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 38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세금을 내는 사람이 바보일 정도로 우리 사회의 체납실태는 그야말로 요지경속이다. 체납자들은 어마어마한 금액의 세금을 체납하고도 교묘한 방법으로 납세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오히려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함에도 불구하고 주민세 6,300원마저도 아까워 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국민의 권리를 저버린 그들이 과연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고액 체납자의 비양심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국세청 징수 체계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같이 제기되고 있다.
세금은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보다 나은 환경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방과 치안을 유지하고 도로·철도·항만·공항 등의 사회간접시설 건설과 교육, 환경, 사회복지 등 수많은 곳에 쓰여 지고 있다. 이처럼 세금은 국가를 유지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총 체납액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세금 체납 무려 4조 8,000억 원 육박

이에 앞서 11월28일 국세청은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 회의를 열고 ‘2013년 국세 고액상습체납자’를 공개, 고액·상습 체납자 2,598명(개인 1,662명, 법인 936곳)의 명단을 공개 대상자로 확정했다. 공개된 명단은 5억 원이 넘는 세금을 1년 이상 체납한 경우로 세금 체납 규모가 무려 4조 7,91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11조 777억 원)의 43.3%에 해당하는 액수다. 1인당 평균 체납액은 18억 4,000만 원을 체납한 셈이다.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40~50대가 5~30억 원의 세금을 회피한 경우가 많았다. 개인 명단공개자 중에서는 50대가 39.4%(655명)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40대(472명·28.4%), 60대(248명·14.9%), 30대 이하(149명·9.0%), 70대 이상(133명·8.0%) 등의 순이었다. 수도권에 사는 개인이 공개 인원의 69.2%, 체납액의 71.2%를 차지하고 있었다.
체납 금액이 가장 많은 개인은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으로 양도소득세 등 내지 않은 세금만 715억 원에 이른다. 조 전 부회장에 이어 체납액이 많은 개인은 김연회 (주)궁전특수자동차 대표(352억 원)였다. 신삼길 전 삼화저축은행 회장은 부가가치세 351억 원을 내지 않았고, 오가영 (주)케이에스에너지 출자자와 홍성열 청천개발 대표는 각각 287억 원, 276억 원의 증여세를 체납한 탓에 명단 공개자로 선정됐다. 6~10위에는 ▲박종섭 (주)경원코퍼레이션 대표(266억 원) ▲오세웅 전 홍익상호저축은행 회장(228억 원) ▲전윤수 성원건설(주) 대표(224억 원) ▲신동수 평산 대표(191억 원) ▲배경식 (주)케이에이엠인터내셔날 대표(176억 원) 등이 올랐다.
이들 명단은 국세청 홈페이지(www.nts.go.kr)와 관보, 관할세무서 게시판에 게재된다. 네이버·다음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종전의 1만 3,000여 명 명단 공개자도 그대로 유지된다.
탈세를 위해서라면 이혼도 한다
고액 체납자들의 세금을 피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재산을 가족과 친인척에세 분산시켜 명의를 바꾸고 주민등록을 엉뚱한 데로 옮겨 추적을 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체납자들에게는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은 없다. 38세금징수과의 한 조사관은 “너무 완벽하다. 과세될 시점에 임박해서 협의이혼하고 같은 시점에서 재산을 다 부인 이름으로 양도를 하는 것을 볼 때면 그들은 전혀 세금 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토로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대기업 임원으로 지내다 퇴직한 A씨의 세금 체납액은 무려 2,500만 원. 그러나 A씨는 세금이 부과될 시점을 전후해 재산을 모두 부인 명의로 이전했다. 이렇게 부인명의로 이전한 재산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50평의 아파트 한 채와 주유소 등 재산이 줄잡아 20억 원을 웃돈다. 그러나 A씨처럼 모든 재산이 모두 부인명의로 되어있다 할지라도 고의로 재산을 빼돌렸다면 ‘사해행위’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현행 조세범처벌법에는 납세의무자 또는 납세의무자의 재산을 점유하는 자가 체납처분의 집행을 면탈하거나 면탈하게 할 목적으로 그 재산을 은닉·탈루하거나 거짓 계약을 하였을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체납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우리나라 국세징수법 제 86조에는 체납자이 부도 폐업으로 인해서 무재산이 되는 경우에는 결손처분을 받게 되어 있었다. 즉 저소득층에게는 세금이 면죄되는 것처럼 부도나 실직 등으로 갑자기 재산을 잃은 사람들에게 상황이 회복될 때까지 결손처분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도 이렇다 할 소득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세금은 완전히 탕감된다. 대개 체납자가 재산이 없거나 행방불명 상태이거나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징수할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결손처분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일부 고액 체납자들이 이런 납세자의 구제책을 악용해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국세 결손처분액이 무려 36조 4,97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지난해에는 종전 국세징수법 제86조 ‘결손처분’ 관련용어를 ‘정리보류’로 개정했다.
