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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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놀이공원
  • 글/ 신혜영 기자
  • 승인 2006.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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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인기’ 옛말, 손님 발길 뚝!
에버랜드·롯데월드 등 입장객 감소, 녹지공원 증가 영향
회사원 김도영(40) 씨는 요즘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 잔디광장으로 나간다. 축구장 4~5개는 들어갈 정도로 잔디밭이 넓고, 잔디 질도 좋아 작년부터 이곳 팬이 됐다. 그늘막을 친 뒤 아내·아들·딸과 공을 차고 원반도 던진다. 출출하면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는다. 박씨는 “놀이공원에도 많이 가 봤지만 많이 걸어야 해 아이들이 금새 피곤해하고 교통체증도 만만치 않아 장소를 바꿨다”며 “서울 시내에 서울숲·월드컵공원 같이 돈 들지 않고 상큼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많아져 정말 좋다”고 말했다. 1년 동안 아일랜드에 교환학생으로 갔다 귀국한 김모양. 서울의 공원과 하천이 새삼 아름답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남자친구와 식상한 놀이공원 대신 돗자리를 들고 서울대공원·서울숲 등에 나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놀이공원 손님발길 ‘뚝’
에버랜드는 입장객 감소로 비상경영에 돌입, 서울랜드는 디즈니랜드에 땅 뺏길까 전전긍긍, 롯데월드는 또 사고 날까 조마조마···. 요즘 국내 대표적인 3대 놀이공원들이 겪고 있는 속 앓이다.
여름 휴가철동안 짭짤한 수익으로 즐거워야 할 놀이공원들에 예상치 못한 수난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새 알게 모르게 입장객이 줄어드는 등 어려운 경영 여건에 봉착한 놀이공원들이 각종 사고 빈발에 주말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는 등 안팎으로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 봄에는 황사가 심했던 데다 여름 들어서는 거의 매 주말마다 비가 오거나 궂은 날씨가 지속되고 있어 올 한 해 영업이 치명타를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때문에 입장 수입과 매출 하락에 시달리고 있는 놀이공원들은 경영 위기론까지 들먹일 정도로 깊은 시름에 싸여 있다.
가뜩이나 놀이공원의 경영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을 더욱 부채질 하는 것은 야속한 ‘비’다. 가족나들이를 하려면 적어도 주말만은 날씨는 맑아야 되는데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정반대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장마가 예년보다 무척 길게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희한하게도 주말만 되면 비가 주룩주룩 내려 대목 장사를 망치고 있다.
제헌절을 낀 지난 7월 중순 3일간의 연휴기간이 대표적 사례. 장마와 태풍이 맞물려 전국적으로 쏟아진 장대비는 휴일 기간인 3일 내내 이어졌다. 이 기간 말고도 7월 들어 주말에 맑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7월뿐만이 아니다. 놀이공원들이 자체 집계한 날씨 현황에 따르면 올해 3~6월 4개월 동안 주말에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16일 중 모두 12일이었다. 지난해 비슷한 날씨가 6일이었던 것에 비해 2배로 날씨 여건이 나빠진 셈.
또 올해 황사가 강했던 것도 지난해보다 불리하게 작용했다. 실내 놀이공원인 롯데월드가 그나마 황사 피해를 덜 입은 편이지만 전체 주말 나들이객 숫자의 감소 영향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디즈니랜드 유치 악재 더해
그렇다고 놀이공원의 침체가 올해 유난히 도와주지 않는 날씨만을 탓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최근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입장객 감소가 여전히 완연해 이제는 놀이공원 시장 자체가 그간의 성장세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침체기나 심지어 사양기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감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놀이공원인 에버랜드리조트 경우는 올해 입장객이 지난해보다 늘어나지 않는 정체를 보이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체적으로는 전년 대비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올해가 개장 30주년을 맞은 특별한 해라는 점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실적이다. 더욱이 개장 30주년을 축하하는 대대적인 홍보를 펴고 있는 노력까지 감안하면 투자 대비 드러난 실적은 기대 이하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물을 주제로 한 테마 축제인 ‘서머 스플래쉬’를 벌이고 있는 에버랜드는 특히 한해 입장객이 가장 많아야 할 이번 여름이 하늘에서 물(비)이 쏟아지는 진짜 ‘물 축제’가 돼버렸다고 울상이다.
