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차별화 약발 안 먹히고, 중도보수층도 갈수록 외면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이명박 전 시장에 이어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고 건 전 총리도 희망연대 출범을 계기로 대중과의 스킨십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일선 정치와는 다소 거리를 둬 오면서 현안에 대해 가급적 언급을 자제해 온 고 건 전 총리는 최근 들어 현장속으로 파고드는 다소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정치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건과 희망연대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고건 전 총리가 달라졌다. 그동안 정치 현안에 관한 언급을 자제했던 그가 최근에는 여야가 충돌하는 민감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도 현 정부의 정책방향과 각을 세우는 쓴소리가 대부분이다.
성균관대가 개최한 취업박람회에 희망연대 공동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고 전 총리는 “더 이상 고용 없는 경제성장은 안되며 일자리를 만드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필요하다”며 “청년실업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최악의 실업난에도 불구하고 고용증진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를 곧바로 겨냥한 것이다.
전날 희망연대 회원들과 충북 충주시 장안농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시한에 쫓겨 졸속 추진돼서는 안 된다”며 “농업분야는 개방을 해도 피해가 없도록 정부가 농촌의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그는 또 “총리 시절 한, 칠레 FTA 협정 비준에 앞서 농촌에 10년간 119조원을 투ㆍ융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소개한 뒤, “쌀의 관세철폐는 10년에서 15년까지 유예기간을 충분히 갖고 대책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한을 정해놓고 진행 중인 한미 FTA협상의 졸속 추진을 우려한 것으로 낙관론을 앞세우는 정부 측 의견과는 거리가 있다.
고 전 총리는 최근 서울 시내 음식점에서 가진 한 기자간담회에서도 “작전권 환수는 국민적 공감대 아래 국방계획이 완성된 이후 논의돼야지, 2009년이냐 2012년이냐로 못박을 사안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당장이라도 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이 정권은 용미(用美)를 잘 못하는 것 같다”고 정부의 대미 외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고 전 총리의 이 같은 태도 변화에는 여러 의도가 담겨있다. 범여권 유력 후보로 여겨지는데다 참여정부 초대총리로서 내놓고 현 정부를 비판하기는 어려운 입장이었지만, 현 정부에 대한 뚜렷한 민심 이반이 그를 돌아서게 한 듯하다.
또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쟁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비해 뒤지는 결과가 나온 것도 그를 ‘공격형 모드’로 전환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측근 인사인 신계륜 전 의원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고 전 총리가) 만약 국민들에게 답답하다는 느낌을 준다면 본인 스스로 답답함의 근거를 잘 파악해서 발언하고 행동도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달 말 희망한국국민연대(희망연대)를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정치권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고 전 총리는 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대선행보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샌드위치 신세 고건?
특히 고건 전 국무총리의 지지율 하락은 만성화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9월 4일부터 5일 이틀간 조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고 전 총리는 18.8%를 얻어 마침내 20% 아래로 급추락했다. 이는 전 주 대비 2.4% 빠진 수치다. 물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에 이은 3등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고 전 총리가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비판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그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 의하면 오히려 고 전 총리의 지지층인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 3% 가량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 지지자들이 희망연대 출범 후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고 전 총리의 이같은 지지율 하락은 급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올 4월부터 9월까지 <리얼미터>의 매달 초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4월(28.0%/1등), 5월(24.6%/1등), 6월(25.8%/2등), 7월(21.1%/3등), 8월(21.3%/3등), 9월(18.8%/3등), 이렇게 지지율이 뚜렷이 하락하고 있다.
이 같은 지지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는 고 전 총리가 한나라당은 물론 열린우리당 비토층으로부터도 심한 견제를 받는 '샌드위치' 신세에 처했다는 점이다. 정치 현안에 대한 확실한 입장 표명도 없는데다 확실한 정치적 지지층도 굳히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6월 초 열리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고 전 총리를 향해 "기초도 없는 인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의원은 "고 전 총리에겐 시대정신, 자력으로 이룬 성과에 대한 국민적 인정, 난마처럼 얽힌 우리사회의 문제를 돌파할 전투력 그 어느 것도 없다"면서 "그러나 국민은 대통령의 필수 조건으로 이런 것들을 요구한다"고 꼬집었다.
