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딜’에 묶인 규제혁신·민생경제 법안 가까스로 국회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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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딜’에 묶인 규제혁신·민생경제 법안 가까스로 국회 통과
  • 이응기 기자
  • 승인 2018.10.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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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시절 반대 여당되니 찬성? 당의 자존심과 정체성 문제

(시사매거진246호=이응기 기자) 후반기 국회가 40여 일간 입법부 공백을 깨고 막이 오르면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협치가 최우선이라 강조했다. 여야는 민생경제법안TF를 구성해 논의해 협치에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8월 임시국회에서 ‘패키지딜’에 묶여있는 주요 핵심법안들은 장시간 협상을 벌였음에도 불과하고 난항을 겪어 불발처리 되었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함과 동시에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진 가운데 지난 20일 73건의 법률안 및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등 총 83건의 안건이 의결되었다. 진정한 ‘협치’는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사진_뉴시스, 편집 시사매거진)

문희상 국회의장 “후반기 국회는 협치가 최우선”

지난 7월 13일 후반기 국회의 막이 올랐다. 20대 국회 전반기가 종료된 이후 약 40여 일 동안 입법부 공백 사태는 가까스로 해결된 셈이다. 입법부 수장에 더불어민주당 6선 문희상 의원이 공식 선출되었다. 문 의장은 당선 소감에서 “후반기 국회 2년은 협치가 최우선이 될 것”이라고 협치를 강조했다. 본격적으로 여야는 규제혁신 및 민생경제관련 법안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 위해 지난 7월 23일 교섭단체 3당 정책위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가 참여하는 민생경제법안 TF를 구성해 논의하는 것에 합의했다. 지난 8월 16일부터 시작된 임시국회에서는 ‘규제프리존법’, ‘은산분리 규제완화법’,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등이 패키지로 함께 논의되었으나, 각 법안별로 정당 간의 입장 차이가 있어 결국 국회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달 20일 정기국회에서 8월에 통과되지 못한 73개 법안이 통과되면서 국회는 체면치레는 한 셈이 되었다. 주요 법안별로 쟁점이 되었던 사항을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 면담 및 규제프리존법 등 박근혜-최순실 법 졸속 합의 더불어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앞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에 시민 단체들은 청와대와 여당이 공약파기를 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사진_뉴시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공약파기 논란

‘규제프리존’법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캠프 시절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규제프리존법’을 찬성하는 입장에 대해 비판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었다. 그러나 현재 청와대와 여당이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시민사회단체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공약파기를 하고 있다며 거센 반발을 하고 있다. 이 법안의 주요 골자는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광역시도를 선정해 27개 지역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대표적으로 자율주행차, 드론, 인공지능 등의 사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 재정과 세제를 지원하는 것이며,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입법 정책을 추진했던 법안이다. 20대 국회에서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의원 시절 대표 발의한 지역특구법 개정안과 한국당 추경호 의원이 발의한 지역특화발전규제특례법을 병합하기로 합의했다. 논의의 핵심쟁점은 법안 대상에 ‘보건·의료’ 분야를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당은 만약 포함시킬 경우 영리화 및 의료 공공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반대하는 반면 한국당은 박근혜 정부인 19대 국회부터 주요 핵심 국정과제로 지정해왔던 분야를 포함시키지 못할 경우 법안의 핵심이 빠지는 것이라고 주장해 절충점 조율에 실패했었다. 더욱이 의료민영화에 대한 약사회 등 의약 단체들의 반발과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인해 합의가 지연되고 있던 법안으로 지난달 통과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 중구 서울시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금융 규제혁신 1호’ 안건으로 은산분리를 제안했다.(사진_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금융 규제혁신 1호’ 안건 여당에서 반대

문 대통령은 ‘금융 규제혁신 1호’ 안건으로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제한)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을 제안했다. 이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상한을 기존 은행법 기준 4%에서 34%로 높이되 시행령을 통해 개인 총수가 있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제외하도록 했다. 아울러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자산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에는 예외적으로 34%의 지분 보유를 허용하는 내용을 시행령에 함께 포함하도록 했다. 반면 민주당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거셌다. 민주당은 지난 8월 20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은산분리 완화에 관한 논의를 했다. 이날 강병원 원내대변인은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신중히 추진하기로 했다”며 “정무위에서 우려 사항을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가 되면 다시 정책 의총을 열어 추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합의는 했지만 통과는 불발된 조물주 위에 건물주

