이 들끓었던 것을 감안하면 반 장관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반 장관은 브라질 덕분에 그 ‘역사적인’ 순간 외교부 청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반 장관은 올 3월께 한 중국 역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내용은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반 장관에 대한 기본 데이터 등을 근거로 도출된 역술인의 ‘예언’에 반 장관은 그저 기분 좋게 웃었지만 실제로 현실이 되었다.
북핵 사태 해결에 기여 기대
한국 외교장관에서 내년 1월부로 유엔 사무총장으로 신분이 바뀌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국의 수장으로서 북핵문제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반 장관은 외교부 미주국장으로 있던 1990년대 초반부터 1, 2차 북핵위기와 지난해 9.19 공동성명, 최근 북한 핵실험 사태에 이르기까지 16년간 여러 외교현장에서 북핵문제에 직.간접 관여해왔다.
특히 2004년초부터 외교장관으로 재임중인 그는 지난해 2월 북의 핵보유 선언과 9월의 9.19 공동성명, 올해 10.9 핵실험 등 격변하는 상황 속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북핵 위기의 한 복판에 서 있었다.
반 장관은 지난 10월 9일 “북핵문제에 1990년부터 16년간 관여해왔다”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외교장관의 위치보다 유엔 사무총장의 위치가 권한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갈등 조정자인 유엔 사무총장의 책상 위에는 동북아의 ‘다이너마이트’인 북핵문제가 주요 현안의 하나로 올려질 것이기에 반 장관이 모종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은 확실하지만 한국 외교장관 신분인 지금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두가지 측면이 공존한다.
올 2월 사무총장직 도전을 선언할 때부터 국민들은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6자회담 관련국들의 이해관계를 꿰고 있는 반 장관이 사무총장이 되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해가 낮은 외국 인사가 사무총장이 되는 것보다 북핵문제에 관한 한 한결 나을 것으로 기대했다.
남북관계의 미묘함을 이해하는 한국인 사무총장으로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설득 기류를 적절히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기대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비록 6자회담이라는 해결의 틀이 이미 존재하지만 반 장관은 각종 유엔 산하기구에 미치는 영향력을 활용해 북핵 문제 해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반 장관이 10월 13일(현지시간)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직후 뉴욕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내년초 정식으로 부임하면 한반도 전담 특사를 임명, 상시 유지하면서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대응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는 이와 함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방북 용의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사태진전과 여러 상황을 봐가며 생각해볼 문제”라면서 “다만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하면 북한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사무총장 보다는 오히려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한국 외교장관으로서 북핵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클 것으로 분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선은 국제사회의 갈등 조정자인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반 장관이 산적한 국제 분쟁 속에서 북핵문제에만 정신을 쏟을 수 없다는 게 첫번째 한계로 지적될 만 하다.
또 사무총장직 자체가 소속 국가의 국익을 넘어 세계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만큼 상황에 따라 북핵문제와 관련, 우리 정부의 입장과 다소 배치되는 발언을 해야할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유엔 내에서 북핵문제 같은 국제안보 이슈는 안전보장이사회, 그 중에서도 미.중.영.러.프 5개 상임이사국이 사실상 모든 결정을 하기 때문에 사무총장이 관여할 수 있는 바가 크지 않은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실제로 이번 북한 핵실험 정국에서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의 목소리가 특별히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반 장관은 사무총장 취임후 북핵문제에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면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사려깊게 임하겠지만 상황 전개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계속 반영하고 지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금의환향에 노 대통령 정상급 환대
한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10월 19일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금의환향했다. 이날 새벽 미국에서 귀국한 반 장관은 오전에 부인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고 참여정부 혁신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큰 밑바탕이 됐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반 장관은 “유엔이 60년 동안 조직이 얽히고 설켜 변화가 필요한데 한국 참여정부의 3년간 혁신에 대한 국제 사회의 평가가 많았다”며 “한국 사람이 (유엔을) 바꿀 수 있다는 평가 덕을 좀 봤다”고 말했다.
또 “개인적으로 영광이나 대통령과 국민에게 그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며 “대통령의 철학을 갖고 열심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무총장에 당선되고 나서 국가적인 역량과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며 “대통령과 영부인께서 직접 정상들을 만날 때 늘 적극 지지해주신 말씀을 해주셔서 그런 것이 큰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평가를 그렇게 겸손하게 해주시니 듣는 사람이 좋고 장관이 사무총장이 돼 더욱 빛난다”고 말했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 입장 때문에 활동과 역할에 제약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사무총장으로서 국제사회의 보편적 입장에서 창조적이고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해 업적을 남겨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는 한국인 최초로 유엔 수장에 오른 반 장관 예방에 국가원수에 준하는 극진한 예우를 갖췄다.
이병완 비서실장은 청와대 도착 10분 전 본관 현관에 영접 나와 부인 유순택 여사와 동행한 반 장관을 맞이했고 청와대의 다른 ‘장관급’ 참모인 변양균 정책실장과 김세옥 경호실장도 접견실 앞에서 대기했다.
노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함께 반 장관 내외를 맞았다. 노 대통령은 반 장관이 “그동안 걱정해주시고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하자 “본인도 물론이지만 국가적으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축하했다.
노 대통령은 또 “오늘만 이렇게 대접을 좀 해드리자고 의견을 모았다”면서 “당선자에 대한 아무런 예우 규범이 없어서 오늘은 어정쩡하게 당선자 겸 외교장관으로 예우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반 장관은 노 대통령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장관직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반 장관이 향후 외교장관으로서 마무리해야 할 스케줄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11월 15일 유엔 사무총장직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뉴욕으로 들어간다는 계획에 대한 말씀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유엔 사무총장 내정자로서 거취문제를 포괄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반 장관이 11월 7∼9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아프리카 포럼 행사까지 장관직을 수행케한 뒤 사표를 수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해 반 장관 사표를 수리하기 전인 다음달 초 후임 장관을 지명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인선작업에 착수했다. 당초 통일외교안보라인의 전면 교체가 예상됐으나 일단 외교장관만 교체하고, 북핵문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상황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개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번에는 외교안보팀 중 외교장관 지명자만 발표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 외교장관으로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지명될 경우, 불가피한 연쇄 후속인사로 외교안보팀 추가개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 외교장관 후임에는 송 실장과 함께 유명환 외교부 제1차관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으며, 주요국 대사들도 후보군에 올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차기 사무총장의 과제
내년부터 임기에 들어갈 반 장관은 당선의 기쁨을 뒤로한 채 어깨엔 무거운 짐이 많이 놓여있다. 당장 북한의 핵실험 파문을 비롯해 아프리카 다르푸르 사태, 이란 핵문제, 중동평화 정착문제 등 발등에 떨어진 불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또한 새로운 국제환경에 맞는 유엔의 위상 재정립이라는 과제도 풀어야 한다.
유엔은 최근 들어 평화유지군(PKO)의 성추문 사건과 이라크 석유-식량 교환프로그램을 둘러싼 비리가 불거지면서 개혁에 대한 요구가 크게 높아졌다. 1년 전 유엔창설 60주년 특별정상회의 때 제기된 7대의제인 빈곤퇴치, 인권신장, 반(反)테러, 인종청소방지, 군축과 핵비확산 등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관료주의에 젖어 있는 유엔을 효율적인 기구로 변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세계보건기구에서부터 유네스코, 뉴욕본부, 유엔개발계획 등 다양한 기관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것도 차기 사무총장의 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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