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섹스포’ 개최, 논란만 남기고 성과없이 끝나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도 성교육 및 에이즈, 소외된 성까지도 아우르는 박람회를 치르겠다던 ‘2006년 서울 섹스 에듀 엑스포(Sex Edu Expo, 이하 섹스포)’가 8월 31일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개최됐다. 개최 전부터 여성단체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은 탓인지 주최측인 (주)섹스포는 이날 란제리 패션쇼, 누드 사진전, 스트립쇼 등의 부대 이벤트를 모두 취소했다. 이번 섹스포 논란은 양지에 드러난 우리 사회의 성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섹스포 주최측은 “국내 첫 성박람회를 통해 성인을 위한 성교육장을 마련해 음지에 머물던 성을 양지로 끌어 올리겠다”며 행사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호주나 중국,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도 거대하게 열리고 있는 성박람회처럼 우리도 이제 음습한 성에서 벗어나 성을 ‘오픈’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행사장에서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김모씨(30·여)는 “돈 주고 성을 사는 것보다 당당하게 욕구를 푸는 것이 오히려 더 건전하다고 본다”며 “첫 박람회라 미흡한 점이 많지만 음지에 숨겨진 우리의 성문화에 삐뚤어진 점이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화점 란제리쇼나 성인용품 판매 등이 엄연히 일상화된 상황에서 섹스포가 오히려 ‘약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행사장을 찾은 이모씨(30)는 “미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성박람회를 다녀봤지만 섹스포는 동네 가게 수준”이라면서 “자꾸 규제하면 오히려 성이 더 왜곡되게 마련인데 이번 행사도 경찰이나 시의 규제로 질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행사가 우리 사회 성문화를 보여주기보다 남성 위주의 성충족을 위한 것일 따름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살짝 엿본 허름한 섹스포 현장
국내 첫 섹스박람회 ‘2006 서울 섹스 에듀 엑스포’(이하 ‘섹스포’) 개막 첫 날. 개장 시간인 오전 11시 박승각 섹스포 대표이사가 전시장 입구에서 “주최 측의 능력부족으로 당초 기획했던 세미스트립쇼. 트렌스젠더 선발대회. 미스섹스포 선발대회. 란제리 패션쇼. 누드 사진전 등 이벤트 행사를 모두 취소하게 됐다”며 행사 파행의 시작을 알렸다. 행사가 대폭 축소된 것은 모델들이 공연이 불가능한 일반 관광비자로 입국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부평에서 올라온 아마추어 사진작가 박모씨(55)는 “누드모델 사진을 찍기 위해 멀리서 일부러 왔는데 사전공지도 없이 갑자기 이벤트를 취소해 버리면 어떡하느냐”며 “주최 측의 사기행각에 놀아난 기분”이라며 분개했다.
전시장 내부를 둘러보니 허름한 ‘성인용품 프랜차이즈 전시회’를 방불케 했다. 업체를 구하지 못해 비어있는 부스가 태반이었고 그나마 참가단체들마저 국내 성인용품점 프랜차이즈 업체들이었다. 전시된 제품도 진동기 등 같은 종류의 성인용품이 진열됐을 뿐이다. 심지어 의류 이월상품 . 건강용품. 아이디어상품. 먹거리 등 섹스포 본래 취지와는 맞지 않는 물품을 전시하는 부스들도 상당수였다. 행사장 내 3개 전시관 중 성인용품 관련 부스는 하나의 부스에 몰아넣어도 충분해 보였다. 의류를 팔러 이 곳을 찾았다는 한 업자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성인용품 만으로 전시회 부스를 다 채우기가 어렵다보니 다른 종류의 물품들도 다 받아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1시쯤 ‘에로영화 촬영 이벤트’ 현장에 관람객들이 모여들였다. 이번 박람회의 유일한 이벤트였던 가면을 쓴 에로 여배우 2명이 등장하자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된 것. 하지만 침대에 잠깐 앉아 있다가 곧바로 나가버리자 관람객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한 60대 관람객이 “우리가 어린 애도 아니고 배우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앉아있는 것이 영화 촬영이라고 하면 믿겠느냐”고 소리치자 진행요원도 속에 쌓여있던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라고 이러고 싶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내신 돈이 아깝지 않은 이벤트를 보여드리려고 했는데요. 서울시가 못하게 막는 것을 어떡합니까?”