지난 6월 세입자가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르는 일명 ‘궁종족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건물주가 5년 임대계약이 끝난 뒤 족발집을 운영하는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대폭 인상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는 세입자는 재판에서 패소하고 강제집행에 저항하다가 결국 폭력을 행사하였다. 현행법상 건물주가 임대료를 높이거나 계약을 해지할 수 없는 기간은 5년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개정안은 세입자를 보장하는 임대계약 갱신 기한을 5년을 더 늘려 10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이다.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기한을 10년으로 늘리는 대신 건물주에게는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다른 법안들의 합의가 이뤄지지 못해 통과는 불발되었다. 이에 정의당 김종대 원내대변인은 지난 8월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민생 법안이라며 합의한 법안 중에 사실상 민생 법안은 오직 상가임대차보호법 하나뿐이었다. 다른 법안과 함께 처리하는 게 아니라 상가임대차보호법 만이라도 8월 중에 처리했어야 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그늘은 여전히 남게 됐다”라면서 자영업자의 목을 죄는 임대료를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규탄했다.

어린이 안전마저 뒷전으로 밀려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어린이집 차량 하차 확인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잠자는 아이 확인법’은 여야의 무관심 속에 8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차량에 갇혀 7시간 동안 방치돼 어린이가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지고 나서야 민주당의 김한정·권칠승·한국당의 김현아·미래당의 유승민 의원 등이 ‘잠자는 아이 확인법’을 발의했으며, 여야가 국회 통과를 합의했다. 하지만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는 의원들의 관심이 부족했다. 소관 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부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비판이 나오자 각 상임위와 관련 부처들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을 다룬 비쟁점 법안이 뒷전으로 밀려졌다는 비판에 대해 여야 모두가 자유롭지 못했던 상황을 뒤늦게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여야가 규제혁신・민생경제법안 합의를 하지 못한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브리핑을 마친 뒤 퇴장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쟁점법안인 ‘패키지딜’에 관심이 쏠린 나머지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을 다룬 비쟁점 법안이 뒷전으로 밀려졌다는 비판도 피해가지 못했다.(사진_뉴시스)

정기국회 개회 또다시 협치 강조, 그러나…

여야는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약속했던 핵심 쟁점법안들에 대해 본회의 시간을 연기하면서 막판 협상을 이어갔지만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다만 30여 개의 생활·경제에 대한 법안이 통과되면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이에 여야는 본회의에서 합의하지 못한 법안에 대해 9월 열릴 정기국회를 기약했다.

정기국회 개막 전날인 지난 9월 2일 여야는 서로를 견제하는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협치를 강조했다. 9월 3일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문 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일 잘하는 실력 국회를 위한 첫 번째 과제는 협치의 국회, 협치의 틀을 만드는 일”이라며 “이번 정기국회 100일을 민생입법의 열매를 맺기 위한 협치의 시간이 되도록 하자”고 또다시 협치를 강조했다. 또 문 의장은 “정기국회에서 4·27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의 비준 동의를 다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4·27판문점 선언에 대한 국회의 비준 동의는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사안이기 때문에, 순탄치 않은 정기국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명약관화다. 정기국회가 여야 3당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며 100일 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판문점 선언 비준, 선거제도 개편,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으로 논란 중인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등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교섭단체 대표연설부터 여야는 정국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이어갔다.

지난 9월 17일 여야 3당 원내대표들은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만나 쟁점법안들에 대해 20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각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한 뒤 본회의를 통해 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날 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20일 통과시키기로 한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법’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다. 문 대통령의 ‘금융 규제혁신 1호’ 법안이지만 의원들에겐 자존심과 당의 정체성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른 화두는 “규제프리존법에 사업과 산업이 같이 포함되는 것이 쟁점”이라고 말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말이었다. 한국당은 특정 지역별로 산업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사업 초기 단계에서 한시적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택하고 있었다.

정기국회로 넘어온 규제혁신·민생경제법안이 여야의 당리당략이라는 높은 산을 넘어 통과되었다. 그러나 국회가 추구하는 ‘협치’와는 아직도 거리가 먼 느낌이다. 만약 ‘국회선진화법’이 없었다면 아직도 국회는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전쟁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번 법안 통과를 통해 ‘빈손 국회’라는 오명을 벗었다고 할지라도 국민이 원하는 ‘협치’의 정치는 우리 정치에서는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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