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쉬는 듯한 역사 체험하며 복잡했던 마음 정리되는 곳
전 국토가 박물관. 우리 나라를 이렇게 불러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금수강산 곳곳은 훌륭한 문화를 간직했던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의 문화 유적지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경복궁은 우리 민족이 가장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경복궁에 대해서 깊게 알지 못한다. 하루 소풍 길에 만족했던 방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심 속 역사를 찾아서」그 첫 번째로 경복궁을 소개한다.
태조 이성계 개국 초 설립
조선시대에 지어진 5개의 궁 가운데 경복궁은 으뜸이 되는 정궁이다. 경복궁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성을 떠나 서울을 새로운 나라의 터전으로 잡은 후 1395년 새 왕조의 궁전으로 지은 것이다.
경복궁은 순탄하지 못했다. 1553년 대 화재로 불에 타고, 다시 임진왜란때 방화로 타버린 경복궁은 그후 250년 동안 버려지듯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버려져 있던 것을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외세에 의해 무너져 가던 나라의 기강과 왕조의 복구를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재건하였다. 경복궁의 중창은 단순한 옛궁의 재건이 아닌 새로운 궁궐의 조영이라 할 수 있다.
경복궁 중창은 임진왜란 이후 본궁을 버려 두었다는 명분과 함께 외세들로 인하여 실추된 왕권을 다시 세우려는 흥선대원군의 꼿꼿한 의지가 서려있었다. 하지만 명성 왕후가 건청궁에서 일본인에게 무참히 시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후 고종은 덕수궁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부터 경복궁은 주인 잃은 빈 궁궐이 되고 만다. 더욱이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후, 경복궁은 일본인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 4,000여칸의 건물이 헐리는 등 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에서 민족 정기 회복의 하나로 경복궁 복원 사업을 벌여 경복궁 옛 모습 살리기에 힘쓰게 되었다. 지난 1996년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영제교와 흥례문을 복원했다. 비록 궁안 대부분의 건물들이 옛 모습을 잃어버리거나 사라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주요 건물들이 남아있다.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영제교·흥례문 복원
경복궁은 근정전에서 시작된다. 근정전은 정궁의 정전. 최고의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곳에서 조선시대 왕들은 백성들이 편안히 사는 방법을 찾으며 부지런히 일했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어서 안을 살펴볼 수가 없다. 근정전을 지나면 사정전이 보인다. 이곳에선 문무신료들이 깊이 생각하는 정치를 임금에게 주문했다는데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자주 들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정전 북쪽으로 가면 왕의 처소인 강녕전이 나온다. 강녕전을 위로 왕비가 머무는 교태전이 있다. 요즈음 방송 사극에서 이 교태전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후궁들의 암투가 새삼 떠오른다. 교태전은 왕비의 정침인 궁중전. 그 뒤로 후정인 아미산이 있다.
아미산은 궁중 후원의 대표. 원래 중국 사천성 아미현의 서남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경관이 매우 수려한 선산으로 이를 상징화한 이름이다. 아미산에는 6각형의 화전으로 축조한 굴뚝 4개가 있다. 이 벽면은 당초문, 소나무, 대나무, 매화, 모란, 국화, 용, 호랑이, 박쥐, 해태, 구름 등의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 곧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한 문양들은 왕과 신하 그리고 행복과 장수, 사군자의 선비적 고고함 등을 상징하고있다. 앞마당에 큰 나무를 심지 못하게 했던 제도 때문일까? 기화요초의 아름다움과 녹음방초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안타깝게도 후원뿐이었다.
경회루와 향원정
경회루는 왕실 전용의 휴식공간.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침전구역의 바로 옆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회루는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왕이 잔치를 여는 곳인데 어디선가 어렴풋이 풍악이 들리는 것 같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였던지라 경회루의 구조도 그와 비슷하게 보인다.
경회루는 옛 문헌에 의한 주역의 원리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경회루가 남성적이라면 향원정은 아늑하고 매우 여성적인 곳이다. 1층에는 평범한 난간의 툇마루를 두었고, 2층에는 닭다리 모양의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다. 그리고 각 칸마다 예쁜 나무 창살들을 달아 그냥 보기에도 참 멋있다.
궁내에는 전각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구나 왕실의 여러 가지 유물들도 있다. 거기다 일제에 의해 각지의 사찰에서 모아온 고승들의 탑과 부도들이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의 정원에 전시돼 있다.
지금 경복궁은 대부분이 보수 공사 중이다. 나라가 힘이 없고 혼란을 겪을때 많은 부분이 훼손된 궁궐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해서다. 이번 경복궁 복원의 원형은 고종 연간에 중건된 모습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하니 완공된 모습이 어떨지 가슴뛰며 기대된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세워진 경복궁이 정궁으로 우리 앞에 다시 우뚝 서는 날을 우리 모두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곳
홍제동에 사는 김미경씨는 가끔씩 고궁에 들린다.
이곳에 오면 복잡했던 마음도 정리할 수 있고, 차분하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보다 자주 찾는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과 함께 데이트 장소로 많이 왔던 곳. 지금은 아들과 자주 온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역사적인 내용을 학습하지는 못하지만 동네에 아이들이 뛰어 놀만한 마땅한 놀이터나 공원이 없어서 이곳에 데리고 온다.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모처럼 시간을 만들어 찾아온 경복궁이건만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여기저기 공사를 하고있어 마음만 더 어수선하다. 포크레인 소리와 공사장비를 실어 나르는 용달차 등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된다는 김씨. 걱정과 아쉬움 속에 다음에 올 때는 편안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발걸음을 뒤로했다.
