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을 위한 유쾌한 마트, 동양할인마트로 오세요!
상태바
지역민을 위한 유쾌한 마트, 동양할인마트로 오세요!
  • 공동취재단
  • 승인 2014.03.07 1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따듯하고 끈끈한 정이 있는 남양주가 참 좋습니다”

지방경제시대 속에서 전국의 각 자치단체들은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경쟁력을 앞세워 경쟁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취재대상지역인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그 어느 지역에도 뒤지지 않는 지역민들 사이의 끈끈한 그 무언가가 있다. 매우 왕성한 자발적 기부, 봉사활동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서울 근교의 도시답지 않은 순박함과 따듯한 정이 오고간다. 결국 소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이런 부분들이 지역발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에 위치한 동양할인마트(박용만 대표)는 대지 3,400㎡, 매장면적 1,000㎡와 50여 대의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남양주시의 대표적 쇼핑 공간 중 한 곳이다.
동양할인마트는 농·수·축산물을 산지와의 직거래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신선하고 좋은 상품을 최저가로 판매·제공하는 등 지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 2004년 12월 대한민국유통대상 산업부장관상 수상과 2010년 11월에는 중소기업 혁신회사로 중소기업청장상을 수상, 2013년 1월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관내 박기춘 국회의원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유통업에서 성공을 이루고 지역사회에 아낌없는 환원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 대표의 지난 성공 과정을 들여다봤다.
충남 금산이 고향인 박 대표는 젊은 시절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제일제당에 입사를 했다. 입사 후 당시 故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의 다시다 판매에 사활을 걸고 직원들에게 적극적인 판매를 권유했다. 그는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관내에 있는 유통을 담당했으며 열심히 동분서주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러던 중 관내에 선배가 운영하던 슈퍼마켓을 어렵사리 인수를 하게 됐고, 27살이란 젊은 나이의 박 대표의 인생은 여기서부터 대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기 시작한다.
하루 300~400만 원의 평균매출을 1,000만 원까지 끌어 올렸다. 그는 인근 증권회사, 사무실, 보험회사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영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각 보험회사 소장들의 소개로 인한 영업실적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한창 젊은 나이에 월 매출 1,000만 원을 올렸을 때의 기분은 정말 대단했죠.”
그렇게 1년 정도를 하다 보니 박 대표의 얘기가 여기저기 소문이 났고 각 유통회사에서 벤치마킹을 하러 몰려들었다. 1,000만 원의 매출 중 절반인 500만 원 정도가 배달로 인한 매출이었으니 동네의 작은 슈퍼에서 이러한 실적은 모두를 놀라게 할 만 했다.
그렇게 1년을 정신없이 보내고 슈퍼마켓을 팔라는 권유에 당시 3,000만 원의 권리금을 주고 인수한 그는 1억 2,000만 원의 권리금을 주고 되팔았다. 1년 만에 권리금으로 인한 수익 9,000만 원과 1년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 1억 원을 합해 총 2억 원에 가까운 돈을 번 것이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비교하면 젊은 나이에 정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서초동으로 가서 70평짜리 죽어가던 슈퍼마켓을 다시 인수 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남아 25평짜리 아파트도 구입하고 결혼도 했구요”라고 말하던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지역사회와 함께
서초동에 있는 슈퍼를 인수하게 된 그는 죽어가던 슈퍼마켓을 되살리는 큰 재미를 느꼈다. 그에게 강남은 또 다른 도전을 향한 자신감 넘치는 성공의 무대였던 것이다. 결과는 역시나 성공이었다. “강남 전체가 제 독무대였죠. 성공한 노하우를 살려 적극적인 영업을 펼쳤으며 전략은 그대로 통했습니다.”
일평균 200~3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던 슈퍼를 또 다시 하루 1,000만 원의 매출로 끌어올렸고 그렇게 3년 동안 또 다시 큰돈을 버는 등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다. 27살부터 7~8년 동안 그렇게 성공의 길을 걷기만 한 그도 98년도에 찾아온 IMF의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시련을 겪은 그는 그 후 많은 생각을 했다. “IMF를 맞으며 부도를 겪은 후에야 사람이 언제나 승승장구할 수는 없는 것이란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 후 50평대 아파트에서 살던 그는 25평짜리 월세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만 했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경기도 구리시로 온 그는 구리시 최초의 할인마트를 시작했다. 바로 동양할인마트였다. 결과는 대 성공! 당시 하루에 3,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으니 실로 엄청난 실적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영원할 수는 없는 법. 중소 유통회사들이 구리시로 들어오면서 경쟁은 심해졌고 그는 다시 하나씩 사업장을 정리하고 지금의 자리에 동양할인마트 본점을 경영하고 있으며 회사 관리자로 근무하던 직원들은 가맹점으로 8군데서 영업을 하고 있다.
지금 박 대표는 큰 목표를 세우고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야심차게 하나씩 천천히 준비하고 있다. 2014년 말까지 2, 3호점을 관내에 출점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2015년 말까지 동양할인마트 물류를 갖추고 가맹점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 사업장에 본부매장을 운영하면서 향 후 2, 3개의 대형 점포를 출점하고 관내에 물류시스템을 구축, 인근 중소형마트에 좋은 물건을 공급하는 물류회사를 만들어 청년 및 부녀자들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남양주시와 상생할 수 있는 최고의 유통회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큰 시련, 그리고 큰 행복
박 대표는 지난 2012년부터 지역에서 ‘동양할인마트배 조기축구 대회’를 매년 개최하는 등 이 외에도 현재 지역사회를 위해 매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또한 스토리가 숨어 있다.
지난 2010년 7월 동양할인마트에 큰 화재가 발생했었다. 토평동 자택에서 잠깐 눈을 부치려 한 그는 보안회사로부터의 전화 한 통을 받고 허겁지겁 사업장으로 달려갔다. 매장 전체 지붕은 말 그대로 온통 불바다였다. 화재가 일어난 순간부터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30여 명의 직원 중 퇴사 한 직원은 단 한명도 없었으며 지역민들까지 모두 모여 복구 작업에 동참했다. 박 대표는 화재사고를 통해 큰 시련과 큰 행복을 동시에 얻은 것이며 당시의 화재사건이 지역사회를 위한 아낌없는 마음을 만들어 준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인터뷰를 끝으로 둘째를 출산하는 순간까지 마트 일을 돕다 병원으로 실려 갔던 사랑하는 아내에게 지금까지 힘든 일 같이 겪으며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또한 그의 멘토이자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신 연세대경영대학원의 유통학 교수로 재직 중인 오세조 교수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전 임직원들과 지역 주민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