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를 사랑한 어느 신학생의 이야기는 세간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가 나중에 ‘밥퍼 목사’로 불리며 나눔의 아이콘이 된 사실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의 곁에는 여전히 수녀였던 아름다운 여인이 있고 말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천사들이 있다. 그리고 더 많은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한국을 넘어서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 땅에 밥 굶는 이 없는 세상은 그가 이제껏 단 한 번도 놓지 않았던 한 생명을 사랑하여 꾸준히 실천한 나눔운동이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개최됐던 1988년, 최일도 목사는 독일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다. 침묵과 묵상을 통한 영성생활과 전원 공동체 설립이라는 비전을 위해서다. 그러나 쌀쌀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청량리역에서 만난 무의탁 노인은 그의 삶을 한순간 바꿔놓았다. 나흘간 굶었다는 노인의 위태로운 목소리에 그는 ‘참되 경건은 환란 중에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야고보서 1장 27절)’이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렸고 그 말씀은 불씨가 되어 그의 가슴 속에서 꺼질 줄 모르며 계속 타올랐다. 도시 한복판 빈민촌에서 공동체 삶을 시작해보자고 결심한 최일도 목사는 청량리역 광장에서 라면을 끓이는 것으로 다일공동체를 시작했다.
밥 굶는 이가 없는 그날까지
‘다일공동체’에서 ‘다일(多一)’은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한다는 줄임말로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더불어 함께 만들어가자는 의미다. 냄비 하나로 시작한 밥상공동체는 2014년 현재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전해져 전세계 해외지부(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미국, 네팔, 탄자니아, 우간다)에서 국제적인 NGO가 되어 빈곤층 구호 및 빈곤 아동 결연, 장학 사업 등 생산적 복지를 실천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간다에 다일공동체를 설립했다.
다일공동체의 실천지침은 아주 단순하다. 일용할 양식을 나누고, 전인적인 치유와 회복을 돕고, 서번트 리더십을 실천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일공동체는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일공동체의 시작이었던 ‘밥퍼나눔운동’이다. 무료급식사업, 오병이어의 날, 효도잔치, 거리성탄예배 등을 전개하는 밥퍼나눔운동본부는 이 땅에 배고픈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다시 한 번 일어서기에 이르도록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캠페인이다.
청량리 굴다리 밑이나 시장 한 구석에서 차려지던 밥상은 2002년 서울시의 예산으로 동대문구 구유지에 자리가 마련됐고 2011년 12월24일에는 청량리 굴다리 옆에 2층짜리 건물을 갖게 됐다. 이곳에서 매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1,000〜1,500여 명의 노숙자, 행려자, 무의탁 노인들의 점심을 준비한다. 그렇게 나눈 밥이 지난 5월에 700만 그릇을 넘어섰다.
7월7일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나눔잔치도 열었다. 실질적 주인공인 무의탁노인, 독거노인과 자원봉사자들을 초청해 감사와 위로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비록 밥 한 그릇뿐이었지만 이 한 그릇이 누군가에게는 사랑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생명이었다. 다일공동체는 이 땅에 밥 굶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는 그날까지 밥퍼나눔운동을 계속 이어갈 초심이 여전하다. 생명이음줄 운동 역시 다일공동체의 일용한 양식 나눔 운동이다. 이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운동이었는데 1998년 4월에 처음 펼쳐졌다. 그가 지은 책 ‘밥퍼’의 인세 전액을 헌금해 절반인 1억 5,000만 원을 유진벨재단을 통해 결핵이동진료차량, 의료품을 기증했으며, 등대복지회를 통해 콩두유 제조기계를 보내기도 했다. 다일공동체는 밥퍼나눔운동과 생명이음줄 운동이 북녘 땅에서 직접적으로 이뤄질 날만 기다리고 있다. 북한에 가서 직접 밥을 퍼줄 수 있는 날 비로소 생명이음줄 운동이 완성될 것이라는 소망을 늘 품고 있다.
정부 보조 없이 유지되는 개신교 최초 무료 병원

1992년 10월 청량리 주민들의 성금 47만 5,000원이 다일천사병원 건립을 위한 첫 헌금으로 모였다. 여기에 한 사람이 100만 원씩 후원하는 ‘천사운동’을 통해 2002년 10월4일 다일천사병원을 개원했다. 이는 정부기관의 도움 없이 순수 후원금만으로 유지되는 국내 유일의 전액무료병원이며 환자뿐만 아니라 정부에게도 의료보험 수가를 신청하지 않는 국내 유일의 가난한 이웃을 위한 무료병원이다. 매년 1만 5,000여 명이 무료로 진료를 받고 있는 천사병원은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비수급권자, 건강보험가입자나 보험료 장기체납 혹은 가족 지원이 불가능해 일반 병원의 진료 혜택이 불가능한 극빈환자(무의탁 노인 포함), 해외이주근로자나 유학생 중 의료급여 비수급자, 근로능력이 있지만 수술 및 입원 치료비가 절대 부족해 치료가 중단된 환자 등을 대상으로 월 300여 건의 의료검사와 시술을 제공하고 있다.
의약품 또한 무상으로 지급된다.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는 노숙인, 독거노인들을 보호하고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존엄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숙인 보호시설을 운영, 의료지원 및 생필품지원, 정서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밥퍼나눔운동이 일용한 양식 나누기 운동이라면 천사병원은 전인적인 치유와 회복의 실천인 셈이다.
최초의 개신교 무료병원을 세우기 위해 시작된 천사운동의 감동적인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동전 100원부터 100만 원까지 모으던 운동이 현재는 천원부터 1,004만 원까지 자유롭게 형편껏 헌금하는 순수 민간 후원회원들로만 운영되고 있다. 아시아 다일비전센터, 또 다른 무료병원 설립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다일공동체는 다일평화의 마을과 설곡산 다일공동체에서의 영성수련을 통해 섬기는 리더를 양성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다일평화의 마을에는 다일공동체 가족이 되기 위한 지원자들과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원하는 이들의 영성훈련을 위한 다일D.T.S(Discipleship Training School)와 다일S.T.S(Servant leadership Training School)과정이 마련돼 있어 침묵과 성서묵상, 노동기도와 예수호칭기도 등을 배우며 전통적이면서 살아있는 생활영성수련을 하고 있다.
설곡산 다일공동체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크고 작은 고통과 상한 감정들을 치유하며 회복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세상 찾기’가 15년째 진행되고 있다. 다일공동체는 IMF때 국민들이 지어준 새 이름, ‘다시 한 번 일어서기’의 다일이란 사회봉사단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의 손을 잡고 아름다운 세상 찾아 누리며 작은 예수로 살아가기 위해 다일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과 ‘가서 전하라’는 지상명령을 26년이 지난 오늘까지 아름답게 준행하고 있다. 설령, 그 걸음이 더딜지라도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으로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