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명품시계에 호된 된서리 맞은 명품시장
사상 최대 ‘빈센트 앤 코’ 사기사건으로 유통 검증 강화 방침
최근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빈센트 앤 코’ 가짜 명품 시계 사건은 우리 사회 명품족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원가 20만원에도 못 미치는 국산 시계를 수천만 원짜리 해외 명품이라고 선전하자 실제로 걸려드는 명품족들이 많았다. 품질보다는 허영을 좇는 다는 얘기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압구정동 등에서 만난 명품 전문가들의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명품을 찾는 자체가 유행”이라고 꼬집었다.
청담동·압구정동 일대에 몰려있는 명품 전당포에는 소위 명품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들은 여기서 기존 명품을 팔고, 새로운 명품을 사는 일을 반복한다. 명품도 유행을 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명품족들이 물건을 구입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유행입니다. 외국에서는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도 한국에서는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A 명품 전당포에서 만난 자칭 명품 전문가는 “국내에는 진정한 명품족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명품을 보는 안목도 없고, 뚜렷한 주관도 없다 보니 ‘빈센트 앤 코’ 시계처럼 광고하고 연예인을 초청해 런칭파티 하니까 다들 속는 것이 아니 냐”고 꼬집었다.
이 동네 명품 전문가들에 따르면 요즘 명품 시계 시장에서는 ‘샤넬’이 인기를 끌고 있다. 본래 화장품으로 유명한 브랜드이지만 최근 시계가 유행을 탔다고 한다. 가방은 ‘발렌시아가’와 ‘클로에’가 인기를 끈다.
S명품점 관계자는 “명품족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고 젊은층일수록 유행에 민감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20대 여성은 가방과 액세서리, 20대 남성은 시계와 지갑에 관심을 보이고, 30대 이상은 시계를 주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품을 고를 때는 해당 브랜드의 디자인이나 품질을 따지기보다는 유행하는 대세를 쫓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세태를 전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명품족들은 긍정적 역할도 한다. 대규모 소비를 통해 돈을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부자들은 명품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T명품점 관계자는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은 명품에 집착하지 않고, 혹시 사더라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청담동에 문을 연 한 명품매장 사장은 ‘빈센트 앤 코’에 대해 “광고가 나가기 전에도 시계를 들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며 “수천만 원에 샀다면서 ‘받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시계 감정 업무를 맡고 있는 장성원(54) 씨는 “스위스에는 소량 주문 생산하거나 작품전을 여는 독립시계사 제품이 더러 있기 때문에 브랜드로는 명품 여부를 확인 할 수 없다”며 “‘빈센트 앤 코’는 마무리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명품 시계에 비해 ‘빈센트 앤 코’는 바늘, 문자판, 케이스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격이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시계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T명품점 관계자도 “진품과 가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많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품사기사고 또 일어난다?
B홈쇼핑은 지난해 말부터 지난 6월까지 지오 모나코에 대한 방송을 6~7회 내보냈다. 안방 시청자들은 ‘180년 역사’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명품 잡지에도 소개됐다며 호들갑을 떠는 쇼호스트의 말에 넋을 잃고 299만 원짜리 ‘지오 모나코’ 시계를 70여개나 샀다.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인 뉴코아는 얼마 전 해외 명품 브랜드 ‘버버리’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뉴코아가 지난해 11월 지방 점포에서 짝퉁 ‘버버리’ 머플러 1점을 판매했던 것. 위사례에서 보듯 ‘짝퉁 명품’이 국내 굴지의 백화점과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등 온ㆍ오프라인 유통업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가짜 명품의 망령이 이번에는 유통가의 허술한 명품 검증 시스템에 칼날을 겨누는 양상이다.
B백화점은 지난 7월 중순 강남에서 모피행사를 진행하면서 ‘빈센트 앤 코’ 전시회도 함께 열었다. 이 백화점은 이에 앞서 올 초에는 최근 과대광고 시비가 일고 있는 ‘지오 모나코’ 시계 행사도 진행했다. 보름여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G시계는 5개가 팔려 나갔다.
그러나 이들 백화점은 개당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을 판매하면서 검품 시스템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 등 허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백화점마다 검품 담당자들이 명품업자의 수입면장과 사업계획서 등의 서류만 믿고 별다른 검증 없이 상품을 입점 시켰던 것.