한국종합유원시설협회 집계에 따르면 에버랜드는 2002년에 입장객 856만 7443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기록한 이후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801만 3,347명으로 6.5%나 입장객이 줄었다. 2004년에는 819만 6,855명으로 약간 늘었지만 여전히 2002년 실적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벌써 수년째 결코 낙관할 수는 없는 상황.
다른 놀이공원들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유원시설협회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04년 전국 26개 사설 놀이공원 입장객은 3,344만 3,064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3,030만 5,901명으로 9.4%나 줄었다. 올해 전망도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리 밝지만은 않다.
특히 서울랜드는 이명박 전 시장이 밝힌 디즈니랜드 유치 약속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놀이공원 부지에 대해 서울시와 유상 사용 연장계약을 맺어야 되는데 벌써 수년째 지지부진하고 있기 때문. 오히려 디즈니랜드가 들어설 부지가 서울랜드와 바로 이웃하고 있는 서울대공원 땅이 될 것이라는 소문마저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랜드는 현 공원 부지를 개발, 1988년 이후 서울시에 기부 채납한 뒤 16년 2개월간 무상 사용해 오다 2004년 7월 이후 다시 10년 유상 사용키로 약정돼 있었지만 디즈니랜드 유치건 얘기가 나오면서 현재 서울시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울랜드는 소송 건이 걸려 있어 고객 창출을 위해 신규 놀이시설을 들여오는 등 투자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결국 서비스 부재와 입장객 감소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또 3대 놀이공원 중 하나인 롯데월드에서 대형 사고가 이어진 것도 놀이공원 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지난 3월 놀이기구를 타던 직원이 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난 것을 필두로 5일간 무료 개장행사를 열었다가 관람객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행사를 취소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것. 이후 롯데월드는 사소한 기계고장이나 작은 실수까지도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등 깜짝증을 앓고 있다.
이런 사고 소식은 당사자인 롯데월드뿐만 아니라 다른 놀이공원들에게까지 파급 효과가 미친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비상경영체제 돌입, 놀이객 모시기
때문에 놀이공원들도 비상경영에 나서고 연일 대책회의를 갖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에버랜드는 박노빈 사장이 올해 일찌감치 ‘리조트 입장객이 줄어들고 있다’며 비상경영을 선포, 경비 절감에 나서는 등 직원들에게 위기감을 일깨워주고 있다. 특히 국내 놀이공원 1호격인 에버랜드가 최근 몇 년간 연거푸 내부적으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있는 것은 놀이공원 시장이 구조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간접 증명해 준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서울랜드도 소송 관련 특별팀을 편성, 비상상황에 돌입했고 롯데월드도 각 부서별로 연일 대책회의를 벌이는 등 어려움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와 관련 유원시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놀이공원들이 입장객 감소를 겪고 있는 것은 각 지역에 생태공원이나 무료공원이 늘어나고 지역축제가 활성화되는 것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풀이했다.
예전에는 주말이면 가족이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것이 여가보내기의 1순위로 거론되곤 했지만 이제는 가족 단위로 다닐 만한 시설이나 이벤트가 동네 주변에 계속 늘어나고 있어 여가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는 것. 또 경기가 수년째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2001년 이후 신용카드 가맹자들이 제공받던 놀이공원 무료입장 혜택이 순차적으로 사라진 것도 놀이공원 침체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입장객 감소라는 청룡열차를 탄 놀이공원들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올 여름이후에도 무심한 하늘만 쳐다봐야 할 것 같다.

늘어난 녹지공원 수익 저하에 한몫
그렇다면 놀이공원을 찾던 입장객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여가를 보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생활주변 녹지공원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잇달아 자연공원과 샛강을 복원해 생태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반면 사설 놀이공원들은 입장객 수가 감소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서울시가 근래 조성한 서울숲과 월드컵공원, 청계천 등엔 요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리고 있다. 작년 6월 개장한 서울숲엔 현재까지 900만 명이 다녀갔다. 난지지구 월드컵공원에도 작년 980만 명이 방문했다. 청계천은 9개월 만에 2,400만 명의 인파가 들렀다. 빅3 놀이공원의 일년 합산 평균 입장객수 1,5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도심 접근성과 저비용, 웰빙휴식이 더해져 사람들을 끄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울시엔 2002년 4,767만평이던 공원이 4년새 200만평 불어나 4,968만평이 됐다. 서울숲·서울광장을 비롯, 45개 도심공원이 조성됐거나 조성 중이다. 옥상공원·담장허물기·학교공원화 사업 등으로 45만여 평의 녹지가 생겼고, 청계천·양재천 등 하천복원으로 12만여 평의 생태공간이 만들어졌다.
