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인생을 노래하는 소리꾼 장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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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인생을 노래하는 소리꾼 장사익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8.10.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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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노래로 만나다 ‘자화상七’ 공연 전국 투어
소리판 위의 음유시인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인생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소리 하나하나엔 인생이 묻어 나 있어 듣는 사람들에게 하여금 깊은 울림을 준다.(사진출처_뉴시스)

[시사매거진=신혜영 기자]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그래서 일까. 그런 시간은 오롯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은 추억으로 깊이 남는 그런 만남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가을을 알리는 빗줄기가 내리던 10월 초 구수한 음색으로 세월과 인생을 노래하는 장사익 선생을 만났다. 자연과 벗 삼아 자리 잡은 그의 집에서 들려준 노래와 인생이야기는 지금 70을 맞이한 그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이 울림은 장사익 소리판 ‘자화상 七’을 통해 대중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대문이 열리고 환한 미소로 기자를 반겨 준 장사익 선생. 지난 해 첫 만남에 이어 올해 역시 그의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인터뷰 하루 전 러시아 공연을 마치고 귀국했다는 선생은 여독이 채 풀리지도 않았을 법도 한데 얼굴만 조금 탔을 뿐 전혀 피곤한 기색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냈다. 그 때와 같이 북한산 사계가 다 보이는 통유리 2층 거실에서 이뤄진 이번 만남은 한 편의 추억의 책장을 완성해 가듯 가을비가 주르륵 내리던 10월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젊은 시절 15개의 직업을 전전하며 부평초처럼 살았던 그 시간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장사익’을 있게 했다. (사진_신혜영 기자)

구수한 음색으로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 음유시인

장사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국적인 창법의 소리꾼이다. 그래서 인지 ‘가수 장사익’이란 수식어보다 ‘소리꾼 장사익’이란 수식어가 더 친숙하다.

아마도 선생이 부르는 노래는 인생을 노래하기 때문이 아닐까. 젊은 시절 15개의 직업을 전전하며 부평초처럼 살았던 그 시간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장사익’을 있게 했다.

“상고를 졸업하고 이후 보험회사, 가구점 점원, 전자회사 영업사원, 마지막으로 한 일은 매제가 운영하던 카센터였어요. 당시 기술이 없으니 맨날 청소하고 주차해주고, 커피도 타주고 했었죠. 한 3년 정도 했는데 사업이 어려워 월급도 못주는 형편이 되다 보니 내 입이라도 하나 덜자 하는 마음으로 그만두었죠.”

그 즈음 ‘내가 이러려고 세상사는 게 아닌데’하면서 인생을 반성했다는 장사익 선생은 ‘뭔가 다시 시작해보자’란 생각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이광수 사물놀이패를 찾았고 그곳에서 태평소를 불었다. 태평소를 불면서 틈날 때마다 굿판에서 쓸 가락을 구상하고 연습을 수도 없이 해오던 그는 공연 후 뒤풀이에서 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1994년,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제안으로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10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에 이틀 동안 800명이 찾았다. 그리고 이듬해 ‘찔레꽃’이 수록된 1집 ‘하늘가는 길’을 발표한다. 1집 수록곡 중 ‘찔레꽃’은 오늘날의 소리꾼 장사익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곡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꽃향기가 진하게 났어요. 향기를 따라 가다보니 찔레꽃이 피어있었어요. 그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찔레꽃을 보는데 순간 눈물이 나더군요. 내 신세가 그 찔레꽃 같아서, 나도 이런 진한 향기가 있는 사람인데 왜 몰라줄까 하고.”

장사익 선생의 노래는 대중가요, 재즈, 국악이 묘하게 뒤섞여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런 묘한 뒤섞임 속에 인생사를 노래로 읊조리며 토해내는 그의 구성진 목소리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깊은 울림이 있다.

1집 ‘하늘가는 길’에 수록 된 ‘찔레꽃’은 오늘날의 소리꾼 장사익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곡이다. 지난 5월 24일 산청군에서 열린 장사익 찔래꽃 음악회 공연(사진출처_뉴시스)

노래는 꽃이고 인생은 눈물이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른 장사익 선생. 데뷔 후 굴곡 없이 노래인생을 살아왔을 것 같지만 2년 전 소리꾼 장사익에게 위기가 닥쳤다. 성대에 혹이 발견 된 것이다.

“처음 진단을 받고 수술 얘기가 나올 때는 목소리가 안 나올 수도 있다는 말에 두려움이 앞섰죠. ‘이 나이에 무얼 뭘 해먹고 사나’하고 정말 진지하게 고민도 했어요. 그래도 긍정적인 결과를 믿기로 하고 수술을 했죠. 수술이 끝나고 말을 못하는 시간 동안 많은 걸 느끼고 생각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했죠. 그러면서 노래라는 것이 나한테는 꽃이고 노래가 없는 인생은 눈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꽃인 듯 눈물인 듯’이다. 지난 2016년 10월 수술 후 성공적으로 무대에 섰다. 노래 인생에서의 위기가 전환이 되어 새로운 노래 인생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장사익 선생은 또 한 번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인생의 쓴 맛을 알아야 인생의 소중함을 알죠”라는 장사익 선생은 “자신의 삶에 최대한 노력을 하면 인생이 재미있게 흘러가지 않을까요? 감사하게 살 수 있는 지금의 삶이 얼마 행복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저는 이 행복한 삶을 노래로 기록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저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나를 더욱 사랑하고자 합니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손수 먹과 벼루를 들고 온 장사익 선생. 그는 하얀 화선지 위에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 버리나’와 ‘사람이 하늘’이란 글귀를 적어 내렸다. 그 가 써 내려간 붓글씨 한 자 한 자가 장사익 선생의 인생을 보여 주는 듯하다. (사진_신혜영 기자)

부평초 같은 삶과 노래 인생, 행복한 자화상을 그려가다

지난 2016년 ‘꽃인 듯 눈물인 듯’ 이후 2년 만에 여는 공연 ‘자화상七’은 9집 음반에 수록된 곡들로 꾸며진다. 동명의 타이틀곡이자 윤동주의 시에 음악을 붙인 ‘자화상’을 비롯해 허영자 ‘감’, 기형도 ‘엄마걱정’, 곽재구 ‘꽃길’ 등의 신곡을 들려준다.

11월 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대구, 부산, 광주, 대전, 고양시를 끝으로 자화상七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이번 공연 주제 ‘자화상七’에 대해 묻자, 우리 인생의 시간들이 축구와 야구와 비슷한 거 같다고 운을 뗀다.

“축구경기는 90분을, 야구경기는 9회전을 치릅니다. ‘9’라는 숫자가 사람들에게 마무리를 하는 그런 의미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나이도 어느덧 인생이란 경기의 종반전을 향하고 있더군요.”

인생 70이 되다 보니 정년의 시간이 됐다는 장사익 선생. 매회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해야 될 것 같다며 자신을 보는 시간을 노래 해보자해서 ‘자화상七’이라고 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봅니다. 많은 시인과 화가들도 어느 순간 궁금한 자신의 모습을 시나 그림으로 표현하죠. 저도 거울 속 너머의 제 모습이 궁급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동안 걸었던 길도 되돌아보고 지금 내가 어디에 어떻게 서 있는가 생각해보는, 내 자신을 보는 시간이 지금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선생의 말 속에서 켜켜이 쌓아온 인생살이가 어떻게 한바탕 신명나게 풀어질지 사뭇 궁금해진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구수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가슴 속을 울리는 그의 노랫소리가 더욱 가슴 깊이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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