한 백화점 관계자는 “검품은 최고 사장까지 결재를 받아야 하지만 현행 시스템은 해당 바이어에 100%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해외 브랜드의 경우엔 원산지 증명서와 수입면장, 사업계획서 등 서류심사는 물론 해외 본사와 공장 등을 방문하는 게 원칙이지만 비용문제 때문에 이를 생략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통가에 단독 브랜드에 사활을 걸면서 짝퉁 명품의 악령이 재연될 가능성이 짙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각 유통업체들은 저마다 수입 브랜드의 경우 관리지침을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해외 브랜드 추가 입점시 해외 유명 유통망에서 이미 검증된 브랜드 위주로 검품 시스템을 개선하기로 했다. 해외 시장 현황과 소비자 반응, 본사 상황 등을 꼼꼼히 추적하는 한편 수입 경로에 대한 관리체제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부방침을 확정했다.
현대백화점도 최초 생산자에서부터 중간 유통업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관련자들을 실명으로 추적하는 ‘수입경로 역추적 시스템’을 시행하기로 했다. 심지어 경쟁 브랜드와 해당국 영사관의 협조를 얻어 해당 브랜드에 관한 정보를 조사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짝퉁사고 많은 TV홈쇼핑도 마찬가지다. 증빙서류가 확실한 명품이라도 반드시 현장을 방문해 검증하는 검품 시스템을 도입하는 홈쇼핑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A홈쇼핑 한 관계자는 “MD심사, 관계자 심의, 임원품평회, QA(품질확인) 등 기존의 4단계를 거치도록 한 검증 시스템에 방송자막은 물론 대본 등 광고내용에서 과장되거나 잘못된 내용이 있는지 마지막까지 최종 확인하는 작업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짜 명품시장 된서리
가짜 명품시계 사건 파문으로 주요 백화점에서 명품시계 매출이 신생 브랜드를 중심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
그 동안 유행의 첨단이라며 명품 시장을 주도했던 신생 브랜드들은 '검증'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며 찾는 이들이 거의 없는 상태. 반면 오랜 전통의 ‘고전적’ 명품시계들은 상대적으로 매출이 견조한 상태다.
최근 명품 주고객층이 희소성을 중시하며 신규 브랜드를 많이 찾았지만 가짜 명품시계 파문이 잇따르면서 확실한 전통적 명품을 다시 찾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 명품시계를 일부 백화점과 대기업 계열 홈쇼핑에서 판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요 백화점들은 입점업체 재검증에 나서는 등 초비상이 걸렸다.
롯데 현대 신세계 갤러리아 등 주요 백화점들은 아울러 최근 파문을 일으킨 브랜드들이 신생 명품임을 내세웠던 점을 감안해 기존 입점업체에 대한 재검증에 들어가는 한편 신규 입점하는 신생 브랜드에 대해 검증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신규 브랜드 입점시 브랜드 매출이나 해외로드숍 현황 등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은 물론, 해외 유통망과 현지 거래처 등을 통해 로드숍의 존재 여부, 본사와 공장 현황 등에 대한 자료를 별도로 점검하는 이중 체크를 하고 있다.
아울러 시계의 무브먼트(부속)를 공급하는 업체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들 업체의 무브먼트를 사용하는지를 확인하고, 스위스시계협회에서 개최하는 박람회 ‘바젤 페어’ 참가 여부도 심사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현대백화점은 ‘빈센트 앤 코’ 파문이 일자 이달 초부터 수입상품 관리지침을 강화했다.
‘수입경로 역추적 시스템’을 통해 최초 생산자에서부터 중간 유통업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관련자들을 실명으로 추적해 확인함으로써 수입상품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것.
신세계백화점은 신규 명품 브랜드 입점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현재 매입본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입점 브랜드 관리 매뉴얼을 좀 더 세부적으로 보강하는 동시에 신규 명품 브랜드 입점 전에는 본사와 현지 공장을 방문해 경영ㆍ영업상황을 반드시 체크하도록 내부 방침을 강화했다.
