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 댐 건설 강행의혹, 지역 주민· 환경단체 한탄강 댐 백지화를 위한 투쟁 심화
정부가 한탄강 댐에 홍수 조절 전용 댐 건설을 확정함에 따라 8년을 끌어온 논란은 일단 종지부를 찍었다. 정부의 결정대로 댐과 천변 저류지가 건설되면 1996~1999년 세 차례에 걸쳐 국지성 집중호우로 커다란 피해를 보았던 경기 북부 지역 주민들은 홍수 걱정을 덜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수몰로 인한 재산 피해와 불편을 겪게 될 지역 주민과 생태계 파괴를 우려 하는 환경단체의 반발을 무마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1996~1999년 산사태와 하천 범람으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반복되자 한탄강에 댐 건설을 추진하게 됐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01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와 포천군 창수면 신흥리를 연결하는 길이 705m, 높이 85m, 저수용량 3억1,100만t, 홍수 조절 용량 3억500만t 규모의 한탄강 댐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그러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환경 훼손, 예산 낭비 등을 내세우는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로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2003년 7월 말에야 끝났다. 그러나 주민들은 타당성 조사가 왜곡됐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2004년에는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조정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정부는 지난해 8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한 ‘임진강 유역 홍수대책 특별위원회’와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1년간 임진강 유역 홍수 대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왔다.
댐건설, 경기북부 발전 위한 것인가
정부가 한탄강 댐 건설과 관련 수차례 말을 바꾸면서까지 강행하려는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7월 23일 한명숙 총리가 “그동안 너무 오래 끌었던 사안”이라며 결론을 서두르자 도와 해당 시·군, 주민들은 그 배경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명목상 정부는 임진강 유역 홍수 방지를 위해 홍수조절용 댐으로 한탄강 댐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집중호우로 경기북부지역이 물에 잠기자 곧바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필요성이 거론됐던 한탄강 댐의 실체가 이날 결국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한탄강댐 건설 과정을 바라보는 도와 주민들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도는 한탄강 댐 추진을 경기 북부지역의 침수를 방지해 각종 산업시설을 유치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하나로 보고 있다. 최근 수도권 규제에 따른 보상으로 정부가 경기도내에서 비교적 개발이 덜된 북부지역을 배려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주장이다. 또 정부가 최근까지 추진했던 개발과 관련된 각종 프로젝트가 환경단체 및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데 대한 반발로 강행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참여정부 임기를 1년 반 정도 남기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도 담겨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철원주민들은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등 또 다른 규제가 이뤄질 것을 걱정하는 상류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도 관계자는 “일부 수도권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도가 또다시 피해를 입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며 “현재로서는 정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전면 재검토의 결과는… 전과 동일?
정부는 홍수조절용 댐과 함께 천변 저류지도 건설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정부가 밝힌 한탄강 홍수조절용 댐은 평상시에는 자연 상태로 유지되고 큰 비가 올 때만 물을 담아 홍수를 조절하는 개방형 댐이다. 임진강 특위는 그동안 관련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 평가위원회’를 통해 △둑 높임 △홍수조절용 댐(한탄강 댐) △둑 높임+천변 저류지 △홍수조절용 댐+천변 저류지 △홍수조절용 댐+둑 높임+천변 저류지 등 다섯 가지 방안을 놓고 임진강 유역 홍수대책 방안을 재검토해 왔다.
