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신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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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신화 ‘괴물’
  • 글/이종철 기자
  • 승인 2006.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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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한국영화의 기록을 뒤엎다
최단기간 천만돌파, 흥행신기록…스크린쿼터 악재 작용도

영화 ‘괴물’이 7월 16일 오전에 전국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역대 한국영화 최단기간 1,000만 명 관객 동원의 신기록을 쓰게 된 것이다. 지난 7월 27일 개봉돼 20일 만에 1,000만 명 관객 돌파의 기록으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39일 만에 세운 흥행 기록을 갈아엎게 됐다.

한마디로 이름값을 했다. ‘괴물’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괴력을 발휘하며 순식간에 1천만 관객을 집어삼켰다. 출발선에서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개봉과 동시에 상상 이상의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그러다보니 대견하고 기쁘다는 느낌에 앞서 다소 어안이 벙벙한 것도 사실이다. 관계자, 관객, 영화계, 언론 모두 그 흥행 속도감에 감전돼 잠시 마비돼 있다.
‘괴물’이 한국 영화계의 꿈의 숫자인 1천만 그룹에 네 번째 주자로 합류한 사실은 분명 축하해야 할 일. 스크린쿼터가 축소 시행된 이후 개봉돼 스크린 독과점 논란 등이 야기되며 드러내놓고 기뻐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진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1천만 금자탑의 의미가 퇴색하지는 않는다.
매번 그러했지만 이번 1천만 관객 돌파의 의미는 앞선 세 작품들과 또 다른 선상에 놓여 있다. 단적으로 ‘왕의 남자’의 1천만 돌파가 예상을 뒤엎는, 그야말로 놀라운 기록이었다면 ‘괴물’의 기록은 예상했음에도 놀랍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천만관객 최단기간 수립
시사회에서의 압도적인 호평과 전체 1천648개 스크린의 38%에 해당하는 620개의 개봉 스크린은 '괴물'의 흥행을 예고했다. 그럼에도 ‘1천만 관객’은 누구도 쉽게 장담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1천만 관객은 영화계에 ‘하늘이 내리는 숫자’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야제에서 15만여 명을 모은 ‘괴물’은 개봉 일부터 거침없이 질주하더니 흥행에 관한 각종 기록을 갈아치워 버렸다. 개봉 2주간 평일 평균 50만 명, 주말 평균 75만 명의 관객이 들었으니 잘돼도 너무 잘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1천만 명은 몰라도 흥행 대박은 장담했던 사람들조차도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을 믿기 힘든 상황이 됐다.
‘실미도’는 첫 번째 주자로서의 놀라움을 안겨줬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실미도’의 성적이 어쩌다 나온 일회성이 아님을 증명해보이면서 뿌듯함을 안겨줬다. 또 ‘왕의 남자’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던 성적을 내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괴물’은 경악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 관객들이 이토록 단기간에 한 작품에 ‘올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웰메이드 영화의 힘
물론 이 같은 최단기간 흥행은 620개라는 스크린의 도움이 주효했다. 어디를 가도 걸려 있는 ‘괴물’을 관객이 선택하는 것은 분명 다른 영화보다 훨씬 쉬웠을 터이다. 이에 대해 “극장가의 획일화를 조장 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괴물’의 배급사 쇼박스㈜미디어플렉스가 개봉에 앞서 밝힌 “극장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다 틀었다면 700개 이상의 스크린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성을 따져 620개로 조정했다”는 말은 사실에 크게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5월부터 두 달여 맹위를 떨치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한풀 꺾인 시점인 데다 한국 영화들은 알아서 개봉 시기를 피해갔기 때문에 ‘괴물’이 억지로 스크린을 늘린 것은 아니다. 620개는 시장의 요구였다는 측면이 강하다. 또한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도 ‘괴물’과 비슷한 규모로 개봉했다. 두 영화가 개봉했던 2004년 상반기 전체 스크린 수는 1천200여 개였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개봉 스크린 수 450개 역시 그 당시 상황에서는 전체의 38%에 해당했다.
‘괴물’의 바로 앞선 주자가 ‘왕의 남자’인 까닭에 상대적으로 ‘괴물’이 물량공세를 펼친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왕의 남자’ 역시 출발은 255개 스크린이었지만 중반 397개까지 확대됐다. 특히 지나치게 집단 심리를 자극하거나 선정적인 마케팅을 펼치지 않고서도 시장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는 ‘왕의 남자’와 다를 바 없다.
사실 괴물은 제작 기간 내내 ‘괴담’에 시달렸다. 100억 원대를 넘어서는 제작비와 호흡을 같이 한 괴담의 요지는 “제작이 끝나지 못할 것이다” “괴물의 기술적 완성도가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할 것이다”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등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 제작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이를 보기 좋게 극복해냈다.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제작비에 쪼들려 청어람이 쇼박스에 배급권을 넘기고, 주연배우 송강호가 개런티를 투자비로 돌리는 등, 그들로서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스토리’가 있지만 이들은 난관을 하나씩 하나씩 극복해내며 ‘괴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무엇보다 ‘괴물’은 한국 영화의 콤플렉스였던 기술적 부분의 취약점을 이겨내고 잘 만든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탄생했다. 미국 컴퓨터그래픽(CG)회사 오퍼니지에서 기술적 부분을 담당한 덕도 있지만, 괴물의 모양과 움직임, 콘셉트 등 창의적인 부분은 모두 봉준호 감독과 한국 제작진의 머리에서 나온 것. 게다가 순제작비 110억 원은 우리 영화 시장에서는 분명 엄청난 액수이지만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를 볼 때는 넘치는 돈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특히 할리우드적 관점에서 볼 때는 대단히 알뜰 살림을 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혹자들은 순제작비 44억 원이 든 ‘왕의 남자’와 비교하며 ‘괴물’의 흥행성과를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2년 전 나온 ‘태극기 휘날리며’의 순제작비가 147억 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그런 지적은 합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또한 ‘실미도’가 흥행력에 비해 작품성에 아쉬움을 줬고, ‘태극기 휘날리며’가 ‘고비용’ 프로덕션으로 오점을 남겼으며, ‘왕의 남자’는 힘든 제작 여건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견고함이 떨어졌다면 ‘괴물’은 앞선 주자들의 약점을 상당 부분 극복해냈다는 점에서 더욱 빛난다. 이렇게 보면 1천만 관객은 ‘괴물’에게 합당한 보상으로 보아도 좋을 듯 싶다.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재 점화