반면 서울 시내·외 놀이공원 관계자들은 요즘 썰렁해져 가는 공원을 보며 한숨을 자주 쉰다. 손님이 많이 들어야 할 봄철에도 오히려 전년에 비해 입장객수가 적게는 7%, 많게는 41%까지 감소했다. 과천 서울랜드는 작년 한해 다양한 매직쇼를 새로 펼쳤지만 효과를 보지 못해 올해엔 새 기획을 포기했다. 이곳 관계자는 “토요 휴무일에도 사람이 적다”며 “이젠 어린이날에도 놀이공원이 영순위로 꼽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조경학과 교수는 “경제수준이 높은 후기산업사회에선 다양한 야외활동 욕구가 강해지고 공공기관은 공원 등 여가 공간을 만드는 경향성이 나타난다”며 “이 공간들은 도심 경관을 아름답게 만들 뿐 아니라 각종 체험학습의 장으로도 활용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시장과의 악연 화제
그런 가운데 연이은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서울과 수도권 3대 놀이공원들과 이명박 전 시장의 악연이 화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성장 둔화세에 직면하며 위기에 처해 있는 놀이공원들의 처지가 공교롭게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임기(2002~2006)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 놀이공원은 이 전 시장 재임 기간 동안 경기 불황과 입장객 감소로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간 서울시가 펼친 정책 때문에도 알게 모르게 영업에 피해를 입은 셈이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계천 복원과 서울숲, 월드컵 공원의 조성.
서울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든 이들 공간에는 연일 인파가 몰리고 각종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하는 등 화제가 됐다. 하지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만 하는 사설 놀이공원들은 같은 시간 입장객이 줄어들어 썰렁한 처지에 놓인 것.
서울시는 한술 더 떠 지난해 6월 개장한 서울숲엔 900만 명, 난지지구 월드컵공원에 980만 명, 청계천은 9개월 만에 2,400만 명의 인파가 방문했다고 발표, 직접 조성한 휴식 공간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빅3 놀이공원의 일년 평균 입장객 수 1,5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또 이 전 시장이 디즈니랜드의 수도권 유치를 추진한 것도 놀이공원들에게는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공원 부지를 내놓아야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서울랜드는 가장 큰 피해 당사자. 이 전 시장 입장에서는 시민들을 위해 여가공간을 꾸미고 디즈니랜드를 유치하는 것이 치적이겠지만 놀이공원측은 상대적으로 큰 손실을 보는 셈이다.
지난 3월부터 입장객 감소로 고심하고 있는 용인 에버랜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서비스, 운영 능력을 자랑하는 디즈니랜드가 바로 옆에 들어설까 봐 우려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국내에서는 크게 위협적인 경쟁자 없이 비교적 수월하게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디즈니랜드가 들어설 경우 지금의 놀이기구나 시설로는 세계 수준에 역부족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전 시장이 얼마 전 “내년쯤엔 디즈니랜드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다시 한번 디즈니랜드 유치를 공언해 놀이공원들은 더욱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또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근린 생활 지역에 녹지를 조성하고, 하천을 복원하는 등 생태공원 조성에 적극 나서거나 다양한 지역축제를 벌이는 것도 놀이공원들에게는 악재다.
서울시의 경우 최근까지 12만여 평의 생태공간이 새로 만들어졌는데 그만큼 시민들이 입장료를 내야하는 사설 놀이공원을 가지 않고도 무료 공간을 찾기가 더욱 쉬워진 셈이 됐다. 서울 양재천이나 한강 둔치공원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있는 현상도 같은 맥락.
특히 전국을 영업권으로 삼는 에버랜드리조트는 지역축제의 활성화로 지역 관광객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 크게 긴장하고 있다. 놀이공원의 한 관계자는 “놀이공원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예전과는 다른 참신한 시설이나 마케팅 등 보다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발상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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