한편 고가 시계시장에서는 이른바 '아는 사람만 안다는' 희소성을 내세우는 신생 브랜드들의 매출이 크게 부진한 반면 오메가, 롤렉스, 태그호이어 등 '누구나 아는' 전통 명가들의 매출은 본격적인 혼수 시즌을 맞아 매출이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빈센트 앤 코 사기 사건 이후 명품관 에비뉴엘과 잠실점의 명품시계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신장했고, 현대백화점 역시 전국 11개 점포 기준으로 가짜 명품 사건이 발생한 8월 2일 이후부터 9일까지 명품시계 매출이 이전 일주일(7월 26일~8월 1일)에 비해 9.5% 신장했다.
신세계백화점도 8월 초 당시 오메가와 에르메스의 시계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0%대 증가했지만 8일 이후부터 전통적 명품 브랜드로 시계 구매 수요가 크게 이동하면서 오메가 180%, 에르메스 67.8% 등의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도 오메가, 태그호이어, 몽블랑 등 전통적인 명품시계 브랜드가 8월 초 이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빈센트 파문, 명품 쫓는 세태에 경종
‘빈센트’파문은 터질 게 터진 것이라는 게 명품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빈센트말고도 국내에서 만들었어도 명품 딱지를 달고 고가에 판매되는 상품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명품병’에 빠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고가에 팔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이를 교묘히 이용한다는 것이다. 청담동 B보석업체 관계자는 “한국 사람에게 생소한 브랜드가 꽤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짧은 시간 안에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홈쇼핑은 지난 2000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만들어진 120년 전통의 시계’라며 원가 3만 원짜리 상품을 100여만 원에 팔다 원성을 사기도 했다.
‘빈센트 사기극’은 일부 계층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명품을 좋아하고 쉽게 휩쓸려 가는 소비 행태가 깊게 뿌리 박혀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수천만 원짜리 시계 등 명품 하나 걸치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는 것으로 인식해 경쟁적으로 명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모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명품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찾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트렌드가 형성돼 있다”며 “명품 소비는 성형수술처럼 내면적으로 약하니까 겉치장을 통해 자신감을 얻으려는 세태가 반영된 것인데 정신세계를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 ‘빈센트 앤 코’ 사기사건으로 유통 검증 강화 방침
최근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빈센트 앤 코’ 가짜 명품 시계 사건은 우리 사회 명품족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원가 20만원에도 못 미치는 국산 시계를 수천만 원짜리 해외 명품이라고 선전하자 실제로 걸려드는 명품족들이 많았다. 품질보다는 허영을 좇는 다는 얘기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압구정동 등에서 만난 명품 전문가들의 얘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명품을 찾는 자체가 유행”이라고 꼬집었다.
청담동·압구정동 일대에 몰려있는 명품 전당포에는 소위 명품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들은 여기서 기존 명품을 팔고, 새로운 명품을 사는 일을 반복한다. 명품도 유행을 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명품족들이 물건을 구입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유행입니다. 외국에서는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도 한국에서는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A 명품 전당포에서 만난 자칭 명품 전문가는 “국내에는 진정한 명품족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명품을 보는 안목도 없고, 뚜렷한 주관도 없다 보니 ‘빈센트 앤 코’ 시계처럼 광고하고 연예인을 초청해 런칭파티 하니까 다들 속는 것이 아니 냐”고 꼬집었다.
이 동네 명품 전문가들에 따르면 요즘 명품 시계 시장에서는 ‘샤넬’이 인기를 끌고 있다. 본래 화장품으로 유명한 브랜드이지만 최근 시계가 유행을 탔다고 한다. 가방은 ‘발렌시아가’와 ‘클로에’가 인기를 끈다.