현재 ‘괴물’ 관계자들로 하여금 표정관리를 하게 만드는 것은 스크린쿼터 축소. 정부가 7월1일부터 스크린쿼터를 축소 시행한 것은 스크린쿼터 없이도 한국 영화가 잘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래서 ‘괴물’은 파티를 크게 벌이기 힘든 처지다. 한동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싹쓸이로 한국 영화가 주춤했으나 엄청난 흥행으로 만회해 정부의 논리가 먹힐 수 있는 데다, 극장을 못 잡는 작은 영화들을 생각할 때 620개의 스크린은 분에 넘치는 호사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괴물’에 쏠리고 있는 각종 시기 어린 시선들의 출발점 역시 여기다.
그러나 지금까지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에서 최용배 대표나 봉준호 감독, 송강호가 누구보다 앞장섰던 것을 생각할 때 ‘괴물’의 흥행은 한국 영화계가 단순한 질투심으로 폄훼할 일은 아니다. 흥행 주역들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충무로가 활발하게 가동되지 않고, 좋은 작품ㆍ성적을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스크린쿼터 사수 외침은 자칫 공허해질 수 있다.
영화인회의의 한 관계자는 “괴물이 흥행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게 아니다. 괴물의 흥행과 스크린쿼터 논쟁을 결부 짓는 것은 스크린쿼터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크린쿼터는 모든 영화에 대해 상영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상영을 해야 관객이 재미있는지 아닌지를 알게 되는 것 아닌가. 괴물 역시 극장에서 상영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흥행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자칫 괴물 같은 영화도 상영 기회를 놓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한 영화가 많은 스크린을 독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영화계가 질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시장원리에 반하는 것을 극장주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작은 영화들의 상영 기회는 마이너리티 쿼터나 예술영화 전용관 등의 정책을 통해 보완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괴물’의 괴물 같은 기록들
영화 ‘괴물’은 우선 역대 최다 스크린 수를 경신했다. ‘괴물’은 620개의 스크린을 잡아 ‘태풍’의 540개 스크린 수를 훌쩍 넘겼다. 둘째, 전야제 최다 관객 동원이다. 26일 전야제에서 전국 관객 15만1,486명을 동원한 ‘괴물’은 ‘왕의 남자’가 가진 9만 명의 기록을 압도했다.
셋째, 개봉일 최다 관객 수도 갈아 치웠다. ‘괴물’은 개봉일인 27일 45만3,000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태풍’은 개봉일 28만 명, ‘왕의 남자’는 20만 명이 들었다. 넷째, 일일 최다 관객 수도 새롭게 썼다. ‘괴물’은 개봉 3일째인 29일 전국적으로 79만6,587명을 스크린 앞에 앉히는 ‘괴력’을 발휘했다. ‘태극기 휘날리며’(59만 명)의 수치를 20만 명 이상 훌쩍 넘겼다. 다섯째, 개봉 첫 주말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30일까지 263만4154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며, ‘태풍’(180만 명)과 ‘태극기 휘날리며’(177만 명)를 멀찌감치 제쳤다. 여섯째, 최단 기간에 200만 명을 돌파한 영화가 됐다. ‘괴물’은 우리 영화 역사상 유일하게 개봉 4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했다. 일곱째, 최단 기간 300만 명 돌파 기록을 경신하며 대중문화계에 경이로움을 안겼다. ‘괴물’은 개봉 5일 만인 31일 전국 관객 300만 명을 찍으며 ‘태극기 휘날리며’(8일)의 기록을 뛰어 넘었다. 이 같은 추세라면 ‘괴물’이 여러 기록들을 갈아치우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관계자는 “최종 기록까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것 같다”고 예측했다.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한국 영화의 절대위기 상황에서 ‘구원 투수’로 등장한 ‘괴물’. 한국 영화계의 ‘무거운 어깨’를 한층 가볍게 해주며 국내· 외의 뜨거운 시선이 ‘괴물’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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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전 세계 개봉 기대

‘괴물’이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로 뻗어가고 있다. 아시아 시장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까지 개봉을 앞두고 있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 7월 24일 홍콩 개봉으로 해외 공략의 스타트를 끊었다. 이어 9월 2일에는 일본과 대만, 9월 7일에는 태국과 싱가포르, 10월에는 미국, 11월 22일에는 프랑스에서 연이어 개봉한다. 프랑스 이외의 다른 유럽 지역과 중남미 지역에서도 아직 날짜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괴물’이 개봉될 예정이다. 북미 지역의 영화 사이트 ‘트위치 필름’에는 ‘괴물’에 대한 해외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이 올라와 해외 팬들의 높은 관심을 증명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괴물’에 대한 해외영화제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열풍을 일으킨 ‘괴물’은 오는 10일 홍콩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14일 에든버러영화제, 9월 7일 토론토국제영화제, 9월 19일 밴쿠버영화제, 10월 6일 시체스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돼 다시 한 번 관심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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