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고 이루고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소통을 통해 현대인들의 삶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준다. 이곳이 바로 ‘드림공화국’이다. 소통의 아이콘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이곳의 손진기 대장이 본사 콘텐츠사업단 대표로 합류, 문화사업과 미디어의 만남으로 소통의 폭을 더욱 확대하고자 한다.
소통의 아이콘 손진기의 ‘꿈을 만드는 토크쇼’, 이번에는 19년 만에 영화 ‘시선’으로 돌아온 이장호 감독과의 뜻 깊은 만남이다.

손: 새로운 것들의 탄생을 알려오는 계절, 봄입니다. 볼 것이 많아 봄이라고 한다는군요. 여러분들은 이 봄에 무엇을 새롭게 발견하셨나요? 저는 요즘 새로운 영화 ‘시선’을 개봉해서 너무나 바쁘신 분 이장호 감독님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포스가 느껴지는데요. 별들의 고향으로 그것도 데뷔작인데 대히트를 치셨습니다. 20대 때셨지요.
이: 원래 작품은 친구인 최인호가 신문 연재소설로 히트를 친 것이 큰 덕을 봤지요. 중·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그래도 원작자에게 작품을 사야 하니까 동생한테 “야, 너 한 학기 정도 좀 쉬어라”하고는 동생 등록금 15만 원을 주고 원작을 사서 시나리오화 했지요. 원작이 좋았어요.
손: 그 당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이었지요?
이: 당시 서울에서만 40만 명이 넘었으니까 대단한 거였지요. 국도극장 앞이 장사진을 이뤘고 암표장사도 덕 좀 봤을 거예요. 안인숙이라는 여배우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구요. 제가 그 작품으로 대종상 최우수감독상을 받았으니까요. 대학 축제에서는 별들의 고향 대사가 축제의 하나의 콘텐츠가 되곤 했었지요.
손: 아, 저도 생각나요. 그대 극중에 문호라는 인물을 신성일 씨가 했었지요. “경아, 오랜 만에 함께 누워보는군.” 그럼 경아 역할을 했던 안인숙 씨가 “추워요. 꼭 껴안아주세요.” 아~ 이 대사는 정말 20년이 넘도록 유행했었지요. 그런데 왜 중도에 작품을 쉬셨어요?
이: 그 이후에 만드는 작품마다 히트를 치는 거예요. ‘어제 내린 비’도 그랬고. 말하자면 조감독 생활하고 감독으로 만든 첫 작품이 대히트를 치고, 연속해서 히트를 치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거죠. 준비 안 된 감독의 작품이 히트를 치고 돈이 들어오니까 대마초를 하게 되고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 당시 많은 연예인이 잡혀 갔는데 영화인으로는 제가 대표로 들어갔지요. 하하하. 그 후 한 4년간 감독 자격 박탈을 당해서 작품 활동을 쉬었어요.
손: 참 힘드셨겠어요.
이: 아니에요. 오히려 내게는 좋은 기회였어요. 제가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래서 사회 고발적인 영화, 전두환 정권이 가져다 준 사회적 부조리에 눈을 뜨고 사회고발적인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손: 그 때 나온 작품들이 어떤 작품들이었나요?
이: 바보선언, 외인구단, 어둠의 자식들, 바람 불어 좋은 날, 일송정 푸른 솔은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손: 그런데 그 후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다시 에로와 멜로로 돌아온 느낌이 드는데요. 예를 들면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같은…. 이게 어찌된 건가요.
이: 영화사에서 계약이 줄을 이었지요. 시쳇말로 돈 맛을 좀 봤지요. 그런데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 반사회적인 작품들을 하니까 그냥 두었겠습니까? 안기부 블랙리스트 오르고… 현실에 타협했지요. 돈은 벌면서 생활은 좋아졌지만 타락하게 되었던 시기, 나의 정체성을 잃었던 시기였습니다.
손: 그래도 안성기와 이보희라는 배우를 발굴해서 지금의 국민 배우를 만드신 것도 크게 평가받고 있던데요.
이: 안성기 씨는 정말 국민배우예요. 원래 아역 때부터 연기를 했었고 이후 작품들에서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내가 발굴하고 키웠다기 보다는 원래 그들이 너무 좋은 연기력과 성품을 가지고 있었어요.
손: 감독님 동생 이영호 씨도 배우지요?
이: 예. 사실은 저보다 제 동생이 더 똑똑하고 잘 생겼어요. 연기도 좋고 신인 연기상도 받고 했지요. 그런데 동생이 점점 시력이 어두워지는 병에 걸렸어요. 그래서 지금은 완전히 안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동생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 ‘시력’입니다.
손: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감독님 이번에 19년 만에 좋은 작품을 만드셨어요. ‘시선’이란 작품인데요. 일종의 기독교적인 종교영화인가요?
이: 저는 27년 내리막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동안 내면에서 앓아왔던 것들이 내 인생에 약이 되었고, 사실 이 정도의 기간을 계속 내리막길로만 가다가는 내 인생에 오르막길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영화의 원작은 일본 소설인데 우리나라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관점에서라기보다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손: 저도 이 작품의 예고편도 보고 영화관에 가서 보기도 했는데요, 멋진 말이 나오지요. “배교도 선교다.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큰 감동이었고 많은 것을 느끼게 했던 영화인데요. 감독님 얼마 전에 어벤져스 영화 촬영이 서울에서 있었잖아요. 어떤 국가적 이익이 있고 영화산업은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정말 좋은 기회지요. 이건 우리가 얻은 천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효과뿐 아니라 국가홍보차원에서도 큰 이득이 있고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 될 때는 영화에 대한 관심도 엄청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좀 불편하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손: 감독님 혹시 자녀 중에 아버지를 따라서 감독이 되겠다는 자녀는 없나요?
이: 별들의 고향이 히트할 때 애들이 어렸는데 에로물이니까 친구들이 놀렸나 봐요. 너네 아버지는 이상한 영화만 만든다고. 그래서 애들이 아버지가 영화감독이라는 것을 싫어해요. 두 녀석이 있는데 딸은 프랑스에서 무대 감독을 하고 있고 아들 녀석은 화가로 그림 그리고 있어요.
손: 감독님 오늘 나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19년만의 스크린 나들이 대박 나시기 바랍니다.
이: 예. 오늘 불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