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문인 중 소옹(邵雍)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관직에 뜻을 접고 사유와 독서, 집필을 즐겼다. 그래서 그의 집은 비바람도 막을 수 없었고 집안의 쌀독은 가끔 비기도 했다. 하지만 소옹은 이런 상황도 자신의 몫이라 받아들이며 편하고 즐겁게 여겨, 자신의 누추한 집을 안락와(安樂窩)라 칭했다. 이런 소옹을 사람들은 무척 좋아했다. 그의 벗들이 자금을 모아 소옹에게 집을 마련해 줬다고 한다. 소옹은 왜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을까. 이는 사실상 소옹이 주역연구에 있어 우주의 질서를 정리하는 상당한 수준의 체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주의 이치를 찾은 것이다.
지방선거 승리 위해 뛸 때

창당 출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이 공천을 없애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공천 방침 철회는 안철수의 정치적 신뢰를 깎아내리기에 충분했다.
기초선거 전당공천제 폐지 여부와 관련해 실시한 의견수렴의 쟁점은 ‘새정치’와 ‘6·4지방선거 승리’를 놓고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느냐 였다. 결과는 지방선거 승리가 절박했던 당원들의 의견이 새정치를 염원한 국민의 여론을 누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천 53.44%, 무공천 46.56%의 결과가 나오자 안 공동대표는 무공천 재검토 방침을 밝힌 뒤 “만에 하나라도 당원과 국민의 생각이 저와 다르더라도 저는 그 뜻에 따르겠다”면서 “어떤 결정이든 그 뜻에 따라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외부에서 볼 때는 되는 일이 없어 보이는 안 공동대표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를 끌어안기에 나서는 분위기다. 실제로 안 공동대표에게 무공천 논란 등과 관련해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보통 정치는 철새가 판치는 곳이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안철수 공동대표에게는 관대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옹이 주역연구에 있어 대단한 체계를 보여줘서 그의 유유자적한 삶이 더욱 빛이 났던 것처럼 말이다.
정치 초년생, 고된 길 걸어
창당을 준비하던 안철수 대표가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합당을 하면서 던진 카드는 ‘기초공천제 폐지’였다. 당시 안 대표는 “공천폐지는 정당과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국민의 오래된 명령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달랐다.
당내 거센 반발에 밀려 기초선거 무공천 당원투표 국민 여론조사 실시했고, 결과는 공천 53.44%, 무공천 46.56%로 “공천을 해야 한다”였다. 전당원투표에는 권리당원 35만 2,252명 중 8만 9,826명이 참여해 ‘공천해야 한다’에 5만 1,327명이,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에 3만 8,503명이 응답하면서 공천찬성은 57.14%, 공천반대는 42.86%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국민여론조사결과 여론조사기관 2곳 중 A기관에서 1,000명 중 ‘공천해야 한다’에 362명,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에 383명, ‘잘 모르겠다’에 255명이 응답함에 따라 응답비율은 각각 36.2%, 38.3%, 25.5%를 기록했다. ‘잘 모르겠다’는 항목을 배제한 결과 공천찬성은 48.59%, 공천반대는 51.41%로 집계됐다. B기관에서는 같은 항목에 각각 420명과 405명, 175명이 응답해 ‘공천해야 한다’는 42%, ‘공천하지 않아야 한다’는 40.50%, ‘잘 모르겠다’는 17.5%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잘 모르겠다’는 항목을 배제하고 백분율로 환산한 결과는 공천찬성이 50.91%, 공천반대가 49.09%로 집계됐다.
전당원투표 및 국민여론조사관리위원회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조사항목에 ‘잘 모르겠다’는 항목을 추가했지만 최종 결과를 추계할 때는 이에 응답한 항목을 배제키로 사전 합의했다. 이에 따라 최종 집계에는 ‘잘 모른다’는 응답을 배제한 항목의 응답률만 반영했다.
안 공동대표는 또 한 번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꺾어야 했고, 이는 국민적 신뢰를 잃은 것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큰 충격이고 혼란인 듯했다.
안 공동대표는 이번 상황으로 ‘철수’ 단골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 2012년 대선,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던 ‘독자정당’ 포기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정치 초년생으로 참 고된 길을 걷고 있다. 무공천을 빌미로 공천을 유지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겨냥, 공약파기를 비판해 온 상황에서 안 공동대표는 할 말을 잃게 된 셈이다.
