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담배 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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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담배 극성
  • 글/ 김정숙 기자
  • 승인 2006.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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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단계까지 온 독극물 뺨치는 ‘짝퉁담배’
담배 값 인상 여파로 밀수 급증, 정부 대책 없이 방관만
2004년 말 담뱃값 인상 이후 담배 밀수가 6배 이상(금액 기준)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박재완 의원이 8월 30일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4년 12월 담뱃값이 500원 오르자 2004년 17억원(65건) 가량이던 담배 밀수액은 2005년 111억여 원(262건)으로 6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따라 관세청은 담배에 대한 밀수위험도를 가장 높은 단계인 ‘위험단계’로 격상한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도 지난 6월까지 담배 밀수액은 73억여 원(119건)에 달해 지난해 수준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담배판매인회는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간 서울 종로지역에서 불법유통담배에 대한 자체 단속을 벌였다. 단속 6개월간 56건, 29만3,161갑을 적발해 경찰에 고발했다. 적발된 담배품종은 던힐, 니드, 패스 등 다양하다. 이중 “던힐이 50% 이상으로 짐작된다”는 것이 관계자의 귀띔이다. 그는 “종로에서 이 정도면 전국적으로는 오죽하겠느냐”며 “조만간에 심각한 사회이슈로 불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짜 담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정부의 단속이 있었지만 불법 유통되는 가짜 담배의 검은 연기는 여전히 전국 하늘을 뒤덮고 있다. 올 들어 6월까지 적발된 밀수담배(가짜 담배 포함)는 73억 원어치다. 이미 지난 한 해(112억원) 동안 적발된 금액의 절반을 넘어섰다.


공공장소서 버젓이 판매돼
남대문 수입상가와 종묘공원 등에서 던힐 등 고급 외산담배와 니드같은 저가 외산담배가 불법유통되고 있는 현장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다. ‘면세’(Duty Free)가 선명하게 찍힌 ‘던힐’의 경우 남대문 수입상가 2층에서 한 보루에 2만원(시가 2만5,000원)을 주고 살 수 있었다. 종묘공원과 탑골공원 등에서는 니드, 패스 등 동남아산 저가 담배를 700~900원에 구입했다. 밀수담배 전문가들은 부산에서 ‘깡통시장’으로 불리는 국제시장에서는 아무나 불법유통되는 담배를 구입할 수 있다며 개탄했다.
길거리나 시장뿐만 아니다. 단란주점, 나이트클럽, 노래방 등 공공장소도 가짜 담배가 활개치고 있는 장소다. 지난 3월 가짜 담배 유통조직 일당을 검거한 서울시경의 수사 관계자는 “불법유통되는 밀수담배의 상당수가 유흥업소로 흘러들어갔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밀수 담배가 무더기로 팔려나가고 있다. 인터넷은 미성년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업계에 따르면 M사는 서울시 세정과에 사업계획서를 골프장 뱀 퇴치용으로 기재한 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저가 담배를 시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재완 의원실이 온라인으로 담배를 불법 판매하는 현황을 조사한 결과(2006년 2월 말)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 N사와 D사의 12개 카페에서 담배가 조직적으로 대량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적이 있다. 이들은 ‘담배를 사랑하는 사람들’, ‘해외에서 담배 싸게 구입하기’, ‘담배가게’ 등의 이름으로 카페를 열고, 불법유통되는 밀수·가짜·군납·장물 담배 등을 허가 없이 온라인상에서 팔았다.
이러다 보니 유통되는 가짜 담배의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관세청의 ‘가짜 담배 밀수 적발 현황’(불법유통되는 진품은 제외)을 보면 2004년 단 1건에 불과했고 수량도 4만4,400보루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2005년 3건, 29만6,350보루(59억2,700만원)로 늘어나더니 올해 들어서는 폭증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8건에 100만보루가 적발됐다. 금액도 60억8,700만원으로 지난 한 해치를 뛰어넘었다. 통상 적발된 담배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담배의 10% 미만이라는 것이 밀수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이나 동남아 밀수업자들이 한국을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가짜 담배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뚜렷한 대응책 없어 빠르게 확산
이처럼 불법유통 되는 담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뚜렷한 대응책이 없는 상태다. 오히려 아직 국내에서 불법유통 되는 담배의 비중이 전체시장의 1% 미만이라는 점을 들어 공론화할 문제가 아니라는 일각의 주장도 없지 않다.