체납자들 천태만상, 당국 관리 소홀

실제로 양도소득세 2억 3,100여 만 원을 체납하고 있는 A씨의 경우 법무부 통보 이후 11개월 동안 17회나 해외를 드나들었으며 2억 8,900여 만 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B씨도 같은 기간 11회 출입국을 반복했다. 체납액이 10억 900여 만 원에 달하는 C씨도 지난해 2월 이후 7개월 간 4회 출국했다. 특히 감사원 확인 결과 지난해 9월30일 기준으로 21명 가운데 17명은 국외에 체류 중인 상황이어서 세금 체납액에 대한 징수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감사원은 또 서울국세청이 기업인들 간에 세금 포탈을 위해 이뤄진 ‘우회거래’를 그대로 인정한 사실을 적발했다. 실효세율 27%의 종합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해 회사주식을 다른 회사에 양도한 후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10%의 양도세만 냈는데 서울국세청이 이를 인정, 26억 3,500여 만 원의 소득세를 징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식회사 D사의 사망한 전 대주주가 주식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서울국세청이 공과금을 과다인정하고 신고불성실에 따른 가산세까지 면제해 주는 바람에 10억 6,100여 만 원의 상속세와 3억 6,100여 만 원의 소득세가 걷히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체납자 금융재산 정확히 파악이 필요
세금 체납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미국의 경우 금융기관과 국세청과 연계한 ‘금융재산 추적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체납자 은행 계좌가 어느 지역 어느 은행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필요하다면 곧바로 예금을 차압할 수도 있다. 또한 잔액을 찾아내기 힘들 경우 수색영장을 발부 받거나 소환장을 받아서 은행계좌의 기록을 보고 체납자의 소득이나 체납자가 사해행위를 했는가를 추적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징수시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의성이 있다면 기간에 상관없이 끝까지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철저한 추적 시스템으로 미국은 2% 체납율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체납에 대한 엄격한 법률과 시스템으로 체납율이 10%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체납자의 금융재산 조회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국세청에서 이미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위해 개인별 주식 보유와 예금 보유 현황을 국세통합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실명 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 자료를 체납자 재산 조회에 사용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사업자에 대한 국세청의 계좌 추적에 대한 것이 극히 제한되어 있어 소득을 자진 신고하는 개인사업자들의 경우 국세청이라 해도 재산을 찾아내고 압류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때문에 체납자의 금융계좌를 일괄적으로 조회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보완되지 않는 이상 악의적인 체납자의 금융재산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반면 세금을 원천징수 당하는 월급 생활자들은 급여 계좌추적으로 압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체납은 불가능하다. 결국 돈은 있지만 납세의 의지가 전혀 없는 개인사업자 고액 체납자들의 세금을 받는 제도는 허술한 편이다.
징수 체계의 보완 시급
우리나라의 국세청 징수 체계의 보완이 시급한 가운데 이미 납세 능력이 없는 것처럼 위장해 적발한 고액체납자 중 상당수는 체납된 국세를 이미 결손처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고액 세금 체납자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안내도 된다는 비양심적인 모습뿐이다. 치안을 범죄자의 양심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것처럼 세금을 체납자의 양심에만 호소한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소득완전노출로 인해 근로소득자의 유리지갑에서는 언제든지 돈을 꺼내 쓸 수 있지만 개인사업자의 꽉 닫힌 금고는 전혀 열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그야 말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 절반은 국세청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나머지 절반은 국세청을 불신하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체납은 물론 탈세도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숨기고 빼돌려 내지 않아도 되는 세금이라면 누구도 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인 세금징수 방법이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는 데는 먼저 갖춰져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정부가 공정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예외 없이 받아 낸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금을 내기 전보단 세금을 내고 난 다음 빈부 격차를 더 크게 느낀다는 통계가 있다.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세금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비양심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국세청 징수 체계의 보완이 시급할 것이다.
체납징수 위해 체납관리업무 조직 통합
관세청은 국세청 등 타 정부기관과 과세자료 공유를 확대해 관세조사 및 체납정리의 효율화를 기할 계획이라고 지난 3월30일 밝혔다. 관세청은 국세청, 안전행정부 등 유관기관으로부터 기관 간 협력을 통해 수시로 입수하고 있는 과세자료를 정기적으로 제공받기 위해 법적근거 마련해 27개 기관으로부터 45종의 과세자료를 받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2014년 시세 체납관리 종합추진계획’을 4일 발표했다. 올해 2월 기준 서울시에서 관리 중인 재벌총수나 정치인,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사회저명인사는 총 38명이다. 이들의 체납액은 총 866억 원에 달한다.
서울시는 이들을 비롯한 고액 상습 체납자 중 호화생활자는 집중 관리해 일반 체납자보다 엄격히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거주지 조사 및 가택수색·동산압류를 실시하고 관청 허가가 필요한 사업 제한, 명단공개 등 행정제재도 실시한다. 해외 출국금지, 재산은닉·사해행위·위장이혼 등 조세 회피행위가 적발될 경우에는 검찰 고발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할 예정이다. 또 25개 자치구와 함께 현장고액 체납 합동 태스크포스팀 운영, 1억 이상 고액 체납자 특별관리, 체납징수 노하우 공유 등 협업체계를 구축한다.
우선 신속하고 효율적인 체납징수를 위해 서울시와 자치구에 각각 존재하는 체납관리업무 조직을 통합한다. 서울시의 경우 38세금징수과에서 지난 체납시세 뿐 아니라 올해 발생 분까지 전체를 담당해 세금 부과부터 체납까지 직접 관리한다. 자치구는 기존 분리돼있던 세무 1·2과를 1개 부서로 통합해 체납관리조직을 일원화시킬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은닉재산 시민제보센터’를 설치 및 운영, 위장이혼 등 쉽게 알아낼 수 없는 재산은닉 체납행위에 대한 시민제보를 통해 체납세금을 징수하면 그 금액의 1~5%(최대 1,000만 원 이하)를 포상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다.
관세청도 체납자가 은닉한 재산을 신고한 사람에게는 올해 3월부터 포상금 지급률을 기존보다 3배 수준으로 상향했으며 최대 10억 원까지 신고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국세청은 고액 체납자에 대한 체납처분 회피 가능성을 검토한 뒤 출금금지를 요청하고, 고의적으로 재산을 은닉한 정황이 확인되면 체납처분 면탈범으로 고발할 방침이다.
김대지 징세과장은 “FIU법 개정으로 금융거래 인프라를 이용한 체납정리 기반이 확충된 만큼 고액체납자에 대한 적극적인 납부를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