S명품점 관계자는 “명품족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고 젊은층일수록 유행에 민감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20대 여성은 가방과 액세서리, 20대 남성은 시계와 지갑에 관심을 보이고, 30대 이상은 시계를 주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품을 고를 때는 해당 브랜드의 디자인이나 품질을 따지기보다는 유행하는 대세를 쫓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세태를 전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명품족들은 긍정적 역할도 한다. 대규모 소비를 통해 돈을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부자들은 명품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T명품점 관계자는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은 명품에 집착하지 않고, 혹시 사더라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청담동에 문을 연 한 명품매장 사장은 ‘빈센트 앤 코’에 대해 “광고가 나가기 전에도 시계를 들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며 “수천만 원에 샀다면서 ‘받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시계 감정 업무를 맡고 있는 장성원(54) 씨는 “스위스에는 소량 주문 생산하거나 작품전을 여는 독립시계사 제품이 더러 있기 때문에 브랜드로는 명품 여부를 확인 할 수 없다”며 “‘빈센트 앤 코’는 마무리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명품 시계에 비해 ‘빈센트 앤 코’는 바늘, 문자판, 케이스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격이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시계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T명품점 관계자도 “진품과 가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많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명품사기사고 또 일어난다?
B홈쇼핑은 지난해 말부터 지난 6월까지 지오 모나코에 대한 방송을 6~7회 내보냈다. 안방 시청자들은 ‘180년 역사’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명품 잡지에도 소개됐다며 호들갑을 떠는 쇼호스트의 말에 넋을 잃고 299만 원짜리 ‘지오 모나코’ 시계를 70여개나 샀다.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인 뉴코아는 얼마 전 해외 명품 브랜드 ‘버버리’로부터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뉴코아가 지난해 11월 지방 점포에서 짝퉁 ‘버버리’ 머플러 1점을 판매했던 것. 위사례에서 보듯 ‘짝퉁 명품’이 국내 굴지의 백화점과 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등 온ㆍ오프라인 유통업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가짜 명품의 망령이 이번에는 유통가의 허술한 명품 검증 시스템에 칼날을 겨누는 양상이다.
B백화점은 지난 7월 중순 강남에서 모피행사를 진행하면서 ‘빈센트 앤 코’ 전시회도 함께 열었다. 이 백화점은 이에 앞서 올 초에는 최근 과대광고 시비가 일고 있는 ‘지오 모나코’ 시계 행사도 진행했다. 보름여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G시계는 5개가 팔려 나갔다.
그러나 이들 백화점은 개당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을 판매하면서 검품 시스템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 등 허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백화점마다 검품 담당자들이 명품업자의 수입면장과 사업계획서 등의 서류만 믿고 별다른 검증 없이 상품을 입점 시켰던 것.
한 백화점 관계자는 “검품은 최고 사장까지 결재를 받아야 하지만 현행 시스템은 해당 바이어에 100%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해외 브랜드의 경우엔 원산지 증명서와 수입면장, 사업계획서 등 서류심사는 물론 해외 본사와 공장 등을 방문하는 게 원칙이지만 비용문제 때문에 이를 생략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통가에 단독 브랜드에 사활을 걸면서 짝퉁 명품의 악령이 재연될 가능성이 짙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각 유통업체들은 저마다 수입 브랜드의 경우 관리지침을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해외 브랜드 추가 입점시 해외 유명 유통망에서 이미 검증된 브랜드 위주로 검품 시스템을 개선하기로 했다. 해외 시장 현황과 소비자 반응, 본사 상황 등을 꼼꼼히 추적하는 한편 수입 경로에 대한 관리체제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부방침을 확정했다.
현대백화점도 최초 생산자에서부터 중간 유통업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관련자들을 실명으로 추적하는 ‘수입경로 역추적 시스템’을 시행하기로 했다. 심지어 경쟁 브랜드와 해당국 영사관의 협조를 얻어 해당 브랜드에 관한 정보를 조사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짝퉁사고 많은 TV홈쇼핑도 마찬가지다. 증빙서류가 확실한 명품이라도 반드시 현장을 방문해 검증하는 검품 시스템을 도입하는 홈쇼핑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A홈쇼핑 한 관계자는 “MD심사, 관계자 심의, 임원품평회, QA(품질확인) 등 기존의 4단계를 거치도록 한 검증 시스템에 방송자막은 물론 대본 등 광고내용에서 과장되거나 잘못된 내용이 있는지 마지막까지 최종 확인하는 작업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짜 명품시장 된서리
가짜 명품시계 사건 파문으로 주요 백화점에서 명품시계 매출이 신생 브랜드를 중심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
그 동안 유행의 첨단이라며 명품 시장을 주도했던 신생 브랜드들은 '검증'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며 찾는 이들이 거의 없는 상태. 반면 오랜 전통의 ‘고전적’ 명품시계들은 상대적으로 매출이 견조한 상태다.
