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평양 남진주. 북한에 평양냉면이 있다면 남한에는 진주냉면이 있다. 고기육수와 동치미국물로 맛을 내는 평양냉면을 단정하다 한다면, 해물육수와 간장의 조화, 그리고 듬뿍 올린 고명의 진주냉면은 화려하다 할 것이다. 1945년 광복이 있던 해, 경남 진주에서 지역의 옛 맛을 다시 잇기 시작한 진주냉면. 황덕이 창업자의 뒤를 이어, 현재까지 그의 후손들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점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고 있다. 모친과 함께 진주냉면 하단점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현재 대연점과 해운대점으로 그 역량을 확장하고 있는 이한보 대표를 만났다.
진액을 얻기 위한 노고

믿고 기다리면 손님들이 먼저 인정할 것
지난 70년간 바뀐 강산만큼이나 소비자들의 입맛도 변화해 왔다. 진주냉면 역시 소비자들의 변화한 입맛에 맞춰 진화해 왔다. 지난 2007년 이 대표는 진주에서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부산 하단점을 열었다. 초반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밀면’이라는 부산 대표음식의 벽에 부딪혔던 것. 강렬한 밀면에 익숙해 있던 입맛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았다. 면의 주재료인 메밀과 전분, 밀가루의 비율을 조절하고, 육수에 들어가는 해물의 양과 불의 세기 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공부하고 연구했다. 진주냉면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부산의 미각을 자극할 특별한 맛. 수차례의 시도 끝에 마침내 그의 노력은 ‘줄서서 기다리면서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이른바 ‘맛집’이라는 결과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갔다. ‘맛있는 진주냉면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건강한 진주냉면에 도전해보자.’ 그는 하단점에서의 아쉬웠던 점들을 개선하고자 대연점과 해운대점을 열기에 이른다. “‘이전까지는 만드는 방법 즉 조리법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재료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대표는 일본의 몇 대에 걸쳐 내려오는 장인정신이 진주냉면에도 깃들기를 원했다. 당장의 이익 보다는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길을 택한 것이다. 현재 그는 직접 간장을 담고, 육수를 끓이고 또 손수 재료를 선별하고 있다.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의 소산물, 물비빔냉면


향기로운 맛을 깊은 옹기에 담은 미옹면가
이 대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말과 명절을 가리지 않고 가게 문을 연다. ‘다른 음식점에 기회를 주지마라’라는 황덕이 창업자의 말을 기억하는 까닭이다. 그는 외조모가 요구한 성실함에 투철한 서비스정신까지 겸비하고자 노력해 왔다. 가게를 찾는 모든 손님들이 귀하고, 같이 일하는 종업원들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지난 시간들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대표는 ‘사장이 표현하는 방식을 손님은 그대로 흡수한다’는 내용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고객 한명 한명에 최선을 다해 만족도를 높이려 한다. 진주냉면의 프랜차이즈화 또는 해외진출에 대한 질문에 그는 “대중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통을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하다. 단순한 대중화가 아닌, 70년의 전통을 지켜온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성급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내실을 다질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라는 답을 내 놓았다. 또 ‘진주냉면’이던 상호가 ‘미옹면가’로 바뀐 이유로, 창업자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의 맛을 지키고자 ‘진주냉면’으로 상표를 등록하려 했으나, 이미 각지에 진주식 냉면을 판매하는 곳이 많아진 까닭에 특허등록이 반려된 배경을 들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진주냉면 대연점과 해운대점을 미옹면가 대연점과 해운대점으로 새단장하고 전통을 지켜나갈 것을 다짐했다.
향후의 계획에 대한 물음에 이 대표는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그러면서도 전 세대를 어우를 수 있는 푸근한 음식점’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하며, 메뉴개발이나 재료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또 ‘자신의 음식에 대한 가치는 스스로 높이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작은 부분도 소홀히 지나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진주냉면의 맛은 간장의 숙성이 결정합니다. 간장은 오래될수록 좋은데, 요즘엔 이 간장 공부에 푹 빠져있습니다.” 진하게 숙성된 간장만큼이나 묵직해질 이한보 대표와 미옹면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