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허용에서 금지로 전환, 기업활동 제약 풀려
상태바
규제 허용에서 금지로 전환, 기업활동 제약 풀려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4.06.05 1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범거래기준·가이드라인 폐지, 점주·동네업주 등, 을(乙) 피해 우려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기업 활동을 제약할 수 있는 모범거래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올 3분기까지 전면 폐지하거나 개선한다. 이미 상위 법규가 만들어졌고, 기업의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공정위는 총 25개의 모범거래기준(9개) 및 가이드라인(16개)을 운용하고 있다. 공정위는 포지티브(허용) 방식의 규제를 네거티브(금지) 방식으로 전환해 기업활동의 자율성을 제고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현실과 맞지 않거나 기업활동을 사실상 과도하게 제약할 우려가 있는 모범거래기준과 가이드라인을 폐지하겠다고 지난 5월21일 밝혔다.

공정위가 폐지하기로 한 모범거래기준 및 가이드라인은 가맹사업, 연예매니지먼트 모범거래기준 등 18개다. 이중 5개는 위법성 심사지침으로 전환하며, 2개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법제화한다고 밝혔다. 정당한 이유 없이 기업활동을 제약하거나 다른 법령·고시에 이미 반영돼 있는 것들로 오는 9월까지 폐지할 계획이다.

빵집·편의점, 거리제한 폐지
그동안 제빵·커피(500m), 치킨(800m), 편의점(250m) 등은 거리제한기준으로 지정한 거리 내에서는 같은 브랜드 점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규제 개혁으로 이 같은 가이드라인이 없어졌다.
또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선불식 할부거래 소비자보호지침과 카페·블로그의 상업적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 2개는 올해 말까지 할부거래법과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에 주요내용을 규정하기로 했다.
이밖에 연예매니지먼트사의 중요정보 공개, 공정한 회계처리 등 수익분배, 출연강요 등 소속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의사결정 제약 금지 규정 등을 담은 연예매니지먼트 산업 모범거래기준도 폐지된다. 또 선불식 할부거래 소비자보호지침과 카페·블로그의 상업적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각각 할부거래법,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을 통해 법제화 할 방침이다.
정부의 규제개혁 방침에 따라 공정위는 2017년까지 소관 규제 394개 중 20%인 79건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우선 법적 규제로 공식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강제성을 띄는 모범거래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정비하기로 했다.
업종별로 점포간 거리제한 기준을 규정한 가맹사업 모범거래기준의 경우 8월 시행예정인 개정 가맹거래법상 부당한 영업지역침해 금지조항과 중복된다. 다만, 공정위는 위법성·부당성 판단기준 등 사건처리에 필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존치가 불가피한 하도급 서면발급·보존 등 5개 가이드라인은 올해 말까지 심사지침으로 전환하거나 상위 법령에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규제는 여전”…업계반응 ‘시큰둥’
공정위가 프랜차이즈 빵집·커피 가맹점간 거리제한을 폐지하기로 하자 관련업계는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런 반응이다.
한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정부 규제로 커피전문점 창업 자체를 꺼리는 예비 창업자들이 많았는데 이번 규제 완화로 창업시장에 훈풍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반겼다.
한 편의점 가맹본부 관계자도 “그동안 모범거래기준 등으로 신규점포 출점에 제약을 받아왔지만, 이번 조치로 출점에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점주나 동네업주 등이 피해볼 수 있다는 점 등을 들며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공정위의 방침이 업계 전반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며 “개정 가맹사업법 시행 전에 이미 계약서상에서 영업 지역을 명기하도록 되어 있는데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이제는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때인 만큼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빵집 관계자는 “공정위가 모범거래기준 폐지를 환영한다”면서도 “공정위의 모범거래기준보다 동반위의 출점제한이 더 강한 규제인 만큼 동반위의 규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편의점 점주는 “개정 가맹거래법에도 점주 보호조항이 있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됐지만 만일 가맹본부와 점주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을(乙)인 점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며 우려했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중기적합업종 지정 등 또 다른 규제가 있거나 계약상의 이유로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앞서 공정위는 가맹본부에 의한 인접지역 중복 출점으로 가맹점주들 피해가 커지자 제과·제빵, 피자, 치킨, 커피, 편의점 등 5개 업종에 신규출점 거리제한을 둔 모범거래기준을 만들었다. 업계는 상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제한했다는 점과 오는 8월14일 영업지역 보호 원칙이 담긴 개정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공정화에관한법)이 시행되는 만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결국 공정위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가 하나라도 없어지니까 환영하는 마음이지만, 모범거래기준보다 더 강력한 규제인 동반성장위원회의 중기적합업종 지정은 그대로 남아 있고, 여전히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업계 특성 및 현 상황에 맞는 유연한 법 제정·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제과협회 김서중 회장은 “대기업 빵집이 늘어날 수 있겠지만 동반위 권고에 따른 동네 빵집 500m 거리 제한은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면서 “골목 상권 침해 소지가 생길 경우 즉각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과 맞지 않은 규정, 기업 활동 과도하게 제약
김성하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현실과 맞지 않은 거리 규정 등이나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할 우려가 있는 모범거래기준·가이드라인은 폐지하기로 한 것”이라면서 “포지티브(허용) 방식의 규제를 네거티브(금지) 규율로 전환해 기업 활동의 자율성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인숙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상위 법령에는 무엇이 위법인지 모호하게 규정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위법성을 판단할지 기준도 마련하지 않고, 모범거래기준만 없애면 경제적 약자 보호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면서 “굳이 모범거래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없앨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국장은 “원래 공정위는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곳이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 법령을 만드는 곳인데, ‘이렇게 하는 것이 모범이고 그 외의 것은 틀렸다’는 식의 포지티브한 규제는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4월1일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제13회 공정거래의 날’ 기념행사에서 “시장 상황이 변화됐으면 거기에 맞춰서 변화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며 “규제의 필요성과 현재 시장의 적합성과는 다른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꼭 필요한 규제라 하더라도 만들어질 당시 상황에 맞춰진 것들은 현재 추세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재판매가격유지, 모범거래기준 등을 꼽았었다. 노 위원장은 “기준이 숫자로 되어 있는데 현실과 안 맞는 것들이 있다”며 “계절이 바뀌면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시장 상황은 변했는데 옛날 것 그대로 가면 시장경제는 정확히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규제(Regulations)는 필요하면 과감하게 폐지하거나 완화하되, 규범(Rules)은 원칙적으로 지켜나가겠다”며 “규제와 규범을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 소관 규제는 일반적인 규제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감안해 우선 유형별로 분리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소관 규제는 총 482건으로 이 중 규범이 60%, 규제가 40%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지자체의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과 관련해서는 “지자체 규제도 목적이 여러 가지”라며 “지자체는 투자유치가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에 경쟁제한성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