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한인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필리핀 경찰청 내에 한국인 관련범죄 대응 팀인 ‘코리안 데스크’의 역량강화를 위한 활동비를 지원하고 수사 지원 장비를 제공할 예정이다.
필리핀에는 8만 명가량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유학생은 3만 8,000명에 이른다. 한국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필리핀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어 어학연수나 유학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화려한 도시와 넓게 펼쳐진 바다는 이곳을 최고의 휴양지로 각광받게 했다. 이 덕분에 필리핀은 한국인이 신혼 여행지나 관광지로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손꼽혔고 관광객이 연간 1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한국과 교류가 수년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사건사고로 인해 필리핀 내 한인사회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인을 겨냥하는 납치, 테러 등이 늘어나면서 우리 관광객이나 교민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며 올 들어 벌써 8명의 한국인이 필리핀에서 목숨을 잃었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살인 사건 늘었다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늘어난 것은 돈 때문이다. 치안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인들이 현금을 많이 갖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9년 이후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로 인해 살해된 사람은 40여 명에 이른다. 올해만 해도 총 6건의 사건이 일어나, 올 한 해 동안 필리핀에서 숨진 한인은 8명으로 늘어났다. 이 중 대부분은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사업가로 청부 살인범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지난 2월19일 한인 허 모 씨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필리핀 유명 휴양지를 여행하던 허 씨는 필리핀 북서부 관광도시인 앙헬레스에서 오토바이를 탄 괴한들에게 총격을 당해 사망했다. 그는 일행 3명과 함께 인근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총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교민이 강도를 당해 숨진 경우는 있었지만 한국인 관광객이 현지에서 살해 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으로 총격 직후 현장을 무사히 빠져 나온 일행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이보다 한 달 전인 1월에도 오토바이를 탄 괴한 2명이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던 한국인을 급습해 2만 달러를 빼앗아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4월7일에는 45세인 신 모 씨가 앙헬레스의 한 야외식당에서 가족과 식사를 하던 중 괴한의 총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괴한은 사건 직후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했으며 금품을 노리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보아 원한관계에 의한 청부살인에 비중을 두고 있다. 신 씨는 한인 타운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해왔다.
같은 달 9일에는 필리핀 현지인에게 납치된 한국인 유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은 용의자를 최소한 3명 이상으로 보고 있다. 3월3일 친구를 만나기 위해 저녁 9시 20분경 택시를 탄 피해자가 4시간 정도 지난 후 친구에게 전화해 납치가 됐다고 말했다. 납치범이 우리 돈으로 2억 4,000만 원 정도를 요구한 것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사에 나서 일당 중 한 명을 검거했지만 내부적으로 분란이 일어나면서 서로를 죽인 과정에 우발적으로 피해자가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 여성의 시신을 마닐라 북쪽 외관 불라칸의 주택 정화조 안에서 찾아냈고 검거된 피의자를 통해 나머지 일당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
5월12일에는 새벽 1시경 마닐라 남쪽 45km 떨어진 카비테주 실랑시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한국인 2명이 괴한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새벽 5시 30분경 카비테시 거리 한복판에서 총격을 받았고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나머지 한 명은 총알이 빗겨나가 목숨을 건졌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정 씨의 신고로 한국인 1명을 포함한 현지인 5명이 용의자로 긴급 체포됐다. 피해자들은 한국인 범인과 함께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동업자로 금전적인 이유로 청부살인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세부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한국인 일가족 3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일도 발생했다. 평소보다 개점 시간이 늦어지자 이를 수상하게 여긴 주변인들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확인된 것이다. 건물 관리인은 새벽에 식당 안에서 사람들이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났다고 진술했고 용의자는 한인 사위로 밝혀졌다. 술에 취해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다 아내와 장인 장모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인들 눈에는 ‘돈 많은 한국인’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표적 범죄와 집단 다툼 살인사건까지 필리핀 한인 사회의 흉악 범죄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필리핀 현지 교민보호단체인 필리핀 112 현지 회장은 전화인터뷰를 통해 필리핀으로 이주한 한인들 중 범법자가 많이 있으며 그들로 인해 강력범죄가 일어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또 필리핀 현지에서 자주 발생하는 택시 납치에 대해서는 “자격증이 없이 무허가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하며 택시기사들이 무리하게 바가지요금을 씌우기도 하고 예상한 금액 이상의 요금을 요구하며 돈을 찾아오라고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전했다.