이번 행사를 보고 나온 관람객들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며 이중 100여명은 매표소로 몰려가 문을 두드리며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잠실에 사는 최모씨(80)는 “성인용품 몇 개 깔아놓고는 왜 1만원이나 하는 비싼 돈을 받는지 모르겠다”며 화를 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온 한 장애인 관람객은 “이번 박람회의 모토 중 하나인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곳을 찾았는데 와 보니 그저 홍보를 위한 문구였다는 것을 알고는 어이가 없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아름다운 성' 주제로 한 섹스포 실패
섹스포는 도심 한복판에서 음지에 있는 성을 양지로 끌어내겠다고 야심차게 주장했다. 온전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이제는 성을 가감 없이, 공개적으로 드러내보자고 했다. 이미 외국에서 37년 전에 개최했던 섹스포가, 한국에서 열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성은 생활이고 이것 없으면 살 수도 없는데 드러내 놓고 즐겁게 즐기자”라는 것이다. 케이블 TV는 물론이고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에서 이미 ‘야한 이야기’들이 적나라하게 방송되는 마당에 이상 숨기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4일 동안 열린 섹스포의 행사일정은 우여곡절, 파행의 연속이었다. 세미스트립쇼, 누드사인회, 연인들의 키스대회, 트렌스젠더 선발대회 등 야심찬 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여성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서울시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사를 할 경우 공연장을 폐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국세청은 “성인 용품의 불법 수입 여부를 조사 하겠다”고 으름짱을 놓았다.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온 외국의 스트립 모델들은 그들의 늘씬한 몸매를 뽐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잔뜩 기대를 품고 왔던 많은 사람들은 분개했고, 환불요구를 하는 등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름다운 성’을 주제로 한 섹스포가 실패한 이유는 뭘까. 여성단체들은 성을 이용한 뻔한 상술로 성담론을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고 했고, 주최측은 우리사회의 위선 때문이라고 했다. 주최측은 스트립쇼를 취소하는 대신 매 시간마다 한국인 여성 모델과 에로 배우들이 ‘옷 벗기 게임’을 벌였다. 제법 파격적이고 질퍽한 성을 이야기 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모으려고 했다. 하지만 ‘땜방공연’은 대회를 싸구려로 만들어버렸다. 박람회를 찾은 이모씨(60)는 “솔직히 유흥업소에 가면 다 할 수 있는 쇼를 보려고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성인 용품 늘어놓은 재래시장과 다를 것이 없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여자 친구와 함께 왔다는 황모씨(28)도 “현실적으로 성에 관한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성 박람회라는 말이 우습다”며 “오지 않겠다는 여자 친구를 끌고 오다시피 했는데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성교육 박람회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는 행사 내용도 문제였다. 여성 단체 등이 지적한 핵심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관계자는 “스트립쇼나 성행위 용품 전시가 성교육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성산업자와 남성이 말초적인 본능만을 만족시키는 행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구나 ‘아름다운 성’을 주제로 한 세미나와 성에 대한 상담도 상당수 취소돼 성 교육, 저출산 해소 등 주최측에서 내세웠던 구호는 무색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등 8개 여성단체가 모인 여성폭력추방공동행동은 “성교육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사실은 성산업인들의 이익을 위한 행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에 대한 성상품화를 합리화하고 상업적으로 여성의 성을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하는 상술에 불과하다는 지적이었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을 위한 자위기구 등 섹스용품들을 전시하는 것도 성기에만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활동가는 “숨어있는 성을 당당하게 드러낸다는 것을 표방하고 있지만 기존의 성기중심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성문화적 관습과 인식을 있는 그대로 재현, 상품화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성에 대한 담론을 무조건 표면화하는 것을 넘어 어떤 담론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최측도 이번 행사가 반쪽이었음을 인정했다. 회사측 한 관계자는 “우리가 준비한 것에 1/10도 제대로 치러 지지 못했으니 우리가 생각해도 유아적인 수준”이라고 한탄했다. 박승각 (주)섹스포 대표이사는 여성단체 등에 대해서 “생각이 다름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반대를 하려면 한번이라고 행사를 본 뒤, 어떠한 것이 잘못됐는지를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섹스포에서 전시ㆍ판매한 성인용품 상당수가 밀수품 등 불법 성기구로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특히 수입이 불가능한 일본제 ‘섹스 돌(sex doll)’ 등이 버젓이 전시되어 관세청과 경찰이 부랴부랴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관세청은 섹스포 오픈 당일 날 보도자료를 내고 “전시 물품 상당수가 국내로 불법 반입된 것으로 보고 밀수 여부를 조사중”이라며 “불법 수입 음란물로 판명날 경우 전시ㆍ판매업체를 관세법 위반으로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날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세텍ㆍSETEC)에서 열린 ‘섹스포’ 현장은 성(性)교육박람회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조잡한 성인용품이 즐비했다. 특히 실리콘과 라텍스 등 소재를 사용해 여성 신체와 성기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섹스 돌'과 남성의 특정 부위 등을 본떠 만든 성기구가 전시회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L섹스용품 매장의 안내원은 “섹스인형과 여성용 자위기구 모두 일본에서 들여온 제품으로 촉감과 기능이 실제 인체와 똑같다”며 선전 중이었다.
이날 현장을 둘러본 서울세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여성 성기를 묘사한 섹스인형, 자위기구 등은 모두 수입 불허 제품”이라며 “일부 섹스인형은 인형 품목으로 수입됐지만 성기구로 사용될 경우 명백한 관세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같은 불법 섹스용품은 신체와 직접 접촉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인체 유해성 검사를 전혀 거치지 않아 안전성 논란까지 제기되었다.