새누리당 “존재이유 사라졌다”
새누리당은 오랜만에 꼬투리를 잡고 총공세에 나섰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새정치연합이 돌고 돌아 공천으로 돌아왔다. (안 공동대표는) 국민의 뜻과 다른 것을 절대 선인 양 아집을 부려왔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공천할지 말지를 결정하면서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는데, 공천하기로 했으니 정계은퇴를 하는 게 맞다”고 공격했다. “안 공동대표가 V3를 만들어 바이러스 잡겠다고 했는데, 정작 본인은 말 바꾸기로 약속 위반 바이러스 만들었으니 이제 그만 다운될 시간”이라고도 했다. 홍지만 원내대변인 역시 “새정치연합의 존재이유가 사라졌다”며 아예 당 해체를 요구했다.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은 “(무공천 철회는) 당내 노선 투쟁의 결과”라며 “안 공동대표는 친노 세력을 잡으려고 무공천을 강행했고, 친노 세력은 그를 흔들기 위해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새정치보다 지방선거 승리가 우선
장고하던 안철수 공동대표는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무공천 방침을 철회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선거에 나서는 새정치연합 후보는 기호 2번으로 출마할 수 있게 됐다. 통합신당의 출범의 모태였던 무공천이 철회됨으로써 지도부의 리더십도 덩달아 흔들리는 위기에 이르렀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우선. 이후의 일들은 선거가 끝나고 결정하기로 한 듯하다.
안 공동대표는 “당원과 국민의 생각이라면 따르겠다”며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고, 당 내에서도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을 의식한 듯 그를 끌어안는 분위기다.
오영식 의원은 MBC 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나와 “당내 여러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어제 조사결과가 나와서 그에 기초해서 지도부가 최종 이 문제를 정리한다면 이제는 당내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추미애 의원도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서 “이 문제로 안 공동대표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전말을 구경하는 어떤 구경꾼 입장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정치’와 ‘지방선거의 승리’라는 두 개의 키워드 중 일단 선거에서 이겨야 새정치든 뭐든 가능하다. 기초공천 폐지에 대한 결과는, 최근 선거에서 연전연패 하고 있는 제1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만큼은 승리가 필요하다는 당원들의 염원을 반영한 셈이다.
‘안철수의 힘’, 인정하고 최선 다하자
곧 죽어도 무공천 입장을 고수할 것 같았던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과 당원의 여론조사라는 무리수를 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공천을 하면 사실상 새누리당에 백전백패는 불 보듯 뻔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공동대표는 새정치를 주장했지만 당내 반발 수위가 한계에 달했다는 결론이다. “무공천을 하려면 차라리 당을 해산하라”는 강력 수위의 대응에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안 공동대표는 결과에 승복했다.
그리고 기호2번을 선출하되 국민이 원하는 좋은 후보를 가려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것이 바로 ‘안철수의 힘’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사철수, 철수 정치… 자긴들 이 소리가 듣기 좋겠는가. 천하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고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엉킨 실타래를 재정비하는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안 공동대표는 지난 4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국민이 새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새정치연합을 지켜보고 있다”며 “그 평가는 지방선거 결과와 직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경계하고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고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라고 촉구했다.
또한 공천 관련 “좋은 후보를 가려내기 위한 객관적 원칙과 기준을 세워서 깨끗한 후보·능력있는 후보·지역주민을 위해 헌신하는 후보를 국민 앞에 보여야 한다”라며 개혁공천을 재차 강조했다. 기초단체장 후보 자격심사위원회는 △중앙정치로부터 독립 △현역 국회의원, 지방선거 공천 개입 불가 △현역 의원·단체장에 대한 다면평가 공천 반영 △중앙당 차원의 예비후보 자격심사위원회 구성 △여성·장애인·결혼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전략공천 보장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경선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무공천이 아니라면 정말 좋은 후보라도 가려야 하는 것이 그나마 새정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선거대책위원회는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와 문재인·정세균·정동영·손학규·김두관 등 거물급 정치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역할에 따라 이번 지방선거는 물론 7월 재보궐 선거의 성패를 좌우할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새정치의 기준으로 바로 설 수 있을지 아니면 변칙적 야권연대라는 비웃음으로 끝날지, 이들이 바로 키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