이러한 사건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고 요구하는 만큼 주고 시비에 휘말리지 않게 하다 보니 ‘한국인이 돈이 많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범죄자들 사이에서 ‘마사랍 코리안’이라며 필리핀어로 ‘맛있는 코리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인의 경우에는 식당에서 한 명이 밥값을 다 내고 외모치장도 다른 동양인에 비해 눈에 띄어 빈민이나 현지인들이 보기에는 돈이 많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필리핀 한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대개 치안이 안정된 곳이다. 하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정착할 수 있어 기소 중이거나 범법을 저지른 경우 필리핀으로 많이 이주해온다. 이미 범죄를 저지르고 온 경우 여권이 말소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고 범죄를 통해 다시 돈을 마련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또 필리핀은 청부 살인이 쉽다는 것이 현지 회장의 주장이다. 사진과 주소, 100만 원 정도면 청부살인이 가능하다. 필리핀의 경우는 주민등록과 같은 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고 학교를 다녔다는 증명이 자신의 신분을 대신한다. 거기에 필리핀 현지 교도소는 가족의 면회가 자유롭고 주말이 되면 가족들이 방문해 자고 갈 수 있으며 음식을 해먹을 수도 있어 교도소 자체가 주는 위협감이 적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필리핀 현지 경찰들은 수사 경비가 지원되지 않아 사건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찰이 월급이 적다보니 범죄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경찰을 보디가드로 쓸 정도라고 전했다.
필리핀 여행 신변안전 유의해야
이러한 범죄가 증가하면서 우리 관광객이나 교민의 안전을 둘러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집트, 리비아, 필리핀 등 한국인을 겨냥한 강력범죄가 꼬리를 물면서 신변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위험국가나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법과 여권법 시행령으로 한국군대가 주둔 중이거나 종교 갈등으로 위험한 국가로 지정된 장소에 허가 없이 여행 및 봉사활동의 목적으로 방문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리핀은 각 지역에 대해 신변안전 유의의 1단계, 신변안전 특별유의/여행필요성 신중검토의 2단계 여행자제, 긴급용무가 아닌 한 귀국/가급적 취소·연기를 제안하는 3단계 여행제한까지 한 번에 발령하고 있어 여행을 할 경우 더욱 유의해야 한다.
필리핀은 100만 정이 넘는 불법 총기에 의해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며 올 해 발생한 여러 살인 사건 등은 오토바이를 탄 전문킬러가 총을 쏘고 달아나는 청부 살해 사건이 대부분이다. 살인사건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하고 현지 여성과 관계를 갖는 등 현지인과 돌아다니다가 살해되는 경우, 유흥 오락을 목적으로 방문한 한국인을 카지노 에이전트가 카지노 안내, 호텔 숙박, 금전 대여 등의 호의를 베푼 뒤 금품을 빼앗고 살해하는 경우, 현지에서 사업을 하다가 다툼이 벌어져 동업자에 의해 살해되는 경우, 치정문제로 연적에 의한 경우, 현지 직원들을 해고하면서 보복 목적으로 살해되는 경우, 권총 강도 택시 강도 후 살해 및 사체 유기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관광객이 많은 지역에서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메트로마닐라 일대, 앙헬레스, 바탕가스, 세부 등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는 강도, 소매치기를 주의해야하며 약물을 음료수에 타 의식을 잃게 한 뒤 금품을 털거나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 ATM 기계에서 현금을 빼고 달아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카지노가 성행하는 지역에서는 도박자금을 빌려주고 이를 송금하지 않는 경우에는 감금, 폭행을 하는 조직폭력배가 있고 민다나오섬 일대(다바오 및 카가얀데오로 등 여행경보 2단계 지역을 제외한 3단계 여행제한 지역)에는 회교 반군 및 공산군 세력이 준동하고 있어 납치에 주의해야 한다.
코리안 데스크의 역할 강화
2007년 당시 우리 경찰청장은 필리핀 경찰청 대표단을 초청해 국제 범죄 대응 및 재외국민보호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한-필리핀 경찰청간 교류 협력 약정을 체결했다. 당시 여행객과 유학생 등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인들이 증가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건 사고가 급증해 양국 경찰기관간 긴밀한 공조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양국은 테러, 마약밀매, 인신매매 등 국제범죄 등의 대응을 위한 공조 수사 활동 강화와 법집행 관련 실무 기술의 교류 협력을 약정하고 향후 내실 있는 교류협력을 통해 국제 범죄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2010년 필리핀 현지 경찰에 한국인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코리안 데크스’도 설치했다. 캄보디아, 콜롬비아, 파키스탄, 터키, 멕시코, 네덜란드, 필리핀 등 6개 국가에 현지 경찰로 구성된 코리안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지만 필리핀만 유일하게 한국인을 직접 파견해 현지 한국인의 안전에 힘쓰고 있다.
또 필리핀에 정부합동 현장점검단을 파견해 마닐라, 앙헬레스를 비롯한 치안이 불안한 지역은 점검하고 간담회를 가졌고 우리 국민 다수가 거주하는 필리핀 지역에 방법초소 운영과 CCTV 설치 등을 지원하는 방안과 함께 3만 명에 달하는 유학생의 안전강화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