그러나 세계 담배시장에서 밀수담배 규모는 6%에 달한다.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를 떠나 밀수담배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핫이슈로 떠올랐다는 뜻이다. 연간 500억본이 위조되는 중국이 경제교류가 활발한 이웃나라라는 것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중국의 가짜 담배 제조기술은 타르와 니코틴까지 진짜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했다. 성분분석을 통해야만 옥석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지고 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산 가짜 담배가 국내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가능성은 농후한 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 업계에서는 밀수담배가 늘어나는 주된 이유로 담뱃값 인상을 꼽고 있다. 2005년 들어 밀수담배가 급증한 것은 2004년 말 담뱃값을 인상했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렇지만 정부는 다가오는 정기국회에서 담뱃값 인상을 예정대로 밀어붙일 태세다. 정부의 계획대로 5,000원까지 오를 경우 밀수 담배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관세청이 각 지역 세관을 통해 밀수 담배의 유입 자체를 엄중 감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의문이다. 수많은 선박의 컨테이너를 샅샅이 검사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반론이 만만찮다. 국내에서 이익을 많이 내는 대형 외산 담배업체들도 소극적인 모습이다. 던힐을 판매하는 BAT코리아 관계자는 “우리가 하는 일은 세관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짜 담배의 잇단 적발로 흡연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담배 구입에 신중을 기하는 신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평소 외산 담배를 즐겨 피운다는 회사원 박씨(39)는 회사 구내매점이나 대형할인점 등 믿을 만한 곳이 아니면 담배 구입을 꺼린다. 가짜 담배가 활개치고 있다는 TV뉴스를 본 이후부터 바뀐 습관이다. 박씨는 “제조환경이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중국산 가짜 담배에 어떤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아마도 담배를 끊어야 할 모양”이라고 말했다.

가짜담배 대부분 중국산 추정
거리에서 혹은 유흥업소에서 자기도 모르게 피우는 가짜담배는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고 있을까. 점차 커지고 있다는 가짜담배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가짜담배, 밀수담배의 범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곳은 한국뿐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범죄집단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가짜담배의 유통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계 담배시장 규모는 2005년 기준으로 5조6,571본(개비)이다. 이 가운데 밀수담배 규모는 6%(3,550억본) 정도로 알려져 있다. 밀수담배는 다시 면세담배와 가짜(위조)담배로 나눌 수 있다. 밀수되는 면세담배는 0.8%(450억본)로 추정된다. 가짜담배 규모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다만 중국에서만 연간 500억본이 위조되고 있는 것으로 WHO(세계보건기구)는 추정하고 있다.
한국은 2003년까지만 해도 ‘담배밀수’는 남의 얘기였다. 관세청의 밀수담배 적발건수를 보면 2000년 45건, 2001년 18건, 2002년 43건에 불과했다. 금액도 2002년의 경우 4,800만원에 그쳤다. 하지만 2003년 이후 밀수담배 적발건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관세청은 2003년 107건의 담배밀수를 적발했다. 금액으로는 10억2,500만원어치다. 2004년은 소강상태였다. 65건, 17억3,400만원으로 금액은 늘었지만 건수는 오히려 줄었다. 2005년부터 밀수담배 규모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적발건수는 262건으로 2004년보다 4배 정도 늘었다. 금액으로도 전년에 비해 6배 이상 많은 111억5,800만원에 달했다.