하지만 이 결정을 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8월 22일 임진강 특위가 한탄강댐 건설여부를 놓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동안 철원주민들은 오후 1시부터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 모여 ‘한탄강 댐 백지화 촉구대회’를 개최했다. 환경운동연합도 논평을 통해 ‘건설족의 배만 불리는 어리석은 결정’이라며 정부의 결정에 반발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오늘의 결정은 04년 11월 대통령직속지속가능발전위(PCSD)의 결정과 다를 바 없다. ‘천변저류지 두 곳을 만들고 규모가 작은 홍수조절용 댐(한탄강 댐)을 만든다’가 04년 지속위의 결정이었다. 오늘 임진강특위 역시 ‘천변 저류지를 만들고 규모가 작은 홍수조절용 댐(한탄강 댐)을 만든다’는 결정을 내렸다. 2년의 기간 동안 참여정부는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세련되게 국민을 속이고 절망 속으로 빠뜨리는 기술만 연구한 듯하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들은 “임진강 유역의 홍수대책은 이미 완벽하게 세워져 있다. 때문에 한탄강 댐은 지역주민들에겐 불필요한 거대 구조물일 따름이고 참여정부를 주무르는 건설족들의 배만 더욱 채워줄 것이다. 오늘 정부는 한탄강 댐을 결정해 버렸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다”라고 말해 정부의 이번 결정이 앞으로 더욱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을 예고했다.
철원주민 한탄강 댐 왜 반대하나
정부의 한탄강댐 건설 강행 결정에 철원주민들이 극렬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완공 후 상수원 댐으로의 전환이다. 홍수조절용 댐으로 국한해 건설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는 것. 우선 최근 신도시로 개발 중인 경기 파주와 포천, 양주지역에 인구가 급격히 유입되고 있지만 이들 지역에 공급할 상수원 확보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팔당댐의 물줄기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경제적· 현실적 측면에서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 있다. 댐 완공 후 가뭄이 닥치면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 운운’하며 ‘1조원을 들여 건설한 댐을 왜 물을 가두지 않느냐’며 다목적댐으로 전환하라는 주장이 들고 일어서리라는 짐작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의심한다. 이런 방법으로 한탄강 댐이 다목적댐으로 전환되면 철원지역은 경기북부 지역에 맑은 물을 공급해야 하는 임무를 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족쇄에 묶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우려한다.
과거 철원은 금강산 관광의 출발지이자 경원선의 중심역으로 함경남도와 강원북부지역의 물류 중심지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변방 오지로 전락, 군사시설 보호구역에 묶여 개발이 극도로 제한돼 주민들의 생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원주민들은 남북통일 이후 옛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고향 땅을 지키며 견뎠지만 통일 뒤에도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그린벨트’에 묶여 버린다면 50년을 기다려온 꿈이 영원이 수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댐 건설 강행하려는 정부의 의도
정부의 주장대로 한탄강 댐이 1년에 15일만 물을 가두는 홍수조절용 댐으로 건설된다면 이는 화천의 ‘평화의 댐’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평화의 댐은 북한의 금강산댐의 방류로 인한 수도권 침수를 막기 위해 건립됐다. 따라서 평소에는 수문을 모두 개방해 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임진강 유역인 파주, 문산의 상습 수해를 막기 위해서는 임진강 본류에 홍수조절용 댐을 세워야 효과가 있다. 현재 북한에서는 임진강 상류에 댐을 건설 중이다. 만일 북한강 상류에 있는 금강산댐이 위험하다면 북한의 임진강 댐도 위험한 존재다. 따라서 임진강 댐의 불시 방류로 인한 파주, 문산의 침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임진강 본류에 평화의 댐과 같은 대응 댐이 절실한 실정인데 정부는 이 점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똑같이 북한지역에 있는 두 곳의 댐을 두고 금강산댐은 위험하고 임진강 댐은 안전하다는 모순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셈. 