이제, 양지로 드러나야 할 성문화
그럼에도 이번 ‘섹스포 소동’은 우리사회에 솔직하게 성을 말하자는 화두를 던졌다. 선정성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번 행사에 큰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대부분의 행사들이 취소됐음에도 불구하고 1만여 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특히 중년이상 부부들이 의외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주최측에 따르면 참여 관객의 절반 이상이 40대 이상의 중년층. 갈수록 노골화되는 성개방에서 소외됐던 이들은 행사장에 가득 진열된 각양각색의 성인 용품을 때로는 진지한 눈빛으로, 때로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지켜봤다. 성인 용품 진열점에서 만난 최모씨(46), 그는 “나이 들어 이런 것 쓰는 거 민망하기도 하지만 결혼해 보면 그것(부부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거요”라며 웃었다.
또 하나, 몇몇 장애인들이 행사장에서 스태프로 활동하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영화 ‘오아시스’ 등을 통해 장애인의 성생활이 공론화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이 성을 바라는 것을 ‘사치스럽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풍토임을 감안하면 성박람회에 장애인이 나타난 것은 의외였다. 서울시 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장애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에 대한 욕구를 가지는 것은 당연함에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당연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이번 성박람회를 계기로 장애인의 성문제도 공론화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겉으로 엄숙한 우리의 성문화에 대항한 대대적인 첫 반란은 성담론을 끌어내기는커녕 세인들의 말초적인 욕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 여성학자는 “성으로 돈을 벌겠다다는 얄팍한 상술도 문제지만, 성을 소재로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하는 진영도 성을 양지로 끌어내는데 방해가 된다”고 했다. 섹스포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거부감 없이 개최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자유로운 일탈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반대의견 많아 “아직은 시기상조?”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전용 박람회인 ‘2006 서울 섹스포’를 둘러싸고 건전한 성문화 양성이라는 평가와 성 상품화라는 비난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성인들은 이번 행사 개최에 ‘찬성’보다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 조사결과 이번 박람회에 대해 성인 응답자의 45.6%는 “성을 상품화한 행사”라며 개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에 비해 “건전한 성문화를 양성화 하는 것”이라며 긍정 평가한다는 응답은 37.8%로 다소 낮았다. 성별로는 남녀 모두 개최 찬성 의견보다는 반대 입장이 많았으나 남녀의 답변이 다소 다른 양상을 보였다. 남성들은 반대(46.7%) 의견과 찬성 의견(42.7%) 간에 큰 차이가 없었던 반면 여성들은 반대 입장이 44.6%로 찬성 의견 33.2%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를 보여줬다. 연령별로는 환영한다는 의견은 20대에서 53.7%로 가장 높았고, 30대(40.8%), 50대 (31.7%), 40대(28.2%)의 순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명물’ 호주 섹스포
한국에서는 ‘섹스포’가 처음 열리지만 호주는 벌써 10년째 섹스포가 열리고 있다. 10년이나 된 행사인 만큼 행사의 규모부터가 남다르다. 올해 5월 호주 섹스포에 설치된 ‘섹스 트레인’은 제작비만 해도 50만 달러가 들어간 놀이기구. 놀이공원의 ‘유령의 집’처럼 관람객들이 들어가 구경하는 이 트레인은 유령이나 흡혈귀 인형들이 겁을 주는 대신 세계 각국의 성행위를 실연하는 볼거리로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이를테면 아내가 부엌칼로 남편을 거세한 1992년 보비트 사건도 재현되는 식이다.
섹스포는 이미 세계적인 성박람회다. 세계 최초의 성박람회는 1969년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개막식부터가 화제였다. 형식적인 테이프 컷팅도 개회사도 필요 없었다. 테이프 컷팅 대신 여자 속옷을 가위로 잘랐고 개회사는 반라의 여성에게 보디페인팅을 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행사에 몰려든 전세계 남성들은 가슴을 드러낸 도우미들과 가랑잎으로 가릴 곳만 가린 남자 악단들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과 함께 즐거움을 만끽했다.
37년이 지난 2006년 현재 섹스포는 남녀가 함께 즐기는 즐거운 행사가 되었다. 섹스포 논쟁으로 한국이 들썩였던 것과는 달리 이미 많은 국가들이 섹스포를 열고 있다. 호주는 물론 싱가포르, 중국 등에서도 성박람회가 성대하게 열린다. 엄격할 것 같은 싱가포르 경찰도 관람 연령을 21세 이상으로 제한했을 뿐 작년부터 행사허가를 내줬다. 유교의 본산인데다 공산주의 국가이기도 한 중국도 매년 ‘중국 국제 성인용 물품과 출산 건강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때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 독일 등 동구권 국가들도 90년대부터 섹스산업 관련 전시회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