국내 담배시장은 10조원(823억본) 가량이다. 아직까지 밀수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0.1%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곤란하다. 보통 관세청에 적발되는 밀수담배는 전체 밀수담배의 10%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구나 앞으로 밀수담배는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업계는 점치고 있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담뱃값이 오르면 밀수담배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와 정치권의 주장이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밀수담배를 추적해 온 박재완 의원도 “정부의 계획대로 한 갑당 5,000원까지 올릴 경우 중국과 무려 10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담배밀수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청도 위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13일 ‘담배’를 밀수위험도 5단계(정상-유의-경고-심각-위험) 중 가장 위험한 것으로 지정했다. 담배밀수가 기존 시장을 뒤흔들 만큼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불법유통되는 담배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박재완 의원은 “중국의 전매국이 담배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대형 브랜드 위주로 기존의 185개 제조창을 90개로 줄였지만 기존 95개 제조창들은 폐쇄하지 않고 던힐 등 가짜 외산담배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국내에 들여오려다 관세청에 적발된 가짜담배 중에는 홍콩 담배인 ‘더블 해피니스’가 가장 많았다. 지난 1월 홍콩을 출항해 부산을 경유, 베트남 등 제3국으로 재수출하는 것으로 위장한 뒤 국내 밀반입을 시도하다가 적발된 일도 있다. 소비자들이 즐겨 피우는 유명 담배 가운데는 관세청에 적발된 수량 기준으로 보면 던힐이 단연 많다. 가짜 던힐은 올 들어 2만2,257보루(시가 5억2,100만원)가 관세청 단속에 걸렸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중국산 신발을 수입하는 것처럼 위장해 FCL 컨테이너 화물에 중국산 가짜 던힐 담배를 은닉해 밀수입한 조직과 조직원 5명이 검거됐다.

국내 들어오는 루트도 가지가지
정상적인 면세품이지만 밀수로 들어오는 물량까지 더하면 불법유통되는 담배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최근에 패스, 니드, 스타, BOB 등 소위 200원짜리 담배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 그렇다. 필리핀, 라오스 등에서 유입되는 저가 담배는 상당수가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판매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저가 담배가 쏟아져 들어온 것은 지난 6월까지 소비자가격이 200원이 넘는 담배와 200원 이하 담배에 붙는 세금이 달랐기 때문이다. 보통 담배 한 갑에는 담배소비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건강증진기금 등 기금을 포함한 각종 세금이 1,500원 가까이 붙는다. 하지만 200원 이하의 담배에 붙는 세금은 단 60원(담배소비세 40원, 교육세 20원)에 불과했었다. 지난 7월부터 저가 담배에 대한 세금감면 조항도 국민건강증진법 제정으로 사라졌다. 따라서 7월 이후 거리에서 200원짜리 담배가 보이면 대부분 불법 거래되고 있는 담배라고 생각해도 된다. 업계에서는 불법 저가 담배가 1억갑 이상 시장에 풀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담배업계와 밀수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밀수담배가 국내에 들어오는 루트는 크게 3가지다. 핸드캐리, 컨테이너, 우체국택배(EMS)가 그것이다. 핸드캐리와 컨테이너는 중국에서, 우체국택배는 주로 필리핀에서 이용하는 수법이다.
소규모 밀수는 보따리상들이 주로 쓰는 수법이다. 양복, 겉옷의 안감 등에 담배를 넣거나 담배를 고춧가루 등 다른 품목 사이에 끼워 넣는 수법도 있다. 짐이 없는 일반 여행객이 담배를 대신 반입해주도록 부탁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같이 소량으로 들여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따이공’으로 불리는 보따리상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이 각각 절반 정도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주로 옌타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중국인 ‘따이공’이 늘어나는 것은 중국의 물가수준이 한국보다 훨씬 낮아 소량을 밀반입하더라도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통 한 갑당 진짜 담배의 경우 1,000원을, 가짜 담배의 경우 500~1,400원의 이문을 남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10보루만 밀수해도 10만원을 벌 수 있다. 이는 중국인 ‘따이공’이 담배밀수에 뛰어드는 이유다.
이런 보따리상들이 규모가 커지면서 범죄조직과 연계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 창고담당, 통관담당, 관세담당을 따로 두고 움직일 정도로 치밀하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경우에는 거의 점조직으로 움직여 추적조차 힘들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의 수사관계자는 “자금을 대주는 조직과 유통하는 조직, 세관을 담당하는 조직과 판매하는 조직 등이 철저하게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수사관계자에 따르면 밀수 조직이 컨테이너로 들여올 경우 컨테이너 하나에 45만갑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를 시중가로 환산하면 약 11억2,500만원이다. 이렇게 중국에서 컨테이너 한 박스를 실어 나르면 4억원의 순수익이 남는다고 한다.
국내에 들어온 밀수담배는 ‘깡통시장’이라고 불리는 부산의 국제시장, 서울의 남대문시장 등에서 주로 거래가 이뤄진다. 시장의 수입업자들은 시가로 2,500원 하는 담배 한 갑을 1,650~1,700원에 사서 중간도매상에게 1,850원에 넘긴다. 중간도매상은 이를 유흥업소에 2,400원에 팔고 있다는 게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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