고 전 총리는 사실 5.31 지방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실세들이 선거에 동참해주길 수차례 호소했으나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당이 5.31 선거에서 참패하자 본격적인 정치세력 결집에 나선다. 그 결과물이 '희망연대'다. 전통적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도 고 전 총리는 더욱 미워만 가는 존재다. 주요 정치 이슈들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은 고 전 총리가 적군이진 아군인지 분간이 안가기 때문이다. 또 고 전 총리는 한나라당보다 자신들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과 더 가까운 게 사실이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이라는 막강한 대권 후보자와 최근 떠오르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까지 갖춘 한나라당의 지지자들에게 고 전 총리는 거의 적으로 간주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민주당도 만만치 않다. 한화갑 대표는 지난 9월 7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총리의 '희망연대'의 정치적 영향력을 놓고 잘 되길 바라지만 잘 안되면 '국망연대'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 절하했다. 한 대표는 "희망연대 사람들이 전부 과거에 활동했고 민주당과 연관됐던 사람들로 새로운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고 전 총리는 기존 정당을 넘는 대중적 지지도라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상실해 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논란에 대한 그의 '침묵'이다. 자신만의 주장으로 여론을 이끄는 리더십을 보이지 않는데 대한 '싫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고 전 총리는 사학법, 전시 작전통제권, 한미FTA 등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어느 정도 여론이 겉으로 드러난 이후에나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 때문에 최근 고 전 총리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도 그다지 큰 효과를 못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고 전 총리의 사람 끌어모으기 능력도 그다지 탁월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에 창립한 희망연대 발기인 106명의 면모가 그다지 주목을 못 끄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이들 중 고 전 총리가 직접 만난 사람은 1/3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 1/3은 전화로 모았고 또다른 1/3은 공동대표에 추대된 다른 인사들이 접촉해 참여의사를 타진했다는 후문이다. 또 이들 106명 중엔 각 언론사에 자신을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한 사람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릴 동력이 도무지 보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고 전 총리의 지지율 하락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체불명 '고건 캠프 참가자 리스트'
최근에는 '고건 대선캠프에 참여할 인사들의 명단'이라는 제목의 리스트가 온라인으로 배포돼 진위 여부와 작성주체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9월 17일 고건 전 총리 담당 정치부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된 이 문건에는 열린우리당 전현직 의원 13명, 민주당 전현직 의원 6명, 무소속 의원 1명, 전직 고위 관료 7명, 재계인사 10명 등 총 37명의 실명이 '고건 캠프' 참여 예상자로 적시됐다. 20명의 전현직 의원 명단 가운데는 고 전 총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 외에 현 우리당 지도부 일부는 물론 차기 대권주자 그룹으로 분류되는 인사도 포함됐다. 재계인사 명단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전현직 CEO와 오너도 포함됐다. 전 총리가 즐겨 쓰는 표현 'Great Korea'라는 명의를 내세운 작성자는 이 명단을 "최근 고 전 총리가 부지런히 접촉한 뜻에 맞는 정.재계 인사들 명단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명단에 언급된 인사 가운데 일부는 즉각 손사래를 쳤다. 명단에 오른 우리당의 한 의원은 “고 전 총리와 학연이 있을 뿐, 대선캠프에 참여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완전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펄쩍 뛰었다.
고 전 총리 측도 “우리도 출처를 알 수 없는 명단”이라며 “가까운 분들도 있지만 모르는 분들도 포함됐는데 정치권의 소문을 짜깁기 한 것 같다”는 입장이다.
한편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고 전 총리 캠프에서 '희망연대'를 출범시켰지만 지지부진한 것이 사실이 아니냐”면서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그 쪽(고 전 총리 측)이 의도적으로 과장된 명단을 흘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차기 대선까지는 1년 3개월이 남았지만 '한나라당 대권주자별 의원 리스트'에 이어 '고건 캠프 리스트'까지 각종 괴문건과 '카더라'가 정치권 안팎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리스트가 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쪽이 나름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느냐"면서 "지금 우리는 그런 괴문건조차 부러운 심정"이라고 한 숨을 내쉬었다.
초선의원 "폭로 안하면 왕따"
"남들이 알아주는 정치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폭로가 아닌 대안있는 비판으로는 불가능하다" 초선인 백원우 열린우리당의원(40.시흥 갑)은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느낀 답답한 마음을 '뉴스레터'에 담아 기자들에게 보냈다.
그는 "언론에도 좀 나오고 주목받는 정치인이 되어, 발언권도 센 그런 정치인이 되어 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달 초부터 나오는 보도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역시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무엇을 폭로하는 기사였다"면서 "역량의 한계로 인해 깔끔한 정책대안은 아니더라도 대안 있는 비판을 해보고 싶지만 과연 그런 내용이 언론에 실릴 것인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백 의원은 언론이 지나치게 재미 위주의 기사를 우선적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죄송하지만, 기자들이 정책의 내용을 잘 모르다 보니 기사는 (정책보다는) 재미위주로 흐르게 된다"면서 "특히 기자들이 하루하루 기사를 급하게 취재해 써야 하므로 심층취재는 물건너갔다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제, 언론의 재미 위주 정책에 부합해 재미와 폭로가 들어간 국정감사 자료를 만들것인가 고민해본다"면서 "언론은 감시와 비판을 넘어, 언론이 설정한 틀에 들어오지 않는 정치인들을 별로 다루지 않아 왕따시키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라면서 "그런 틀에 굴복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발동하고 있어 나의 세 번째 국감도 조금은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