전 국토가 박물관. 우리 나라를 이렇게 불러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금수강산 곳곳은 훌륭한 문화를 간직했던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의 문화 유적지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경복궁은 우리 민족이 가장 많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경복궁에 대해서 깊게 알지 못한다. 하루 소풍 길에 만족했던 방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심 속 역사를 찾아서」그 첫 번째로 경복궁을 소개한다.
태조 이성계 개국 초 설립
조선시대에 지어진 5개의 궁 가운데 경복궁은 으뜸이 되는 정궁이다. 경복궁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 개성을 떠나 서울을 새로운 나라의 터전으로 잡은 후 1395년 새 왕조의 궁전으로 지은 것이다.
경복궁은 순탄하지 못했다. 1553년 대 화재로 불에 타고, 다시 임진왜란때 방화로 타버린 경복궁은 그후 250년 동안 버려지듯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렇게 버려져 있던 것을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외세에 의해 무너져 가던 나라의 기강과 왕조의 복구를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재건하였다. 경복궁의 중창은 단순한 옛궁의 재건이 아닌 새로운 궁궐의 조영이라 할 수 있다.
경복궁 중창은 임진왜란 이후 본궁을 버려 두었다는 명분과 함께 외세들로 인하여 실추된 왕권을 다시 세우려는 흥선대원군의 꼿꼿한 의지가 서려있었다. 하지만 명성 왕후가 건청궁에서 일본인에게 무참히 시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후 고종은 덕수궁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부터 경복궁은 주인 잃은 빈 궁궐이 되고 만다. 더욱이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후, 경복궁은 일본인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 4,000여칸의 건물이 헐리는 등 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에서 민족 정기 회복의 하나로 경복궁 복원 사업을 벌여 경복궁 옛 모습 살리기에 힘쓰게 되었다. 지난 1996년 옛 조선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영제교와 흥례문을 복원했다. 비록 궁안 대부분의 건물들이 옛 모습을 잃어버리거나 사라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주요 건물들이 남아있다.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영제교·흥례문 복원
경복궁은 근정전에서 시작된다. 근정전은 정궁의 정전. 최고의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다. 이곳에서 조선시대 왕들은 백성들이 편안히 사는 방법을 찾으며 부지런히 일했다.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어서 안을 살펴볼 수가 없다. 근정전을 지나면 사정전이 보인다. 이곳에선 문무신료들이 깊이 생각하는 정치를 임금에게 주문했다는데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자주 들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정전 북쪽으로 가면 왕의 처소인 강녕전이 나온다. 강녕전을 위로 왕비가 머무는 교태전이 있다. 요즈음 방송 사극에서 이 교태전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후궁들의 암투가 새삼 떠오른다. 교태전은 왕비의 정침인 궁중전. 그 뒤로 후정인 아미산이 있다.
아미산은 궁중 후원의 대표. 원래 중국 사천성 아미현의 서남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경관이 매우 수려한 선산으로 이를 상징화한 이름이다. 아미산에는 6각형의 화전으로 축조한 굴뚝 4개가 있다. 이 벽면은 당초문, 소나무, 대나무, 매화, 모란, 국화, 용, 호랑이, 박쥐, 해태, 구름 등의 정교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 곧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한 문양들은 왕과 신하 그리고 행복과 장수, 사군자의 선비적 고고함 등을 상징하고있다. 앞마당에 큰 나무를 심지 못하게 했던 제도 때문일까? 기화요초의 아름다움과 녹음방초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안타깝게도 후원뿐이었다.
경회루와 향원정
경회루는 왕실 전용의 휴식공간.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침전구역의 바로 옆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회루는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왕이 잔치를 여는 곳인데 어디선가 어렴풋이 풍악이 들리는 것 같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였던지라 경회루의 구조도 그와 비슷하게 보인다.
경회루는 옛 문헌에 의한 주역의 원리가 담겨져 있다고 한다.
경회루가 남성적이라면 향원정은 아늑하고 매우 여성적인 곳이다. 1층에는 평범한 난간의 툇마루를 두었고, 2층에는 닭다리 모양의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다. 그리고 각 칸마다 예쁜 나무 창살들을 달아 그냥 보기에도 참 멋있다.
궁내에는 전각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구나 왕실의 여러 가지 유물들도 있다. 거기다 일제에 의해 각지의 사찰에서 모아온 고승들의 탑과 부도들이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의 정원에 전시돼 있다.
지금 경복궁은 대부분이 보수 공사 중이다. 나라가 힘이 없고 혼란을 겪을때 많은 부분이 훼손된 궁궐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해서다. 이번 경복궁 복원의 원형은 고종 연간에 중건된 모습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하니 완공된 모습이 어떨지 가슴뛰며 기대된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세워진 경복궁이 정궁으로 우리 앞에 다시 우뚝 서는 날을 우리 모두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곳
홍제동에 사는 김미경씨는 가끔씩 고궁에 들린다.
이곳에 오면 복잡했던 마음도 정리할 수 있고, 차분하게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보다 자주 찾는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과 함께 데이트 장소로 많이 왔던 곳. 지금은 아들과 자주 온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역사적인 내용을 학습하지는 못하지만 동네에 아이들이 뛰어 놀만한 마땅한 놀이터나 공원이 없어서 이곳에 데리고 온다.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모처럼 시간을 만들어 찾아온 경복궁이건만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여기저기 공사를 하고있어 마음만 더 어수선하다. 포크레인 소리와 공사장비를 실어 나르는 용달차 등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된다는 김씨. 걱정과 아쉬움 속에 다음에 올 때는 편안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발걸음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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