최근 명품 주고객층이 희소성을 중시하며 신규 브랜드를 많이 찾았지만 가짜 명품시계 파문이 잇따르면서 확실한 전통적 명품을 다시 찾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 명품시계를 일부 백화점과 대기업 계열 홈쇼핑에서 판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요 백화점들은 입점업체 재검증에 나서는 등 초비상이 걸렸다.
롯데 현대 신세계 갤러리아 등 주요 백화점들은 아울러 최근 파문을 일으킨 브랜드들이 신생 명품임을 내세웠던 점을 감안해 기존 입점업체에 대한 재검증에 들어가는 한편 신규 입점하는 신생 브랜드에 대해 검증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신규 브랜드 입점시 브랜드 매출이나 해외로드숍 현황 등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은 물론, 해외 유통망과 현지 거래처 등을 통해 로드숍의 존재 여부, 본사와 공장 현황 등에 대한 자료를 별도로 점검하는 이중 체크를 하고 있다.
아울러 시계의 무브먼트(부속)를 공급하는 업체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들 업체의 무브먼트를 사용하는지를 확인하고, 스위스시계협회에서 개최하는 박람회 ‘바젤 페어’ 참가 여부도 심사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현대백화점은 ‘빈센트 앤 코’ 파문이 일자 이달 초부터 수입상품 관리지침을 강화했다.
‘수입경로 역추적 시스템’을 통해 최초 생산자에서부터 중간 유통업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관련자들을 실명으로 추적해 확인함으로써 수입상품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것.
신세계백화점은 신규 명품 브랜드 입점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현재 매입본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입점 브랜드 관리 매뉴얼을 좀 더 세부적으로 보강하는 동시에 신규 명품 브랜드 입점 전에는 본사와 현지 공장을 방문해 경영ㆍ영업상황을 반드시 체크하도록 내부 방침을 강화했다.
한편 고가 시계시장에서는 이른바 '아는 사람만 안다는' 희소성을 내세우는 신생 브랜드들의 매출이 크게 부진한 반면 오메가, 롤렉스, 태그호이어 등 '누구나 아는' 전통 명가들의 매출은 본격적인 혼수 시즌을 맞아 매출이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빈센트 앤 코 사기 사건 이후 명품관 에비뉴엘과 잠실점의 명품시계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신장했고, 현대백화점 역시 전국 11개 점포 기준으로 가짜 명품 사건이 발생한 8월 2일 이후부터 9일까지 명품시계 매출이 이전 일주일(7월 26일~8월 1일)에 비해 9.5% 신장했다.
신세계백화점도 8월 초 당시 오메가와 에르메스의 시계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0%대 증가했지만 8일 이후부터 전통적 명품 브랜드로 시계 구매 수요가 크게 이동하면서 오메가 180%, 에르메스 67.8% 등의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도 오메가, 태그호이어, 몽블랑 등 전통적인 명품시계 브랜드가 8월 초 이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빈센트 파문, 명품 쫓는 세태에 경종
‘빈센트’파문은 터질 게 터진 것이라는 게 명품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빈센트말고도 국내에서 만들었어도 명품 딱지를 달고 고가에 판매되는 상품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명품병’에 빠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고가에 팔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이를 교묘히 이용한다는 것이다. 청담동 B보석업체 관계자는 “한국 사람에게 생소한 브랜드가 꽤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짧은 시간 안에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홈쇼핑은 지난 2000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만들어진 120년 전통의 시계’라며 원가 3만 원짜리 상품을 100여만 원에 팔다 원성을 사기도 했다.
‘빈센트 사기극’은 일부 계층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명품을 좋아하고 쉽게 휩쓸려 가는 소비 행태가 깊게 뿌리 박혀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수천만 원짜리 시계 등 명품 하나 걸치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는 것으로 인식해 경쟁적으로 명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모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명품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찾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트렌드가 형성돼 있다”며 “명품 소비는 성형수술처럼 내면적으로 약하니까 겉치장을 통해 자신감을 얻으려는 세태가 반영된 것인데 정신세계를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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