임진강의 지천에 불과한 한탄강은 임진강 전체 수량에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탄강 수량의 전체를 계산했을 때 수치이며 연천 상류에 세워지는 한탄강 댐은 연천과 포천지역에서 유입되는 수량은 제외되고 순순하게 철원과 포천 관인면 지역에서 발생되는 수량만 다스릴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탄강 댐으로 인한 임진강 유역의 홍수 조절 능력은 10%에도 못 미치게 돼 홍수조절 능력이 미약 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가 1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한탄강 댐 건설을 강행하려는 의도는 토목사업에 기대어 사는 수자원공사와 시공업체인 대림산업, 건설관련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의 생존권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철원주민들의 시각이다. 따라서 철원주민들은 “과거 파주, 문산 지역의 홍수로 발생한 막대한 재산피해와 130여명의 인명피해는 대부분이 임진강 범람과는 무관한 산간지역의 산사태로 인한 것”이라며 “임진강 바닥보다 낮은 저지대에 건설된 파주, 문산의 침수를 막기 위해서는 부실한 배수시설 정비와 제방 개보수, 주변 지천 정비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댐 건설, 장점보다 부작용·피해 더 커
정부가 한탄강 댐 강행을 밝히면서 댐의 효율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댐 건설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된 반면 부작용과 피해는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아 건설이 일방적으로 강행된 경우가 많았다. 이번 한탄강 댐의 경우 정부 역시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측면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댐 건설에 따른 가장 큰 장점은 하류 지역의 홍수조절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1998년 중부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릴 당시 소양강댐은 3억 톤, 충주댐은 4억 톤의 물 유입량을 방류하지 않고 저장해 한강수위를 2.6m 낮췄다. 소양강댐과 충주댐의 홍수조절 능력은 최대 13.5억 톤으로 서울시 전체를 수심 5m가량 덮을 수 있는 규모이다. 안정적으로 용수를 공급한다는 점도 장점이다. 1978년과 1981년, 1982년, 1992년, 1994년 전국적인 가뭄이 발생했을 때 댐 인근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발전에 따른 전력생산도 댐의 역할로 과거 원자력 발전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큰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비중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이밖에 저수된 물이 수영과 수상스키 낚시 등 레저 활동의 장소가 되는 점도 있다.
반면 당장 댐 건설로 수몰되는 지역민들이 집단 이주한다는 점이 큰 피해이다. 1973년 소양강댐 건설 당시 농경지 782만평을 비롯해 1,519만평이 수몰돼 3,100여 가구 2만여 명이 고향을 떠났다. 1965년 춘천댐 건설로 5,300여명, 1967년 의암댐 건설로 5,000여명이 고향을 떠났지만 당시 보상은 대물보상 위주의 1회성에 그쳤고 이주민 중 상당수는 도시 빈민계층으로 전락했다. 수몰지역 주변에 사는 주민들도 댐 담수로 교통로가 끊겼으며 심하게는 오지로 전락하는 피해를 입었다. 안개일수도 증가해 인근 주민들의 건강도 나빠지고 있다. 춘천댐과 의암댐 소양강댐 건설은 춘천지역 안개일수를 연평균 28일에서 3배에 달하는 78일로 증가시켰다. 댐의 장기 저류는 인근 생태계도 변화시킨다. 수질이 악화돼 녹조현상이 나타나고 홍수 시에는 쓰레기가 집중 유입되거나 탁류가 발생한다. 이와 함께 홍수기 때 댐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정신적 피해와 농작물 피해 등도 노출되고 있다.
댐건설로 이처럼 큰 피해가 발생하지만 지원은 말 그대로 쥐꼬리 수준이다. 댐 주변지역을 위한 지원 사업이 댐 건설법으로 확정되면서 1999년 18억 원으로 시작된 지원금이 2000년에는 80억 원 정도로 확대됐지만 주민들이 받는 피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소양강댐의 경우 1989년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법률이 제정되면서 지원을 받게 됐는데 1990년 총 지원 액수는 6,913만원에 불과했고 2001년에도 11억7,385만원에 그쳤다. 이 같은 액수는 주민들이 받고 있는 피해와 불편, 경제적 손실에 비춰봤을 때 지원효과가 거의 없을 정도로 미미한 규모이다. 더욱이 지난 2000년 댐건설법 제정으로 지원 액수는 증가했지만 초점은 새롭게 건설되는 댐 주변지역에 맞춰져 있다. 이름만 그럴듯해 주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이에 따라 지금부터라도 수몰주민에게 각종 정신적 손실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하고 댐 주변지역 주민들에게는 발전판매수입금과 생활·공업용수 판매 금액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또 지역의 실질 소득 증대를 위한 지원과 대체산업 육성을 위한 집중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