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서울시 관악구의 한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그동안 300여 명의 아기들이 버려졌다. 베이비박스는 한 교회 목사가 아기를 키울 수 없는 부모들이 아기를 놓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아기를 버리려거든 차라리 이곳에 맡기고 가라’는 취지로 만들어졌는데 맡겨지는 아기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전국에 하나뿐인 베이비박스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아기를 맡기기 위해 전국에서 아기 부모가 몰려들고 있다. 지난해 이곳에 맡겨진 아기는 2012년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전국에서 하나뿐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시행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들이 아기를 버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입양특례법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의 입양을 촉진하고 입양 아동의 보호와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규정한 법이다. 기존의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을 ‘입양특례법’으로 바꾸고 2012년 8월5일부터 새롭게 시행됐다. 이 법은 국내입양 우선추진제, 가정법원 허가제, 양부모 자격제한, 입양숙려제 도입, 입양인의 자기정보공개청구원 명시, 입양아동의 민법상 친양자 지위인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허위 출생신고로 인한 입양과 지원금을 타기 위한 수단으로 입양이 이용되는 등 악용을 막고 입양아동의 권익과 원가정 보호를 목적으로 개정됐다.
과거 입양이 부모의 입장과 인권의 측면에서 생각했다면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아이의 인권을 중심으로 한 입양이 이뤄지도록 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혼모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법안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복잡하고 길어진 입양절차

정상적으로 입양절차가 완료되면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가 작성돼 친모와 모자기록이 남지 않지만 입양이 되지 않는 경우, 호적에 친자로 남게 된다. 입양을 위해 친모가 호적에 아이를 등록해도 실제 입양이 되는 경우는 1/3 정도에 불과하다. 여전히 가족관계증명서에 아이가 있기 때문에 친모는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적 문제를 안게 된다. 일각에서는 “입양특례법은 본디 입양 아동의 인권과 이익을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오히려 친모의 혼전 임신 사실을 알리게 돼, 입양보다 아동 유기를 선택하는 미혼모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뿌리를 찾을 수 없었던 입양인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2,000여 명의 아이들이 입양되고 있으며 이중 40%가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해외입양 세계 4위라는 불명예와 함께 입양인이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의 입양체계는 그간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는 입양에 대한 제제를 강화해 입양된 아이들이 양부모에게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성장 후 자신의 뿌리를 찾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로 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법이 까다롭게 개정되면서 입양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개정 입양특례법 시행 1년 현안문제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내 입양은 2011년 249건에서 2012년 157건으로 36.9% 감소했다. 이는 전국 평균 감소율 27.3%보다 10%p 가량 높은 수준으로 입양허가 신청 시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연구원은 “입양허가제에 따라 미혼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산기록이 남고 양부모에게도 공개입양, 자격제한 등 엄격한 조항이 적용돼 합법적인 입양을 꺼린다”고 분석했다. 입양 아동이 자신의 친부모를 알 권리를 존중하고 입양이 아동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법 도입 취지가 합법적인 입양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적용된 셈이다.

현실 고려한 보완책 강구해야
60년대 개정된 입양법에 따르면 국내 입양 시 입양신고를 거친 뒤 호적에 올리도록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입양 부모들이 입양 신고 없이 친자식처럼 직접 호적에 올리곤 했다. 당시에도 관련 법규가 있었기에 명백한 위법이었지만 대부분의 양부모들이 입양 후 입양신고가 아닌 출생신고를 해서 서류상 입양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불법이 가능했던 것은 1977년 대법원의 판례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대법원은 ‘양친자 창설의 명백한 의사가 있고 입양의 성립 요건이 구비된 경우에는 요식성을 갖춘 입양신고 대신 친생자 출생신고라 해도 입양 효력이 있다’고 판결했다.
친자식이 아닌 것이 오점으로 통하는 한국사회에서 양부모가 아닌 친부모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 판결이라 할 수 있지만, 친가족과의 고리를 끊어버린 계기가 됐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
정부는 결국 입양 문제에 칼을 꺼내 들었고 올바른 입양문화를 정착시키고자 2010년부터 입양특례법을 논의, 2012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는 “입양이 완료되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완전히 기록이 삭제된다. 다만 입양인을 보호하기 위해 파양 시 기록이 다시 살아난다. 정확한 기록을 남겨 양측이 원할 경우,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다”라며 “입양된 아이가 새로운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양부모의 자격 검증절차를 강화했다”고 밝혔다.
입양특례법에는 논란이 된 허가제 외에도 순기능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입양보다 친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 만큼 ‘7일간의 입양 숙려기간’을 지정했다. 친부모가 의무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신중하게 입양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또 미성년자가 아이를 출산해 입양할 경우 부모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침도 추가했다. 입양특례법의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입양률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혼모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만큼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보안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