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건축은 거주 공간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이제 건축은 거주인의 계급을 구분하는 잣대이자 가장 유용한 재테크의 도구로 ‘삶의 터전’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어느새 퇴색된 지 오래이다. 생활의 철학을 담은 건축 대신 무분별한 건설만 있기 때문이다. 억소리 나는 도심의 땅들도 작은 자투리의 경우 버려지기 일쑤이며 주변을 살펴보면 쓸모없이 방치되어 있는 자투리 공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라움건축사사무소 오신욱 건축사는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공간들에 주목하여 거주자의 생활양식을 염두에 둔 섬세한 배려를 공간에 표현함으로써 ‘좋은 건축’을 행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사람’과 ‘공존’에 관한 고민이 바탕이 되고 있다.
2013 ‘신인건축가상’ 수상

도심 속 방치된 옥상공간의 재발견
도시의 대부분 건축들은 옥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규모가 크든 작든 건물의 70~80% 면적을 차지하는 옥상을 건축에서는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 건축물들의 옥상공간은 폐쇄되어 있다. 조금이나마 공적인 건축물들은 그들의 옥상이 휴게공간화되어 공공에게 할애되어 있지만 사적인 건축물과 도심의 상업지역에 서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옥상의 출입이 차단되어 있고, 에어콘의 외기, 무늬만 조경인 화단, 통신사의 안테나, 광고탑 등으로 점용당한 상태이다. 오신욱 건축사는 이러한 버려진 옥상 공간을 활용하여 라움 사옥을 설계했다. 그는 옥상 중심에 중정을 두고 아트스페이스 공간으로 꾸며 분기별로 설치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옥상면적을 잘 활용하면서 공공성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심 끝에 중정을 둔 설계를 하게 되었다”는 그는 옥상의 공간, 우리가 알고 있는 옥탑방, 자투리 공간,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공간에 대한 남다른 생각으로 이를 활용하여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미 KNN 뉴스 ‘옥상가치의 재발견’으로 이름을 알린 바 있는 라움 사옥은 2013년 12월, 새로운 출발점을 알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작은 건축의 활성화는 도시재생의 밑거름
라움건축사사무소에서 설계한 부산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에 위치한 ‘반쪽집’은 집이 철거돼 자칫 방치되었을지 모를 자투리 땅에 들어서 마을의 활기를 더하고 있다. 당시 도로 확장으로 기존에 집이 반쪽만 남게 되었고, 반밖에 남지 않은 터를 이용해 집을 지었다. 모두들 터가 좁아 건물을 못 짓는다고 혀를 찼지만 오신욱 건축사는 이를 해냈다. 지난해 11월 완성된 작고 하얀 이층집. 동네 사람들이 ‘예쁘다’며 부러워했고 심지어 외지에서 집구경을 하러 올 정도였다. 건축면적은 53㎡, 전체 면적은 75㎡에 불과했지만, 계단 입구며 현관까지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곳곳에 창이 크게 뚫려 있어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다. 오신욱 건축사는 “저렴한 테라코트 외장 등으로 3.3㎡당 300만 원대로 건축비를 낮추면서도 충족한 공간을 주기 위해 수도 없이 스케치를 했다. 태풍처럼 센바람이 많고 도로 소음이 심한 특성상 창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또한 벽면을 이용해 시각적 감각을 자극할 수 있게 설계하는 등 주어진 여건 안에서 도시의 표정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시도들을 행한 흔적이 엿보였다. 최근 준공된 ‘마로인 사옥’ 또한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의 급성장하에 주변부로서 한동안 소외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곳이었다. 도시에서 잊히고 성장이 멈춰진 가로변의 중심에 위치한 장소로 특히 이 가로변은 광안리라는 목적을 위해 달려가면서 스쳐지나가던 의미 없는 곳으로 취급 받은 곳이다. 도전적인 기업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띄워져있는 볼륨과 매끈한 표면을 이용하여 주변과 차별화 된 장소를 만들어냈다. 공간과 건축물을 경험한 이용자들이 시각적인 외피와 지각적인 표면, 그리고 그 사이에 만들어지는 공간과 빛의 효과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외된 공간들을 찾아내 잠재된 공간의 역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는 오신욱 건축사. “건축이론을 공부하고 작품들의 숨은 의미들을 배우게 되면서 이론과 역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태 공부해 온 이론적 기반들을 작품에 조금씩 적용하며 갖가지 시도들을 병행해왔다. 그는 마로인 사옥에 대해서 ”건축적으로 스스로 많이 성장한 작품인 것 같다”며 애착을 드러냈다.
예술, 문화적 영역으로 건축의 범위 확장

“건축도 하나의 예술이며 문화이다. 그러나 건축이 단순한 건축물이 될 때, 혹은 건축이 단순한 예술이 될 때 건축은 그 본질인 삶의 터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건축은 예술이면서 생활이며, 어떻게 사는가에 관한 철학이자 인문학의 결과”임을 강조했다. 이것이 오신욱 건축사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이다. 문화, 예술을 아우를 수 있는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건축철학을 정립해나가고 있는 오신욱 건축사.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서 이름을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그는 시대적으로 화려한 건물보다 소외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이러한 건축 문화 확산을 통해 건축의 본질을 복구하려 한다. 그 방법은 건축 자체이기도 하고, 강연과 예술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내는 다양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은 그의 노력들은 오랜 시간 멈춰 있었던 건축문화의 진보를 위한 작은 발걸음이 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의 그의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